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골의 초원에 살아있다는 것
오늘도 여섯 시 전에 눈이 반짝 떠진다. 몽골에서의 마지막 아침. 밖에는 해가 떠오르고 있었다. 이미 지평선 위로 올라왔으니 일출의 순간은 아니지만 충분히 아름다운 풍경이었다.
이 나라에서 해가 뜨고 지는 모습은 아무리 봐도 익숙해지지 않는 거짓말 같은 광경이다.
게르의 출입문은 낮아서 문틀에 머리를 박지 앉으려면 허리를 숙이고 드나들어야 한다.
그래서 몸을 숙이고 바닥을 본 채로 밖으로 발을 내딛은 다음에 고개를 들면 눈앞이 탁 트이며 저 끝까지 초원이 펼쳐진다.
그 장면의 전환이 아무리 지나도 새롭고 멋져서 문을 지날 때마다 마치 영화 ‘오즈의 마법사’ 같다고 생각했다. 세피아톤의 흑백 영화 속 도로시가 오두막의 문을 열고 색색의 컬러 세상으로 첫 발을 내딛던 장면처럼 다른 세계로 나와버린 것만 같은 느낌.
어제 내가 양이랑 염소가 보고 싶다고 한 말을 기억해 준 언니가 염소를 보러 가재서 쫒아나선다. 파란색 차를 타고 바로 옆 언덕 위의 게르로 간다. 원래 한 집인데 나담 축제 때문에 말이 달리는 연습을 해야 해서 게르 몇 동과 양, 염소, 소가 조금 떨어진 자리로 잠시 이사했다고 한다.
해는 아직도 떠오르느라 바쁘고 사람들도 소 젖을 짜느라 바쁘다. 나도 다리 사이에 양동이를 끼고 앉아 도전해봤는데 아무리 해도 잘 안된다. 내가 짠 우유는 30미리 정도나 될까.
아기 양이 소 젖을 먹으려고 해서 피하려던 소한테 내 발가락을 살짝 밟혔다. 다행히 슬쩍 빼니까 빠지던걸.
아기 염소 하나, 아기 양 둘, 아기 몽골 개 하나.
메에 가자, 같이 한국 가자- 하니까 따라서 메에- 하면서 쫓아온다. 차에까지 올라타려고 내 무릎 위에 발굽을 얹는 염소를 들어서 내려놨다.
염소의 뿔은 단단하지만 차갑지 않다. 굳이 말하자면 미지근한 편. 갓 짜낸 소 젖도 따끈하기보다는 미지근함에 가깝고 미묘하게 끈적였다. 살아있는 것들은 의외로 애매한 온도다.
1리터짜리 페트병에 담아 온 우유로는 수태차를 끓여주신다고 한다. 묘한 온기가 도는 우유병을 끌어안고 돌아오는 길에 “기뻤어?” 하고 물어봐주셨다.
기쁘다 라는 말은 한국어인데 왜 이렇게 오랜만에 들어볼까.
돌아와서 게르 사이로 지나가던 유목민 아이를 마주쳤다. 낯 가리던 아이가 오늘은 하얀 이가 보이도록 웃으며 손을 흔들어주었다. 어젯밤에 준 과자의 힘이 이렇게 크다.
염소를 만나는 걸로 이번 몽골 여행에서 하고 싶던 건 다 한 게 되었기 때문에 마음이 풍족해졌다.
양고기가 잔뜩 들어간 국수로 아침까지 든든하게 먹고 출발한다. 한국에서는 아침밥으로 양고기를 먹는 일은 절대 없겠지.
공항으로 가는 길에도 역시 염소와 양 떼가 길을 가로막는다.
-어머, 양들 많아요 귀여워라.
>>양들. 양고기 한국하고 다르지?
-정말 달라요. 근데 맛있었어요.
-예쁘다고 하면서 맛있다고도 하네
>>그렇지, 그게 사람이야.
이렇게 말하면서 웃었다.
양도 살고 사람도 사는 곳. 삶이 죽음과 멀지 않은 듯 하나 그 어느 곳보다 살아있는 곳. 언젠가 꼭 다시 와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