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치앙마이 사원투어: 황금빛 도이수텝 vs 잊혀진 왓파랏

같은 산에 위치한 극과 극 사원투어

by 안긁복의 모두극뽁 Mar 21. 2025
아래로

선셋요가와 수영을 위한 힐링 스폿을 소개한 지난화​에 이어, 이번 화에서는 치앙마이 한달살기 중 가장 인상 깊었던 사원투어 이야기를 전해보려 한다. 사실 치앙마이에는 시내에도 교외에도 정말 많은 사원이 있다. 그중에서도 수텝 산에 위치한 도이수텝왓파랏, 이 두 사원은 황금빛으로 빛나는 화려함과 세월의 흔적이 고스란히 묻어나는 고요함이라는 극과 극의 매력을 지니고 있다. 단기 여행자에게도 잘 알려진 관광명소와, 장기 여행자만이 알아볼 수 있는 히든 스팟. 이 둘을 모두 경험하며, 나는 치앙마이의 또 다른 얼굴을 마주했다. 내 경우 도이수텝은 여행사 당일투어를 통해 가이드와 함께하는 조인투어로 다녀왔고, 왓 파랏은 한달살기를 하며 알게 된 동행과 함께 다녀왔다. 치앙마이 사원투어 추천, 도이수텝 후기, 왓파랏 사원 등 치앙마이 한달살기 중 꼭 방문할 명소를 찾는 이들에게 이 글이 작은 안내가 되기를 바란다.


황금빛 도이수텝(Doi Suthep): 치앙마이 대표 사원


도이수텝은 엄마와 함께 지내는 동안 다녀왔다. 딱 하나의 사원만 볼 거라면 가장 크고, 가장 유명하고, 가장 대표적인 사원에 가는 것이 맞다고 생각했다. 더욱이 치앙마이의 야경을 한눈에 담을 수 있다니 엄마처럼 단기간만 머무는 여행자들에게는 더없이 좋은 선택지인 것 같았다. 시내가 아닌 해발 1000m가 넘는 수텝산에 위치했기 때문에 어떻게 가야 할지 막막했지만, 도이수텝에 갈 수 있는 방법은 다양했다.

님만 마야몰 앞 혹은 치앙마이 대학교 앞에서 ‘썽태우(택시)’에 합승해서 타고 가는 방법

그랩이나 볼트 등 플랫폼 택시를 이용하는 방법

여행사의 투어 프로그램을 이용하는 방법

스쿠터, 자전거, 트레킹 등의 방법으로 개별 이동하는 방법  

이 중에서 나는 여행사 단기 투어 프로그램을 이용했다. 혼자였다면 마야몰 앞에서 모르는 사람들과 함께 치앙마이의 택시인 썽태우를 타고 가는 색다른 경험도 해볼 만했을 텐데, 엄마와 함께였기 때문에 최대한 안전하면서도 편리한 방법을 택했다. 마이리얼트립에서 도이수텝투어를 검색했더니 영어가 가능한 현지인 가이드가 포함된 ‘왓 우몽+도이수텝 야간 투어’가 있었다. 한국어가 가능한 가이드가 포함되면 가격이 살짝 더 비쌌다. 자세한 설명까지는 못 알아듣더라도 대략 소통이 가능하다고 판단해 현지인 가이드 포함 상품을 선택했다. 투어 신청 시 호텔이름을 입력하면 시간 맞춰 호텔에서 픽업을 하고 투어가 끝난 후에는 원하는 위치로 샌딩 서비스까지 해주는 투어였다. 게다가 근처에 있는 동굴사원인 ‘왓 우몽’까지 투어에 포함되어 있었다. 직접 한 번에 돌기엔 무리가 있는 코스이기 때문에 투어 신청이 여러모로 더 나은 옵션이었다.

