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동학 박사가 바라본 치앙마이 사람들
당신은 치앙마이 ‘3대 한량’과 ‘3대 여왕’에 대해 들어본 적 있는지?
치앙마이에서 한 달을 생활하면서 여행자 커뮤니티 등에서 여러 차례 들어본 나는 이들에 대해 아주 흥미가 생겼다. 이들은 모두 치앙마이에서 요식업을 하는 사장님들인데 한국인 여행자들이 ‘애칭(?)’을 붙여준 셈이다. 커뮤니티에서 실제로 쓰는 말은 한량이지만, 다소 부정적인 의미를 내포하기 때문에 이 에피소드에서는 ‘워라밸(work-life balance/워크-라이프 밸런스) 대장’으로 순화해서 부르기로 하겠다. 또 나는 아동학자로서 타고난 기질에 대해 관심이 많기에 이러한 시선으로 바라본 치앙마이 사람들에 대해 주관적으로 적어본 것일 뿐, 각 사장님들에 대해 어떤 가치 평가를 하려는 것이 아님을 서두에 명백히 밝혀둔다. 다만 이 에피소드의 말미에는 국가 간 비교 연구 결과를 통해 실제로 기질의 문화적 차이가 있다는 내용을 다룬다.
단기 여행자든, 장기 여행자든 한 번은 지나치거나 방문해 보았을 바트커피는 ‘더티커피’ 맛집으로 세 손가락 안에 꼽히는 곳이다. 그런데 이곳 사장님은 왜 워라밸 대장이라는 별칭을 얻게 되었을까? 일단 구글지도에서 확인한 영업시간은 10:30-14:30이지만, 문 열고 닫는 요일이나 시간이 주인 마음대로라는 후기가 엄청나게 많았다. 여행자 단톡방에는 매일아침 “바트커피 열었나요?”라고 확인하는 메시지가 올라올 정도였다. 가뜩이나 하루 4시간 영업인데 그조차도 달라질 수 있다고? 워라밸 대장이 분명했다.
소문대로 나 역시 세 번의 실패 뒤에야 매장 입성에 성공할 수 있었다. 한 번은 2시쯤 방문했지만 재료 소진으로 일찍 문을 닫으신다고 했다. 두 번째와 세 번째는 영업중으로 표시되어 있었지만 방문해 보니 문이 굳게 닫혀 있었다. 치앙마이 생활 3주 차, 오기가 생겨 꼭 먹고야 말겠다는 마음을 가지고 네 번째 방문했을 때 드디어 그와 그의 커피를 영접할 수 있었다. 막상 들어가 보니 매장 내부는 기껏해야 2-3팀 정도 앉을 수 있는 협소한 공간이어서 하루에 4시간 영업하는데 이것만으로 돈이 될까 싶었다. 나처럼 그런 시선에서 아마도 한국인들 대부분이 그가 금수저라느니, 한량이라느니 하는 이야기를 했을 것이다. 여행자의 시간은 빨리 흘러가고 빈틈없기 때문에, 이곳에 방문하기로 계획했다가 틀어지는 일이 잦아질수록 볼멘소리가 나올 수밖에 없는 것 같았다.
앉아서 커피를 마시다 보니 세계 각국에서 온 손님들의 방명록으로 가득 찬 벽이 보였다. 내가 한국인이라 모국어가 눈에 잘 띄는 것인지는 몰라도 50% 이상의 비중을 한국어 메모가 차지하는 것 같았다. 멋진 캘리그래피로 감사인사를 전하는 메모도 보였다. 매장 안에는 나를 포함 세 팀만 앉아 있었지만 테이크 아웃 손님도 끊임없이 찾아와 주인 Bart는 계속해서 커피를 내리고 있었다. 바빠 보였지만 손님을 응대할 땐 늘 수줍은 미소를 띠고 모두에게 친절히 대했다.
