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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라보라 Oct 22. 2021

우리의 진정한 휴양지.

이곳은 낙원이었다. 

“모히또에서 몰디브 한잔” 명대사가 유행할 때 우리 부부는 “몰디브”가 너무 반가웠다. 

지금도 그곳을 떠올리면 에메랄드빛 바다와 고운 모래사장 그리고 쨍쨍하게 빛나던 햇살과 잔잔하게 불어오는 바람이 아직도 느껴지는 것 같다.      


우리는 2012년 3월 몰디브로 신혼여행을 다녀왔다.

남편은 해외여행은 처음이었고, 여권도 그때 만들었다.

심지어 신혼집 인테리어를 전담 마크할 테니 신혼여행은 내게 전담 마크하라고 할 정도로 그는 해외여행에 겁이 많았다.     


하지만 그는 내게 명확한 조건을 제시했다. 

평생 기억에 남을 여행으로 좋은 곳을 가되, 우리 신혼여행의 테마는 오직 휴양이라고 했다. 

나 역시 결혼 준비와 엄청나게 쏟아지는 업무로 그의 제안에 전적으로 동의했다.    

우리는 예상보다 너무 벅찬 상황들로 얼른 결혼식을 마치고 아무도 모르는 곳으로 떠나고 싶었고, 신혼여행이라는 명목이 딱 맞았다.  


그래서 나는 스페인, 몰디브, 하와이 등 몇 개 후보지를 제시했고, 그는 내게 물었다.

이 후보지 중에서 휴양이 90% 이상이 되는 곳은 어디야?”     

난 속으로 

여행 가서 누워만 있을 건가.. 얼마나 쉬려고 휴양만 강조하는 거야..     

생각하며 말했다.


“아마도 몰디브일 듯. 몰디브는 섬마다 한 개의 리조트가 관리하고 있어서 보통 한 리조트에 들어가면 그 안에서만 쉬다 온대. 섬에서 다른 곳으로 이동하려면 무조건 배나 경비행기를 타야 해서 번거롭기도 하고, 그래도 수도에서 가까운 섬들은 배로 자주 이동해서 쇼핑도 할 수 있긴 한가 봐. 차라리 하와이는 쇼핑이랑 관광이 잘 되어있으니 그곳으로 할까? 그리고 자기가 원하는 미국권이잖아. 하와이가 좋지 않겠어?”     


남편은 한참 여행 팸플릿을 읽어보고 말했다.

아무리 미국권 이어도 발 아프게 돌아다니고 싶진 않아. 신혼여행은 무조건 휴양! 몰디브로 가자.”     


사실 나는 그의 오로지 휴양으로 몰디브를 선택한 것과 달리, 예전부터 궁금했던 몰디브다. 

섬으로만 이루어져 있고 에메랄드빛 바다와 고운 모래를 내 눈으로 직접 보고 싶었고, 지구 온난화로 수면이 높아져 몰디브는 사라질 수 있다고 했기에 나도 그곳을 가보고 싶었다.

      

이렇게 결정된 몰디브는 뭐든 맛있다는 싱가포르를 경유하여 몰디브 말레 수도에 도착했고, 이후 경비행기를 타고 우리가 예약한 센타라 리조트에 도착했다.     

수도 말레에서 경비행기를 기다리던 새벽


싱가포르에서 20시간의 대기 시간 동안 우리는 시내로 나가 한정된 시간 동안 관광을 실컷 했다. 

아마도 몰디브에 도착하면 관광은 없을 거라는 생각으로 더 열심히 관광을 한 것 같다. 

(싱가포르에서 우리의 이야기는 말하자면 길다. 이건 다음에 다시 이야기하기로 하자.)


우리가 도착한 섬은 1시간? 정도면 섬 한 바퀴를 돌 수 있을 정도였다.

숙소 앞에서 마음껏 수영할 수 있는 에메랄드빛 바다가 있었고, 섬 안에는 넓은 실외 수영장도 있었다. 

또, 마사지샵, 바, 기념품 가게, 식당, 그리고 나머지는 수영 외 액티브를 할 수 있는 장비 대여 및 모임 장소가 있었다.

