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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앙마이로 옮겨심기  

두 종류의 이식(移植)

by 안긁복의 모두극뽁 Feb 07.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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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치앙마이로 한 달 살이를 떠난다.


1. 배아이식


실은 여행을 떠나기 전 시험관 시도(배아이식)를 한 번 더 했다.

여행을 앞두고 성공하면 떠나지 못하는 것 아닌가 하는 걱정도 있었지만

위약금을 물더라도 착상에 성공하길 바라는 마음이 조금 더 컸다.

하지만 결과는 여느 때처럼 비임신이었다.

남편도 나도 적잖이 기대를 했던 터라 허탈함이 컸다.


참, 이 배아이식 후 과정이 얄미운 것이

이식 후에도 착상을 위해 처방되는 다양한 방식(주사, 질정, 내복약)의 호르몬제가  

임신초기증상과 비슷한 류의 증상을 만든다는 것이다.

열도 좀 오르고, 가슴도 좀 아프고,

시도 때도 없이 졸리고, 냄새에 예민해지고, 어지럽기도 하다.

이런 증상들이 나타나면 ‘속지 말아야지!’ 하면서도

어쩔 수 없는 기대감이 스멀스멀 올라오기 마련이다.

남편과 이런 증상들을 공유하면서 말로는 “아닐 거야 오빠, 기대하지 마.”라고 했지만

무의식에 차오르는 기대감까지는 어찌하지 못했다.


생각을 전환하려 많이 애썼다.

오히려 홀가분하게 다녀올 수 있겠다며.

몸과 마음을 건강히 하고 돌아와서 새로 시작하면 된다고.

그렇게 한 가지 종류의 이식은 실패했다.


2. 낯선 땅으로의 이식


짧은 여행이 분갈이 정도라면, 한달살이는 어쩌면 새로운 토양에 옮겨 심는 것과 같지 않을까.

여행의 시작은 남편과 함께 하기로 했다.

첫 3박 4일을 함께 여행하며, 나를 새로운 땅에 심어 두고

토양이 괜찮은지, 해는 잘 비추는지,

비는 충분히 내리는지, 위험요소는 없는지 살피고

적응하는 것을 지켜보고 돌아오겠다는

그의 제안이 몹시 고마웠다.


사실 결혼한 상태에서 배우자 없이 홀로 한 달을,

그것도 출장도 아닌 여행으로 보내준다는 것은

실로 대단한 결심이 아닐 수 없다.

(반대로 생각하면 나는 절대 보낼 수 없다. 남편은 그래도 괜찮다 했다.)


국내 1박 2일 정도를 제외하고는 홀로 여행을 떠나보는 것은 처음이라

아무리 유튜브를 여러 편 보고, 여행책을 몇 권 정독했다 하더라도

처음 가보는 곳에 대한 긴장감이 없지는 않았다.

마지막 남은 배아의 이식이 실패한 것에 대한 씁쓸함도

여행에 대한 설렘을 낮추는데 한 몫했지만,

기꺼이 함께 가 주는 남편 덕분에 든든한 마음으로 출발할 수 있었다.


나는 치앙마이에 옮겨 심긴 채, 온 마음 다해 햇볕을 받아들이고

기쁜 마음으로 빗줄기를 몸에 스미도록 하면서

그동안 피워내지 못한 꽃을 피워낼 수 있을까.


3. 출발


공항에는 가는 것만으로 설렌다.

내가 아는 누군가는

이륙하는 비행기에서 꼭 ’ 김동률의 출발‘을 듣는다고 했다.

나는 초등학생 때 이탈리아에 있는 고모네 집에 방문하면서 비행기를 처음 탔는데

그 때 비행기 플레이리스트에 내장되어 있던 노래 중

초딩의 마음을 사로잡았던 노래는 무려 ‘델리스파이스의 차우차우’였다.

가뜩이나 ‘너의 목소리가 들려.’라는 가사의 반복인 노래를

10시간 넘는 비행동안 반복해 들었던 기억이 난다.


그 이후로 나는 비행기에 타면 꼭 ‘차우차우’를 듣는다.

그게 나만의 여행 공식이다.

다들 여행 공식 하나쯤은 가지고 있을 것 같은데,

내 남편의 경우는 비행기 타기 전 전자책을 하나 다운 받고

읽은 지 10분여 만에 잠드는 것이 그만의 공식이다.


나는 이번 여행을 위해 액션캠 하나를 장만해서

카메라에 익숙해질 겸, 기록도 남길 겸

비행기에서 이것저것 촬영을 했다(아마도 아무 데도 쓰이지 않을 장면들).

