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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앙마이 한달살기, 선셋요가와 수영의 힐링스폿을 찾다

내가 경험한 치유의 공간, 단기여행자는 모르는 진짜 치앙마이를 소개합니다

by 안긁복의 모두극뽁 Mar 17. 2025

치앙마이 한달살기를 시작한 지 3주가 지나서야, 비로소 나만의 힐링 공간 두 곳을 찾았다. 워낙 한달살기의 성지라 불리는 치앙마이이기 때문에 장기 여행자의 관점에서 가볼 만한 히든 스팟을 소개해보려고 한다. 한 곳은 조용한 도서관에서의 독서, 전시와 공연 구경, 선셋요가가 가능한 복합문화공간, 또 한 곳은 회원제로 수영장과 호수에 비치는 노을을 만끽하며 수영을 즐기고, 스파도 가능한 프라이빗 스포츠클럽이다. 캄빌리지라는 곳에서의 선셋요가는 최근 한국인 여행자들 사이에서도 알려지기 시작했지만, 노스 아레나 스포츠클럽은 여전히 외부에 잘 알려지지 않은 히든 스폿이다. SNS나 가이드북에서도 찾아볼 수 없었던 이곳은 회원제로 운영되며, 단기 여행자로는 접근하기 어려운 공간이지만, 치앙마이에서의 일상을 루틴화하며 찾아낸 소중한 장소이기도하다. 하나 건너 하나 있는 미슐랭 식당들도, 각기 다른 인테리어의 트렌디한 카페들도, 매일 라이브공연이 열리는 재즈바도 좋았지만 예술의 도시인만큼 문화예술과 스포츠를 즐길 수 있는 멋진 장소를 알게 되어 여행이 더욱 풍성해졌던 것 같다.


특히 이 두 곳은 일몰과 여명의 시간을 사랑하는 내게는 가장 마음에 남는 공간이기도 하다. 주황색이었다가 핑크색이었다가 보라색이 되는 마법 같은 일몰과 낙조로 물든 하늘 아래에서 혼란한 몸과 마음을 모두 정리할 수 있는 곳들이었다. 난임으로 지친 내가 떠나온 치앙마이에서 어쩌면 가장 치유가 되는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한달살기를 하는 장기여행자들 중 진짜 힐링을 원하는 사람들에게 꼭 소개하고 싶어 이번 에피소드를 적어본다.


캄 빌리지(Kalm Village): 도서관, 카페, 레스토랑, 갤러리, 편집샵, 공연장, 요가원이 한 곳에 모인 복합문화공간


캄빌리지는 전통과 현대, 예술과 공동체를 잇는 복합 문화 예술 공간으로 건축과 호텔 사업을 하는 로자나피롬 남매가 란나 문화의 가치를 알리고, 커뮤니티 허브를 만들고자 2021년 문을 열었다.

빌리지라는 이름답게 누구나 드나들 수 있는 커다랗고 높은 문으로 들어서면 하나의 또 다른 마을이 펼쳐진다. 로비의 직원 분들이 팸플릿을 주며 안내해주셔서 혹시나 입장료가 있나 했는데 무료로 입장이 가능했다! 누구나 놀러 와서 여러가지 예술과 공예에 친근감을 느끼기를 바라는 철학이 이름에도 무료입장에도 담긴 것이다. 광장을 중심으로 여러 개의 멋들어진 건물들이 광장을 둘러싸고 있었는데 건물이 굉장히 전통적이면서도 동시에 세련된 느낌을 주었다. 하나의 건물에는 서로 다른 공간이 층으로 구분되어 있어서, 이곳을 다 둘러보거나 즐기기에는 하루도 모자라 보였다. 그냥 이 공간을 무료로 둘러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큰 선물을 받은 것 같은 곳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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캄빌리지 입구로 들어서면 보이는 광장과 건물들

먼저 1층부터 천천히 공간을 둘러보았다. 다양한 색과 무늬의 천들을 믹스해 걸어 둔 작품은 커다란 하나의 모빌이 되어 바람에 나부꼈다. 그 아래에 있는 커다란 책상에서는 공예 수업이 이뤄지고 있었다. 레스토랑의 이름은 캄 키친으로 할머니의 레시피를 전수 받아 만드는 음식을 판매하고 있었다. 그 옆은 캄 아카이브로, 남매의 어머니가 오랫동안 모아 온 소장품들로 채워진 갤러리 겸 박물관이 있었다. 태국 장인이 만든 라이프 스타일 의류, 가구, 기념품 숍 등 캄 스토어에는 알록달록 색상의 제품들이 눈길을 끌었다. 한 전시관에서는 멈춰 있는 전시가 아닌 몸으로 표현하는 전위 예술 전시 겸 공연이 이뤄지고 있었다. 그중에서도 내가 가장 가고 싶었던 곳은 바로 1층은 카페, 2층은 도서관인 곳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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캄빌리지의 마켓 키친, 갤러리 등 다양한 공간

