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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 속의 시장, 시장 안의 미슐랭 식당?

어디서든 마켓과 미슐랭을 만나는 곳, 치앙마이

by 안긁복의 모두극뽁 Feb 14.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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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하며 쇼핑을 크게 즐기지 않는 사람일지라도(그게 바로 나다.)

치앙마이에서는 마켓을 한 번이라도 지나치지 않기는 힘들 것이다.

매일 이 도시 어느 곳에서는 마켓이 열린다.

상설 시장으로는 과일과 채소로 유명한 ‘므엉마이 시장’,

꽃, 식재료, 옷, 가방,  그릇 등 온갖 물품이 와르르 쏟아질 것처럼 꽉 찬 ‘와로롯 시장‘,

최대규모의 야시장으로 매일밤 열리는 ‘나이트 바자’ 등이 유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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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대문 시장격인 와로롯 시장/산티탐 지역의 작은 시장 타닌 시장


그뿐 아니라, 주말에만 열리는 비상설 마켓들도 있다.

‘진짜’ 사람도 많고 먹거리도 많고 살 것도 많아 가장 인기 있는 ’징짜이 마켓‘

코코넛 농장에 주말에만 좌판이 깔려 마켓이 되는 인생샷 맛집 ‘코코넛 마켓’

정글에서 토요일 오전에만 열리는 베이커리가 메인인 ‘나나정글(뱀부마켓)’

올드타운 주변에서 열리는 새러데이 마켓과 선데이 마켓은

사원의 문을 열어 먹거리 마켓을 조성할 정도로 규모가 커서 여행객들이 꼭 한 번은 방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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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코넛 농장을 주말엔 마켓으로! / 코코넛 아이스크림은 필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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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글에서 토요일 오전부터 빵을 판매하는 나나정글

이쯤이면 치앙마이에 여행 왔다면 길을 지나다가라도 마켓은 지나치게 되어있다.

특히나 수공예품, 라탄제품, 아기자기한 기념품들을 좋아하는 여행객들에겐

이보다 좋은 여행지는 없을 것이다.


서두에 말했다시피 쇼핑에 관심 없고 물욕도 별로 없지만

스쳐가는 여행자가 아니라 살아보는 여행자라면 다르다.

여유가 있을뿐더러, 마켓의 도시라는데 몇 군데는 들러보는 게 인지상정 아닌가.

이 도시에서 지내는 동안에는 여러 곳의 마켓에 방문했다.


여행 3일 차는 토요일이었다. 주말에만 열린다는 마켓 중 하나를 가봐야지 했는데

내가 가장 가고 싶었던 마켓은 ‘참차마켓’이었다.

시티에서 좀 떨어진 외곽 시골마을 속 참차나무 숲에 조성된 마켓인데

아래의 세 가지 이유로 방문하고 싶었다.

멀어지는 거리만큼 찾는 여행객의 수도 적어 덜 붐빈다는 점

많은 로컬 아티스트들의 수공예품(특히 천연염색 제품)을 구경할 수 있다는 점

숲 속을 거닐며 맛있는 커피와 먹거리들을 즐길 수 있다는 점


시내에서 택시를 타고 20여분 만에 도착했다.

입구에서부터 엄청나게 큰 나무들이 반겨준다.

빵 굽는 냄새, 커피 내리는 냄새에 이끌려 걷다 보면

카페 앞에서 통기타를 들고 버스킹을 하는 남자를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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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차마켓 입구와 핸드메이드 작품들

그 앞 광장에는 로컬 아티스트들이 플리마켓처럼

본인의 작품들을 걸어두고 안에서 계속 작업을 하면서

손님이 오면 설명을 해주거나 판매하기도 했다.

그림, 금속공예, 염색한 패브릭 제품 등

다양하면서도 하나하나 특색 있는 작품들을 감상하는 재미가 있다.


다시 메인로드로 나와 숲길 사이를 걷는데

키 큰 나무들이 울창해 자연스럽게 그늘을 만들어주고

그 사이사이로 비추는 햇볕이 따갑지 않고 따사로와

길을 걷는 것만으로 좋았다.

늘어선 가게들은 벽이 거의 없이 유리로 이뤄져 있어

울창한 나뭇잎들이 투명하게 보여 어떤 가게에 들어서도

숲 속의 작은 오두막 같은 느낌이 들었다.

초록을 두른 곳 가운데 있는 것만으로도

내내 얼어붙어있던 마음이 녹는 기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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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차마켓만의 분위기

그러다 쇼맨십으로 유명한 드립커피 아저씨를 지나치는데

그냥 그 분의 에너지만으로도 웃음이 지어졌다.

춤도 추시고 농담도 건네며 지나가는 사람들의 관심을 모두 붙잡는다.

커피를 사 마시지 않아도, 본인을 영상으로 찍어달라며

웃음을 줄 수 있는 것만으로도 기뻐하는 사람.

그리고 커피 값은 내는 사람 마음대로다.

행복을 전파하는 참차마켓의 유명한 커피 아저씨행복을 전파하는 참차마켓의 유명한 커피 아저씨


웃음으로 에너지를 충전하고 좀 더 걷다 보니

주차장 한가운데 커피 트럭이 와있다.

여행객들이 그 앞에 앉아 여유 한 모금을 들이켠다.