투어밴을 타고 올드타운을 벗어나고 있다

미리 고지된 시간에 맞춰 픽업밴이 호텔로 왔고 올드타운에 머무는 우리팀이 가장 먼저 밴에 탑승했다. 투어 동행은 우리처럼 모녀인 팀, 친구나 연인, 자매끼리 온 팀들이었다. 혼자 온 여행자도 두 분이 탑승해 총 12명이 함께 움직였다. 올드타운 내 몇 개의 호텔과 님만해민의 몇 개 호텔을 거쳐 드디어 첫 번째 투어 사원인 왓우몽에 도착했다.

왓 우몽(Wat Umong)은 수텝산의 기슭에 있는 작은 사원으로, 사원 이름의 우몽은 곧 동굴이라는 뜻이다. 실제로 터널을 파서 지어진 사원이고 터널의 끝마다 불상이 놓인 독특한 형태를 보인다. 14세기 란나 왕조에서 왕의 스승인 수도승을 기리기 위해 지었다고 한다.

동굴의 입구에서 신발을 벗고 챙겨서 들어가야 했다. 생각보다 깊었던 내부에는 작은 불상과 명상 공간이 여러 개 이어져 있었고, 촛불과 은은한 불빛으로 신비로운 분위기를 자아냈다. 동굴이다 보니 실제로 통로에는 박쥐들도 있어 조심조심 들어가야 했다. 동굴 내부에는 누가 그렸는지 모를 나비나 새, 고양이 등 벽화들도 그려져 있었다. 고대시대에 그려진 것이라고 했다. 이 사원의 용도는 당시 왕이 명상하고 기도하기를 좋아해 자주 찾았던 왕의 명상을 위한 장소였다고 한다. 가이드는 란나 왕국의 왕이 기도를 드렸을 불상 앞에서 우리 모두의 사진을 열심히 남겨주었다.

동굴사원 왓우몽에서 남긴 사진들. 천장에 매달려있던 박쥐

동굴사원을 둘러본 뒤에는 야외에 있는 파고다(탑)를 보러 갔다. 보통 불교사원에서 파고다에는 부처님의 사리를 보관하는 데 이곳의 파고다에는 사리가 없다고 했다. 석가모니의 열반 직후 사리는 8등분 되어 여덟 개의 지역에 각각 사리탑으로 조성되었다고 한다. 부처님의 사리를 서로 차지하려고 주변국 8개가 무력 충돌할 위기에 처하자, 한 중재자가 사리를 8 등분하여 각국에 나눠주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만큼 사리가 있는 불탑은 불교에서는 엄청나게 신성한 것으로 여겨지는데 치앙마이 사원 중 ‘도이수텝’에는 사리가 보관되어 있고, 이곳 ‘왓우몽‘에는 보관되어 있지 않다고 했다. 하지만, 도이수텝의 사리가 도난당할까 봐 다른 사원들에도 가짜(?) 파고다를 세워 위장하려는 의도도 있었다고 가이드는 설명해 주었다.

왓우몽의 파고다. 운치있는 불탑이었다.

해가 질 무렵이라 어두워졌지만 파고다를 둘러싼 숲과 연못이 있고 종종 새소리가 들려 낮에 온다면 고즈넉이 산책하기 좋을 듯했다. 이곳은 관광객들보다는 현지인이나 수행자들에게 인기 있는 사원이라고 했다. 하지만 이번 투어에서는 ’도이수텝‘이 주인공이었기에 왓우몽은 그냥 살짝 찍고 가는 정도였다. 왓우몽에서 차로 30여분 더 올라가면 도이수텝이 나온다. 꼬불꼬불한 길로 끝도 없이 올라가며 멀미를 조심하라는 후기를 봤는데 미리 멀미약을 먹고 탔음에도 살짝 어지러웠다. 그래도 포장도로로 끝까지 올라갈 수 있었다는 것이 그나마 다행이었다. 사원으로 올라가는 길에는 들개들이 정말 많았다. 저 많은 들개들이 이 산속에서 무얼 먹고살까 궁금하면서도, 저 길을 걸어갔다가는 너무 무서웠을 것 같았다. 아주 가끔 자전거를 타고 오르는 서양인들이 여러모로 대단해 보였다.

