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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현선 Aug 19. 2023

여행 1. 저게 다 말이에요?

공항 밖으로 나서자마자 몽골

 칭기즈칸 공항의 출국장을 나오자 내 이름이 적힌 종이를 든 가이드님과 기사님이 기다리고 계셨다.

 가이드님이 한국말을 잘하셔서 일단 안심했다. 먼저 공항 2층 환전소에 가 가져온 한국 돈부터 바꾸었다. 5만 원으로 6장이었는데 몽골 투그릭으로 바꾸니 돈다발이 되었다.


 각자 환전을 하는 동안 환전소 뒤 통유리 창으로는 넓은 초원과 그 한가운데 덩그러니 놓인 이층 집이 보이고 그것만으로 벌써 마음이 들뜨기 시작한다.

저-기 멀리에 혼자 있는 집 하나


 새로 지어 깔끔한 공항은 그리 넓지 않아서 금세 주차장으로 나온다.

 스타렉스 같은 게 오는 줄 알았는데 까만색에다 바퀴가 커다란 도요타 랜드크루저가 서있었다. 심지어 트렁크 문이 위가 아니고 옆으로 열리는 멋쟁이 자동차다.


 짐을 싣고 공항을 빠져나오자 곧바로 말들이 달리는 초원이 펼쳐진다. 잘 포장된 넓은 도로를 달리고 있는데 옆에선 말이 걸어 다니고 소가 풀을 뜯고 있다니.

 

오랜만의 여행이라 공항 입국심사대에서 나도 모르게 싱글벙글 웃다가 좀 민망해져서 애써 입꼬리를 끌어내리고  나왔는데 다시 웃음이 나온다.


  “저게 다 말이에요? 세상에, 소도 있네.”

 몽골은 원래 이렇다던데, 다 듣고 왔고 지금 창 밖으로 보고 있는데도 너무 신기하다.

 아직 몽골 땅이라곤 공항 주차장 바닥 밖에 못 밟아봤는데 확신이 든다. 분명 멋진 여행이 될 거라는 것!



 고속도로를 달리다 보니 도시가 보이기 시작하고 시야를 막는 것 하나 없이 멀리까지 한눈에 들어온다. 울란바타르로 들어서자 슬슬 길이 막히기 시작하지만 신난 마음은 가라앉지 않는다.


 몽골은 한국과 같이 오른쪽 차선으로 주행하지만 운전석은 반대로 오른쪽인 도요타가 많다. 그 다음은 혼다나 닛산. 우핸들에 일본어 설정 그대로인 걸 보면 중고로 들여온 것 같다. 오히려 좌핸들인 차는 트럭이나 버스 정도다. 그래서 중앙선을 넘어 추월할 땐 앞이 잘 안 보이니 신중하게. 반대로 끼어들기는 과감한데 딱히 화내는 사람은 없다.



 고비 캐시미어에 들러 장갑과 스카프를 사고 저녁식사로 우즈벡 식당에도 갔다.

 양고기를 즐겨먹는 나라에 가면 냄새가 강해 못 먹을 수도 있다길래 걱정했는데 다행히 전혀 문제 없었다. 한국에서 먹는 양고기보다 육향이 더 강하고 질긴 편인데 살코기와 지방이 적당하게 요리되어 두툼한 스테이크 같았다.

 그리고 백화점에 들른 김에 1층 마트에서 간식거리랑 캔맥주, 보드카도 사고서 호텔로 왔다. 울란바타르는 내일 떠나면 다시 오지 않으니까 오늘 들러야 한다.




 투어사를 통해 예약한 호텔은 에어컨이 없는 트윈베드 룸이었다. 방에 안내문이 붙어있긴 한데 키릴문자로 된 몽골어뿐이고 프런트로 전화를 하려 해도 번호가 적혀 있지 않아 와이파이 비밀번호를 모르는 채로 잤지만 15달러라는 가격을 생각하면 아주 마음에 드는 방이다.


 몽골에서는 마지막일 따끈한 물이 콸콸 나오는 욕실에서 씻고 나오자 밖에는 천둥에 번개까지 내리치고 있었다.

 곧 비가 쏟아지기 시작하더니 길에도 물이 고여 차들이 물살을 헤치고 달린다.

 해가 지고도 생각보다 더운 날씨에 경량 패딩을 괜히 챙겼나 생각하고 있었는데 비가 내리자 열린 창문으로 선선한 바람이 불어 들어온다.


 창 밖을 내다보니 호텔 바로 앞 게르는 천장 가운데의 구멍을 벌써 덮어서 막아놓았고 길목에는 바닥에 고인 물을 빼내려 삽을 들고 나온 동네 사람, 그 옆에서 반갑다고 뛰는 커다란 개가 아주 조그맣게 내려다보인다.

 왜 멀리 나오면 아무것도 아닌 것들도 유심히 바라보게 될까. 집에서였으면 시끄럽네, 하고 지나칠 개 짖는 소리마저 바라보며 듣게 될 정도로 아무거나 막 사랑해 버리게 되는 게 좋다.



 게다가 나한텐 요상한 날씨 요정이 붙어있어서 여행을 가면 비가 귀한 동네에도 비가 쏟아지는데, 내가 실내에 있을 때 처럼 좀 와도 괜찮은 때에 온다.


 맞지 않고 바라만 보는 비는 좋다고 생각하는 한편으로는 이 폭우에 내일 길이 괜찮을까 걱정하면서 일단 맥주를 마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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