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조이 Jun 05. 2024

뒤돌아서는 용기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술래는 뒤돌아서서 눈을 감았다. 씩씩하게 외치고 나서 뒤를 돌아보았다. 그것을 여러 번 하는 동안 목표물은 점점 가까워지고 있었다. 귀에 스치는 소리가 난다. 이제 내가 잡아야 할 시간이다.


그러나 아무리 반복해도 잡을 수가 없다. 애써 손가락에 걸어두었던 임시적인 목표물도 내 손을 떠난 지 오래다. 열심히 뒤쫓지만 무엇도 잡을 수 없다. 내가 잡아야 할 것들이 저만치로 달아난다.


다시 처음부터 시작이다. 반복이다. 절망이다. 나를 스치던 짜릿함이 두려움으로 변한다. 무엇도 잡지 못할 거라는. 술래는 기를 포기한다. 어둠 속에서 눈을 뜨지 않기로 했다.


"나 안 할래."


모든 게 재미없고 시시하다. 한 발짝 앞서 뛰는 기분은 무엇일까. 술래의 자리에서도 목표물이 다가온 찰나를 놓치지 않는 자와, 더 빨리 뛰어서 마침내 원하는 것을 잡아내는 자들이 있다. 그들을 보며 나도 인생 역전을 꿈꾼다. 필드에 다시 고 싶지만 나는 또 술래일 것이다. 금방 술래가 되어 술래에서 오래오래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어릴 적 친구들과 함께 하는 놀이는 재미있었다. 혹 누가 오래오래 술래였다 해도, 모두가 재미있게 놀기 위해 판을 뒤집고 술래를 바꿔주었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아무리 좇아도 나의 걸음으로는 그 무엇에도 닿지 않았다. 황급히 스탑! 을 외쳐도 내가 서있는 자리로부터 단 몇 발자국으로 따라잡기는 역부족이었다. 나는 그렇게 술래의 굴레에 빠져버렸다.


나의 출발선에서 역전이란 없었다. 몇 배로 열심히 뛰어야 따라잡을 텐데, 나에게는 그런 투지가 없었다. 나는 무기도 없었고, 어떻게 싸워야 하는지도 알지 못했다. 결국 나는 스스로를 속여버렸다. 위너가 될 수 없다면 루저도 되지 말자. 그러나 자리를 이탈하는 순간부터 이미 실패감에 젖어버렸다. 도전을 포기하고 실패의 경험을 외면할수록, 실패감은 점점 번져나갔다.


이제 나는 필드에 다시 서서 생각한다. 내가 진정 좇으려던 것은 무엇이었나. 내 손에 닿을만한 것들만 좇다 보니 방향을 잃어버렸다. 결국엔 그 어느 것도 손에 닿지 않았다.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천천히 읊조리고 조심스레 뒤돌아본다. 내 앞에 마주한 것들을 하나하나 다시 살펴본다. 가장 가까운 거리에 있는 [돈]이 눈에 들어온다. 그러나 나는 그것을 좇다가 항상 길을 잃었다. 이번엔 마음을 빼앗기지 않기로 한다. 뒤돌아서는 타이밍이 맞으면 운 좋게 손에 넣을 수도 있을 것이다. 대신 저 멀리에서 항상 빛나고 있던 [꿈]을 보았다. 생각해 보니, 내가 뒤돌아설 때마다 그는 늘 한 방향으로만 나아왔고, 한 방향으로만 나아갔다.


또다시 몇 번의 어둠을 반복해야 할는지 모르겠다. 그러나 나는 눈을 감고 있을 때에도 그를 생각할 것이다. 얼른 술래를 벗어나야지 하는 마음보다도, 그를 잡아야지 하는 마음보다도, 몇 번 반복하다 보면 그를 가까이서 볼 수 있겠지 하는 마음으로. 끝내 잡을 수 없고 다시 멀어진대도 그 순간은 언제나 내게 올 것이다. 내가 이 자리를 포기하지 않는 한. 뒤돌아서는 용기를 잃지 않는 한.



이전 07화 쫓긴 것이나 도망친 것이나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