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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라보라 Apr 21. 2022

반가운 목소리

앨리스 먼로의 <디어 라이프> 중 "목소리들"이라는 단편 소설을 읽고 10대 소녀에게 한없이 매력적으로 들렸을 목소리에 대해 생각하다 이 글을 써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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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이 시작되기 전 평소 SNS로만 연락하던 지인에게 전화가 와 반가운 마음에 나는 얼른 받아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뭐야. 톤을 좀 올려줘. 안 반가워요?"


당황한 나는 말했다.

"아뇨. 전 반가운 건데.. 사무실에서 받아서 그런가요. ㅎㅎ"


지인과 통화 후 평소 내 목소리의 톤이 너무 낮은가, 반가움을 표하려면 얼마나 하이톤이어야 하나 싶었다. 그런데 자꾸 이 말이 마음에 걸렸다.


© BroneArtUlm, 출처 Pixabay


하이톤.. 어느 누구보다 하이톤이었던 고모들이 생각났다.


부산, 광주에 사는 고모들이 명절이나 휴가 때 방문하시면 이웃집들도 다 알 정도였다.

심지어 우리 집이 보이면 내 이름을 멀리서부터 불렀기에 그 소리에 나는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얼른 대문 앞 마중을 나가면 고모들은 어찌나 반겨주시는지 마치 하루 종일 떨어져 있던 반려견을 만난 주인의 반가움. 또는 반려견이 처음으로 훈련한 제시어를 정확하게 알고 행동했을 때 기쁜 주인의 목소리처럼 매우 들뜬 행복한 큰 목소리였다.


"보라야? 아이고 그새 많이 컸네. 이렇게 이뻐졌어?"

"다 컸네~ 아가씨 됐네. 이제 우리 보라 남자 친구 생기겠다."


고모들의 한껏 높은 목소리는 어찌나 귀가 쩌렁쩌렁 울리게 했는지.

고모들은 항상 그러셔라고 생각했지만 내심 날 이뻐해 주는 고모들의 반응에 기분 좋았다.

내가 기억하는 하이톤의 반가운 목소리는 고모들의 목소리였다.


생각해 보니 평소 조용한 내가 예전의 고모들처럼 쩌렁쩌렁 목소리 톤을 높일 때가 있다.

반가운 조카들을 만났을 때 내 목소리는 고모들 목소리는 저리 가라 싶을 정도다.


"우리 범이 오늘 유치원 잘 다녀왔어?"

"우리 막내 연이 오늘은 뭐 했어?"

"소민이 예뻐졌다 어머~고모 기억해? 그새 키가 더 커졌네~"

그사이 녀석들의 모습을 얼른 내 눈에 담으며 부쩍 어른스러워진 모습이 귀엽고 반갑고 무척 사랑스럽게만 보인다.


짧은 만남이나 통화를 끝내고 내 자리로 돌아오면 나는 반가웠던 녀석들의 모습을 머릿속에 다시 되새기며, 몸과 마음이 차분해지고, 일상의 나로 온전히 돌아온다.


내가 기억하는 하이톤 고모들도 이런 반가움과 사랑의 표현이었구나.

이제야 고모들의 한없이 높았던 목소리가 진짜 이해가 된 것이다.

나도 우리 고모들에게 찐 사랑을 받았구나.

그리고 하이톤 목소리가 듣는 사람에게 단순히 시끄러울 수도 있지만, 내심 기쁘고 반가운 마음을 전달하기도 한다는 것을 무심했던 내가 이제 알게 되었다.


그동안 코로나 시국으로 만남도 자유롭지 못하고 안부나 소식도 간단히 SNS를 통해 전하면서 목소리의 반가운 반응을 잊고 있었다.

그리운 사람 또는 반가움을 표현하고 싶은 사람에게 문자로 소식을 전하는 게 아니라 한껏 들뜬 목소리로 전화를 해야겠다. 그들에게 내가 그들을 매우 반가워하고 있다고 마음이 전해지도록 말이다.


도레미파 솔~~ ♪

잘 지냈어 친구야~

우리 언제 만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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