다행히도 치앙마이행 비행기는 비행시간이 그리 길지 않아

여행책도 읽고, 노래도 듣고, 창밖 구름과 하늘도 구경하면

금세 도착이었다.

새로산 액션캠으로 열심히 촬영했다. 파란 하늘을 보며 출발해 노을을 보고 도착했다.

현지시각으로 오후 7시에 도착,

유튜브에서 미리 확인했던 것처럼

공항택시를 타는 대신 그랩을 불러 숙소로 이동했다.

따뜻하고 습하면서도 풀내음이 나는 것이 이 도시의 첫인상이었다.


여행책에서 본 대로 공항에서 시내(올드타운)까지는 그리 멀지 않았다.

남편과 있는 동안은 가장 가보고 싶었던 호텔에서 묵기로 했다.

유럽풍의 신축 호텔로 조금 비싸지만 남편과 함께이기도 하고

여행하는 곳의 첫인상을 좋게 기억하고 싶다는 핑계로 지른 곳이다.

(호텔 소개는 다음 편에 이어집니다.)

저녁 늦게 도착한 호텔, 웰컴푸드와 카드가 반긴다.

호텔 침대에 눕고 싶은 마음도 간절했지만 배가 고팠다.

가장 열심히 봤던 유튜버가 극찬한

창푸악야시장의 ‘수끼’를 우리의 첫 메뉴로 골랐다.

늦게 도착한 터라 웬만한 식당은 저녁 장사를 마쳤을 것이고

편의점 음식으로 때우기는 첫 식사로 흡족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또 한 번 그랩을 잡아타고, 야시장으로 향했다.

‘창푸악 수끼’는 치앙마이 현지인들과 치앙마이 대학생들이 즐겨 찾는 맛집이자

극악의 웨이팅으로 유명한 곳이다.

하지만 우리가 조금 늦게 갔기 때문인지 10분 정도 웨이팅 후에 먹을 수 있었다.

기다리면서 마셨던 코코넛 스무디가 내가 어디에 와있는지 알 수 있게 했다.

맥주까지 사서 야시장 테이블에 앉아 먹는 첫 끼니는 대단히 만족스러웠다.

이게 뭐라고 이렇게 맛있지?

현지인들에게도 인기가 많다는 수끼. 창비어와 함께 게눈 감추듯 먹었다.

임신을 준비하면서, 특히나 배아 이식 이후에는

차가운 음료도 절대 마시지 않고,

하루 한 잔은 괜찮다는 커피도 부러 참았다.

술은 당연히 언감생심.


하지만 나는 치앙마이에 모든 것을 벗어던지고 왔다.

어차피 술도 안 마시고

커피도 안 마셔도 실패하는 착상.

나는 여기서는 고삐 풀고 마실테다.

얼음이 아드득 씹힐 만큼 차가운 음료도,

커피콩 생산지에서 바로 마시는 신선한 커피도,

생수보다 싼 맥주도 매일매일 마실테다!!!!


해방감과 만족감을 잔뜩 버무려 삼키고,

우리는 올드타운을 산책하며 숙소로 돌아왔다.

아, 돌아오는 길에 여러 곳의 재즈바를 발견했는데

그냥 숙소에 들어가긴 아쉬워 한 곳에 들러

맥주값 6,000원 정도만 지불하고

눈앞에서 라이브 공연을 즐겼다.

올드타운 밤산책 + 재즈바 공연 감상


첫날부터 이렇게 좋아도 되나?

시작이 좋다.

나 이곳에 잘 옮겨심길 것만 같아.

 

그런 날이 있잖아.
가벼운 말에 성이 나서 발톱을 세우게 되는 날.
못생긴 나를 마주하는 날.
우리는 한 시간 동안이나 말없이 있었어.
마치 말하면 죽는 동굴에 들어와 있는 사람들처럼
입을 굳게 닫고 심각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돌린 채 앉아 있었지.
여행을 취소할까 생각했지만, 한순간의 기분 때문에
휴가를 망쳐버린다는 게 한심한 일 같아 보였지.
예약해 둔 리조트 비용은 또 어떻고.
(중략)
휴가는 행복을 더 이상 유예시키지 않아도 되며
지금 이 순간을 오로지 나를 위해 살아도 된다는 허락이다.
나의 오늘이 어제와 분명히 다름을 선언하고,
비로소 내 의지대로 주어진 시간을 사용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이 단순한 사실이 얼마나 감동적으로 다가오는지 백수가 되어보니 알겠다.
나는 가벼워지고 내 삶은 더 말랑하고 행복해지리라.
(박연준, 인생은 이상하게 흐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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