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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련 Oct 24. 2021

달의 뒷면

보고 싶었다

  2019. 1. 16.


  당신이 대학 연말 행사에 냈다는 시를 블로그에서 찾아 읽었다. 정신과로 통원 치료를 다니는 화자가 상담실에서 '선생님'을 마주하고 본인이 일전에 겪은 수치스러운 일에 대해 결국 얘기를 꺼내지 못하는 이야기가 담긴 시였다. 당신은 그 시의 초고를 편지로 써서 나에게 주었던 적 있다. 무거웠지만 자주 꺼내 읽어보고 싶은 시였다. 당신은 블로그를 일기 대용으로 활용한다고 말했다. 짧을 때는 한 줄도 되지 않는 하루를, 길면 A4 3장이 넘어가는 하루를 포스팅하고, 그러면 당신의 오래된 블로그 이웃들이 읽고 하트를 눌러준다고 했다. 그렇게 글로써 각자의 하루를 나누고 더하고 오래 감미하면서 위안을 얻고 외로움을 축소시키는 게 당신의 매일 저녁 일과라고 했다. 저녁 일과. 나는 본가 근처에 있는 모교 운동장에서 저녁 10시 매일 같이 한 바퀴 두 바퀴 세 바퀴 돌면서 당신과 통화했다. 오렌지 빛깔 가로등 아래에 잠시 멈춰 서서 가만히 듣곤 했던 당신의 웃음소리가 기억난다. 꼭 두 번 감기는 라이터 소리도. 당신은 입원 중인 병동의 침대에서 몰래 빠져나와 옥외 휴게공간에서 담배를 피웠다. 당신에게 있어 복합 우울증과 조울증, 경계선 인격 장애, 불안 장애 같은 병증들은 애인에게 보여주기 싫은 당신의 어두운 면이었고 죽도록 극복하고 싶은 끔찍한 병이었다. 당신은 외로움이 차고 넘치는 사람이었고 멀리 살고 있는 나와 매일 밤 통화를 하는 게 롱디의 허전함을 그나마 만족시키는 방법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끝을 모르는 외로움과 두서없이 쌓인 우울함이 한층 더 무겁게 당신을 짓누르는 밤이면, 당신은 한 시간 통화 내내 울고 있기만 했다. 나는 잠자코 듣고 있었고 당신이 필요할 때 당신의 곁에 있어주지 못한다고 생각하며 처지를 비관했다.


  가까운 친구의 추천으로 찾게 된 정신건강의학과의원은 내가 자취하는 동네와 꽤나 먼 곳에 있었다. 30여 분 버스를 타고나서 10여 분간 걸어가면 있는 병원이었고, 모든 게 첫 경험이었던 내게 그곳은 마찬가지로 두려움과 긴장뿐인 곳이었다. 대략적인 절차는 친구로부터 전해 들은 바가 있어 앞으로 내게 일어날 상황들은 머릿속에서 대충 정리가 되어 있었다. 먼저 나는 좁은 방으로 안내를 받은 뒤 그 안에서 몇 가지 검사를 진행하고 설문지를 작성했다. 중 고등학교 때 상담센터에서 호기심 반 진심 반으로 해보던 성향 테스트와는 질과 양이 매우 달랐다. 가볍게 2~30분 정도면 서류 작성은 끝날 줄 알았는데 착각이었다. 오히려 거의 1시간 조금 더 넘는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나는 좁은 방에서 나올 수 있었다. 나와의 상담을 맡은 원장님은 다음 시간부터 본격적으로 상담을 시작하겠다고 얘기했다. 내가 작성한 글들을 살펴보고 그 정보를 토대로 '나'라는 인간의 어느 면을 관찰할 시간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잘 보이지 않는 달의 뒷면처럼, 마음의 주인인 '나'조차도 제대로 바라보지 못했던 면을. 어느 밤 우는 얼굴로 부엌칼을 찾던 나의 슬픔의 모양을.


  2주 뒤에 잡힌 상담 시간에 나는 나의 연애사를 원장님에게 하나부터 열까지 털어내지 않았다. 세상 사는 사람들 만나고 이별하는 슬픈 연애사는 이미 충분히 널려 있으므로 구태여 말할 필요까지는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원장님이 나에게 하는 질문은 매번 같았다. "오늘은 기분이 어때요?" 단순한 질문이었지만 왜인지 쉽게 대답하기가 어려웠다. 그냥 '슬프다'라고 '우울하다'라고 얘기하고 싶지가 않았다. 구체적으로 말하고 싶었지만 말이 하나로 모이지 않았다. 침묵하고 있는 내게 원장님은 일기를 한 번 써보는 게 어떻겠냐고 말했다. 조금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감정 일기'를. 그날그날 나의 기분에 가까운 문장을 하나씩 기록해가며 수집하는 게 나의 마음을 조금 더 나아가서는 '나'라는 인간의 총체를 이해해가는 데에 도움이 될 거라고 말이다. 그날부터 나는 일기를 쓰기로 마음먹었다. 일기 같지 않은 글이라도 좋았다. 한 줄짜리 코멘트 같은 거라도, 아니면 대상 없는 편지 같은 거라도 좋다고 생각했다. 나를 이해하고 싶었다. 나를 이해함으로써 조금이라도 더 구체적으로 나를 위로하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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