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골의 끝없는 초원을 걷다가
초원 한가운데 게르에서의 둘째 날 아침. 여섯 시쯤 눈이 저절로 떠졌다. 슬쩍 게르 밖으로 나와 몸을 펴다가 한 명 두 명 일어나 밖으로 나오는 사람들과 인사를 나눈다.
여기에 와서 원근감을 잃었다. 말도 소도 양도 심지어는 산도 저쪽에 있긴 한데 얼마나 먼 지 감이 잘 안 온다. 오죽하면 작은 아기 강아지가 있는 줄 알고 신이 나서 다가갔는데 어제 봤던 커다란 개였다. 선 키가 나만한 큰 개인데 사람을 보면 반가워하면서 어깨에 힘차게 매달리는 친구라 들키기 전에 얼른 도망쳐왔다.
오늘은 아침밥도 먹기 전에 초원 끝에 보이는 산 위로 올라갔다. 잃어버린 원근감 탓에 산이라고 해야 할지 언덕이라고 해야 할지 그 높이도 가늠이 안된다. 어쨌든 공복에 운동이다.
투어 중 차창 밖으로 초원과 그 끝에 나무 하나 없이 완만하게 늘어선 민둥산을 보며 ‘저 산에 올라가 보고 싶어. 아주 멀리까지 보이겠지.’ 하고 말했는데 실제로 올라가게 되었다.
게르에서 조금 벗어나자 달콤하면서 시원한 허브향이 나는 들풀들이 가득했다. 애플민트 향기와 비슷해서 걷기만 해도 기분이 좋아졌다. 잔뜩 피어있는 들꽃들도 여기서는 흔한 꽃일 텐데 나는 처음 보는 것들이라 자꾸만 걸음을 멈추게 되었다.
메뚜기기 뛰듯이 위아래로 튀며 낮게 나는 벌레도 흔하게 보였다. 위로 올라갈 때마다 탁, 타닥 소리가 나고 날개에 감춰져 있던 빨간 엉덩이가 보이는데 그 벌레 소리마저 운치 있게 느껴져 동영상으로 찍었다.
이날 밤에 같이 묵는 한국분들에게 이 벌레 이야기를 했더니 지브리 영화 속 세상의 생명체 같다고 하셨다. 이국적임을 넘어서 조금 비현실적으로도 느껴지는 이 풍경을 묘사하기에 너무나 마음에 드는 설명이다.
멀게 보이던 구릉은 완만한 경사에 바닥도 평탄한 편이라 생각보다 금방 오를 수 있었다. 과연 높은 곳에 올라 내려다보니 멀리까지 시야가 트이고 시원한 바람이 불었다. 우리의 게르는 이제 작은 점으로 보였다. 밑에서는 보이지 않던 멀리 이웃의 게르나 자그마한 도시도 있다. 이 땅을 이 시선으로 멀리 보고 갈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
돌아오는 길에는 발소리에 굴 속으로 숨으려다 엉덩이가 끼인 땅쥐를 만났다. 급히 들어간 게 자기 굴이 아니었던 모양이다. 열심히 뒷발을 꿈질거리는데 꼭 끼어서 절대 못 들어간다.
돌아오면 네눈박이 개가 반겨준다. 발이 커다랗고 복실복실한 이 친구는 몽골 토종개라고 한다. 첫날 반겨주었던 고양이는 아침에 잠깐 나타났다가 이제는 어디에서 한량처럼 떠도는지 보이지도 않는다.
몽골 사람들은 말이나 소가 많이 있을 때에나 ‘오, 부럽다’ 하지 남의 개나 고양이에는 관심이 없는데 한국 사람들은 이 집에 와서 개랑 고양이를 보고 그렇게 좋아한단다.
그게 몽골 사람한테는 좀 특이하게 보이는 것 같지만 그런 탓에 개와 고양이들도 한국 사람이 오면 좋아한다고 한다.
나는 땅쥐가 보고 싶었고 일행은 몽골 토종개가 궁금하다고 했다. 대체 왜 한국에선 쳐다도 안 보는 쥐가 보고 싶고, 낙타도 양도 아닌 개가 궁금했는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모두 만나고 돌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