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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이 Jun 09. 2024

좋은 문장을 쓰고 싶어서

어른의 문장력


브런치에 쓴 글이 벌써 59편이다. 이 글을 발행하고 나면 딱 60편이 될 예정이다. 글을 쓰다 보니 잘 쓰고 잘 읽고 싶은 욕구가 생겨서, 잘 쓰는 법에 대한 책을 두 권 읽고 있다. 읽으면서 깊은 반성과 함께 추천하고 싶은 마음이 들어서 이 글을 쓴다.


1. 좋은 문장을 쓰고 싶다면(산지니, 이진원)


저자는 교열기자로서 구체적인 예시를 들어 좋은 문장들을 소개한다. 실제로 기사에 실렸던 문장이나 심지어 사전에 기재된 문장조차도 잘못된 표현과 비문이 많았는데, 더 심각한 건 나였다.


'뭐가 이상한 거지...?'


하면서 읽다가도 저자의 날카로운 지적에 '아, 그렇구나.' 한다. '나도 글을 쓸 때 이런 버릇이 있는데...' 하며 부끄러워지기도 하지만, 그만큼 알아가는 재미가 있다. 특히 문장부호 (), {}, []의 쓰임새는 정말 몰랐다. 학창 시절 분명 배운 적이 있을 텐데 말이지...


종종 느껴지는 저자의 냉소적인 표현이 크게 불편하진 않다. 실질적인 도움이 되기 때문이기도 하고, 우리말과 글을 올바로 사용하려는 의지와 자부심이 느껴지기 때문이다. 언어는 사회적 약속인데, 그것을 지키지 않는 이들에 대한 저자의 시각이 날카롭다. 외래어 표기법을 무시하고 외국말을 써 버릇하는 이유에 대해서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외국말 실력을 자랑하려는 의도가 있거나 우리말 어휘력이 달려서일 것이다. 게다가 '듣는 사람이야 알아듣든 말든'이라는 생각도 살짝 깔려있을 터. 그러니, 쓰지 않아도 될 자리에 외국말을, 그것도 언론이 즐겨 쓸 땐 대놓고 비웃어도 된다.


협력, 협업, 합작이나 공동 작업이라는 단어를 놔두고 '컬래버레이션(collaboration)'이라는 단어를 굳이 차용한 것도 모자라, 외래어 표기법도 무시한 채 억지로 줄여서 '콜라보'라고 쓴 신문기사에 대해 비판한 것이다. 특히 '듣는 사람이야 알아듣든 말든'이라는 표현에 잠시 멈춰서 생각해 본다. 콜라보라는 단어를 모르는 사람은 많지 않겠지만, 이런 식으로 외국말을 용하는 태세가 문제겠다.


책의 뒷부분에서 저자는 낯선 외래어나 외국어 남용은 정보 소외를 부르고, 가진 사람이 재화 획득에 유리한 구조는 사회 불평등을 야기한다고 말한다. 언어 민주화가 없으면 정보 민주화나 경제 민주화도 있을 수 없는 법이며, 살기 좋은 세상은 말을 잘 몰라서 불이익을 받는 사람이 없는 세상이라고 주장한다. 결국 저자는 우리 사회의 가장 기본적 합의인 언어의 약속을 지키고자 부단히 노력하는 사람이다.


이제까지는 잘 몰랐더라손 치더라도, 나도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이 약속을 지키는 일에 적극 동참하겠다고 다짐해 본다. 더욱이 앞으로 무엇을 하든, 글을 쓰며 살고자 하는 사람으로서 말이다.



2. 어른의 문장력(더퀘스트, 김선영)


이 책은 도서관의 앉은자리에서 두 시간 만에 읽었다. 맛있는 음식을 꿀꺽 받아먹듯 재미있게 읽어갔다. 마찬가지로 좋은 문장에 대한 예시가 많은데, 어른의 문장에 대한 에피소드를 에세이 형태로 녹여냈다. 각 챕터마다 말미에 '어른의 문장은 ~하다, '라는 한 문장으로 좋은 문장에 대한 특징을 요약해 준 점도 좋았다.




좋은 글을 쓰고 싶었는데, 좋은 글은 좋은 문장에서 나온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이 글을 기점으로 잠시 휴식기간을 가지려고 한다. 57일 동안 59편의 글을 썼으니 1일 1편의 글을 쓴 셈이다. 그런데 두 권의 책을 읽으니 이미 발행한 나의 글에 대해 책임감이 생겼다. 나의 문장을 다시 살펴보고 싶어졌다.


새로운 글을 발행하기보단 그동안 발행했던 글을 퇴고하는 방향으로 브런치와 동행하기로 했다. 퇴고에는 끝이 없다지만... 어쨌든 끝없는 동행이 되는 걸까. 실제로 모든 글은 발행 전 몇 번이나 퇴고를 거쳤지만, 다시 읽어보니 고칠 게 또 나온다. 아마 2,3 회독하면서도 계속 나올 것이다.


완벽한 문장만 쓰진 못할 것이다. 그러나 좋은 문장이란 결국 읽는 사람을 배려한 글이다. 나는 배려와 친절이 빠진 글은 쓰고 싶지 않다. 말하듯 글을 쓰고 글을 쓰듯 말하며 좋은 언어를 가진 어른이 되고 싶다는 나의 말에, 아버님께서는 비언어적 표현에 대해서 말씀하셨다. 말과 글이 바르더라도 태도가 바르지 않은 사람들이 있노라고. 반대로 말이 서투르고 맞춤법 같은 건 잘 몰라도, 겸손하고 예의 바른 태도를 견지하는 것이 어쩌면 더 어려울 수 있다고.


아차 싶었다. 좋은 글과 문장을 쓰는 것보다 더 어려운 건 좋은 말을 하는 거라고 생각했다. 글은 고쳐쓸 수 있지만 말은 주워 담을 수 없으니. 그런데 그보다 더 어려운 건 좋은 행동을 하는 것이다. 글쓰기도 행동의 영역이긴 하지만 삶의 행동반경은 너무나도 넓다. 글 쓰는 행위를 하지 않는 무수한 시간 동안 나는 얼마나 배려하고 친절했나.


내가 해야 할 일이 늘었다. 써냈던 글을 퇴고하는 일뿐 아니라, 매일 아침 엘리베이터에서 마주치는 이웃들에게 정다운 인사를 건네야겠다. 나는 좋은 글을 쓰고 싶고, 좋은 삶을 살고 싶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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