웰컴하우스에서 바라본 섬


섬의 내부는 한 번에 파악했고, 올인 크루 시브로 예약했기에 우리는 섬 안에서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자유롭게 이용하고 먹을 수 있었다.     

몰디브에서 일과는 식사, 수영(스노클링), 마사지, 바, 액티브 의 순서만 바뀔 뿐 무한 반복이었다. 

하지만 전혀 지겹지 않았다. 아니 지겹다 생각할 틈이 없었다. 


화창한 날씨에 매 순간, 시간마다 다른 풍경을 보여주는 신비로운 바다를 볼 수 있었고, 스노클링을 하며 예쁜 산호초 안에서 자라고 있는 화려한 색의 어린 물고기들을 마음껏 보고 즐길 수 있었다. 

음식은 나라별 음식을 준비해주었고, 바는 갈 적마다 추천 칵테일을 맛보며 달고 짜고 쓰고 예쁘고 더 예쁘고 야릇하게 취하는 칵테일을 마셨고 힙한 음악들에 취했다.

그 외 세탁과 청소 역시 그들의 서비스 품목에 포함되어 더없이 편했고, 매일 선택할 수 있는 액티브까지 정말 지상 낙원이라는 게 이런 걸까 싶었다. 


일주일 동안 한 곳에 머물러 그 장소를 벗어나지 않아도 지겹지 않다는 것을 그때 처음 알게 된 것 같다.     


김영하 작가의 <<여행의 이유>> 중 이런 말이 나온다. 

 잠깐 머무를 호텔에서 우리는 슬픔을 몽땅 흡수한 것처럼 보이는 물건들로부터 완벽하게 자유롭다. 모든 것이 제 자리에 잘 정리되어 있으며, 설령 어질러진다 해도 떠나면 그만이다.


호텔이 좋은 이유에 작가는 의무감이 없기 때문이라고 했던 것처럼 우리 역시 이곳이 그렇게 느껴졌다.

분명 한국으로 돌아가면 시댁, 친정, 회사 그리고 우리의 집 이 네 가지 관계 속으로 본격 진입하기 전 꿀맛 같은 의무가 없는 몰디브가 한없이 좋았다.     


난 수영도 잘 못하면서 스노클링에 한 맺힌 사람 마냥 하루에 몇 시간씩 바다에 있었고 그렇게 오래 수면 위에 떠 있던 나의 뒤태는 몽땅 탔다. 그 탄 자국은 한 달 넘게 갔고, 대중목욕탕을 창피해서 못 갈 정도였다.     


남편이 그렇게 강조했던 휴양이 이런 여행 있었나.

내 인생 중 진짜 휴양은 이렇게 하는구나 싶을 정도로 자유롭고 평화로웠고 행복했다. 

관광을 목적으로 이동하고 새로운 것을 먹기 위해 이동하고 꾸준히 거리상 이동이 있는 여행이 나의 여행이었다면, 몰디브는 리조트 안에서 시작과 끝이 함께 있는 여행이었다.     


5일 동안 리조트 직원 핫산과 친해져 리조트 안에서 즐길 수 있는 사소한 하나하나 더 많이 즐길 수 있었다.

그와 헤어짐이 너무 아쉬워 남편은 자신이 아끼는 모자 하나를 선물해줬다. 

마침내 그와 마지막 인사를 하고 섬을 나오자 마치 핫산 집에서 잘 놀고 다음을 기약하며 떠나는 기분이었다.      

몰디브를 떠나오는 날.

비행기에서 멀어져 가는 몰디브를 바라보며 나도 모르게 눈물을 흘렸다.

내 생애 언제 이렇게 평온한 휴양을 할 기회가 또 올까 싶은 마음에 눈물이 났던 것 같다.     


몰디브를 다녀온 지 벌써 9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하지만 아직도 그곳에서 즐겼던 여유와 시간들이 생생히 기억난다. 

가끔 우리는 그때를 회상하며 핫산은 몰디브를 잘 지키고 있을까 상상해보곤 한다.

언제 우리가 몰디브를 다시 갈 수 있을까.     

해가 지면 까만 하늘과 바다 그리고 우리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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