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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라보라 Sep 15. 2021

바다 안개 같았던 우리의 첫 캠핑.


시간과 계절은 개인마다 다르게 인지된다고 하지. 벌써 가을이 느껴진다.

밤공기나 새벽 공기가 한여름의 열대야에 에어컨을 켰던 게 엊그제 같은데..

아무리 날씨가 제멋대로여도 우리의 음력 절기는 정확하게 맞는 것도 신기하다.

입추와 처서가 지나고 나니 신통방통한 날씨의 변화다.     


한결 시원해진 밤 기온 덕분에 "우리 가을 캠핑 가야지!" 떠들었던 그 밤이 생각난다.    

 

7월 어느 수요일 우리 세 자매 톡방에 메시지가 떴다.

"이번 주말에 캠핑 갈 사람!"

이후 우리의 대화는 어디로 갈 것이며, 아빠의 장비가 어떤 게 있는지 구체화하고 있었다.

우리 세 자매의 특성은 서로 알기에 마음만 맞으면 아주 합이 잘 맞는다.

그날 우리는 급하게 토요일 1박 할 캠핑장을 예약했고 이후 이틀 동안 열심히 준비했다.     


유미의 세포들 중 불안 세포처럼 아빠는 또 걱정하셨다.

"예전에 쓰던 텐트라서 별로 안 좋아."

"비 오면 어쩔래?"

"너네가 텐트 쳐본 적 있어? 못할 텐데."

"파쇄석이면 아래 매트도 하나 더 사야 할 텐데?"

"캠핑장 자리가 있었나 보네. 괜찮겠어? 여자 셋이? 사위들은? "     


세 자매의 나이를 합치면 100살이 넘는데도 아빠 눈에는 아직도 우리가 미성년 딸들인가 보다.     


기존 텐트를 펼쳐서 상태를 확인했고, 우천 시를 대비해서 큰 하우스 비닐을 준비했다.

그리고 덩치 큰 우리 자매들은 작은 매트 위에서 싸우기보다 통 크게 매트를 구입했고, 심지어 쪄 죽어도 불멍을 해야 한다는 일념으로 마트에서 급하게 3만 원이 안 되는 화로를 샀다.     


그리하여 토요일 아침.

날씨가 어쨌든 상관없었다.

우리 세 자매가 처음으로 우리끼리 야외 취침을 한다는 게 중요했기에 들뜬 마음으로 출발.

차가 밀리지도 않고, 노래는 흥겹고, 흐린 날씨지만 뭔들 아름답지 않은 게 없었고, 모든 게 좋았다.


하지만 내가 유일하게 한 걱정은 처음 가는 캠핑장에 있을 공동시설이었다.

가보니, 캠핑장을 잘 모르는 단순한 기우일 뿐 생각보다 너무 좋은 환경이었다.     


입구에서 체크인을 한 후 쓰레기봉투를 받고, 우리 같은 초보를 위해서인지 안내자가 있어서 옆집과 주차와 텐트가 겹치지 않게 도와주었고, 또 차와 텐트의 도킹 여부를 물었다.

그런데 안내자분의 "도킹"을 듣고 순간 멍했다가 우주선 도킹이 생각나서 그제야 "차와 연결할 거예요."라고 말한 초보들. 초보자 티를 팍팍 냈다.


우리가 예약한 자리는 ”파쇄석“이고 생각보다 넓은 자리였다.

도킹을 해보자! 앞으로 차를 세우고, 뒤로 텐트를 쳤고, 트렁크와 텐트 사이를 단단히 묶었다. 

우리 세 자매는 일처리가 아주 빠릿빠릿하지.


차와 텐트가 자리가 잡히자 차에서 물건들을 꺼내기 시작했고, 20분도 안 돼서 우리의 텐트가 완벽히 모양을 갖췄다. 

텐트가 작아서 빨리 끝난 것도 있지만, 쓰레기봉투 자리, 냉장고, 선풍기 자리까지 딱~!

우리 서로 흡족해서 한번 씨익~ 웃어줄 정도.     


후다닥 설치 완료 후 아빠에게 보란 듯이 사진 한 장을 보내드렸다.

아빠는 유미의 세포들 중 이성 세포처럼 사진으로 현장을 꼼꼼히 확인하시고, 답장이 왔다.

"잘했네. 잘 놀고 와~."


조촐한 우리의 첫 캠핑 ^^


드디어 우리의 먹고 마시고 웃고 떠드는 시간이 왔다.

삼겹살, 닭꼬치, 라면, 과일, 과자, 맥주&소주, 위스키!

특별하다 할 건 없었지만 야외에서 우리끼리 먹는 음식이 뭔들 꿀맛이었다.

마치 사춘기 여자애들처럼 깔깔거리고 좋아했고, 식욕 역시 돌도 씹어먹을 기세로 맛있게 먹었다.    


삼겹살 구이, 불멍용 화로에 꼬치구이
야외에서 먹는 라면은 진리~


디저트도 잘 챙겨 먹지요 ^^


먹고 떠들다 걸어서 1분도 안 되는 거리에 있는 바다를 감상하고 그 주변을 구경하며 평화로움을 즐겼다.

