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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현선 Aug 21. 2023

여행 3. 몽골의 말타기 선수들

내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아는 것

 울란바타르나 공항에서 멀지 않은 도시인 종멋, 그리고 근처의 초원. 그곳에 있는 게르 집에서 두 밤 동안 우리를 묵게 해 줄 유목민 가족을 만났다. 우리를 마중 나온 차는 역시 도요타. 트렁크에 짐을 싣고 다시 출발한다.

 그런데 우리를 태운 차가 멈춘 곳은 아무도 없는 초원이 아니라 북적북적한 축제장이다. 사람도 자동차도 말도 가득한 이곳에서 나담 축제가 열리고 있는 것이다.

 몽골에 도착한 뒤에야 오늘이 나담 축제라는 것을 알았는데 우리가 그곳에 가게 될 줄이야!


게르에 들어가자 보드카와 아이락, 아롤을 권하셨다. 한국에서는 먹고 싶어도 못 먹는 줄 알았으면 더 먹고 올걸.


 축제장 뒤 언덕 위에 있는 게르는 가족들의 선수 대기실 겸 임시 부엌 또는 거실인 듯하다. 손질된 양고기와 가족들의 옷가지, 개켜놓은 이부자리가 다 한 곳에 있다. 대가족이 차례로 게르에 들어와 앉으니 금방 시끌벅적해지고 계속 술과 음식을 권해주셔서 통하지 않는 언어 대신 손짓과 표정으로 사양했다.

 “이제 배가 꽉 찼어요!”

 몽골인의 인정은 한국의 정에도 뒤처지지 않는다.



 이 축제의 경주를 위해 말과 선수들은 1년을 연습했다고 한다. 그리고 오늘, 온 가족이 여기에 와 있기 때문에 우리도 여기에 있다가 경주가 모두 끝난 후에 같이 집으로 돌아가야 한다.


 게르 뒤의 그늘을 따라 앉은자리를 옮겨가며 몇 시간을 기다린 후에 드디어 오늘의 마지막 경주를 위해 말에 탄 선수들이 출발한다.

 어디까지 가는 걸까. 경주장을 거슬러 출발선을 향해 점이 될 때까지 멀어지는 모습을 보고 있었더니 유목민 가족의 언니가 우리를 결승선 쪽의 관중석으로 데려가 주었다.

나담은 울란바타르를 시작으로 여러 곳에서 지역별로 열린다. 여기 종멋 나담 축제는 이 도시의 100주년을 기념해 올해 특히 성대하다고 한다.


 이번 경주는 한 살짜리 어린 말에 많아야 일곱 살 정도의 어린 선수들의 경기.

달리는 거리는 12km. 어른들은 35km도 달린다고 하니 마라톤이나 다름없다.


 달리는 말들 중에는 아직 젖도 못 뗀 어린 말도 있단다.

 경기가 끝나면 어떤 아기 말들은 젖을 먹으러 가고, 어린 선수들도 게르에 와서 사탕이랑 과자를 먹겠지.

카메라가 좋은 최신형 핸드폰으로 바꾸고 싶어질 것 같아...

앞장선 차량들이 덜컹거리면서 나타나고 곧 그 뒤로 선수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다섯 살 혹은 그 아래로도 보이는 어린 선수도 있으니 처음에는 그저 귀엽게 보인다.

 하지만 단지 아이들 재롱잔치는 아니다. 뒤로 갈수록 경주에 집중하게 된다.


 쓰고 있던 헬멧을 벗어 턱끈을 잡고 양쪽으로 휘두르며 말의 옆구리를 때려 재촉하는 선수들도 있다. 아마 달려오다가 채찍을 떨어트려 버린 모양이다.


 때로는 기수 없이 빈 말이 달려온다. 선수가 낙마할 때를 대비해 함께 달리는 차에는 카메라, 경찰과 함께 말과 사람을 위한 의사도 타고 있다.


 결승선이 코 앞인데 우리 앞에서 한 선수가 말에서 떨어져 버렸다. 누군가 재빠르게 어린 선수에게 뛰어가고 놀란 말은 코스를 역으로 내달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놀랄 새도 없이 어디선가 말을 탄 어른이 나타나 제멋대로 뛰는 말을 몰아 제 방향으로 돌리더니 말 위에 앉아 달리는 채로 손을 뻗어 고삐를 잡아챈다. 환호성 같은 응원소리 사이에서 모두 물 흐르듯 해결되었다.


 보고 있는 내내 뭔가가 자꾸 이상하고 신기하기만 하다. 촌각을 다투는 단거리 경주가 아님에도 저 멀리서 말이 보이기 시작에 지나쳐 사라질 때까지 눈을 뗄 수가 없어서 작은 말과 선수들이 모두 들어올 때까지 자리를 지켰다.


 경기가 끝난 후 우리만 먼저 초원 한가운데의 게르 집으로 태워다 주셨다.

 어린 선수들은 몽골 가족의 어른들과 마찬가지로 해가 깜깜하게 진 후에 집에 돌아왔다. 축제장에서부터 말을 타고 앞도 안 보이는 초원을 가로질러서.


 시골의 밤은 도시와는 다르다. 가로등이나 상점의 간판조차 없으니 달빛에 익숙해지면 가까운 곳이 어스름히 보일 뿐. 그러니 이 넓은 초원에서는 멀어질수록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어둠이다.

 그 어둠 속에서 앞장선 오토바이의 헤드라이트 불빛과 말발굽 소리가 다가오고 속속 도착한 아이들은 곧장 말을 매어놓거나 힘차게 게르 문을 열고 제 짐을 정리하거나 한다.


 말을 타는 유목민 아이들은 다들 제 몫을 한다. 엄마 아빠가 시킨 일을 하는 아이들처럼 쭈뼛거리거나 고민하는 기색도 없다. 자기가 뭘 해야 하는지 다음 일을 정확히 아는 몸짓이다.

 보고 있으면 자꾸 신기하다는 말만 나오는 건 단순히 작은 아이가 말을 타서가 아니라 그래서다.

 내가 뭘 하고 있는지 뭘 해야 하는지 아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니까.


 시트가 폭신한 파란색 도요타 자동차를 타고 집에 온 어른은 게르 안의 침대에 누워 생각해 본다. 내가 한국에서 뭘 했었더라. 내가 고삐를 쥐고 있던가. 돌아가면 뭘 해야 하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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