흐르는 폭포를 거꾸로 거슬러 오르는 사람들
몬쨈이라는 고산지대로 당일투어를 다녀온 지난 화에 이어 두 번째 근교여행을 소개하려고 한다.
홍수피해가 복구될 때까지 원래의 숙소에서 대피해 님만해민의 아파트를 전전하던 무렵, 님만해민의 대형 쇼핑몰 ‘원님만(one Nimman)’에서 재즈 페스티벌이 열린다고 했다. 매주말마다 마켓이 열리는 야외광장 한 편의 무대에서 재즈 공연이 펼쳐지고, 평소보다 다양한 먹거리 마켓이 열린다는 소식이었다. 며칠 전부터 쇼핑몰 건물에 커다란 광고판에 광고가 걸려있어 지나칠 때마다 소식을 접했다. 마침 공연 당일 저녁엔 일정이 없어서 저녁 먹으며 재즈나 듣고 올까 하고 가벼운 마음으로 집 앞에 나가보았다.
마켓에서 팟타이에 꼬치, 맥주 한 잔을 사서 자리에 앉았는데 사람이 너무 많아 내 자리 네 자리 할 것 없이 모든 자리에 꽉 채워 사람들이 앉았다. 그런데 마침 내 옆자리에 앉은 사람들이 한국 사람들이었다! 처음엔 대화를 못 알아듣는 척하려고 했는데 나도 모르게 웃긴 이야기에 피식 웃음이 터졌고 “한국인이세요?”라는 물음 뒤로 자연스럽게 나도 그 모임에 끼게 되었다. 재즈 공연이 이어지고 있었지만 사실상 무대를 바라보는 배치가 아니라 사람들끼리 서로 마주 보고 음식을 먹는 테이블 형태이다 보니 재즈 라이브는 그저 BGM이 되었을 뿐이었다.
의도하지 않았지만 이 재즈 페스티벌에서 만난 사람들과의 만남은 일회성에 그치지 않았다. 한 달 살기 중 남은 2 주간을 여러 방식으로 함께 해 하루하루를 더 풍성하게 만들어줬다. 어느 날은 S언니와 그의 남편과 함께 야시장에 가기도 하고, 어떤 날은 바이크가 있는 K님이 바이크 있는 사람들을 모집한 사원투어에 함께 참여하기도 했다. 각자의 하루를 마무리하는 저녁시간에 모여 같이 저녁을 먹거나 가볍게 맥주 한 잔을 하는 소모임으로도 이어져 혼자서는 절대 갈 수 없는 태국 바베큐집이나 태국식 가라오케를 경험하기도 했다.
그중에서도 내가 가보고 싶었지만 용기가 없어 도전하지 못했던 ‘부아떵 폭포’ 투어에 관심을 보인 사람들이 있었다. 영상 편집일을 하면서 본인 스스로가 유튜버이기도 한 P형, 요식업 사장님이자 겨울에는 스노우보더로 전업하는 자칭 무주 1등 S형, 뮤지션이자 치앙마이로의 이주를 준비하고 있는 친구 K였다. 외모로 판단해서는 안 되지만 처음 만났을 땐 이들의 범상치 않은 머리모양, 커다란 덩치, 센 말투 등으로 인해 경계를 하며 ‘오늘 이후로는 만날 일 없겠지.’ 했었다. 대화를 나눠 볼수록 외모완 달리(?) 모두 순수하고 착한 사람들이었다. 치앙마이에서 함께 보낸 시간들은 그들이 얼마나 유쾌하고 좋은 사람들인지 알게 해 주었다. 한국에 돌아온 뒤에도 이런 인연은 이어졌고 함께 1박 2일 강원도 캠핑을 다녀오기도 했다.
아, 다시 폭포 투어로 돌아가보자면 부아떵 폭포는 치앙마이 시내에서 북쪽으로 60km 떨어진 매땡지역의 국립공원 안에 위치해 있다. 이 폭포는 끈적폭포(sticky waterfall)라고 불리어 나의 호기심을 자극했다. 폭포가 어떻길래 끈적하다는 별명이 붙었을까. 이 부아텅폭포는 칼슘이 풍부한 물이 석회암을 타고 흘러내리는 세계 3대 석회폭포 중 하나였다. 석회질의 물 덕분에 이끼 등이 끼지 않아 바위가 하나도 미끄럽지 않게 되는 것이었다. 이 도시에서 2주간 지내는 동안 맛있는 음식도 먹고, 수영도 하고, 요가도 하고, 예쁜 카페도 다니면서 충분히 휴식을 했지만 치앙마이라는 여행지는 이렇다 할 액티비티가 많지는 않은 곳이라 아쉬움도 있었다. 여행책에 짚라인이나 국립공원 트레킹 등의 액티비티가 있었지만 별다른 흥미를 느끼지 못하다가, 어디서나 쉽게 할 수 없는 ‘폭포 트레킹‘을 보고는 직접 해보고 싶었던 것이다. 울창한 숲에서 수영복을 입고 밧줄을 잡은 채 맨발로 폭포를 거슬러 오르는 투어 사진이 나를 매료시켰다. 당시에는 몰랐지만 우리나라 방송에서도 한 번 소개한 적이 있었다고 했다.
