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은 가볍게 짐은 조금 무겁게
사실 나는 오지로 갈수록 짐을 적게 챙기는 편이다. 헤드라고 부르는 배낭의 윗덮개에 달린 주머니에 모두 쑤셔넣을 수 있는 정도가 보통이다. 갈아입을 옷과 속옷이 한 두벌에 치약 칫솔, 휴지 정도.
한 번 입술이 터서 고통받고 나면 다음엔 립밤을 챙기지만 그럼 이번엔 손등이 터서 손등에 립밤을 문지르게 된다.
그래도 어떻게든 대충 잘 돌아오게 된다고 생각하는 편.
그런 와중에 이번엔 여행이라고 이것저것 치밀하게 챙겼으나 막상 가서는 꺼내보지도 않은 물건도 있었다. 그리고 반대로 생각보다 유용하게 사용해 마음에 들었던 준비물은 이것들.
-텀블러
나는 생각도 안 했는데 일행이 챙겨 와 준 덕분에 매일 모닝커피를 마실 수 있었다. 카누 인스턴트커피가 미지근한 물에도 잘 녹아줘서 다행이었다.
맥주나 보드카를 마실 때도 컵 대신 종종 사용했다.
-소스류
나는 고추장에 쌈장, 쯔란, 와사비까지 챙겨갔다. 굳이 없어도 괜찮지만 몽골에서는 계속 고기 요리를 먹으니 역시 소스가 있으면 조금 더 행복해진다.
특히 내가 사랑하는 명이나물 생와사비. 허르헉을 먹던 날 기사님도 좋아하시면서 이 초록색 소스의 이름이 뭔지, 이마트에서도 파는지 물어보셨다. 청정원은 이것을 몽골에 수출하고 있나요? 기사님이 몽골 이마트에서 와사비를 찾으셨길.
-큼직한 스카프
처음에는 숙소에서 베개를 감싸는 용도로 사용하려고 챙겼지만 매번 침구가 아주 깨끗해서 첫날 한 번 써보고 말았다. 대신에 내내 돗자리처럼 까는 데 썼다.
요즘에는 이런 것을 사롱이라고 검색하면 살 수 있던데 인도네시아의 전통의상으로 해변에서 깔개 등으로도 사용하는 모양이다.
게르 뒤 그늘에 다리를 펴고 앉아있기도 하고 밤에는 누워서 별을 보기도 하며 여유로운 시간마다 함께 했다. 정말 고마웠던 물건이라 한국에 와서 잘 세탁해서 넣어두었다.
바닥에 깔아놓고 앉기만 하면 달려오던 유목민 집 개들은 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