그러다 잠깐 평화가 찾아왔을 때 나는 용기 내 바트에게 말을 걸었다. 커피가 너무 맛있다고, 그런데 이 커피를 맛보기 위해 세 번의 실패를 경험했다고. 바트가 아주 미안해하며 ”지난주엔 홍수로 우리 집이 물에 잠겨 문을 열 수가 없었어. 너무 미안해. “라고 말했다. 아뿔싸, 그 홍수로 인해 잠깐의 피난을 경험했음에도 나는 진이 다 빠졌는데 삶의 터전이 물에 잠긴 그는 감히 상상할 수 없는 시간을 겪었을 것이다. 그런 그에게 볼멘소리를 하고 사과를 받는 민망한 상황이 펼쳐졌다. 나는 손사래를 치며 전혀 미안할 일이 아니라, 내가 그만큼 너의 커피를 맛보고 싶어 꺼낸 말이었다고 급히 덧붙였다.
한 번은 왔다가 재료소진으로 돌아간 적이 있었다고 하니 사람들이 자기 커피를 너무 사랑해 줘서 감사하지만 ‘더티커피’의 핵심은 숙성우유인데, 코코넛을 숙성시켜 만드는 우유를 많이 만들어 둘 수가 없기 때문에 하루에 판매할 수 있는 양이 한정되어 있다고 했다. 문을 닫고도 본인은 우유 작업을 해야 한다고 했다(영어로 들었기 때문에 내가 그의 말을 온전히 이해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여기까지 이야기를 나누니 또 손님들이 몰려들었고, 나는 얼른 자리를 빼주었다.
비록 4시간 문을 열고, 어떤 날은 그보다도 빨리 문을 닫지만 그 어떤 카페보다 회전율도 빨랐고, 테이크아웃 손님도 끊이지 않았다. 나는 “그는 워라밸 대장이어도 된다!!”라고 결론을 냈다. 물론 문을 닫고도 잔업이 이어진다고 했지만, 그렇게 해서 만든 커피를 맛있게 먹어주고 그의 매장 벽에 낙서 하나를 더하는 손님들이 그에게 힘을 불어넣어주지 않을까.
태국 여행에서 꼭 먹게 되는 음식 중 볶음국수, 팟타이를 빼놓을 수 없다. 마야몰 4층 푸드코트에서 파는 팟타이는 가격 대비 만족도가 아주 높은 가성비 팟타이로 소문이 나있었다. 푸드코트 내에 있는 작은 가게이지만 꼭 가봐야 한다는 추천이 많아 관심이 갔다. 가게에는 두 명의 사장님이 있는데 두 분 다 문신을 하고 있어 여행자들은 그들을 ‘문신남’과 ‘문신녀’로 구분해 불렀다. 재미있는 것은 문신남의 팟타이가 더 맛있다는 것! 여행자들의 정보통에 따르면, 문신남 팟타이는 불맛이 더 있고 소스도 많이 들어가 더 감칠맛이 풍부한데 문신녀 팟타이는 그에 비하면 평범한 맛이라 했다. 그런데 문신남 또한 워라밸 대장이라 언제 근무하는지 오리무중이고, 운이 좋으면 그가 만든 팟타이를 먹을 수 있다는 것이었다.
소문은 무성했지만 팟타이는 워낙 여기저기서 맛볼 수 있고, 심지어는 야시장에서도 간단히 사 먹을 수 있기 때문에 굳이 대형몰 안의 푸드코트까지 찾아가 볼 생각은 없었다. 그러나 여행의 마지막 날, 비행시간 전까지 마야몰에서 쇼핑을 하며 보내자는 동행들 덕분에 이 팟타이를 맛볼 수 있게 되었다. 점심시간 무렵이었으나 우리가 갔을 땐 아쉽게도 문신남 사장님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여자 사장님이 만들어 주신 팟타이도 충분히 맛있었다(특별한 맛인지는 잘 모르겠었으나). 또 땅콩, 라임, 설탕, 페퍼 등이 배식대 옆에 놓여 있어 마음대로 토핑을 추가할 수 있었다. 그러다 보니 이게 원래 맛있는 팟타이인지, 내가 조합을 잘했길래 맛있는 지도 모를 지경이었다.