도이수텝 올라가는 길에도 올라가서도 만나는 들개들

드디어 도이수텝 입구에 도착했다. 차에서 내리자마자 사원을 볼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우리에겐 두 갈래의 길이 주어졌다. 하나는 306개의 계단을 올라 사원에 도착하는 길, 또 하나는 케이블카를 타고 1분 만에 올라가는 길이었다. 원래 엄마와 나는 걸어서 올라 공덕을 쌓아보려 했는데, 우릴 제외한 모든 사람들은 케이블카를 택했다. 올라가서 사원을 둘러보는 데 더 시간을 쓰고 싶었다는 거였다. 결국 우리도 20밧(약 800원)을 추가로 내고 케이블카를 택했다. 상상했던 케이블카가 아니라 엘리베이터 문을 열고 탑승하는데 엘리베이터가 레일을 따라 사선으로 올라가는 구조였다. 어쨌든 아주 편하고 빠르게 우리는 도이수텝에 도착했다.

티켓을 끊고 엘레베이터에 타면 1분이면 도착한다

올라서자마자 느낌은 웅장하다는 것이었다. 일단 모든 건물들과 탑이 번쩍번쩍 금으로 빛났고, 탑도 아주 높았으며 부지도 층층이 아주 넓었다. ’도이수텝을 보지 않으면 치앙마이에 왔다고 할 수 없다‘던 말의 의미를 조금은 알 것도 같았다. 본격적인 사원 투어에 앞서 우리는 치앙마이 시내가 내려다보이는 도이수텝 전망대에서 야경을 먼저 구경했다. 신성한 불탑을 뒤로하고 탁 트인 전망을 바라보니 왠지 모를 경건함이 느껴졌다. 서울이나 도쿄, 뉴욕 등의 화려한 도시야경에 비하면 미미한 불빛일지라도 그 자체가 이 도시의 정체성처럼 느껴졌다. 이번에도 가이드 언니는 포즈까지 알려주며 열정적으로 우리의 사진을 남겨주었다.

도이수텝에서 내려다보이는 치앙마이 시내 야경
왓 프라탓 도이수텝 (Wat Phra That Doi Suthep)은 1383년 란나 왕조 시대에 세워졌으며, 부처의 사리를 모신 사원으로 태국 북부 불교의 성지로 여겨진다고 한다. 도이수텝 산 중턱에 위치하며, 중앙에는 황금으로 뒤덮인 대형 불탑(쩨디)이 있어 화려함의 극치를 보여준다. 매년 많은 불교 신자와 관광객이 방문하는 랜드마크이며, 역사적·종교적 의미가 깊다.

유난히 코끼리 상과 벽화 등 코끼리 상징물이 많아서 궁금했는데 이 사원에는 코끼리와 관련한 전설이 있었다. 부처의 사리를 등에 진 하얀 코끼리가 사리를 운반하다가 수텝 산에 이르러 크게 한 바퀴를 돌다가 멈춰 세 번 울고는 숨을 거뒀다고 한다. 그 코끼리를 기리며 그 자리에 사원을 세웠고 부처님의 사리를 보관하고 있다고 한다. 가이드는 이러한 설명에 덧붙여 태국인들이 코끼리를 사랑하고 신성시하는 데에는 이런 사연이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역시나 사원에 입장할 때는 신발을 벗어야 하며 짧은 치마나 반바지 차림은 허용되지 않는다고 했다. 우리 팀 중 짧은 하의를 입은 일행이 있었는데, 다행히 신발을 벗는 곳에 몸에 두를 수 있는 천을 대여해주고 있어 입장할 수 있었다.

