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보라보라 Oct 20. 2021

타의적 히치하이킹

친구들과 처음으로 1박 여행을 떠나 예상보다 일찍 돌아온 나를 보고 가족들이 놀라워했다. 

뚜벅이로 기차에 버스를 타고 출발한 여행이었기에 아마도 저녁에 도착할 거라 생각했던 것 같다.

집에 일찍 도착한 이유는 영화에나 있을 법한 <히치하이킹> 덕분이었다.      


© silastolles, 출처 Unsplash


부모님은 내가 <히치하이킹>을 했다는 사실만으로도 깜짝 놀라셨다. 

평소 나와 함께 간 친구들을 알기에 이번 여행을 궁금해하셨다. 

난 우리 가족은 누구도 하지 못할 경험을 했다는 사실만으로도 들떠서 목소리 높여 경험담을 쏟아냈다.      




2007년 여름의 끝자락이었다. 

우리는 학교 졸업 후 처음으로 1박 여행을 떠난다는 생각만으로도 들떠있었다. 

넉넉하진 않지만 회비를 모아 여행을 준비했고, 저렴하면서 조용하고 우리끼리 떠들 수 있는 곳으로 가고 싶었고 결국 우리는 양평에 있는 “산음 자연 휴양림”을 가게 되었다.      


지금이라면 누구라도 운전을 해서 쉽게 갔을 텐데 그때는 다들 장롱면허 보유자였기에 렌터카는 생각도 못 하고 기차와 버스를 타고 여행을 가야 했다.

대중교통을 이용해야 했기에 최대한 짐은 간소화했고, 양평에 도착한 후 마트에서 식재료를 구입했고, 다시 시내버스를 타고 휴양림을 향해 갔다.      

버스에서 내리면 휴양림 입구 앞에서 내릴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결국 버스정류장에서 무거운 여행 짐을 메고, 들고 낑낑거리며 산길을 걷다 겨우 도착했다.      

기차를 타고 가며 흥겨웠던 기억은 있지만 버스에서 내려 휴양림까지 들어가던 길은 어땠는지 풍경이 떠오르지 않는다. 대신 무거운 짐을 빨리 숙소에 내려놓고 싶었기 때문이다.      


어렵게 도착한 휴양림은 우리가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가 된 것처럼 다른 차원의 숲에 들어선 기분이었다. 

엄청 차가운 숲 공기와 피톤치드 냄새가 났고, 보이는 것은 울창한 나무와 숲이었고, 물 흐르는 소리와 아름다운 새소리만 들릴 뿐이었다.

방금 전까지 투덜거리며 왔던 고생을 싹 잊어버릴 정도로 차원을 이동한 것처럼 전혀 다른 세상이었다. 

     

숙소를 배정받은 후 짐을 풀고 어두워지기 전 우리는 계곡으로 뛰어갔다. 

졸졸 흐르는 계곡에 여기까지 오느라 땀 뻘뻘 흘린 발을 얼른 담갔다. 


계곡물은 아주 차가웠고 고생한 발에게 아주 만족스러운 냉수마찰을 할 수 있었다. 

계곡에 앉아 울창한 숲의 풍경을 즐기는 사이 노을이 지기 시작했고 보슬비가 내렸다.     


그때 나무 사이로 내리는 보슬비를 보며 숙소로 뛰어 들어가는 길. 

이 빽빽한 숲에서 나뭇가지 사이로 내리는 비가 보슬비 정도이며 도시에서는 소나기가 아닐까 하는 엉뚱한 생각도 해봤다.      

고등학교 졸업 후 우리가 모여 이렇게 한방에서 잠을 잔다는 게 믿기지 않아 이대로 잠들 수 있을까 생각하며 우리의 그동안 밀린 수다를 털어내기 바빴다. 

하지만 이 기분도 피곤한 체력을 이겨내지 못했기에 우리는 그새 꿀잠에 빠져들었다.      


다음날 다 같이 고요한 숲길을 걸으며 곧 떠나야 하는 이 숲 속의 기운을 흡수하며 울창하고 깨끗한 숲 속의 풍경을 감상했다. 숲 속에서 생얼로 찍은 우리들의 사진을 보니 참 풋풋했던 20대였다.      


휴양림을 퇴실하기 전 우리는 갈 길이 멀기에 아침도 잘 챙겨 먹고 버스정류장으로 내려와 넷이 옹기종기 모여 버스를 기다리고 있었다. 

한 30분을 기다렸는데도 버스는 오지 않고 일요일이라 버스 배차 간격이 긴 건 아닐까 나름의 추리를 하고 있을 때 갑자기 정류장을 지나던 검은색 스타렉스가 멈췄다.      