다 먹고 후식을 먹을까, 하고 둘러보던 중 갑자기 팟타이집 앞의 줄이 길어졌다. 역시나 우리의 문신남이 출근을 한 거였다! 비록 배가 불러 그의 팟타이를 맛보진 못했지만 왠지 유명인을 만난 것처럼 반가워 국수를 볶는 그의 뒷모습을 카메라에 담아 두었다. 아날로그 시대였대도 입소문을 타고 그의 팟타이가 이토록 유명했을까. 치앙마이 3대 한량이라는 별칭, ‘문신남’이라는 1차원적 별명, 그가 매일 있지 않기 때문에 겪는 ‘문신남 팟타이’ 품귀현상, ‘문신남과 문신녀는 부부나 연인일 것 같다’는 루머까지. 이 모든 이야기들이 디지털 입소문으로 전해져 버무려진 팟타이라 더 맛있는 건 아닐까.
워라밸 대장인 그의 정확한 근무시간은 여전히 알 수 없지만, 그렇기 때문에 ‘문신남 팟타이’의 가치는 계속된다. 나도 한번 더 치앙마이에 간다면 그의 팟타이를 꼭 먹어볼 것이다.
쨈아줌마의 바나나튀김 역시 여행자 커뮤니티에서 “아직 열려있나요?”를 물어보는 곳 중 하나이다. 바나나, 고구마 등을 즉석에서 튀겨서 파는 올드타운 안 조그마한 노점상인데 역시나 품절이 빨라 언제 문을 닫을지 모르는 곳이기 때문이다. 이곳의 주인 쨈 아주머니는 영어도 서투시고 태국어만 가능하시지만, 친절한 한국인 여행자들이 구글 지도에도 이 노점을 등록해 두고, 메뉴판까지 한국어로 만들어 두었다(실제로 구글맵에도 “쨈아줌마바나나튀김”이라고 뜬다). 길거리 간식이지만 깔끔하고, 튀김반죽의 간이 완벽해 바나나와 고구마의 달콤함이 더 극대화된다고 했다.
결과적으로 말하면 나는 이곳의 바나나튀김을 맛보진 못했다. 3대 워라밸 대장답게 잼 아주머니도 15시를 전후해 문을 닫고 홀연히 떠나신다고 했다. 내가 마음잡고 방문한 날은 영업일이 아니었는지 아예 문이 닫혀 있었고, 근처 요가원에 가다가 우연히 들린 날에는 다행히도 문이 열려있었다! 럭키비키를 외치며 건너편에서 가게 사진을 찍고 있는데 가게 앞에 홀연히 주차하는 바이크가 보였다. 설마 아니겠지, 아니겠지 했는데 바이크에서 내린 현지인으로 보이는 여성은 마지막 남은 튀김과 도넛들을 싹쓸이해 갔다.
혹시나 해서 아주머니께 가보았지만 오늘은 품절이라는 표시로 손을 엑스자로 표시해 보이셨다. 얼마나 대단한 맛이겠냐 싶지만, 한국에서는 잘 맛보지 못하는 것이고 눈앞에서 차례를 빼앗겼다(?)는 억울함에 더욱 발길이 떨어지지 않았다. 열대 지역에서 수확한 바나나로 만든 튀김은 더 달콤할 것만 같았다. 괜스레 아무것도 없는 빈 쇼케이스와 가게 내부를 사진으로 남겼다. 신의 장난이었을까, 아니면 치앙마이에 다시 한번 오라는 신의 부름이었을까. 문신남의 팟타이와 더불어 쨈아줌마의 바나나튀김도 한번 더 치앙마이에 가야 하는 이유로 남았다. 이 더운 날씨에 뜨거운 기름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꽁꽁 싸맨 잼아주머니는 곧 장사를 정리하셨다. 오후 3시를 갓 넘긴 시간, 워라밸 대장의 퇴근길을 목격했다.