커다란 코끼리 벽화와 화려한 도이수텝 사원의 풍경

사원에 입장하자 중앙엔 황금빛 불탑이 있었고 주위에는 불당, 여러 불상들, 종들이 둘러싸고 있었다. 가장 높고 화려한 중앙의 불탑은 계속해서 복원 중이라 얼마 전까지만 해도 공사 중이어서 가림막으로 막혀 있었는데 다시 공개한 지 얼마 되지 않았다고 했다. 가이드는 우리가 아주 운이 좋다고 했다. 이 불탑 주위를 연꽃을 들고 세 바퀴 돌면 소원이 이뤄진다는 이야기가 있어 많은 사람들이 탑 주위를 돌고 있었다. 그리고 탑을 둘러싼 서른세 개의 종을 모두 치면 복이 온다고 했다. 나는 무교이지만 엄마와 함께 탑을 세 바퀴 돌아봤다. 이날은 엄마랑 대판 싸우다가, 불쑥 나의 난임치료를 고백하며 서로 부둥켜안고 엉엉 울던 날​이었는데 그래서 그런지 엄마와 나는 서로의 안녕과 행복을 빌었다. 엄마의 소원은 “우리 딸이 더는 상처받지 않게 해 주세요.”였고 내 것 중 하나는 “엄마가 퇴임 이후에도 쓸쓸하고 외롭지 않게 해 주세요.”였다. 화려함과 경건함이 어우러진 사원 투어였다.

탑 주위를 세 바퀴 돌며 소원을 빌어봤다

소원을 빌고 나와 사원을 마저 둘러보는데 정기 법회가 열리고 있었다. 경건한 법회 중 뒤에서 장난을 치는 아이들이 눈에 들어왔다. 태국의 국교가 불교임이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아직 어린아이들에게는 이 시간이 얼마나 지루하겠는가. 부모님을 따라 절을 하고 곧잘 불경을 외면서도, 뒤에서 몰래 장난을 치는 모습은 영락없는 순수한 아이들 그 자체였다. 어린아이들의 천진함은 국적을 불문한다. 남매로 보이는 두 아이였는데 처음엔 서로 살짝살짝 밀치는 장난으로 시작해 결국은 한 아이가 울면서 싸움으로 끝났다. 모른척 법회에 집중하던 아이들의 부모는 결국 절을 하다 말고 두 아이를 말렸다. 남매의 투닥거림도 국적불문이다.

신성한 법회 중 귀어운 아이들이 장난을 친다

사원투어를 마무리한 토요일 저녁. 투어팀은 각자의 장소로 뿔뿔이 흩어졌다. 치앙마이 대학교 후문에서 열리는 야시장에서 내리는 팀, 숙소로 돌아가는 팀, 그리고 올드타운에서 열리는 새러데이 마켓에 가는 팀으로 나뉘었다. 원하는 장소에서 내릴 수 있는 점도 이 투어에서 마음에 드는 점이었다. 엄마와 나는 투어에서 친해진 동생과 함께 새러데이 마켓을 함께 구경했다. 야시장에서 산 먹거리들과 시원한 맥주로 투어를 마무리했다.

투어 후 새러데이마켓 야시당에서 간단한 저녁식사


잊혀진 사원, 왓 파랏(Wat Pha Lat): 고요한 명상의 공간


왓파랏은 도이수텝에 가는 길목에 있는 사원이지만, 울창한 숲 속에 숨겨져 있어 대부분의 여행자들은 그냥 지나치는 곳이다. 도이수텝까지 가던 코끼리가 잠시 멈춰서 쉰 곳에 만들어진 사원이라고 한다. 신성한 코끼리가 한번 더 쉬었더라면 또 다른 사원이 이 산중에 또 세워졌을지도 모른다. 지난번 열린 재즈페스티벌에서 친해지게 된 K님이 스쿠터 모임에서 왓파랏 사원 투어를 가는데 같이 가지 않겠냐고 제안했다. 왓파랏에 가보고 싶었던 나는 무조건 가겠다고 했다. 그저 스쿠터를 타고 그 사원까지 가는 것인 줄만 알았다. 투어 당일 그것이 트레킹임을 알게 되었다. 몽크 트레일(Monk’s trail)이라 불리는 숲길이 있는데, 이전에 승려들이 사원과 사원사이를 오가던 길 중의 일부가 아직 남아있는 곳으로 트레킹 코스로 유명하다고 한다. 몽크트레일을 따라 걸으며 왓 파랏까지 가는 것이었다(물론 현재는 숲길이 아니어도 포장된 도로를 따라 사원 입구까지 갈 수 있다).