1층에서 커피를 주문하고 잠시 이곳의 앤틱함을 즐기다 2층으로 올라갔다. 특이하게 2층 도서관은 1층 카페에서만 출입이 가능했고 신발을 벗고 올라가야 했다. 2층에 도착해서야 왜 신발을 벗어야 하는지 알 수 있었다. 흔히 도서관하면 떠오르는 정적인 모습이 아닌 그야말로 자유롭고 평화로운 히피스러움이 휘감고 있는 공간이었다. 커다란 통창으로는 사원 ‘왓 쩨디 루앙’의 탑이 보이고, 그 앞의 빈백에는 여행자들과 현지인들이 누워 책을 읽고 있었다. 소파 자리, 책상 자리, 흔들의자 자리 등 다양한 좌석을 구비해 두었고 서고에는 주로 예술책이 많았지만 중간중간 한국 책도 보이고 제법 읽을만한 책들이 많았다. 책상 자리에는 노트북을 펴고 저마다의 작업에 집중한 사람들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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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층 카페 공간에서 계단으로 올라가면 도서관이 나온다

나는 구석에 서고로 둘러싸여 아늑함을 주는 흔들의자 좌석을 차지했다. 그곳에 앉아 책을 읽으니 마치 이 공간이 나만의 서재인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30분 정도 그 공간을 혼자 누렸는데 중간에 한 외국인이 옆 자리가 비어 있냐고 물었다. 나는 그때 한국에서 가져간 책을 읽고 있었는데 그 외국인은 한글임을 알았는지 내게 “너네 나라 한강 작가의 노벨문학상을 축하해.” 하는 것이었다. 그렇다. 바로 전날 한강 작가가 노벨 문학상을 수상했고 한글책을 읽던 나는 그녀 덕분에 괜스레 어깨가 치켜 올라갔다. 이럴 줄 알았다면 한강 작가님 책을 가져올 걸 그랬네, 하는 생각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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앤틱한 도서관에서 벌어진 ‘두유노 한강?’의 현장

환경이 사람을 만든다고, 앤틱한 가구들과 초록 식물들, 커다란 창이 있는 도서관에서 책을 읽으니 어느새 한 권을 완독했다. 밖을 보니 해 질 무렵이 되어, 2층 공간을 둘러보고 저녁을 먹으러 가려고 했다. 도서관에서 나오니 이곳에서 가장 상징적인 건물처럼 보이는 파빌리온에 사람들이 많이 모여있었다. 명상과 요가 클래스가 진행된다고 했다. 사방으로 뚫린 공간에서 올드타운 시내를 내려다보며 솔솔 부는 바람과 함께하는 수련이라니. 멀리서 지켜보니 란나 양식의 건물과 어우러져 요가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더욱 멋져 보였다. 나도 저 공간에서 요가를 꼭 해보고 싶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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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층을 둘러보다 발견한 선셋 요가 클래스

로비에 내려와 물어보니 홈페이지에 들어가 미리 예약을 하면 선셋요가 클래스에 참여할 수 있다고 했다. 매주 금토일월에만 클래스가 열리고, 요가뿐 아니라 sound bathing이라고 하는 ‘소리명상’을 체험해 볼 수 있었다. 일몰 시간, 낙조로 물든 하늘을 바라보며 여러 개의 싱잉볼에서 들리는 소리의 공명을 느끼면서 마음을 조율해 볼 수 있는 시간이라니! 무슨 수를 써서라도 꼭 해보고 싶은 욕심이 생겼다. 당장 홈페이지에 들어가 보니 주말 클래스는 모두 마감이었지만 다행히 차주 월요일에는 한 자리가 남아있었다. 속으로 쾌재를 부르며 그 자리에서 예약을 하고 결제까지 해버렸다. 카드 결제 문제가 있어 한국에 있는 남편에게 전화를 걸어서 남편을 채근해 결제를 마무리할 정도였다.


