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읽을수록 좋은 책, 명작/더버빌가의 테스

40대가 되어또다시<더버빌 가의테스>를 읽다.

by 책한엄마

https://youtu.be/JLjzHz_Fg8g

두 번째로 똑같은 책을 읽었다. 문학동네판으로 2019년에 영국에서 읽고 마지막 배경이 된 스톤헨지까지 다녀왔다. 스톤헨지는 엄청난 평야 위에 툭 던져져 있는 바위 덩어리다. 군데군데 나무가 모여있는 숲이라고 불리는 공간 외에는 정말 넓은 평지로만 이루어진 곳이다. 어디 하나 숨을 곳이 없다. 우리나라처럼 산과 들이 반반 나눠져 있는 곳에서 상상도 못 할 공간이다. 테스는 그런 책이다. 숨길 수 없는 인간 본성을 얘기하고 싶은, 시대를 좀 더 앞서 본 사람이 쓸 수 있는 책.


예전 처음 이 책을 읽을 때는 그저 테스의 감정 변화와 테스가 어쩔 수 없는 답답한 시대 상황과 배경에 집중을 해서 읽었다면 이번에는 좀 더 많은 부분이 보였다. 테스에 집중해 있었던 내 신경은 에인절이라는 뒤늦게야 자신이 가진 본마음을 알게 되어버린 우매한 평범한 사람이 보였고, 권력은 있으나 타인을 배려할 줄 모르는 사람이 가진 어쩔 수 없는 비극을 알렉이라는 강간범을 통해 보았다. 예전 이들을 그저 ‘나쁜 남자들’이라고 묶어서 던져 버렸는데 이번에는 좀 더 그들을 이해해 보려고 노력했다. 물론 이 책을 쓴 사람조차 남성이지만 그는 그 시대 남성 위주의 굳은 생각 속에서 최대한 여성을 트로피나 소유물이 아닌 한 인간으로 바라보려고 큰 노력을 했다고 보인다.

안나 카레니나와 브론스키


처음에는 전혀 그런 생각이 들지 않았는데 비슷한 시기 나온 책 '안나 카레니나'와 결이 매우 닮아있다고 생각했다. 물론 둘 다 주인공의 신분적 위치도 정말 다르고 이들 주위 환경이 아예 정말 다르다고 할 수 있지만 주인공이 갖고 있는 독립적이고 고결한 내면, 즉 자신이 가진 생각을 현실에 그대로 적용하기 위해 노력하는 그 모습은 테스와 안나 둘 다 닮아있다. 그래서 그런지 두 인물 다 주인공 이름이 책 이름이 되었다. 그만큼 그들이 갖고 있는 욕망과 생각, 그렇게 나아가는 것에 대해 성별에 상관없이 나아가려고 했다는 점이 공통점이다. 물론 사회는 이들을 이해하지 못했고 결국 비극적 죽음으로 결론 맺었다. 어쨌든 모든 사람들이 죽는 건 필연일 수밖에 없지만 말이다.

에인절과 테스


테스의 비극은 아버지가 자신이 원래 고결한 귀족 집안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며 시작된다. 이에 신흥 부자가 자신이 가진 자본에 정당성을 부여하기 위해 그 가문을 산다. 그가 알렉 더버빌이다. 소작농으로 전락한 예전 귀족인 테스 가족은 더버필드라는 가명 비슷한 이름으로 살아나간다. 그들은 가난 때문에 핏줄을 이용해 알렉 가족과 친분으로 경제적 이득을 얻으려 테스를 이용한다. 이들은 알고 있었다. 테스가 성적 노리개가 될 수 있을 거란 걸. 테스는 그 이용료로 경제적 이득을 바라는 현실적인 여성이길 속으로 내심 그 부모들은 바랬다.


안타깝게도 테스는 그런 사람이 아니었다. 진짜 귀족의 피가 흐르는 것인지, 고고하게 자신의 의견을 견지한다. 노예처럼 몸과 경제적 이득을 기브 앤 테이크하는 게 아닌, 자신이 생각하는 인생을 개척하는 것이다. 이미 귀족인 안나 카레니나 또한 그렇다. 훌륭한 인격을 가진 남편을 가진 안나가 사랑에 빠졌다는 이유로 많은 것을 포기해 버린다. 여기서 남성은 자신이 가진 고고한 생각을 견지한다고 해서 안나나 테스 같은 슬픈 결과보다는 그저 그럴 수 있다는 결론으로 끝난다는 점이다. 여성으로 태어나서 겪는 안타까움. 그걸 제대로 잡아낸 사람이 바로 토마스 하디와 레프 톨스토이다. 그 시대에 가장 고정된 생각을 갖지 않았던 그런 작가가 아니었을까 싶다.

토마스 하디와 톨스토이의 분신


레프 톨스토이는 안나 카레니나 속에 조연 격으로 출연하는 레닌 역을 맡았고 에인절은 아마도 토마스 하디의 분신이 아닌가 싶다. 이유는 그가 아내에게 처음에는 친하게 지냈으나 공식적으로 알 수 없으니 어떤 일을 계기로 서로가 소원해졌다. 아내가 죽은 이후에서야 그녀를 위한 절절한 사랑 시를 썼다는 걸로 봐서 이 작품과 실제 사건 전후를 알 수 없지만 에인절의 마음 변화와 작가 마음이 동일하다는 걸 알 수 있다.
테스는 에릭에게 강간을 당한 후 에인절이라는 교육받은 젠트리 계급 남성과 사랑에 빠져 결혼을 했으나 결혼 후 순결을 잃었던 사실을 고백한 후 에인절은 테스를 버린다. 버리는 행동을 넘어 테스와 친한 친구이자 자신을 짝사랑했던 이즈라는 여인에게 같이 브라질에 가자고 넌지시 이야기를 건넨다. 이즈의 굳건한 의리가 아니었다면 테스는 사람에게 배신감으로 많이 힘들었을 듯하다.