© shashivarman, 출처 Unsplash


순간 우리는 모두 얼음이 되었다. 

‘왜 가던 차가 멈춰?’ 

‘저 차 무서운데?’

‘환한 대낮 산에서 인신매매?’


별별 생각을 하고 있을 때 검정차에서 창문이 내려지고 운전자 아저씨가 말을 걸었다. 

“학생들. 버스 기다려?”

얼음이 되어 아무도 대답을 못 했고, 그중 제일 덩치 큰 내가 대답했다. 

“네...”     


아저씨는 흔한 일이라는 듯 자연스럽게 우리에게 시내까지 태워 주겠다고 했지만 우리는 고마움보다 인신매매는 아닐지 겁이 나서 정중하게 사양했다. 

하지만 아저씨는 일요일이라 버스가 자주 다니지 않는다고 말하며 계속 우리에게 태워 주겠다고 했고, 결국 우리는 그 차를 타게 되었다.      


내가 먼저 나서서 차 옆문을 열었다. 

뒤는 짐칸이었고, 중간 옆문은 넷이 겨우 앉을 수 있었고 몇 가지 연장들이 있었다. 

순간 등골이 오싹했다. 

이런 연장들이 왜 있지.. 이 아저씨는 꽤 힘이 세겠는데.. 타도 될까..     


우리는 차례대로 차에 오르며 아저씨께 감사하다며 인사했고 기차역 내려주면 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우리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아저씨가 무슨 행동을 한다면 여기 연장들을 집어서 우리도 대응하겠다는 무서운 상상까지 하면서 차에 조용히 앉았다.    

차가 출발하고 얼마 후 아저씨는 근처 공사 현장에서 일하고 집으로 가는 길이라고 하셨고, 우리의 도착지는 부천이라고 하자 본인은 집이 인천이라며 가는 길에 내려주겠다고 했다. 

아저씨는 혼자 집에 가는 길 졸음운전도 안 하고 너희는 교통비도 줄이고 일석이조가 아니냐고 했다.


결국 우리는 아저씨와 함께 부천까지 가기로 했다.  조금 전까지 겁먹었던 상상은 까맣게 잊은 채 말이다. 

부천으로 가는 길 휴게소에서 우리는 친절한 아저씨께 간식으로 고마움을 표시했고, 우리 역시 넉넉해진 회비로 마음껏 간식을 사 먹었다.  

    

이후 편안한 마음으로 아저씨와 수다를 떨면서 갔다. 

산음이 어땠다, 양평은 처음이었다. 바비큐가 안 돼서 고기를 못 먹었다. 

인천에 사시느냐, 우리는 고등학교 동창들이다 등 여러 대화를 나누며 아주 즐겁고 편하게 부천 근처에 왔다.      

아저씨가 우릴 내려준 곳은 소사역 부근이었고, 우리는 아주 감사한 마음으로 아저씨에게 인사했다. 

“아저씨, 정말 감사해요. 이렇게 차 얻어 타는 것도 처음이고요. 덕분에 편하게 왔어요.”

“학생들, 아니 아가씨들 내가 덕분에 즐겁게 왔어. 다음에는 차 렌트해서 여행 다녀. 조심히들 들어가고.”     


영화 같은 히치하이킹은 아니었지만 비록 검은색 스타렉스였지만, 전혀 모르는 남의 차를 타보는 아주 값진 경험이었다. 

우리의 평온했던 여행에서 영화 같은 일이 일어났고, 친구들과 함께 평생 갖고 갈 추억이 생긴 것이다.




신나게 이야기하는 내 모습을 보고 아빠는 말씀하셨다. 

“이번에는 좋은 경험일지 모르지만, 그래도 혼자서는 남의 차 함부로 타지마. 좋은 아저씨를 만나서 다행이었지. 그리고 이제는 운전도 시작해봐. 언제까지 장롱에 처박아 둘래.”     

아빠의 말씀에 동의했지만 아빠도 경험하지 못한 히치하이킹을 내가 했다는 사실이 더 중요했다. 


이후, 우리가 산음 자연 휴양림을 간 적은 없다. 

숲이 아주 울창했고 대중교통으로 가기 힘들었던 휴양림.

하지만 평생 잊지 못할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던 타의적 히치하이킹. 

평소 평범한 검은색 스타렉스가 아주 무섭고 음산해 보였던 그 순간들. 

하지만 걱정과 달리 친절하셨던 아저씨. 


보이는 게 다가 아니고 그 상황에 따라 분위기가 180도 달라질 수 있다는 경험.      

산음은 이렇게 우리에게 절대 잊지 못할 오감 자극 여행지였다.        



이전 05화 한 겨울, 대성리.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