마법같은 공간에서 경험한 치유의 시간: 선셋요가


월요일이 오기만을 기다리던 나는 오후 5시쯤 다시 캄빌리지로 향했다. 노을 아래서 진행되는 요가 수련은 침착하고 부드러운 말투로 수업을 진행하는 강사 Ta와 함께여서 더욱 꿈같았다. 치앙마이 올드타운이 주황빛으로 물들었다 점차 핑크빛으로 물들어가는 걸 바라보며 나는 마치 ’ 소리로 목욕‘하듯 온몸으로 소리의 공명을 받아들였다. 매직아워(magic hour)를 아시는지. 매직아워란 일몰시간 전후로 10~20분 정도의 시간을 일컫는다. 하늘의 색상이 시시각각 변화하고, 따뜻하고 금색으로 빛나는 상태가 되기 때문에 골든아워(golden hour)라고 불리기도 한다. 그 뒤로는 블루아워(blue hour)가 이어진다. 어둡지도 않고 밝지도 않은 그런 푸르스름한 하늘이 보이는 시간대. 흔히 개와 늑대의 시간이라고 표현하는 그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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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사 Ta와 함께 진행한 sound bathing과 일몰시간대 황홀경

매직아워에 진행되어 문자 그대로 마법 같았던 소리명상이 끝난 뒤에는 블루아워였다. 본격적으로 나의 몸에 집중하는 선셋요가 수련이 이어졌다. ‘개와 늑대의 시간’에는 빛과 어둠이 교차하며 모든 사물이 내가 알던 그것이었는지 분간이 되지 않는다. 항상 내 곁에 있었던 친숙한 개의 실루엣이 보일지라도, 그것이 정말 내가 키우던 개인지, 해 질 녘을 틈타 내려온 늑대인지 구분하기 어려운 시간이라고 한다. 흔히 좋은 결과가 있을지 나쁜 결과가 있을지 알기 어려운 혼란스러운 때를 비유하는 말로도 쓰인다.

이어지는 요가 수련의 시간이어지는 요가 수련의 시간

한국에서 나는 여러 차례 개와 늑대의 시간을 지나왔다. 시험관 시술을 하며 가장 괴로운 때는 같은 자리에 주사를 매일 맞아 피멍이 들 때도 아니었고 난소를 바늘로 찔러 억지로 키운 난자들을 수십 개 빼내는 난자채취로 인해 복수가 차는 때도 아니었다. 내 자궁에 배아를 이식하고 뱃속에 꼭 붙어있기를 기도하며 피검사 때까지 기다리는 시간이었다. 5일 혹은 6일, 시험관 차수 때마다 달랐지만 고작 일주일도 안 되는 시간 동안 나의 기대와 실망은 주식시장의 시세 그래프보다 더 큰 폭으로 오르고 내리기를 반복했다. 갑자기 잠이 쏟아지는데 이번엔 정말 착상이 되는 거 아닐까? 출근길에 하필 에스컬레이터에서 넘어졌는데 붙었던 배아가 다시 떨어지는 것 아닐까? 현재까지 인간의 힘으로는 절대 성패를 가늠할 수 없는 그 5-6일간의 ‘개늑시’는 나를 상상임신환자로 만들었다가, 둘도 없는 죄인을 만들었다가 했다.


그런 시간들이 몇 차례 반복되었으니 피폐해질 만도 했다. 한 때는 열심히 했던 요가였지만 배아 이식 후에는 누워있어야만한다는 소리를 듣고 수련하지 않은지 오래였다. 혹자는 낭설이라고 했지만 실패가 반복되면 낭설이라도 붙잡고 싶은 간절함이 생긴다. 오랜만의 수련이었지만 멋진 공간에서 진행되는 만큼 나는 멋진 자세로 요가 아사나들을 다 해내고 싶었다. 그런데 내 몸에 쌓인 시간들은 거짓말을 못했다. 이전엔 아주 쉽게 성공한 동작들도 1-2초를 버티지 못했다. 다시금 속상해지려는 순간 강사 Ta는 이렇게 말했다.

내 몸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세요.
자세가 안될 때는 악을 쓰고 버티며 내 몸을 힘들게 하지 마세요.
초보자든 숙련자든 같이 호흡하며 플로우를 느끼기만 하면 됩니다.
이 수업은 아무도 그 누구를 판단하지 않습니다.
나조차도 ‘판단의 렌즈’로 나를 바라보지 않아야 합니다.
자세가 힘들 땐 그냥 두 팔로 나를 감싸 안아주세요.
그저 나의 내면의 세계를 가만히 바라보세요.