그들은 정말 워라밸 대장일까? 그건 내가 그들의 퇴근길까지 따라가지 않는 이상 알 수가 없다. 가족들과 시간을 보낼 수도 있고, 휴식을 취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손님이 끊이지 않고, 방문한 사람마다 맛에 대해 높은 평가를 주는 것으로 보아 그들의 프로페셔널함은 셔터를 내린 이후에도 계속될 것만 같다. 여행객들에게도 현지인에게도 인기가 아주 많지만, 그럼에도 그들은 욕심부리지 않고 감당 가능한 만큼만 준비해 딱 그만큼만 팔고 하루의 장사를 마무리한다. 하루 9시간 이상을 근무하고, 주 52시간 근무제를 만들기 위해 힘겹게 싸워온 한국인들의 시선에서는 당연히 이들이 워라밸 대장으로 보일 수밖에.
치앙마이에서 가장 맛있는 팟타이를 꼽자면 나는 이 여왕님의 팟타이를 꼽겠다. 이 집은 팟타이 전문점답게 딱 팟타이만 파는 곳이다. 기본 팟타이, 새우 팟타이, 달걀로 감싸진 오믈렛 팟타이가 있다. 팟타이의 정석이라는 리뷰답게 깔끔하고 맛있는 팟타이였다. 또 달걀옷을 입은 팟타이는 처음 먹어보는 터라 더 고소하게 느껴졌다. 사이드 메뉴로 조개를 넣은 전을 부쳐서 판매하는데 이것도 고소하니 별미였다. 어쩌다가 혹은 언제부터 이곳의 사장님이 팟타이의 여왕이 되었는지는 모르겠으나 맛이 없었다면 그 칭호는 즉시 박탈되었을 것이다. 가게 내부에 사장님이 국왕에게 상을 받는 사진이 걸려 있는데 이 또한 그녀가 여왕님으로 불리는데 한 몫한 것으로 보인다. 연세가 있지만 주문 즉시 팟타이를 능숙하게 볶아 내는 그녀의 전문적인 모습이 너무나 멋졌다.
또 한 번 내가 반한 것은 그녀를 한 야시장에서 다시 만났을 때였다. 깟마니 야시장이라고 현지인들이 주로 찾는 야시장에 간 날, 팟타이 로드가 야시장에도 있었다. 야시장에 분점을 냈다고 했다. 가게에 간 적 있다고 하니 그녀는 웃으며 반겨주었다. 가게에서는 직접 팟타이를 만들었지만 이곳에서는 직원들을 교육하고 있었다. 프랜차이즈 사장으로서의 면모까지 볼 수 있었다.
카우보이 족발덮밥 여왕은 창푸악 야시장에서 아주 유명한 분이다. 카오카무라고 불리는 태국의 족발덮밥은 한약재를 넣고 오래 끓여 야들야들한 족발을 밥에 얹어 먹는 요리이다. 한국인들에게는 아주 익숙한 맛인지라 여행자들에게 인기가 많은 메뉴이기도 하다. 사장님이 늘 카우보이 모자를 쓰고 화장을 곱게 하셔서 카우보이 족발덮밥의 여왕이란 별칭이 붙었다고 한다. 이 여왕님은 야시장의 명물이라 이 집 앞에는 늘 줄이 길었다. 나는 여왕님을 직접 영접하지는 못했다. 아쉬운 대로 간판 속 여왕님의 모습만 카메라에 담아보았다. 자리가 없어 포장해서 숙소에 와서 먹었는데 식었는데도 불구하고 야들야들한 족발의 식감이 살아 있었다.
