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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지민 Mar 27. 2017

심증을 물증으로 만드는 괴로움의 과정

대학원생 3주차의 일기

존경하는 교수님은 작년 내가 대학원 입학을 고민하며 상담을 했을 때 박사 진학을 다시 생각해보라고 하셨다. 지금 현장에서 창의적이고 자유로운 일을 막 시작하고 진행해나가는데 있어 학문은 오히려 독이 될 수도 있다며 더 진지하게 고민해보라고 하셨다. 그간 자유롭게 성찰하고 활동한 나에게는 특히 학문을 하는 과정이 더 어려울 것이라는 말씀도 덧붙이셨다. 교수님이 말씀하신 것과는 조금 다른 것 같긴 하다만, 요즘 느끼기엔 실제로 일이 잘 안되긴 한다. 평소에 하던 ‘내 일’이 창의적인 일이라면, 요즘에는 매주 쏟아지는 과제와 수업준비에 허덕이느라 시간이 없기 때문이다.

사실은 더 열심히 살고 싶었다. 더 치열하게 살고 싶었다. 교수님의 말씀에도 굳이 공부를 하겠다고 여기 온 이유는 두려움때문이었다. 혼자 일한 지 2년차. 나는 스스로도 잘 모르는 새 많은 일을 하고 있었다. 나름대로 강연도 하고, 책도 내고, 인터뷰도 하고, 라디오도 하는 등 내가 무슨 일을 하는건지 제대로 알지 못하면서도 모든 것이 새로웠기에 즐거워하며 일했다. 그 와중에 시간이 흐르고 ‘원래 하던 일이니까’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함과 동시에 안주하게 되었다. 별다른 인풋은 없이 지속적으로 아웃풋만 내는 것 같은 생각이 들면서 ‘나’라는 사람이 소모되는 느낌이 들었다. 그렇게 미래의 내 한계를 마주할 수 있었다. 내 능력치의 바닥이 문득문득 보이자 숨겨두었던 두려움이 엄습하면서 스스로 한계를 극복할 방법을 찾기 시작했다. 또 다시 세계여행을 떠날 수는 없었다. 국내여행을 하고는 있지만 부족했다. 혼자 여행하는 것보다 더 전문적인 인풋을 만들 수 있는 방법은 ‘공부’밖에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나의 한계를 마주할 때마다 느꼈던 건 어떠한 문제를 해결하는 데 있어 떠오르는 생각들이 있는데 그걸 적절하고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매번 심증은 있는데 물증은 없는 느낌이랄까. 그 간극을 채울 수 있는 것이 공부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 공부를 시작한지 고작 3주가 지난 요즘, 나는 괴롭다는 말을 달고 산다. 생전 처음 들어보고 또 고민해보는 것들에 머리가 아프다. 심증을 물증으로 만드는 과정이 이토록 괴로운 줄 알았더라면 그저 심증으로만 둘 걸 그랬나 싶다.

두뇌를 깨워서 더 근본적인 것에 대해 끊임없는 질문을 해야 한다. 물론 답이 없더라도 나만의 고민 과정을 거쳐 나오는 정의가 필요하다. 운동을 할 때도 항상 처음 기초체력과 근력을 키우는 것이 괴로운 것처럼, 안 쓰던 학문적인 두뇌의 부분에 발동을 거는 과정이 특히 더 괴로운 것이리라 믿고 싶다. 점점 더 나아지리라 믿고 싶다.

엊그제는 학교 캠퍼스에서 길을 잃었다. 언덕이 있는 학교인지라 숨 가쁘게 수많은 계단을 올라야했다. 헉헉거리며 걷다보니 내가 걷는 길이 ‘한양둘레길’이라는 표지판이 보였다. 그리고 그 길을 계속 걷다보니 돌아오긴 했지만 목적지에 도착했다. 순간 그런 생각이 들었다. 당장은 내가 길을 걷는 것만으로도 힘들고 괴로우며, 어떤 길을 걷고 있는지도 모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 걸어가다 보면 언젠가는 이 길이 내가 원하던 그 목표로 향하는 길이 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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