캠핑장 앞이 바다라서 바다가 보이는 앞자리가 아니더라도 걸어서 1분이면 바다를 볼 수 있어서 좋았다.


캠핑장에서 바라본 바다 멀리 안개가 보인다. 아마도 이 안개가 우리를 아찔한 해무 경험을 하게 해 준 것 같다.


오후 4-5시쯤 더웠던 열기가 갑자기 시원해졌고 주변이 뿌옇게 변했다.

내가 취해서 뿌옇게 보이나, 눈이 이상한가 했는데 순간 오싹한 기온에 깜짝 놀랐다.

바로 해무 경험!!     


짧은 시간이었지만 너무 신기하고 시원하다 못해 서늘했다.

그래서 해무 경험하는 순간의 사진을 찍지 못해서 제일 아쉽다.

서로 순간 해무 경험에 대해 시끌벅적 떠들다 저녁도 맛있게 뚝딱 미션 클리어~.     


캠핑장의 매너 타임은 밤 10시부터 시작되었다.

우리도 조용히 취침 준비를 하며 혹여 비 소식이 있을까 시간별 날씨를 확인했다.

비올 확률이 예상보다 높아서 준비해 간 하우스 비닐로 텐트를 덮고, 텐트로 들어갔다.     

우리 셋이 텐트에 누우니 딱 맞았다.

여기에 한 명이 더 있다면 이 텐트는 더 이상 쓸 수 없을 정도로 딱 맞았다.


제부에게 아이 둘을 맡기고 자유부인이 된 둘째, 업무 스트레스에 쳐져 있던 마음 달래고 싶었던 막내, 콧바람 쐬고 캠핑을 한다는 사실만으로도 좋았던 나, 전부다 우리는 행복했다.     


자리에 누워 요즘 근황 외에 어쩌다 온 캠핑을 이야기했고, 결국은 "캠핑 너무 좋다. 우리 다음에 또 가자."라는 결론이었다. 밤새 이야기하게 되려나 했는데 그 우려도 잠시.

하루 종일 들뜨고 나름 많은 이동과 움직임에 누워 수다를 떨다 다들 꿈나라로 간 듯하다.     


잠든 시간은 12시쯤인 걸로 기억하는데 어느 순간 텐트 천장에 "뚝" 하는 소리를 들었다.

깜짝 놀라 일어나 양옆에 누운 동생들을 깨우며 "비 온다! 얼른 냉장고 들여놔야 해!"     

우리의 텐트가 작고, 제대로 된 타프가 있는 것도 아니라서 텐트 밖에 있는 것은 정말 밖에 있는 것이었다.

혹시나 해서 자기 전 의자들은 미리 접어서 차 트렁크에 싣었지만 냉장고는 중간에 물도 마시고 할 생각에 그냥 밖에 두었다.

아빠의 최신 야외용 전기냉장고를 챙겨 왔기에 비가 오면 제일 먼저 챙겨야 할 것은 전기냉장고였다.     

급하게 자다 깬 동생과 함께 얼른 냉장고를 텐트 안으로 넣고 새벽 비에 놀라워하며 어수선한 것도 잠시.

더 이상 비 때문에 신경 쓸 게 없다 싶었는지 모기 밥이 되어도 세상모르고 잔 것 같다.     


다음날 일어나 보니.

다른 텐트들은 밤새 비에 아무 움직임이 없었고, 텐트에서 몸만 나오면 됐지만 우리는 텐트 위에 씌운 비닐을 치우고, 텐트 안에서 냉장고를 꺼내고, 차 트렁크에서 의자들을 꺼내 앉으며 마치 이제 캠핑 온 것 같은 기분으로 세팅했다.     


일요일 아침 식사는 물을 다 흡수해 버린 스펀지처럼 우리는 남은 음식들을 다 먹어버렸다.      


정말 특별한 것 없이 야외에서 먹고 놀고 잔 것밖에 없는데..

이 캠핑이 뭐라고 이렇게 기분이 좋았던 걸까.

먹고 자고 뭐하나 시작하면 마무리까지 다 해야 하는 귀찮음이 있지만, 그보다 우리가 직접 모든 것을 다 준비하고 진행하면서 얻는 성취감과 비슷한 희열 때문일까.

자연의 냄새 소리 풍경들을 텐트에서 직접 즐기는 것이 건물 안에서 즐기는 것과는 또 다른 힐링을 준 걸까.

그것도 아니면, 단순히 오래간만에 야외로 나왔기 때문일까..


캠핑을 정리하고 집으로 출발하는 길 괜히 마음이 아쉬웠다.

첫 캠핑에 대한 설렘, 아찔했던 해무 경험, 덩치 큰 세 자매가 어깨 딱 맞춰 잔 기억, 새벽 비 올 때 우리만 난리 친 기억. 

하룻밤 사이에 모든 것이 아쉬웠다.      


바다 안개 같았던 우리의 첫 캠핑을 추억하니 가을 캠핑 갈 생각에 또 마음이 두근거린다.      


아~ 또 가고 싶다!

캠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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