앤트 아오이(Aunt Aoy)라는 식당의 아오이 이모는 가정식의 여왕으로 불린다. 아니 이제는 아오이 할머니라고 불러야 할지도 모르겠다. 내가 뵌 여왕님은 머리가 하얗게 세셨기 때문이다. 현재는 님만해민의 대로로 가게를 확장이전했지만, 산티탐의 아주 작은 가게에 있을 때부터 그녀의 손맛은 문지방을 넘어 소문이 자자했단다. 그녀가 가정식의 여왕이라는 칭호를 받게 된 까닭은 두 가지 정도다. 하나는 정말 태국사람들이 집밥으로 즐겨 먹는 메뉴들을 내놓으며, 모든 메뉴가 빼놓지 않고 맛있기 때문이다. 두 번째 이유는 그녀가 국왕에게 인정받은 쉐프라거나, 방콕의 유명호텔 쉐프였다는 소문 때문이다. 아니나 다를까 그녀의 식당은 최근 미슐랭 빕구르망에 연속으로 선정되고 있다.
나는 여행하는 동안 머문 한 게스트하우스에서 이다 작가님의 ’ 내 손으로 치앙마이‘라는 여행기를 읽고, 이 식당을 알게되었다. 이다라는 일러스트 작가님이 치앙마이에서 한달살기를 하는 동안 거의 매일 찾아갔을 정도라고 하니 얼마나 맛있을지 궁금했다. 몇 년 뒤 작가님이 두 번째로 치앙마이를 찾았을 때도 그 식당을 방문해 여왕님의 뜨거운 환영(?)을 받았다고도 했다.
그 책 덕분에 나는 아오이 할머니가 만든 음식이 먹어보고 싶어졌고, 그녀의 정을 조금이나마 느껴보고 싶었다. 메뉴판 속 모든 메뉴가 먹어보고 싶어서 폭포 트레킹 투어를 함께한 동행들과 같이 방문했다. 우리는 네 명이었지만 튀긴 돼지고기가 듬뿍 올라간 태국식 오믈렛, 당면으로 만드는 상큼한 태국식 샐러드 얌운센, 돼지고기 덮밥 팟카오팟 무쌉, 이다 작가님의 최애 메뉴라는 토마토 스파게티, 튀긴 게가 들어간 뿌빳뽕 커리 이렇게 다섯 가지 메뉴를 시켰다. 근데 정말 모든 메뉴가 다 맛있었다! 나는 얌운센과 뿌빳퐁 커리가 최고였고, 일행들은 각각 다른 메뉴를 1등으로 뽑았을 만큼 모든 메뉴가 다 기본이상으로 맛있었다. 여행 막바지에 이 식당을 알게 된 것이 아쉬울 따름이었다.
계산을 하며 벽면에 붙은 이다작가님의 사진을 가리키며 우리가 저분의 만화를 보고 찾아왔다고 이야기하자, 아오이 할머니는 “일부러 찾아와줘서 고마워. 다음에 꼭 또 와”하며 꼭 안아주셨다. 겨우 한 번 방문했을 뿐인데 다정하게 안아주시는 아오이 할머니 덕분에 부른 배와 더불어 마음까지 훈훈해져서 나왔다. 태국에도 할머니댁이 생긴 기분이었다.
(관광지라는 특성 때문일 수도 있지만) 적어도 내가 치앙마이에서 만난 사람들은 모두들 친절하고 여유롭고, 낯선 사람에 대한 거부감이 덜해 보였다. 그들을 만나면서 나는 ‘기질이라는 것은 타고나는 것으로 유전적인 성향이 강한데 문화권에 따라 기질의 차이가 있을까?‘하고 궁금해졌다. 이런 궁금증을 갖고 연구들을 찾아보니, 2024년에 발표된 연구 중 아주 흥미로운 연구가 있었다(The Global Temperament Project, 2024). 전 세계 59개국에서 수집된 데이터로 영아기, 걸음마기, 유아기 아이들의 기질이 문화나 성별에 따라 다른지를 살펴본 연구였다. 그리고 이러한 패턴이 성인기에 이르기까지 이어진다는 것을 밝혔다.
