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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이한나무 May 29. 2024

벨소리가 울리고, 눈물이 차올랐다.

<인테리어 겨우살이 04화>

'노이로제'

신경증을 뜻하는 독일어 'NEUROSE'에서 유래한 외래어래요. 



저만 그러는 걸까요? 저희 대표형님도 같은 마음을 느꼈던 걸 보면 저만 그런 건 아닌 것 같아요. 지레짐작해보건대 인테리어를 업으로 삼고 사는 사람은 사장, 직원 할 것 없이 고객과의 관계에서 겪게 되는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닌데요. 이건 뭐 고객의 입장도 마찬가지일 테니 상대적 감정으로 퉁치고 넘어가도 될 것 같아요. 


그런데요, 제가 인테리어일을 만 3년을 넘게 직원신분으로 해오면서 참 많은 스트레스를 겪었는데요. 그 스트레스를 구성하는 여러 가지 요인 중 하나가 벨소리 노이로제예요. 벨소리가 울리면 심장이 조금 더 빠르게 뛰기 시작해요. 그리고 몸이 경직돼요. 


발신자를 확인해요. 


'아, 별일 아니구나'    고객이 아닌 곳으로부터의 전화일 때에요. 

(발신자가 070으로 시작하면 어찌나 안심이 되는지)


'아~ 또 뭐지?'    고객의 전화번호가 떴을 때에요. 

(대부분 아파트명/동/호수/대상자 식으로 저장되어 있죠)


일종의 서비스 업종인 인테리어를 하면서 고객전화를 스트레스로 여기는 게 마땅치 않은 일이긴 해요. 하지만 제 말은 고객전화를 스트레스로 여기는 게 아니라, 여기게 되어버린 그간의 시간이 있다는 것이죠. 


대부분의 인테리어 고객은 업체사장이나 현장담당자, 누구와 전화를 하던지 상관없이 거의 모든 대화 내용의 구성이 이래요. 디자인 및 자재 변경요청, 공사 중/후 작고 큰 하자 보수 요청(정말 정말 하자로 볼 수 없는 것까지 요청할 때도 꽤 많음), 공사환경에 대한 민원제기 등 통화를 마치고 나면 늘 새로운 일거리가 생기는 꼴인 것이죠. 


서비스 제공자의 입장에서는 물론 최상의 고객 만족을 추구해야 해요. 더 나은 서비스 품질로의 향상, 그게 맞는 것이죠. 그런데 그러한 끊임없는 노력 속에 지칠 수밖에 없는 순간순간들이 쌓여 퇴직, 이직을 고려하기까지 가게 되는 거예요. 


왜냐하면, 고객은 내돈내산의 끝판왕을 진행 중이기 때문이죠. 투자한 내 돈의 양만큼, 자신들의 신경을 집중하는 것만큼, 자연스럽게 행사하게 되는 권리의 향연에 어쨌든 을일 수밖에 없는 저희는 단 한마디 언짢은 내색도 할 수 없고, 못해요. 




그러던 어느 날이었어요. 

대표형님의 무관심과 불성실, 조금 유난하셨던 고객 분, 이래저래 복잡한 재정상태, 지난하고 멀기만 하게 느껴지는 개인 성장 등으로 인해 심신이 너무 지친 상태로 퇴근, 집 앞에 주차를 했어요. 


'카톡~'


두둥~ 푸시 알림을 보니, 고객님이시네요. 

각 공정 사장님들과 고객님 사이에서 참 많은 요청사항으로 인해 소통해야 했던 그 고객님이세요. 

또 한 번의 질문과 요청사항이죠. 카톡으로 답변하기에 복잡하고, 제대로 의사전달이 안될 듯싶어 전화를 걸었어요. 용건에 대해 소통하고 통화를 마칠 즈음 고객님의 말 한마디에 왈칵 눈물이 올라왔지 뭐예요. (차 안에 혼자 앉아 있었지만 그래도 부끄럽게..) 


"부장님~ 정말 감사해요."

"저희 남편이랑도 얘기하면서도 그랬어요. 우리 공사, 부장님 같은 분 안 만났으면 어쩔 뻔했냐고..."

"OO 디자인, 사람 잘 뒀다고..."


고객님의 한 마디에 부끄럽게도 왈칵 눈물이 올라왔지만, 티 나지 않게 감사인사도 드렸어요. 그간 참 지쳐서 그만두고도 싶었는데, 제가 들어본 격려, 칭찬, 감사 인사 중에 최상의 감사표현이라고요. 




또 한 번의 기적적인 일이 있었어요. 

꽤 오래전 공사를 마쳤고, 약 3년이 다 되어가는 기간 동안 이런저런 AS를 참 많이 다녔던 고객님이세요. 

전화벨이 울렸죠. 


'아~ 또 뭐지?'  


"아, 네~ 사모님,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과장님! 잘 계셨죠?" (당시 과장신분이었어요.)


"네, 그럼요~ 잘 계셨죠? 어떤 일이실까요?" (긴 얘기 할 것 없고 본론부터 말하라는 심보였죠.) 


"아니요, 이번엔 아무 일도 없어요"


"네, 에이~ 그럴 리가요. 괜찮아요, 말씀하셔도 돼요"


"정말 아무 일도 없어요. 그냥 새해 인사 드리러 전화드렸어요" (당시 연초였어요.)




이게 무슨 일이죠? 인테리어 일을 하다 하다 정말 아무 용건 없이 인사만을 위해 전화를 주신 고객님은 처음이었어요. 그 뒤로 그런 일은 없었고요. 


왈칵 쏟을 뻔한 눈물의 통화 이후 얼마 지나지 않아 이어진 고객님의 새해인사, 당시 참 많이 힘들어했던 저를 하늘이 위로하는 것처럼 느꼈어요. 


저는 크리스천이거든요. 하나님이 지치지 말라고 힘주시는 거라고 여겼어요. 

그렇게 두 번의 기적이 제게 일어났고, 저는 여전히 인테리어 일을 하고 있어요. 


스트레스는 때마다 다른 모습으로 저를 찾아와요. 벨소리 노이로제도 여전하죠. 


그런데, 조금 단단해졌나 봐요. 의연해지기도 했고요. 

어차피 시간이 지나면 우여곡절은 묻히고, 감사의 관계로 남게 된 경우가 더 많았다는 걸 깨달았기 때문이 아닌가 싶어요. 


저는 지금처럼 잘 버티고, 지헤롭게 보내고, 조금씩 여유로워지면서 자연스럽게 성장해 나가고 있나 봐요. 

잠깐의 스트레스, 오래 남을 고객과의 관계는 어느새 제 일의 루틴이 되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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