왓파랏까지 트레킹할 수 있는 치앙마이 몽크스 트레일

3-40분 정도 되는 트레킹으로 약간 숨이 가빴지만, 왓파랏은 꼭 방문할 가치가 있는 곳이었다. 황금빛을 두른 화려한 도이수텝과는 정반대의 느낌을 주는 신비스러운 곳이었다. 이곳이 왜 버려진 사원, 잊힌 사원이라는 별칭을 갖게 되었는지 입구에서부터 너무나 이해가 되었다. 숲길 끝에 숨겨진 입구로 들어서면 시간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있는 사원이 나타난다. 어떻게 보면 신비롭지만 누군가는 살짝 으스스하다고 할 수도 있을 정도였다. 어떤 건축 양식인지는 모르겠지만 화려하면서도 오묘한 동상들, 그 위로 엄청나게 쌓인 이끼들과 거미줄들이 머나먼 과거의 전설 속으로 걸어 들어온 듯한 느낌을 줬다. 나중에 찾아보니 버마와 영국의 건축 양식이 혼합된, 식민지 시절 란나 양식의 건물들이라고 했다. 14세기에 건설한 사원답게 무척 고풍스러운 느낌을 주었고, 돌을 깎아 섬세하게 표현된 불상들과 계단들은 도이수텝과는 또다른 볼거리를 선사했다. 그도 그럴것이 도이수텝은 불상을 봉안한 란나 왕조의 성지이고, 왓파랏은 수도승들의 수행지였기 때문에 전자는 금을 두른 화려함을 유지하고, 후자는 차분하고 소박하게 남지 않았을까.

도이수텝과는 또다른 왓파랏 사원의 분위기

어떤 복원의 흔적 없이 세월의 흔적이 고스란히 느껴져, 아무도 찾지 않는 발길을 끊은 곳인가 했더니 불당에서는 승려들이 법회를 하고 있었다. 불당 주변에는 이끼가 잔뜩 쌓여 신비로운 분위기를 더하는 불탑이 있었다. 이곳의 승려들은 사원 내 환경을 수행하기 적합하게 만들고, 전통과 문화를 보존하기 위해 본래 그대로를 유지한다고 한다.

울창한 숲속에 옛모습을 간직한 고대사원 왓파랏

대나무가 우거진 계단을 따라 조금 내려오니 폭포가 있었다. 왓파랏에 오고 싶었던 이유 중 하나는 폭포 너머로 보이는 치앙마이 시내가 절경이라는 이야기를 들었기 때문이다. 마침 해가 지고 있어 일몰과 함께 멋진 풍경을 감상할 수 있었다. 폭포소리를 들으며 얼마간 시내 풍경을 조용히 내려다봤다. 폭포의 징검다리 위에는 이곳의 터줏대감으로 유명한 검정개가 있었다. 이 사원에서 길을 잃으면 이 개가 큰길까지 길을 안내해 준다는 여행자들의 이야기가 있을 정도로 유명한 녀석이었다. 길잡이개는 그러한 위상에 걸맞게 늠름한 자세로 징검다리를 떠나지 않고 오가는 여행객들을 계속해 살피고 있었다.