이 연구에 따르면 태국의 경우 기질 중 긍정적 정서 및 활달함(surgency)이 높은 편으로 나타났고, 부정적인 정서성(Negative affect)이 낮은 국가로 나타났다. 이러한 기질의 차이는 지역이나 문화권에 따라서도 존재했는데, 태국이 속한 동남아시아를 비롯해 남아시아, 남유럽은 ‘외향성 및 긍정적 정서성(surgency)‘이 상대적으로 높았고, 우리나라가 속한 동아시아는 상대적으로 외향성이나 긍정적 정서가 낮았다.
즉, 태국과 동남아시아의 아이들은 비교적 활발하고, 외향성과 활동성이 높은 모습을 보인다. 새로운 자극에 대해 더 활발하게 다가가고, 웃음이나 미소 등 긍정적인 정서를 더 많이 드러내며, 놀이와 활동을 즐기는 것이다. 이는 동남아시아 문화권이 비교적 개방적이고, 감정 표현이나 활동적인 상호작용을 장려하는 사회적 분위기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부모나 교사들이 아이들의 창의적이고 자유로운 행동을 지지하고, 엄격한 양육보다는 놀이나 사회적 상호작용을 중시하기 때문에 아이들의 활발함 수준이 높다는 것이다.
반대로 한국 아동의 경우에는 상대적으로 부정적인 정서가 높게 평가되는 경향이 나타났다. 부정적 정서성이란 슬픔, 분노, 두려움과 같은 부정적 감정을 더 쉽게 경험하는 경향을 뜻한다. 이 기질을 지닌 아이들은 스트레스 상황에서 더 취약할 수 있고, 감정 조절에 어려움을 보일 가능성이 있다고 본다. 전통적으로 동아시아 문화권에서 강조하는 내면의 억제나 자기 통제가 이런 ‘부정적 정서성’과 관련이 되어 있다고 한다. 또한 집단주의적인 동아시아 문화권에서는 개인보다 집단의 조화와 사회적 기대가 우선시 된다. 이러한 사회적 압력이 아이들로 하여금 부정적 정서를 내면화하게 한다는 것이다.
그저 저 사람들은 왜 늘 웃고 있을까, 왜 홍수가 나서 자신의 집이 다 잠겨도 저렇게 여유로울까, 어떻게 저렇게 자유로울까 하며 그들의 민족성에 대해 궁금해서 찾아본 연구였는데 국가 간 비교를 통해 특정한 기질이 문화적인 특성과 관련이 있음을 알게 되니 더욱 흥미로웠다. 치앙마이에서 만난 사람들을 덕분에 오랜만에 나도 논문을 펼쳐보고 공부를 했다.
내가 만약 난임을 극복하고 언젠가 엄마가 된다면, 자유롭고 활발하며 감정을 억제하지 않는 아이로 기르고 싶다. 기질이라는 것은 타고나는 것이지만 결국에는 환경과 양육의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치앙마이에서 만난 사람들처럼 여유롭고, 따뜻하고, 처음 보는 사람들에게도 웃음으로 다가가는 그런 활발한 아이로 말이다. 그러려면 아이와 더 많이 눈 맞추고, 더 많이 놀아주고, 더 많은 감정을 나누며, 더 많은 시간을 함께 해야겠지? 어쩌면 최고의 선물은 함께하는 시간일지 모른다. 내 아이에게 시간을 선물하기 위해 한국의 3대 워라밸 대장 및 3대 여왕을 꿈꿔 본다.
수확을 마친 농부 아빠가 아들과 놀아주고 있다.
“이 의자는 아이가 처음 말하던 날 만든 것이구요.
이 목마는 아이가 첫걸음마 하던 날 만든 것이구요.
오늘은 대나무를 깎아 새장을 만들어 줄 거예요.”
아빠가 아이에게 주었던 것은 ‘시간의 선물’.
사랑은, 나의 시간을 내어주는 것이다.
먼 훗날 한숨지으며 내 살아온 동안을 돌아볼 때
‘아 내가 진정으로 살았구나’ 생각되는 순간은
오직 사랑으로 함께한 시간이 아니겠는가.
그 시간을 얼마나 가졌느냐가 그의 인생이 아니겠는가.
(박노해, 다른 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