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고 자고 사랑하라
올 초 베트남에서 연달아 들큰하고 짭조름한 음식만 먹다가 물려서 괴로워한 적이 있던 탓에 이번에도 그러면 어쩌나 불안한 마음이 들었다. 게다가 이번에는 동행도 있으니 밥을 제대로 못 먹고 서로 컨디션을 망치는 일만은 없기를 바랐다.
그런 탓에 이번에는 여행 전에 대형마트에 가서 캔으로 된 볶음 김치며 양념 깻잎, 쇠고기 장조림 같은 반찬까지 사들고 간 것이다.
하지만 막상 몽골에 가보니 걱정과 달리 먹는 음식마다 맛있어서 결국 찐만두 보즈와 함께 먹은 볶음 김치 한 캔만 비우고 돌아오게 되었다.
물론 매콤한 한국 음식이 생각나기도 했다. 양고기를 얼마나 많이 먹었는지 고기 좋아하는 일행도 당분간은 고기는 안 먹어도 될 것 같다고 했으니까. 또 한국처럼 밥을 한 그릇씩 두고 먹는 식사도 아니라서 반찬보다는 함께 가져간 양념들이 유용했으니, 평소에 집에서도 양고기를 사다 구워 먹기 때문에 대용량으로 사 둔 쯔란과 와사비가 큰 몫을 한 셈이다.
하르허릉에 가는 길, 휴게소에서 먹었던 식사. 국물요리의 이름은 랍샤. 가이드님이 알려주셨다. 엄청나게 감칠맛 나는 갈비탕 같은 맛의 맑은 국물인데 안에 투박한 몽골식 칼국수면도 조금 들어있었다.
나중에 유목민 집에서는 랍샤에 당면을 넣어주었다. 이건 우리가 아침 식사 시간을 놓치는 바람에 국물이 사라져 볶음당면처럼 되어 버렸지만 맛있게 먹었다.
이 칼국수를 고기와 볶은 게 아마 초이왕이려나. 이름도 모른 채로 먹었다.
유목민 집에서 커다란 냄비에 볶아서 아침밥으로 주셨는데 면은 밀가루만 반죽의 단순한 맛이지만 양기름 맛이 엄청났다.
몽골 음식은 투박한 것 같은데 씹을수록 고기 기름의 고소한 맛과 감칠맛이 나서 지금도 자꾸 생각난다.
몽골에 있는 동안 양고기를 엄청 먹었다. 당분간 양고기는 먹지 않아도 될 정도로.
삼시세끼 고기지만 토마토랑 오이를 깍둑썰기 한 샐러드나 당근과 양배추 채 썬 샐러드, 아니면 피클처럼 생긴 오이 절임을 같이 주셔서 입가심 삼을 수 있었다.
그리고 수태차. 우유와 찻잎, 소금 조금을 넣고 끓인다는데 진한 곰탕 국물 같은 맛이라 후추를 뿌리면 맛있을 것 같았다.
마지막 날 아침에도 빵과 함께 주셔서 같이 먹었는데 첫날 우즈벡 식당에서도 먹었던 빵도 그렇고 쫀쫀하고 시큼한 발효향이 그대로 나는 빵이었다.
몽골 여행에서 빼놓을 수 없는 허르헉. 허르헉은 테를지 캠프에서 먹고 유목민 집에서 또 먹었다.
이모, 삼촌처럼 챙겨주셨던 가이드님 그리고 기사님과 테를지에서 함께 했던 식사는 너무 즐거웠다. 빗발이 살짝 날린 후 쌍무지개가 떴던 날에 캔맥주까지 곁들였으니까.
하지만 맛은 아무래도 유목민 집에서 만들어 준 쪽이었다.
솥 안에서 양기름을 잔뜩 먹어 노릇하게 눌어진 감자도 맛있어서 열심히 먹었다.
게르안의 화로 옆에 있던 커다란 통에 한가득 마른 소똥을 주워다 불을 피우실 때는 ‘왜 하루 종일 집요하게 소똥을 피해 걸어 다녔는가… 방 안에 똥을 쌓아두고 잠들 텐데…’ 하고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양고기를 담아 오신 대야에 핏물이 잔뜩 고여 있는 것도 조금 놀랐지만 솥 안에 고기와 달군 돌, 채소가 켜켜이 모두 들어간 후에 마지막으로 그 핏물을 부어버릴 때는 더 놀랐다. 한국에선 핏물은 무조건 버려야 한다고 생각하니까. 진한 육향의 비결이 혹시 저걸까. 음식을 함부로 하지 않는 몽골 사람들인 만큼 생각해 보면 당연한 행동이다.
나는 저 날 이후로 고기 요리를 할 때마다 ”핏물 뺄 필요 없다니까!“ 하고 괜히 농담을 한 번 던졌다가 가족들에게 제지당하고 있다. 내가 몽골에서 배워왔대도!
아롤도 마트에서 산 것과 유목민 집에서 만든 게 완전히 다른 맛이었다. 새콤한 향미가 살아있어 더 먹지 않은 게 아쉬울 정도다.
냄비째로 주신 아이락도 너무 맛있었는데 이건 동대문 가도 못 구하는 맛이라고 한다. 진짜 아이락은 울란바타르에서도 못 먹어서 시골에 와야 먹을 수 있다고 하시니, 주소도 없이 그냥 시골이라는 이곳에 온 덕분에 마음껏 먹을 수 있었던 것이다.
생각만 해도 침이 고이는 아이락이 벌써 그립다. 식후에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마셔야 개운한 나에게 그 시원함을 대신할 수 있는 건 아이락의 시큼한 맛뿐이었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