캠핑이 따로 없네. 이국적인 풍경에

‘여기가 주차장이 맞아?’ 하고 인지부조화가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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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가장 여유로운 주차장 카페

조금 더 둘러보다 드디어 사고 싶은 게 생겼다.

자수가 놓인 에코백!

이곳을 기억하게끔 나뭇잎과 꽃이 수놓아져 있는,

이곳에서 노트북을 들고 다닐 때도 사용하고

한국에 돌아가서도 여름에 매고 다닐 수 있는 것으로 골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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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고른 에코백

같은 작가님이 만드신 자수가 수 놓인 귀여운 아기 옷들도 있었는데

한 번 더 방문한다면 사야지 하고 내려놓았다.

마음을 놓아야지 놓아야지 하면서도

임신에 대한 부담감은 이렇게 불쑥 찾아온다.


길을 따라 끝까지 걷다 보니 한 식당 입구가 보였다.

대나무 숲이 빽빽한 입구를 따라 걷다 보니

색색깔 쌀밥으로 유명한 ‘미나 라이스 베이스드퀴진’이라는 미슐랭 식당이 있었다.

시장 안에 갑자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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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러보다 보니 호수 위에 떠 있는 것 같은

야외좌석의 분위기가 아주 좋아 보였다.

식당이 있는 줄도 몰랐으니 예약은 생각도 못했기 때문에

혹시나 워크인 자리가 있을까 했는데

1시간 뒤에는 야외 좌석이 가능하다고 했다.

생각지 않은 행운이 늘 더 기쁜 법이다.


남편과 마켓 초입에서 봐둔 카페에 들어가 커피를 마시면서

예약시간까지 기다리기로 했다.

오늘도 역시나 신선하고 고소한 라떼를 마시면서

레스토랑에 어떤 메뉴가 있을지 살펴보았다.

마켓 초입의 카페 / 역시나 치앙라이 도이창 지역의 원두를 쓴다마켓 초입의 카페 / 역시나 치앙라이 도이창 지역의 원두를 쓴다

미슐랭에 관해서는 따로 한 편을 써야 할 정도로

치앙마이에는 미슐랭 식당이 무지무지 많다.

그야말로 미식의 도시이다.

한창 ‘흑백요리사’가 유행할 때라

치앙마이에서도 빼놓지  않고 챙겨봤지만

국내에서 미슐랭 레스토랑은 굉장히 거리감이 느껴졌다.

왠지 차려입고 가야 할 것 같고, 예약도 치열하며,

비싼 가격 때문에 마음먹고 방문해야 하는 느낌이랄까.


그러나 이곳 치앙마이에서는

아마도 도시 자체가 크지 않아서인지

검색을 통해 의도적으로 찾아가든

길을 걷다 우연히 발견하든

미슐랭 스티커가 붙어 있는 식당이 많았고,

접근성도 아주 좋았다.

대부분 빕 구르망에 선정된 곳들이라 합리적인 가격이어서

거의 매일 하나씩은 미슐랭 식당에 방문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이다.


오늘 방문한 Meena Rice Based Cuisin 은

식당 이름처럼 쌀을 베이스로 한 음식들이 유명한 곳이다.

무척 넓은 부지에 호수가 있고,

호수 위에 뜬 목조건물에 야외좌석을 만들어 두었다.

안쪽으로 들어가면 숲 속에 아이들을 위한 놀이터도 갖춰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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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나 라이스 베이스드 퀴진의 전경과 어린이 놀이타

호수를 둘러싸고 프라이빗한 방갈로도 있고,

에어컨이 빵빵한 실내좌석도 있었지만

나는 호수와 가장 가까운 야외좌석으로 안내되었다.

그늘이라 그렇게 덥지는 않았는데 종종 도마뱀 친구와 눈이 마주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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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외좌석과 도마뱀친구

시그니처 메뉴라는 쌀로 튀김옷을 입힌 새우튀김과 오색밥,

밥과 함께 먹을 커리메뉴를 각각 시켰다.

우와!할 만한 맛은 아니었지만

호수 위에 떠있는 신비한 분위기,

예쁘게 플레이팅 된 음식을 눈으로 먹는 기쁨,

크게 부담스럽지 않은 가격으로 충분히 커버가 가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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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그니처인 오색쌀밥과 쌀로 튀긴 바삭한 새우튀김


초록이 주는 평화,

느긋하고 여유로운 사람들,

기대치 않은 미슐랭 식당의 발견,

정성 들여 만든 작품들 중, 내 마음을 빼앗고 나를 기분 좋게 만드는

그리하여 내 손에 오게 되는 단 하나의 물건,

행복의 가격.


흡족한 치앙마이에서의 하루가 또 그렇게 흘러간다.


누구나 자기만의 ’ 정원‘이 있다.
내 마음을 빼앗고 나를 기분 좋게 만드는 것들로 둘러 쌓인 곳.
시간과 공간이 허물어지는 곳.
그 속에서 우리는 홀로 조용히 상상하고, 생각하고, 마음을 들여다보고 묻고 답한다.
현실에서 잠시 벗어나 내면으로 산책하는 공간.
그곳에서의 쉼이 일상의 삶을 살아가게 하는 힘이 된다.
(백은영, 다가오는 식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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