나의 가보고 싶다는 한 마디에 그들은 ”그럼 가면 되지! 진행시켜! “라고 했다. P형과 S형, K와 나는 치앙마이에서 흐르는 폭포를 거꾸로 거슬러 오르는 네 마리의 연어들이 되어보기로 했다. 벌써 3년째 매년 치앙마이에 방문한다는 K는 작년에 함께 투어 했던 택시기사가 아주 괜찮았다면서 그녀에게 투어 문의를 해보겠다고 했다. 투어기사 ‘미야’의 가능하다는 대답이 돌아왔고 우리는 그 주 토요일에 투어를 떠나기로 했다. 지난번 투어에서 만난 맥스와 달리, 미야는 짧은 단발을 하고 작은 체구를 가진 귀여운 여성이었다. 차량은 익숙한 전기차 아이오닉, 차량 내부엔 귀여운 고양이 장식들이 가득했다. 나는 혼자 여자라서 나름의 배려(?)를 받아 앞 좌석에 미야와 함께 앉았고 뒷좌석에는 세 명의 거구 남자들이 조금 구겨진 채 떠났다. 미야는 K-pop의 열렬한 팬이라고 했다. 실제로 여러 아이돌의 노래를 능숙하게 따라 불렀고, 이 당시 로제와 브루노마스의 ’ 아파트‘가 발매되는 시점이었는데 뒤에 탄 오빠들은 발매소식조차 몰랐음에도 미야는 그 노래를 따라 부를 정도였다.
K-전기차에서 K-pop을 들으며 한 시간쯤 달렸을까. 우리는 국립공원 입구에 도착했다. 공원 입장료는 따로 없었고, 라커 이용료가 원래 30바트(1200원 정도)였는데 우리는 가이드가 있었기에 우리는 라커를 이용하지는 않았다. 애초에 수영복을 입고 갔기 때문에 ”저에게 맡기고 다녀오세요! “라고 해맑게 웃는 미야에게 짐을 맡기고 바로 폭포로 들어갔다.
부아텅 폭포는 총 세 개의 폭포로 나눌 수 있는데 하류의 두 폭포는 경사도 완만하고 오르기 어렵지 않은데 마지막 상류 폭포는 가파르고 상대적으로 미끄러워 난이도가 있다고 했다. 주차장은 폭포의 상류에 위치하고 폭포 트레킹의 시작은 하류지역이기 때문에 걸어서 하류까지 내려갔다. 내려가는 길은 나무데크처럼 따로 마련되어 있어 맨발로 걷기에도 수월했다. 처음 입장하는 곳은 폭포의 하류 지역으로 꽤나 깊은 계곡이었다. 확실히 석회질의 물이라 물색이 뿌얘서 익숙하지는 않았지만 그 때문인지 더 이국적인 풍경으로 보이기는 했다. 한국인으로 보이는 사람은 없었고 서양인들과 중국인들이 주로 오는 듯했다. 계곡에서 몸에 물도 적시고 약간의 수영도 한 뒤, 우리는 폭포 오르기를 시작했다.
인증샷이 빠질 수 없지. S형이 먼저 내게 사진을 찍어주겠다고 했다. 폭포 밑에 앉아 사진도 동영상도 촬영하고 있었더니 어느새 K도 다가와 인생샷을 찍어주겠다고 했다. 두 남자가 열심히 사진을 찍자 저쪽에서 폭포 밑에 앉아 명상하던 P형이 “아 뭐야, 야 너가 우리 고용했냐? 우리가 너 사진 찍어주는 투어 온 거지?”하며 투덜거렸다. 잠깐 긴장했는데 우리 쪽으로 다가오더니 “야 내가 얘네보다 훨씬 잘 찍어. 내가 찍어줄게.”하고 누구보다 열심히 찍어주었다. 나중에 겪어보니 P형만의 농담은 늘 이런 식으로 시작되었다. 나중에는 형이 인상을 쓰면서 말해도 나는 아무렇지 않게 무시하는 스킬을 획득했다. 총 세 명의 남정네가 사진을 찍어주는 호사(?)를 누리고 있으니 옆에 여행객들이 웃으며 지나갔다. 묻지도 않았는데 P형은 ”She has a husband. but we are not her hubby. She is our boss.” 하면서 외국인들과 농담을 주고받았다. 정말 못 말리는 인싸였다.
