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골에서 먹고, 생각하다.
몽골에서의 첫 아침. 어제 쏟아진 비가 거짓말인 것처럼 파란 하늘이 쏟아지고 있었다.
일어나자마자 호텔 전기 주전자에 물을 끓여다 따뜻한 커피를 한 잔 마시며 눈을 비빈다. 창 밖에는 사원의 황금색 지붕이 보이고 또 어느 아파트에선 연기가 올라온다.
약속시간인 8시에 맞춰 로비로 내려가 우리의 가이드님을 다시 만났다. 호텔에서 조식 대신 준비해 주기로 한 샌드위치가 늦어져 잠시 길 앞에서 거리를 구경하며 기다린다. 울란바타르는 한국과 다를 바 없는 모양의 아파트와 짓고 있는 건물의 뻥 뚫린 회색 골조가 함께 눈에 들어오는 도시다. 낯익으려 하다가도 다시 낯선 곳.
비가 온 뒤의 하늘은 파랗고 날씨도 좋다. 뜨겁지 않게 내리쬐는 해도 기분 좋다. 여행지에서 맞는 모든 것이 마음에 드는 아침에는 길을 걸어가는 여기 사는 사람들도 한 명 한 명이 다 영화에 나오는 사람처럼 보인다.
차를 타고 울란바타르를 빠져나가는 길. 오늘 지나는 길엔 높은 건물은 별로 없지만 역시 도시다. 길가의 아주 넓은 대형마트에도 들르고 사람이 북적이는 도심도 지난다.
먼 길을 떠나야 하니 주유소에도 들른다. 기름 냄새를 맡으며 싸 온 샌드위치로 아침밥을 먹는다.
멈추었던 차가 출발하기 전 기사님이 차 콘솔박스를 여시더니 어느샌가 비닐봉지에 든 밀떡처럼 생긴 것과 주머니칼, 긴 뼈에 붙은 큼직한 고기 덩어리를 들고 계셨다.
운전석에 앉아 주머니칼로 고기를 슥슥 베어내는 기사님을 보고 있으니......
‘기사님, 제가 몽골에 온 게 맞는 것 같아요.’
떡 같이 생긴 건 직접 만드신 빵이라고 한다. 소고기와 함께 먹어보라고 권해주셔서 하나씩 먹어보았다. 바게트보다도 질깃한 빵과 미지근하게 식은 고기인데 이걸 같이 먹으니 맛도 식감도 아주 잘 어울린다.
입 안에서 한참 오물오물 씹으면서 곡물의 단맛과 고기 지방의 고소한 맛을 느꼈다.
다음날 저녁에 허르헉을 먹을 때는 그 주머니칼로 우리가 먹고 난 양고기 뼈에 남은 살코기와 연골까지 삭삭 발라내면서 이렇게 다 먹을 수 있다고 보여주셨다.
그리고 하얀 뼈만 남은 다음에 넓적한 뼈 한쪽을 손가락 끝으로 딱 부러뜨려 다 먹었다는 표시라고 알려주셨다. 전에는 한국에도 주머니에 맥가이버 칼을 넣고 다니는 사람이 꽤 있었는데 요즘은 흔치 않다. 그래서일까, 저런 작은 칼을 가지고 다니는 사람이 있다는 게 왠지 반가웠다.
그 다음날엔 아이스크림을 사 먹었다. 기사님과 가이드님과 헤어지기 전 마지막으로 간 식당 옆에 있던 작은 슈퍼에서였다.
포장은 꽤 무심하지만 아이스크림에서는 좋은 우유에서만 나는 고소하고 진한 맛이 났다. 엄청나게 양이 많은 고기 볶음 요리를 먹은 다음이었다. 살아있는 힘이 넘치는 음식들을 잔뜩 먹고 간다.
기억에 남는 것은 참 사소한 것이기도 하다.
동대문에 가면 몽골 식당이 있다고 한다. 우리 동네에도 우즈벡 식당은 있고 거기에 몽골에서 먹은 것과 비슷한 고기 요리나 샐러드도 있는 모양이다.
하지만 정말 생각나는 맛은 몽골에서만 찾을 수 있겠지. 그래서 더 그리운 것이기도 하다.
그 땅에서 나는 보았다. 끝없이 펼쳐진 노란 유채밭과 그 세상을 둘러싼 야트막한 구릉의 층층이 품은 평화를. 붉은 가사를 두른 승려들 염불 하는 소리 옆에 걸린 푸른 하닥이 바람에 날리던 것을.
원초의 땅은 어젯밤 내린 비로 얼굴을 씻어내고 고요히 고인 물 웅덩이에 하늘빛이 비쳐 푸르게 빛나고 있었다. 거기에 말들이 모여 서서 발목을 담그고 목을 축이는 광경을 보고 있으면 이 땅의 모든 것이 좋아진다.
낙타의 나른한 눈이며 염소들이 서로 뿔을 부딪히는 모습들. 그리고 노을이 하늘에서 내려와 땅에 난 풀잎까지 물들이던 분홍색도.
많이 가지고 사는 이들이 복잡한 고민을 하며 반목하게 되는 것은 아닐까. 필요한 것만 가지면 필요한 고민만 하면 된다. 때로 중요한 것은 심플하게 사는 것. 그러면 마음이 넉넉해져서 뭐든지 좀 괜찮아진다. 그런 곳에 아무 문제가 없어진 마음으로 있었다.
그래서 나는 말을 타고 앞장선 몽골인 아이의 흔들리는 어깨나 그 뒤를 따라 돌산에 자라는 침엽수 숲 사이를 가로지르던 때의 기분 같은 것들도 잊지 못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