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건부 휴직과 밀린 세금의 지불
떨리는 마음으로 대표님에게 퇴직의사를 전달했다.
감정에 호소하려던 건 아니었지만 내 사정을 이야기하다 보니 눈물도 났다.
열심히 들어주던 대표님은 나의 상황과 마음은 이해한다면서도 퇴직보다는 휴직을 권했다.
몸과 마음을 좀 쉬면서 심신의 건강을 되찾고 나면 다시 일할 의지가 생기지 않겠냐는 취지였다.
조건부 휴직, 퇴사카드를 들고 갔으나 상대가 꺼낸 카드는 내 카드를 무력화했다.
어쩌면 돌아갈 곳이 있으니 더 나은 결정일 수도 있다.
내가 해야 하는 것은 다시 돌아갈 수 있도록 조각난 마음과 안에서부터 망가져버린 몸을 회복하는 일이었다.
첫 며칠간은 날아갈 것 같았다.
긴 연차휴가가 선물로 주어진 것 같은 날들이었다.
남편에게 잘 다녀오라고 인사를 건네고 다시 침대에 누울 수 있었고,
느지막이 일어나 건강한 재료들로 직접 음식을 해 먹고,
목적지 없이 동네를 걸어 다니거나 자전거를 타기도 하고,
그동안 못 봤던 친구들과 전 직장 동료들도 만나고,
주말엔 사람들이 넘쳐나 가 볼 엄두도 못 냈던 느좋카(느낌 좋은 카페)에서도
느긋하게 책을 읽으며 여유로운 시간을 보냈다.
몸과 마음의 회복이 금방 손에 잡힐 듯했다.
고작 그렇게 2주일이 지났는데 마음이 다시 불안해졌다.
대학 졸업 이후로 단 한 번도 이렇게 오래 쉬어본 적이 없었다.
대학원 공부를 하면서도 늘 어린이집 교사 일을 병행했고,
박사과정을 수료하고는 어린이집, 대학 강의, 방송 프로그램 제작 등 N잡러로 살기도 했다.
어린이집 원장을 그만두고, 영유아 관련 회사로 이직할 때도 고작 열흘을 쉬었다.
그런데 내가 이렇게 아무 일도 하지 않고, 아무 경력도 쌓지 않으면서,
여전히 아기도 갖지 못한 채, 이렇게 허송세월을 보내도 되는 걸까.
조건부 휴직의 조건을 망각하고
나는 다시 불안에서 무기력으로 이어지는 쳇바퀴를 돌리기 시작했다.
나의 이런 무기력과 자기 비난을 지켜보던 남편은 어느 날 진지하게 이렇게 이야기를 했다.
“자기는 남들이 대학을 졸업할 무렵에 갖게 되는 고민의 시간을 갖지 못했어.
본인이 뭘 좋아하는지 찾아볼 시간을 갖지 못하고
자기의 재능을 알아본 사람들이 자기를 필요로 한다고 하면
고민 없이 그 일을 덥석 수락하고, 어떻게 보면 삶의 방향키를 남에게 맡겼던 것 같아.
내적으로 충만하지 못하다 보니 계속 조급하고 남들과 비교하게 되고
아이를 갖는 것마저도 해내야 되는 미션으로 느끼는 게 아닐까. “
자기는 인생의 세금과 같은 ‘고민하는 시간’을 지불하지 않았어.
그 세금이 체납되어 지금 이렇게 힘들게 느껴지는 거야.
이제라도 밀린 세금을 납부해야 된다고 봐.
무엇을 하고 싶은지 떠올려보고 하고 싶은 게 있으면 뭐든 해봐.
10년 이상 나를 곁에서 지켜본 사람이
그리고 내가 뭘 하든 늘 응원과 지지를 보내주던 사람이
몇 번 삼키다 뱉은 말은 꽤나 통찰력이 있어 나를 깊은 생각에 잠기게 했다.
또, 아이러니하게도 모든 걱정을 털어버리게도 했다.
대학을 졸업할 무렵 지도교수님이 ”서른 전에 교수 만들어줄게,“ 라며 대학원 진학을 권유하셨을 때,
“현장 경험이 있어야 교수 임용에 도움이 되지.”라며 어린이집 원장직을 제안받았을 때,
“ㅇㅇ아, 우리 학교에서 강의 한 번 해볼래?”라는 선배의 강의 요청을 받았을 때,
“우리 회사엔 ㅇㅇ님 같은 사람이 필요해요.”라는 합류 제안을 들었을 때,
감사한 마음에, 내가 뭔가 해볼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에
큰 고민 없이 모든 제안을 수락했던 것 같다.
그리고 그 모든 경험과 경력들이 쌓이는 동안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이 경력들로 궁극적으로 뭘 하고 싶은지에 대한 생각은 아예 제쳐뒀다.
그렇다고 한 곳에서 뼈를 묻을 생각도 해보지 않았던 것 같다.