드디어 폭포 오르기에 돌입했다. 물은 계속해서 흐르고 내 발을 휘감는데 ‘끈적 폭포’ 답게 전혀 미끄럽지 않았다. 아이들도 잘 올라간다는 후기를 봤는데 상류지역 초입에서 한 아이가 아주 무서워하며 울먹이다가 포기하려 하고 있었다. 아까 계곡에서 만나 인사를 나눴었던 핀란드에서 온 가족이었다. 밧줄을 잡고 올라가야 하는 곳이다 보니 뒤에 사람들이 조금 밀려 있었다. 아버지는 아이를 보채거나 쉽사리 도와주지 않았고, 뒤에 있는 우리에게 계속해서 양해를 구했다. 우리는 괜찮다고 했고, 결국 그 아이는 시간은 오래 걸렸지만 혼자의 힘으로 정상에 올랐다. 언제 울었냐는 듯이, 해냈다는 뿌듯함이 가득 묻어나는 미소를 지었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그 아버지로부터 기다림의 미덕과 아이로부터 자율성의 획득을 엿보았다. 현장에서 충분히 아이가 해낼 수 있는 일임에도 떠먹여 주려는(혹은 떠먹여 달라 부탁하는) 부모들을 많이 본 터라 더욱 생경한 풍경이었다.
나 역시 상류 지역에서는 이끼를 잘못 밟아 한번 미끄러져 엉덩방아를 찧을 만큼 마냥 쉽기만 한 여정은 아니었다. 형님들은 터져 나오는 웃음을 뒤로하고 나를 일으켜 주고 정상에서 끝까지 나의 완주를 응원해 주었다. 정상에 올라 내려다보니 꽤나 가파른 암벽을 우리가 올랐음을 알 수 있었다.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홀딱 젖은 우리는 탈의실에서 옷을 갈아입고 나왔다.
12시가 조금 넘은 시각. 나름의 운동이었는지 몹시 배가 고팠다. 돗자리를 가져와 잔디밭에 앉아 싸 온 음식을 먹는 외국인들을 보니 더욱 식욕이 돋았다. 하지만 우리는 태국북부 전통음식점을 이미 예약해 둔 터였다. 미야의 추천 식당으로 현지인들만 가는 대형식당이라고 했다. 실제로 가보니 엄청나게 큰 부지에 레스토랑과 카페가 합쳐져 있었고 그 안에는 정글 같은 태국식 정원과 폭포까지 있었다.
우리는 전통음식이 하나의 접시에 조금씩 나오는 플래터를 주문하고 각자 메뉴를 하나씩 더 주문했다. 치앙마이에 3년째 오지만 여전히 향신료에 거부감이 있는 K는 피자를 시켰다. 우리가 시킨 플래터는 ’란똑’이라고 불리는데 란나 푸드가 한 상으로 나왔다. 소반 위에 찹쌀밥과 여러 가지 채소와 반찬을 올린 북부 전통음식으로, 깽항래라는 북부카레와 남쁘릭이라는 고추 소스를 올려 같이 먹는 음식이었다. 싸이우아라는 북부식 소시지까지, 모든 북부음식을 하나씩 맛볼 수 있어 좋았다.
밥을 다 먹고 나와서는 아바타에서 나올 것만 같은 정원을 구경하고, 카페에서 음료를 주문했다. 지난번 동행투어와는 사뭇 느낌이 달랐다. 여자 동생들과 함께 했던 지난 투어 때는 어딜 가든 사진으로 풍경을 담는 것이 먼저였고,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풍경이 예쁘면 “언니 여기 앉아보세요~!”하고 인생사진을 남겨주기 바빴다. 이번 투어 때는 예쁘게 꾸며진 정원에는 심드렁한 형님들이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주문하고는 바로 의자에 앉아서 쉬었다. 코코넛이 통째로 올라간 스무디가 있다고 내가 아무리 말해도 그들은 별 관심이 없었다. 내가 기댈 곳은 미야뿐이었다. 미야는 다행히 생망고가 올라간 요거트를 주문하고 음료가 나오면 같이 사진을 찍으며 나와 쿵짝을 맞춰주었다.