테스는 왜 이런 비극을 맞이했을까?


여기서 작가는 운명론을 들이댄다. 더버빌이 망하기 전, 갑옷을 입은 조상이 예전에 했던 강간을 그대로 후손인 테스가 당하는 것이라고 말이다. 그렇게 생각하지 않으면 무고한 그녀가 당한 부당한 일을 딱히 설명할 길이 없기 때문이다.


그녀는 그가 두려웠고, 그 앞에서 움츠러들었고, 그녀의 무력한 처지를 교묘하게 이용하는 데 속수무책으로 당했다.(130)
“그려, 좋은 쪽으로 생각해야지 어쩌겄냐. 이게 순리고 하느님의 뜻인가보다.” (131)
자신이 삼라만상과 부조화를 이룬다고 느꼈지만 사실 그녀는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주어진 사회의 규범을 어긴 그녀는 자신을 자연의 변칙으로 여겼다. 그러나 자연에 알려진 어떤 법칙도 어긴 것은 아니었다.(135)


테스는 자신이 원치 않는 일과 임신 출산을 통해, 그리고 에릭은 에인절 아버지 클레어 신부의 말씀으로, 에인절은 현실을 도피하기 위한 브라질 선교여행을 계기로 성장을 한다. 이 성장이 우리가 보기에 예전에 비하면 좋아지는, 발전되는 상황이 아님에 또 복잡한 마음을 갖게 한다. 테스의 깊은 생각 덕분에 에인절은 그녀를 사랑하게 되었고 에인절은 여행을 통해 육체를 초월한 진정한 사랑을 깨닫게 됐지만 이미 늦어버렸다.


에릭 또한 예전 육체적인 본능에 충실한 삶을 뛰어넘어 조금은 양심적인 삶을 살고자 하나 방법이 서툰 것은 어쩔 수 없었다. 그렇게 서로 얽힌 시간 안에서 결국 테스는 에릭을 죽여 하나의 남편을 만든다. 그렇게 살인죄로 테스는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지만 테스를 똑 닮은 자신 동생을 에인절에게 맡기며 죽음을 초월한 신뢰를 보낸다.



결국 토마스 하디가 이 책을 통해 하고 싶은 말은 남성과 같이 여성 또한 몸의 깨끗함보다는 마음의 깨끗함이 더 중요하다는 걸 전하고 싶었다. 앞서 비교하며 얘기한 안나 까레니나 조차도 누군가를 사랑하는 마음에 있어서 순수하고 진실했다. 다만 그녀는 떠나보내야만 했던 아들을 진심으로 사랑했고 주변에 사랑을 받고 존경을 받아야 했던 그 마음을 포기해야만 했는데, 그 과정이 너무나 힘들었다.


이 책을 읽으면서 영화 ‘밀양’이 떠올랐다. 영화에서 아들을 죽인 자가 회개하고 구원받았다고 얘기하는 부분에서 나오는 주인공의 분노가 떠올랐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그 많은 가족들이 먹고살 곳이 없어지자 더 이상의 자신이 가진 마음을 유지할 수 없어 결국 세상과 타협해 버리는 테스 또한 그 천연덕스럽게 구원을 얘기하는 에릭에게 내재되어 있는 분노가 에인절의 등장과 함께 살아난 것 같았다.



사랑이란 무얼까? 에릭도 나름 그만의 방식으로 테스를 사랑했고 에인절도 나름 그녀를 사랑했다. 테스는 에릭을 절대적으로 싫어했다. 그러나 그는 삶에서 테스의 진정한 남편이었다. 에인절은 테스와 진정한 사랑 감정을 나눴지만 서류로 부부가 된 이후 그녀를 부정했다. 자신이 만든 이상형에 와 닿지 않았다며 내치지만 무의식에서는 그대로 테스를 사랑했다. 몽유병으로 그 사랑을 표현할 정도로 그는 자신을 잘 몰랐다. 그는 기존 신앙을 부정하고 프롤레타리아 이론에 심취해 있으면서도 테스가 알고 보면 명문가 출신 여성이라는 사실을 내심 자랑스러워했다. 이 부분을 보면서 드는 생각은 현재 보수와 진보의 문제다. 보수는 자신이 가진 부를 유지하려고 하고 진보는 못 가진 자를 위해 낮은 자세로 임해 평등을 이룩하려 한다. 그러나 조지 오웰의 동물농장에서와 같이 동물들이 혁명을 일으킨 후 그 우두머리 돼지가 또 인간 행동을 하듯, 결국 계급적 우월성이 나오는 본능은 어쩔 수 없다고 본다. 그 모순에서 에인절 또한 자유로울 수 없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물론 이 테스를 기준으로 한 비극적 세상을 창조하고 얘기한 토마스 하디도 예외일 수 없다.


이 책은 단순한 로맨스 이야기가 아니다. 그 당시 상황과 계급, 젠더 문제가 첨예하게 비치며 펼쳐지는 방대한 이야기이다.


올 해는 예전 읽었던 책을 읽는 일이 많다. 지루하고 뻔할 줄 알았는데 내가 갖고 있는 생각들이 이 책 속에 더 들어가져서인지 읽는 속도가 느려진다. 감상문을 쓰는 시간도 너무 오래 걸린다. 현재 테스는 여성에 한정되지 않는다. 어쩌면 그 예전 소크라테스의 죽음 또한 테스와 같은 죽음이 아니었을까 싶다. 계속 이렇게 생각에 생각을 이어져 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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