어쩐지 울음이 터져 나왔다. 창피함도 잊고 끅끅 거리며 나는 두 팔로 나를 감싸 안았다. 모두가 서서 자세를 하는 동안 나는 앉아서 두 팔로 나를 끌어안고 잠시 눈을 감고 있었다. Ta는 내게 다가와 “너는 진짜 요가를 하고 있는 거야.”하고 나를 토닥여주었다. 그 순간 그 누구의 시선도 신경 쓰이지 않았다. 얼마가 지났을까. 감고 있던 눈을 떴을 때 하늘은 이미 캄캄해졌다. 주위를 둘러보니 모두 다른 동작을 하고 있었다. 어떤 이는 어깨서기를, 어떤 이는 나무자세를, 어떤 이는 그저 눈을 감고 누워있었다. 잠시 후 모두가 누워 사바아사나(송장자세)를 취했다. 높은 천장에 매달린 천이 바람에 흩날렸다. 나는 어쩐지 이 순간을 절대로 잊지 못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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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업이 끝나고 나는 강사에게 진심으로 감사인사를 전했다. 덕분에 설명할 수 없는 내 안의 무언가가 많이 해소되고 치유되는 것을 느꼈다고 했다. Ta는 자기는 아무것도 한 것이 없다고 했다. 다만 내가 내 안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준 덕분이라고 했다. “언젠간 아기가 오겠지.”하며 주위 사람들에게 시험관 사실을 밝히지 못하고 애써 연연하지 않는 척했던 나. 주위 친구들의 임신 소식이 들려올 때마다 당연히 마음에서 우러난 축하를 전했지만 부러운 마음과 서러운 마음을 한구석에 쌓아 왔던 나. 그렇게 스스로 억압했던 나를 인정하고 안아주었던 소중한 시간들이었다. Ta는 오늘을 기억하자며 사진을 찍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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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업을 마치고 강사님이 찍어준 사진


노스 아레나 스포츠클럽(North Arena Sports Club): 수영, 축구, 농구, 테니스, 배드민턴 등 다양한 시설을 갖춘 치앙마이 스포츠센터


치앙마이 시내에서 조금 더 남쪽으로 내려가면 ‘seren lake’라는 대단지 고급 주택단지가 있다. 호수를 둘러싸고 콘도형과 주택형으로 나뉘어 있고 태국의 부유층과 외국인들이 주로 거주한다고 한다. 한국인들 중에서도 1년 이상 거주하거나 아이들을 데리고 가족 단위로 거주할 때 고려해 보는 옵션인 듯했다. 이 고급 단지 안에 프라이빗한 스포츠 클럽이 있다고 했다. 치앙마이에서 잘 볼 수 없는 잔디가 깔린 축구장, 실내 테니스 코트와 농구장, 실외 수영장과 스파 등 훌륭한 시설을 갖췄고 국제학교에 다니는 아이들이 이곳에서 스포츠 레슨을 받는다고 했다. 하지만 시내에서 거리도 있고, 여행자들이 부러 찾을만한 곳은 아니었다. 그만큼 숨겨져 있는 곳이고 아직 많이 알려지지 않은 곳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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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스아레나 스포츠 클럽

시작은 여행자 단톡방에 올라온 한 사진이었다. 호수에 비친 색색깔의 다양한 하늘빛에 나는 마음을 빼앗겼다. 사진을 올린 분에게 정보를 물었고 그분은 한 카페를 소개해주셨다. 그래서 나는 일몰시간에 그 카페를 무작정 찾아갔는데 그곳은 그냥 카페가 아니었다. 스포츠클럽에서 운영하는 카페였던 것이다. 어쨌거나 그날은 카페에서 음료만 마시고, 호숫가에서 황홀한 일몰을 보고 돌아왔다. 하지만 나는 그곳에서 엄청난 뷰와 규모의 수영장을 보고야 말았다. 로비의 직원에게 문의했더니 회원제 시설이지만 1회성 방문도 가능하다고 했다(물론 회원가보다는 비쌌다). 하지만 수영장만 이용해도 스파와 사우나, gym 시설까지 모두 이용가능하다고 했다. 마침 홍수로 인해 머무는 콘도에서 쫓겨난 이후 나는 수영장도 피트니스센터도 없는 아파트에 머무르고 있었다. 가격대가 있기는 했지만 한 번은 이곳에 와서 이 시설들을 경험해보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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색색깔의 빛으로 아름답게 물들던 seren lake

