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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현선 Nov 24. 2022

시카고. 그리고 강원도에서 아를까지

나를 살게 하는 순간들

 자그마한 낯섬에도 눈을 떼지 못할 때가 있다.

 우도에 갔던 때는 파란 줄만 알았던 바다가 시리도록 맑은 에메랄드 색이라 놀라서 발을 떼지 못했고, 처음 가는 동네의 길을 지나는데 가로수가 사이프러스 나무 모양이라 그 동네를 좋아하게 되었다.

 줄지어 선 빼쭉한 나무들. 그것만으로 나를 고흐가 살았던 아를로 데려간다.



 낯선 것으로만 가득했던 도시도 있었다.

 그 여름 오헤어 공항에서 전철을 타고 게스트하우스 근처의 역에 내렸을 때, 처음으로 시카고의 공기를 날것으로 들이마셨다.

 환승 없이 열몇 개의 역. 인천 공항을 떠나 미국 땅에 착륙하기까지의 시간만큼이나 긴 여정이었다.


 전철 티켓을 파는 기계는 어떻게 사용해야 할지 알 수 없었고 내 커다란 배낭은 개찰구를 지날 때마다 좌우로 부딪혔다. 전철의 덜컹거리는 소음만이 좀 낯익은 채로 간신히 도착한 역에 내리니 해가 져 있었고 거리는 고요했지만 가로등 빛에 비친 낯선 모양의 건물들에 정신이 빠졌다.


 아무것도 모른 채로 일행들을 따라다니며 지오다노스에서 시카고 피자를 먹고, 스타벅스에서 레모네이드를 주문했다. 저녁이면 한기가 드는 건조한 여름 공기가 낯설지만 좋았고 게스트 하우스의 2층 침대 아래칸에 누우면 창밖으로 이따금씩 들리는 블루 라인 전철의 소음도 금새 익숙해졌다.

 피부와 감각을 가만히 훑고 지나가는 낯선 것들이 조금 눈에 익을 때 클라우드 게이트를 만났다.


 이제 겨우 익숙해지려는 도시가 생전 처음 보는 모양의 둥글고 휘어진 프레임 안에 담겨 있었다. 나를 압도하던 마천루가 한 눈에 들어왔다. 그대로 이어지는 곡면을 따라 시선을 떼지 못 한 채로 게이트 아래에 들어서자 오목하게 올라간 지붕에 내가 비쳤다. 이제야 내가 이 도시 안으로 들어섰다.

 그러나 낯선 것은 이 반짝이는 프레임인지, 이 도시인지, 비춰진 나인지 알 수 없었다.

 낯선 도시에서 나는 다시 한번 흔들렸다.

아니쉬 카푸어 <클라우드 게이트>

 매일 같은 퇴근길에 어느 날 정신을 차려보면 방금 전에 회사를 나섰는데 지금 현관문을 열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 때가 있다. 청소기 어제 돌렸지 하고 다시 생각해보면 어제가 아니라 며칠 전의 기억인 것 같기도 하다.

 몇 날에 걸친 시간들이 자꾸만 하나의 층으로 겹쳐진다.

 그럴수록 모호해지는 시간들 사이에 책갈피를 끼워두기 위해 계속 낯선 것들을 찾아낸다.



 숲 속의 미술관 '뮤지엄 산'은 내가 멀리 산길을 달려 찾아가기를 마다하지 않는 공간이다.

 티켓을 받아 들고 문을 나서면 멋진 정원이 펼쳐지고 산 꼭대기에 맞닿은 하늘을 눈에 가득 담으며 정원 사이로 난 길을 따라 걸어가야 전시관에 도착한다.

 그 전시관 한가운데에 건축가 안도 타다오가 만든 삼각 코트가 있다. 도넛처럼 건물의 한가운데가 비어 있는 모양인데 층고가 높은 2층 건물의 벽면으로 거대한 굴뚝같은 삼각의 공간이 만들어져 있다.

 콘크리트로 만든 커다란 삼각형 안에 들어서서 올려다보는 하늘은 조금 전까지와는 완전히 다른 하늘이 되어 있다.

 사각형도 원도 아닌 삼각형의 하늘이 높은 벽 너머로 나를 끌어들인다. 낯선 것들이 때로는 나를 사로잡고 때로는 압도한다. 그렇게 또 낯선 것이 나를 멀리로 데려간다.

 나는 저항 없이 둥실 떠올라 우주를 유영하는 우주인이 되어 애틋한 지구를 바라보고 그렇게 내 시간에 또 한 페이지가 남는다.




 벽면의 중간을 두른 검게 보이는 띠는 가늘고 긴 유리창. 안도 타다오의 건축물인 만큼 빛이 들어오는 틈이 있습니다.

 벽면의 한가운데가 통으로 비어 유리로 되어있는데 윗부분이 무너져 내리지 않을 수 있는 것은 삼각형의 꼭짓점에 있는 기둥들이 지탱해주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기술적으로 쉽지 않은 일이었기 때문에 본관 건물을 짓던 때에 삼각코트의 거푸집을 떼어내고 벽이 무사히 서 있는 것을 확인한 순간 모두가 환호성을 질렀다고 합니다.

 이런 이야기들이 뮤지엄 곳곳에 숨어있으니 전시 해설을 꼭 들어보신다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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