다음 코스는 바로 타이거 킹덤이었다. P형이 폭포 근처에 있다며 꼭 가보고 싶다고 코스에 추가한 곳이었다. 이름처럼 호랑이 왕국으로, 다양한 호랑이를 만나볼 수 있는 곳이었다. 입장권이 특이했는데 다양한 호랑이를 사이즈별로 패키지화하여 판매하고 있었다. 자이언트 호랑이 패키지를 구입하면 자이언트 호랑이 우리에 들어가 호랑이를 만져보고 함께 사진을 찍을 수 있는 것이었다. 가장 비싼 패키지는 2개월짜리 아기 백호 패키지였다. 우리는 5개월 정도 되는 스몰 사이즈 호랑이를 만나보기로 했다. 사실 나는 들어가지 않으려고 했다. 고양이 만지는 것도 용기가 필요한 나인데 호랑이를 만질 수 있을까 싶어서였다. 물론 지난 투어에서 코끼리와 교감하기는 했지만 호랑이는 아주 다른 문제였다. 맹수 아닌가. 그런데 형님들은 자기들이 지켜준다며 여기까지 와서 안 보고 가면 아쉽지 않겠냐며 꼭 함께하기를 바랐다.
결국 용기를 내어 5개월 아기 호랑이들을 만났다. 처음에는 무서웠지만 훈련이 잘 되어 있으니 겁먹지 말라는 사육사들의 말을 듣고 조심스레 만져보기도 했다. 호랑이라기엔 좀 큰 고양이 같기는 했지만 먹이를 먹을 때 보이는 이빨과 엄청나게 큰 사이즈의 발을 보며 맹수임을 실감했다. 두 마리 호랑이는 한 달 차이로 태어난 형제라고 했다. 티격태격 싸우기도 하고 함께 물놀이를 하기도 하며 지내는 모습이 나중에는 귀여워 보이기까지 했다.
10분 정도의 체험과 사진촬영을 마치고 밖으로 나왔더니 바로 앞은 자이언트 호랑이 우리였다. 어떤 아기가 아빠 품에 안겨 “Mommy!!” 하면서 울고 있었는데 엄마가 혼자 그 우리에 들어간 듯했다. 우리가 대단하다고 하자 그 아빠는 자기가 인도에서 왔다고 말하면서 인도사람들은 호랑이를 무서워하지 않는다고 했다. 과연 아기의 어머니는 너무나 자연스럽게 큰 호랑이와 함께 사진을 찍고 나왔고 철조망 밖에서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무서웠던 우리는 그녀의 대담함에 박수를 보냈다.
그리고 나서는 다양한 지역에서 온 호랑이들을 차례로 만나보고 마지막으로는 태어나지 한 두 달 되는 아기 호랑이들을 유리창 너머에서 볼 수 있었다. 사육사들이 품에 안고 우유병으로 우유를 먹이는데 정말 사람 아기 같기도 했다. 아직 시력교정이 되지 않아 걷기 훈련부터 받는다는 아기들은 실제로 비틀비틀 걸으면서 자꾸 머리를 콩콩 찧기도 했다. 몸은 아주 작은데 맹수라고 발은 꽤 커서 아기가 꼭 어른 신발을 신은 것처럼 보여 귀여웠다. 실제로 이렇게 작은 새끼 호랑이들은 접할 기회가 없었기 때문에 우리는 꽤 오랜시간 창밖에서 호랑이들을 보고 돌아왔다.
하루 종일 화창했는데 돌아오는 길에는 비가 쏟아졌다. 미야는 우리가 운이 아주 좋다고 말했다. 고맙게도 미야는 비가 오니 모두의 숙소에 각각 내려주겠다고 했다. 날씨도 날씨지만 투어 때마다 친절한 가이드를 만난 나는 정말 운이 좋다고 생각했다. 두 번의 근교 투어 동행을 통해 나는 내겐 없는 계획력과 실행력의 도움을 받았다. 또 용기와 모험심을 나눠 받았기 때문에 혼자서는 상상하지 못했을 경험들을 해볼 수 있었다. 투어를 함께한 사람들은 치앙마이 남은 일정에서도 계속 만났고 한국에 돌아와서도 계속 연을 이어가고 있다. 나의 평소 생활반경에서는 전혀 만날 일이 없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더 특별할 지도 모르겠다. 갇혀있던 내 세계를 깨고 나갔더니 새로운 사람들을 만났다. 사람을 좋아하는 사람은, 여행 후에도 사람이 남는다.
단 하나의 세계가 나를 질식시키려 할 때
이 세계가 얼마나 많은 세계로 쪼개어져 있는지 알기 위해
나는 떠나야 한다.
이 세계에서 다른 세계로 건너며
쪼개어진 세계의 조각 위를 걸을 때
그 세계에서만 볼 수 있는 새로운 것들을
발견할 수 있지.
처음 혀를 대 본 열대과일의 맛 같은
가만히 들여다본 라마의 눈동자 같은
태어나려고 하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파괴하지 않으면 안 된다*
파괴해야만 나로 태어날 수 있으며
‘떠남’은 파괴를 돕는다.
(한여름, 만나지 않은 것보다 만난 것이 더 좋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