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원생 10주차의 일기
벌써 한 학기의 반이 넘게 지났다. 중간고사라는 고비를 넘고나니 곧 기말고사가 다가온다. 어마어마한 압박감이 느껴지지만 그래도 곧 방학이 찾아온다는 사실이 기쁠 따름이다. 학기를 시작하고 처음으로 교수님 면담을 했다. 학생의 신분으로 만나는 교수님은 너무나 어렵다. 내가 얼마나 부족한지 수업시간을 통해 적나라하게 드러나서인지 그저 부끄러울 따름이다. 그간 학교를 시작하고 뭘 느꼈는지 물으시는 교수님께 아직 많이 헤매고 있다고 솔직하게 고백했다.
학교를 시작하고 일상이 바빠지면서 스트레스 강도가 굉장히 높아졌다. 달리기를 하다보면 너무너무 힘든데도 기분이 좋은 순간이 온다. 그 순간을 Runner's high라고 한다. 요즘 내가 일상에서 느끼는 행복감도 그와 비슷하다. 진행 중인 각종 프로젝트와 과제를 분 단위로 쪼개서 진행하고, 이동을 하거나 약간의 틈이라도 생기면 핸드폰으로 글을 쓰거나 이메일 답장을 보내면서 스트레스는 받지만, 체크리스트를 하나씩 지워나가는 성취감이 좋다. '내가 이걸 어떻게 감당하지'싶은 일들이 그래도 하나씩 진행되고 있을 때 묘한 희열을 느낀다.
교수님은 수업시간에 '전문가의 종말(The Death of Expertise)'에 대해서 이야기하셨다. 미국에서 토마스 니콜라스(Thomas Nicholas)라는 사람이 출판한 이 책은 교육열이 높아지고, 인터넷과 미디어가 발달하면서 점점 시장에서 '진짜' 전문가가 사라지고 있다고 말한다. 오히려 너무나 많은 양의 지식에 노출되면서 새로운 것을 제대로 배우고자하는 열망이 사회적으로 사라지는 현상에 주목했다. 교수님은 이 책을 언급하시며 전문가의 입지는 점점 사라지고 오히려 미디어에서 노출이 잦은 엔터테이너가 주목받는 현 사회에서 스스로 전문가가 되겠다며 대학원을 찾아온 우리들은 앞으로 해야할 일이 많다고 말씀하셨다. 더 제대로 공부하고 깊이있는 전문가가 되어서 사회에서 사라져가는 전문가의 입지를 더 견고히 하는데 각자가 보탬이 될 수 있어야한다는 격려를 보태셨다.
사실이다. 인터넷 검색만으로 혁신적인 췌장암 조기 진단 기술을 찾아낸 15세 소년의 이야기가 생각났다. 학교를 찾아오지 않아도 누구나 열정과 집념만으로 충분히 전문가가 될 수 있는 세상에 우리는 살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학교에서 하는 공부를 선택한 나는 어떠한 삶의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크다. 그렇기 때문에 더더욱 어느 것도 내려놓을 수가 없다. 요즘의 세상에서는 하나만 잘해서도 안되고, 뭐든지 잘해야 최소한 그 중 하나라도 인정받을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에 자의반 타의반으로 몸부림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이러한 '전문가의 종말' 시대에 필요한 전문가는 또 다른 형태의 전문가라는 생각이 든다. 엔터테이너로서의 면모를 갖추면서 내공을 가지는 전문가. 대중에게는 막대한 정보의 홍수 속에서 그들에게 필요한 정보를 나만의 전문성으로 큐레이션해서 보여줄 수 있고, 다른 전문가들과의 소통과 새로운 분야에 대한 연구도 가능한 내공을 가져야만 살아남을 수 있다는 생각이다. 누구나 전문가가 될 수 있는 혹은 전문가로 보여질 수 있는 시대를 살면서 세상은 전문가에게 더 많은 것을 요구한다. 그래서 바쁘다. 그래서 시간이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모든 과정이 그리 싫지만은 않은 것은 그래도 하루하루 배워가는 것들이 재미있기 때문이다. 결국 이러한 사회환경에서는 자신이 하고있는 일을 누구보다도 사랑하며 즐길 수 있어야 진정한 '전문가'에 가까워질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즐기는 사람을 이길 수 없는 것은 세상 만고의 진리이기에. 그런 의미에서 이번 한 주도 열심히 달리는 수밖에. (아, 즐기는 것은 까먹지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