감사하게도 여러 기회가 주어져
학교에서 어린이집으로, 방송사에서 회사로 여기저기 호핑하며
열심히 나만의 길을 개척하고 있다 믿었지만
다시 돌아보니 나는 길을 잃었다.
경험을 쌓을수록 욕심은 과해졌고
남들의 평가에 신경 쓸수록 내면의 목소리에 귀 기울일 시간은 없었다.
번아웃이 오고서야, 그냥 그 모든 것을 내려놓았을 때
내가 진짜 하고 싶은 것이 뭔지 생각해 보기로 했다.
아무 생각 안 하고 쉬어보기
짧은 여행이 아닌 긴 여행 해보기
한 도시에서 한 달 이상 살아보기
유튜브 시도해 보기
결혼 전부터 한달살이를 해보고 싶다고 말만 하고
모종의 이유로 떠나지 못했던 나를 아는 남편은
흔쾌히 나의 한달살이를 지지해 주었다.
지금에서야 밝히자면, 어느 정도의 동상이몽은 있었다.
남편은 한달살이를 하면서 내가 나의 새로운 길을 찾기를,
글이든 영상이든 뭐라도 생산해 수확이 있기를 바라며 여행을 허락했고,
나는 ‘아무 생각 안 하고 쉬어보기’, ‘내 로망 이루기’에 보다 초점이 있었다.
어찌 되었건 나는 떠날 거야!
근데 어디로 떠나지?
늘 살아보고 싶었던 제주도?
바다도 있고 정글도 있는 발리?
아예 멀리 유럽으로?
그러던 와중 신기한 경험을 했다.
원래 우리 회사에 스카우트하기로 했던 후배에게 휴직 소식을 알리려 만났는데
나의 한달살이 계획을 들은 후배는
“언니 치앙마이 어때요? 완전 딱일 것 같은데. 제가 요즘 보는 유튜버들도 치앙마이 한달살이 많이 하더라고요.”
하면서 몇몇 부부 유튜버들의 ‘치앙마이 한달살이’ 영상을 추천해 줬다.
며칠 뒤 오랜만에 학부 선배를 만났는데
제주살이 경험도 있고, 워낙에 여러 나라를 많이 여행한 분이라
한달살이 하기 좋은 곳을 추천해 달라 했더니
“커피 좋아하고, 예술을 사랑하는 너라면 정말 딱일 것 같은 곳이 있어. 치앙마이야.”
똑같이 치앙마이를 추천받았다.
이쯤 되면 온 우주가 치앙마이로 나를 보낸다.
전혀 정보가 없었던 나는 그때부터 치앙마이에 대해 미친 듯이 검색을 했다.
온화한 기후, 커피 생산지에서 마실 수 있는 신선한 커피와 다양한 콘셉트의 카페,
한국사람이라면 무조건 좋아한다는 각종 태국음식, 완전 저렴한 물가,
대단한 관광지는 없더라도 광활한 자연과 즐비한 사원, 공원에서 즐기는 요가,
훌륭한 치안과 친절한 사람들, 매일 저녁 다른 라이브바에 갈 수 있을 정도로 많은 재즈바,
그리고 루프탑 수영장과 헬스장, 공유 오피스라는 공용공간과
방, 욕실, 주방, 거실을 갖추고도 하루에 3만원인 고급 레지던스에서 끝났다.
“한국에서처럼 편리하게 살 수 있는데, 가격은 매우 저렴하다. “라는 리뷰까지.
됐고, 나는 치앙마이로 간다.
내 목소리에 귀 기울이러 가는 첫 여행의 시작이
선배와 후배의 추천으로 시작된다는 점이 석연찮지만
그래도 내 마음이 동했기 때문에 떠나는 거라며
누구에게 하는지 모를 변명을 덧붙여본다.
나는 심호흡이 필요해. 아무도 나를 모르는 곳에서.
오롯이 내가 하고픈 대로 해볼래.
너는 언제 어른이 되었을까.
너도 처음엔 한 명의 아이였다.
그런데 언제 너는 아이에서 어른이 된 걸까.
(중략)
결국 네 일은 네가 결정해야만 하는 것이었다.
너 말고는, 너와 같은 사람은 어디에도 없다.
너는 무엇을 좋아하고, 무엇을 싫어할까.
너는 무엇을 하지 않고, 무엇을 할까.
어떤 사람이 돼 가는 걸까.
너에 대한 그런 모든 것이
다 정해져 있는 것처럼 보였는데,
사실은 아무것도 정해져 있지 않았던 것이다.
그래서 너는 너에 대한 모든 것을
스스로 결정하지 않으면 안 되게 되었다.
결국, 어느 누구도 대신해 줄 수 없는
한 사람의 자기 자신이, 너는 되어갔다.
바로 그때였다.
그때 너는 이제,
한 명의 아이가 아니라,
한 명의 어른이 되어 있었던 것이다.
(오사다 히로시, 심호흡의 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