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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현선 Aug 23. 2023

여행 7. 먹고 누우면 소 된대

이왕이면 몽골 소가 좋겠다

 보통 몽골 여행을 다녀오면 게르를 배경으로 색색의 출입문 앞에서 사진을 찍던데 내 앨범엔 게르 안에서 문 밖을 찍은 사진이 잔뜩이다. 액자에 담긴 그림 같던 풍경과 그 속으로 걸어 나가던 기분이란!


 게르 안의 침대에 걸터앉아 밖을 내다보고 있노라면 여유로운 걸음으로 꼬리를 흔들며 말도 지나가고 개도 지나가고, 거기에 기분 좋게 시원한 바람도 불어 들어온다. 기온은 30도 가까이 되었지만 건조한 날씨라 바람만 불면 선선하니 누워있기만 하면 신선놀음이다.

 

 투어를 하는 동안에는 차에서 흔들리며 쪽잠을 잤지만 게르에서 머무는 날에는 여유롭게 낮잠 시간을 가졌다. 정오가 지난 시간. 아침밥도 먹었고 해야 할 일도 하나도 없다. 아무것도 없고 걱정도 없다.

 그래서일까. 한국에서는 밤잠도 낮잠도 일단 누워서 한참을 뒤척여야 했는데 몽골에 와서는 누우면 잠이 들었다가 알람 없이도 눈이 반짝 떠진다. 이렇게 깔끔하게 잠들고 깨어나는 것이 얼마만인지 기억조차 없다.


 한숨 자고 개운하게 일어나니 곧 늦은 점심식사를 가져다주셨다. 이번엔 통에 한가득 담은 보즈. 몽골식 찐만두로 물론 고기소만 들어있다.

 육즙이 가득해서 신나게 먹다 보니 가져온 볶음 김치 캔이 생각났다. 만두피 위를 살짝 찢어 볶음 김치를 쏙 밀어 넣어 먹으니 또 새롭게 맛있는 김치 만두가 되었다.


 몽골에는 보즈와 김치를 같이 식탁에 내면 양고기 만두가 물릴 때쯤 김치가 씻어주기 때문에 끝없이 먹어버려서 큰일 난다는 농담이 있다는 얘기를 인터넷에서 본 적이 있다. 이 농담, 몽골 사람이 만들었을까 아니면 한국 사람이 만들었을까.

 어쨌든 보즈와 볶음김치, 미지근한 캔맥주의 조합은 엄청났다.

 몽골로 출발하기 전 유튜브를 보다가 몽골말 문장 몇 개를 배웠는데 그중 “배고파요“라는 말도 있었다.

 하지만 ‘안녕하세요’나 ‘감사합니다’와는 달리 ‘배고파요’ 라고 말해 볼 기회는 없었다. 투어 중 묵은 숙소에서도 여기 유목민 가족의 집에서도 나를 볼 때마다 폭신한 이불이나 그릇에 한가득 담긴 음식 같은 걸 계속 가져다주었으니까.


 바람이 불면 밖엘 좀 어슬렁거리다가 앉아도 보고, 조금 더워지면 누워도 보고. 또 좀 기웃거리다가 한숨 자고 일어나면 먹을 것을 받아서 배부르게 먹고.

 잘 키워지는 소가 된 기분이었다. 먹고 바로 누우면 소가 된댔는데, 이왕 소가 될 거라면 몽골 소가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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