사원 옆 폭포와 일몰이 멋진 풍경/ 왓파랏의 터줏대김

해가 지고 나니 금세 깜깜해졌다. 사원 위로 보름달이 떠올랐다. 조용히 걸으며 잠시 생각에 잠겼다. 왓파랏의 또 다른 이름은 ‘사키타카미 사원’이라고 한다. 사키타카미는 ’한 번 더 이 세상에 올 사람‘이라는 뜻의 불교용어이다. 그야말로 불교의 윤회사상이 담긴 말이 아닐 수 없다. 어떻게든 다시 세상에 올 그때 그 사람들을 위해 그때 그 모습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내가 오랫동안 임신이 어렵다는 걸 아는 주변 사람들은 ‘아기가 발이 작아 걸아서 오는데 오래 걸린다’는 말로 나를 위로해줬었다. 이 세상에 다시 오는 길이 그토록멀구나, 언제라도 오기만 해준다면 무한한 사랑을 주어야지. 이런저런 생각에 잠겨 걷고 있는데 한 중년 커플이 사원을 향해 합장을 하며 무엇인가 열심히 기도를 하고 있었다. 그들의 기도도 나의 기도만큼이나 간절했을 것이다. 그들이 기도를 마쳤을 때 나는 하늘을 가리키며 그들에게 보름달이 떴음을 알려주었다. 여자분은 보름달을 발견하고 무척 기뻐했다. 내게 어디서 여행을 왔는지 묻고는 본인은 인도에서 왔다고 했다. 보름달이 그들이 빈 소원을 더 환하게 비춰주기를 바란다고 전하며 사원을 걸어 나왔다.

왓파랏에서 본 보름달

두 사원에 모두 방문했지만 내 마음에 보다 더 들었던 곳은 왓 파랏이었다. 고대에 심긴 나무가 그대로 보존되어 울창한 숲 한가운데에 있고, 어디서나 쉽게 볼 수 없는 신비로운 분위기가 한 몫한 것 같다. 도이수텝은 방콕 등에서도 쉽게 볼 수 있는 양식의 사원이었다면 왓파랏은 미얀마 같기도 하고, 캄보디아 같기도 한 이색적인 느낌의 사원이었다. 만약 도이수텝에 갈 계획이 있다면 왓 파랏과 묶어서 방문해 보기를 추천한다. 한 곳은 눈부시도록 반짝이는 햇빛 비추는 날 같고, 다른 한 곳은 흐리지만 잠잠한 비오는 날 같다. 찬란했던 도이수텝과, 조용한 위로를 안겨준 왓파랏. 같은 산에서 만난 두 사원은 마치 빛과 그림자처럼 서로를 보완하며, 나의 치앙마이 한달살기를 더욱 풍요롭게 만들었다. 여행의 진짜 의미는 결국 관광지와 숨겨진 공간 모두를 경험하며 나를 돌아보는 시간에 있지 않을까.


나는 흐린 날을 다정히 맞는 편이다.
침침한 빛, 자욱한 사물들,
묵직하게 흩어지는 향.
흐린 날에는 모든 존재가
자신을 잠잠히 드러낸다.
그 세계가 몹시 안온하고 충만해서
빠져나오고 싶지 않을 정도이다.

눈이 부시도록 반짝이는 햇빛은
온기를 주는 동시에 대상을 퇴색시킨다.
지나친 빛 속에서는
노출과다 사진 속 피사체가 그러하듯,
내가 배경 속에 희석되거나
본디와 다른 모습이 되고 만다.

그러니 진심이나 맹세는
흐린 날에 건네져야 할 것이다.
햇빛은 사랑스럽지만
구름과 비는 믿음직스럽다.
(한정원, 시와 산책)


어느덧 치앙마이 이야기로 15화를 연재했다. 재미있게 봐주는 독자들 덕분에 나 역시 신이 나서 글을 써 내려갔다. 다음 화에서는 내가 한달살기하던 동안 방문했더니 너무 좋아서, 치앙마이에 다시 간 다면 또 갈 곳들을 전해볼 예정이다.

여러분의 라이킷과 댓글은 제게 큰 힘이 됩니다. 오늘도 끝까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전 14화 치앙마이 한달살기, 선셋요가와 수영의 힐링스폿을 찾다

브런치 로그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