그러고 나서 며칠 후 나는 계획을 실행으로 옮겼다. 지난번 택시비가 꽤 나왔던 기억에 이번에는 용감하게 바이크택시를 불러 이동했다. 수영장 1일권을 끊고 들어갔는데 라커룸과 사우나가 정말 5성급 호텔만큼 시설이 좋고 넓었다. 개별 샤워실과 라커룸이 있었고 마사지풀과 건습식 사우나가 모두 갖춰져 있었다. 이정도면입장료가 아깝지 않았다. 우선은 야외 수영장에 자리를 잡았다. 레인도 6개나 되고 길이도 꽤 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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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영하러 온 날, 흐리긴 했지만 그래도 아름다운 선셋

가장 좋은 것은 사람이 거의 없었다. 썬베드에 누워 책도 보고 하늘도 구경하고 수영도 하며 꽤 오랜 시간을 보냈다. 드디어 해가 졌다. 수영장 너머로 펼쳐지는 호수에 또 아름다운 빛이 넘실거렸다. 혼자서도 멀리까지 찾아와 열심히 운동한 뿌듯함, 가이드북에서도 없는 장소를 찾아냈다는 희열, 이 순간만큼은 이 모든 것을 오롯이 누린다는 기분이 큰 만족감을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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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영을 마친 뒤 뿌듯함과 행복감이 온몸을 휘감았다

치앙마이 한 달 살기를 계획했을 무렵, 나는 몸과 마음을 건강하게 하고 돌아올 것이라 다짐했다. 처음엔 한국을 벗어나 평화로운 이 도시에 온 것만으로도 해방감을 느꼈다. 시간 맞춰 복용해야 했던 영양제들과 주사들, 빨리 남들처럼 아기를 가져야 한다는 압박들, 반복되는 실패가 낳은 무기력으로 인해 직장에서 제대로 일을 처리하지 못한 데에서 오는 무력감, 좋아하는 커피도 술도 마음대로 마시지 못하고 지나치게 조심했던 시간들로부터 벗어난 것만으로도 어느 정도 치유가 되었던 것이다. 하지만 여행이 3주를 넘어가면서 어느새 ‘될 대로 돼라!’하고 또 다른 방식으로 몸과 마음을 망가트리는 선택을 하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어차피 지금은 임신에 대한 생각을 하지 않기로 했으니 먹고 싶은 것 다 먹고, 즐기고 싶은 것 다 즐길 거야!” 하는 나였다.

도파민에도 종류가 있다는 말을 들었다.

하나는 소위 싸구려 도파민으로 자극적인 것들을 즉각적으로 실행하면서 분출되는 도파민, 또 하나는 건강한 도파민으로 성취를 위해 인내하는 행위에서 분출되는 도파민이라고 했다. 전자는 정크푸드를 먹었을 때, 스마트폰으로 숏폼 콘텐츠를 반복 시청했을 때 분출되는 중독성 도파민이다. 후자는 깊은 호흡과 명상을 통해 얻는 평온함, 좋아하는 책을 읽는 즐거움, 운동 후 느끼는 상쾌함 같은 것들이란다. 분명 이곳에서 수영을 하고 나와 지는 노을을 바라보면서 느낀 행복감과 뿌듯함은 내가 치앙마이에서 먹고 마시는 순간의 즐거움보다는 훨씬 오래 마음에 남았다.


무엇이 진짜 회복인지를 알게 되어가고 있었다. 따뜻한 햇볕이 나를 감싸 안는 일몰의 시간들을 통해 내 삶에 햇빛이 내리고 있었다. 나의 이런 치유의 경험 때문인지 나는 이 장소들을 치앙마이에서 한달살기하며 오래 머무는 여행자들에게 꼭 추천하고 싶다. 나를 들여다보고 그 시간들 속에서 내면을 치유하는 경험을 통해 풍요로운 한달살이가 되길 바라며.


이제
살아가는 일은 무엇일까

물으며 누워 있을 때
얼굴에
햇빛이 내렸다

빛이 지나갈 때까지
눈을 감고 있었다
가만히

(한강, 회복기의 노래. 서랍에 저녁을 넣어 두었다 중)  


여러분의 라이킷과 댓글은 저에게 큰 힘이 됩니다. 늘 끝까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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