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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지민 Apr 03. 2017

미미하지만 반짝이는 무언가

대학원생 4주차의 일기

학교생활이 좀 익숙해진 것 같다. 처음에는 수업과 과제의 부담에 그 생각만 머릿 속에 가득해서 일주일 내내 동동거렸는데 이제는 조금 여유가 생겼다. 학생식당 메뉴를 미리 알 수 있는 어플도 깔았고 도서관에 사물함이 어디있는지도 알았다. 4주차가 되어서야 이제 나도 여기 학생이라는 소속감과 더불어 자부심도 생겨나고 있는 것 같다.


학교가 시작하고서 '논문'을 많이 읽게된다. 교수님들은 수업마다 '논문'을 쓸 수 있는 생각 구조에 학생들을 적응시키기 위해 다양한 읽을 거리와 생각할 거리를 주신다. 논문이라는 것은 내가 하고싶은 이야기를 쓰는 것이라는 데는 여느 글쓰기와 다름 없지만, '다른 사람들의 말을 인용하여 논리적으로 구성하는' 글쓰기라는데서 다르다. 그저 내가 하고싶은 이야기를 줄줄 써내려가는 것은 쉽지만 '내가 하고싶은 말은 이미 많은 사람들이 여러 방면에서 이렇게 이야기하고있기에 의미가 있다'고 주장해야하니 어려운 것이다.


그간 현장에서 일을 하고,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직접 여행을 하면서 '관광문제'에 대한 고민을 많이 해볼 수 있었다. '이건 왜 이렇게 했을까', '이건 정말 아닌 것 같은데', '이건 어떻게 바꿀 수 있을까' 이런 고민들을 했었지만 공부를 시작하니 대부분의 문제는 생각만으로는 해결방안을 찾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새삼 느낀다. 하나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수많은 사람들의 생각이 바탕이 되어야하며, 수많은 상황들이 고려되어야 한다. 그저 창의적인 아이디어만으로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이다. 어떻게 나의 '아이디어'가 해결방안이 될 수 있을지 논리적으로 증명해내야 더 많은 사람들을 설득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 방법을 공부를 통해 더 배우고 싶다고 생각했다.


공부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드는 순간은 그간 떠올렸던 문제에 대해 본질적으로 고민하는 방법에 대해서 배우고 있다는 생각이 들 때다. 세상의 수많은 사회과학 연구들은 세상의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을 찾기 위해 이루어지고 있다. 어떠한 사회 문제가 있을 때 해결방안을 찾기 위해 그 문제의 원인을 아주 세밀하고 구체적으로 분석한다. 물론 그러한 연구과정을 통해 나오는 결론이 현실적으로는 적용하기 어렵거나, 예상하지 못한 오류로 인해 현실과는 완전히 동떨어진 방향을 제시할 수도 있다. 이미 현장에서 그런 경우를 많이 봐왔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연구가 필요한 이유는 우리의 눈에 보이지 않는 '본질'에 대한 고민을 할 수 있게 만들어주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든다. 현장에 있다보면 당장 눈 앞에 보이는 해결방안을 모색하느라 '본질'의 중요성을 놓치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나는 그렇게 현실과 본질 사이의 연결고리 같은 사람이 되고싶다는 꿈을 꾼다.


이번 학기에 듣는 수업 중에 관광환경심리론이라는 수업이 있다. 환경심리학의 이론을 배우고 관광에 적용하는 방법에 대해 공부하는 수업이다. 관광학을 배우면서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내용을 매 주 수업으로 들을 때마다 내가 현실에서 고민할 수 있는 반경 자체가 넓어진다는 느낌이다. 자연이나 환경이 인간에게 미치는 영향, 사람이 길을 찾아가는 유형, 환경을 대하는 인간의 태도 등이 관광에 있어 어떻게 적용되는지 고민하다보면, 새로운 관광지를 개발하거나 분석하는데 있어 내 상상력의 범위가 넓어지는 느낌이 든다. 그리고 이렇게 전혀 생각하지 못했던 부분을 배우고 깨달음을 얻을 때 느끼는 희열은 굉장하다. 아직 꼬꼬마 학생이자 왕초보연구자인 나지만 '이 맛에 사람들이 공부를 하는구나'라는 생각이 어렴풋이 든다.


공부는 사람을 참으로 겸손하게 만든다. 누군가가 박사과정은 파리 발톱의 때를 연구하는 거나 마찬가지라고 했었는데 굉장히 공감한다. 세상에 이렇게 방대한 학문이 존재하고, 수많은 사람들이 그 속에서 각자 자신만의 분야를 찾아 파고들어 연구하고 있다는 것을 실감할 때마다, 이 어마어마한 연구의 세상 속에서 '나'라는 존재가 담당해야할 부분은 과연 어디일까에 대해 고민하게 된다. 내가 알고있는 것, 그리고 내가 아무리 열심히 공부를 해봤자 만들어낼 수 있는 성과는 정말 작디작은 부분이라는 걸 느낄 때마다 참으로 겸손해진다.  


야간 수업을 마치고 언덕길을 내려오는데 바닥이 가로등 불 빛에 비쳐 반짝반짝거렸다. 셀 수 없이 반짝이는 보도블록을 보면서 언젠가는 나도 세상에 저렇게 미미하지만 반짝이는 무언가를 남길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이내 곧 없을 것 같다는 생각에 빨리 포기하고 '열심히 다음 주나 잘 버텨내자'라는 결론을 내렸다. 이렇게 또 한 주가 지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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