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테리어 겨우살이 03화>
질문을 드려볼게요.
첫 번째, 인테리어를 진행하는 일에 갑과 을은 누구일까요?
생각해 볼 것도 없이 공사를 의뢰한 고객님이라고 생각하실 거예요. 맞습니다. 맞는데요, 조금은 틀립니다.
공사를 계약하기 전까지는, 어쩌면 공사를 시작하기 전까지는 고객이 갑의 위치입니다.
어쨌든 업체는 공사를 해야 마진/이윤을 남기게 되는 것이니까요.
계약을 했다 한들 최소한의 금액으로만 보통 가계약을 맺기 때문에 그 금액을 포기하고 (어떨 때는 이 금액마저 돌려달라고 하지요) 다른 업체와 계약을 할 수도 있거든요.
그렇다면, 공사를 시작하고 나면 상황이 반전될까요? 조금은 그렇기도 하지만 사실 크게 달라지는 건 없어요.
고객은 이미 시작된 공사, 그 기간 중에 다른 업체를 알아보고, 상담하고, 자재 상담하고, 일정 조율하는 등의 꽤 많은 불편을 감내하는 일을 하려 하지 않죠. 업체와의 큰 불화가 생기더라도 웬만하면 원활하게 공사를 마치기 위한 협의를 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사전 소통이 매우 중요한 것이죠.(1화 참조)
어떤 고객분들은 이렇게 말하시더군요. 당신께서 현장을 매일 감독하는 게 아니기 때문에, 혹여 업체와 불화가 생기면 공사과정에 자신의 집에 어떤 해코지를 할지 아무도 모르는 거 아니겠냐며, 자신들이 을의 위치이기도 하다고요.
충분히 공감되는 말입니다. 저도 이 일을 하기 전에는 인테리어 업자를 사기꾼으로 바라봤었고, 신뢰는 전무했으니까요.
두 번째, 우리가 하는 인테리어는 누굴 위한 것일까요?
가끔, 고객분들에게 매우 많이 서운하거나 더 넘어 화가 날 때가 있습니다.
예를 들면 이런 것이죠.
싱크대를 설치했고, 싱크볼과 세트인 배수트랩(거름망이 있고 역류방지 봉수로 구조 지어진 부분)도 당연히 설치되었어요. 보통 그 배수트랩의 기본 사양은 플라스틱이에요. 가끔 '깜뽀르떼'같이 사양을 높인 경우 내부가 스텐으로 된 트랩을 별도 요청하시는 경우는 일부 비용이 추가되긴 하고요.
그런데, 어떤 고객님께서 전화를 주셨고, 얘기인즉슨 트랩이 플라스틱이냐 스텐이냐도 아닌, 어째서 냄새 방지가 안 되는 제품을 썼냐는 것이었죠.
이건 또 무슨 이야긴가 싶었는데, 보통 상가 화장실 세면대에 많이 설치된 'S자 트랩'이 왜 아니냐고, 지금 살고 있는 집도 그걸 쓰고 있다고, 몇 천만 원짜리 공사를 하면서 이런 싸디 싼 플라스틱 배수트랩을 쓰는 거냐고...
어떤 분들은 이 고객님이 이야기에 공감하실 수도 있을 거라 생각이 들어요, 하지만, 저는 단 한 번도 'S자 트랩'을 싱크대 트랩으로 쓰는 경우를 본 적도 없으며, 애초에 고객이 'S자 트랩'을 요청했다고 해도 극구 말렸을 것이며, 'S자 트랩'을 쓰는 업체가 있다며 바가지로 험담을 했을 거예요. 그리고 어떤 배수트랩도 냄새를 막지 못하는 건 없어요.
충분한 설명을 드렸죠. 그 과정에 꽤 버거운 비난 아닌 비난을 느껴야만 했고요.
무엇보다 화가 나는 건 이거예요. 그렇다고 화를 내진 않았지만...
"몇 천만 원짜리 공사를 하면서 이런 싸디 싼 배수트랩을 쓸 수가 있죠?"
몇 천만 원짜리 공사, 몇 천만 원짜리 공사...
맞습니다. 몇 천만 원짜리 공사죠. 고객 분들이 매우 열심히 모았을 그 몇 천만 원, 손 떨리며 결정했을 내 돈 내산의 끝판왕 인테리어죠.
그런데요, 잠시만 달리 생각해 보면요. 그 몇 천만 원, 다 고객분들의 집 고치는데 쓰는 돈이에요. 자재비, 인건비, 온갖 행정비, 공과잡비 등등, 다 고객분들 집 고치는데 드는 돈이라고요. 업체의 공사 마진요? 당연히 저희도 이 공사를 진행하는 사람이고, 인건비가 있는 거죠. 그 몇 천만 원, 다 꽁으로 그냥 주는 거 아니거든요.
게다가 어떤 고객분들은 공사 끝나고 난 뒤 잔금 안 주시려고, 이런저런 작고 큰 하자 집어내시는 분들 참 많아요. 공사를 마쳤는데, 잔금을 한 달 뒤에 주면 안 되냐고.. 하자 발생여부를 지켜봐야 한다며 말이죠.
"그 트랩이 얼마나 한다고 싼 걸 쓰는지.."
자, 그거 얼마나 한다고 조금 싼 거 쓰겠냐고요. 싼 거 가져다 쓰면 싼 티 나는 거 뻔히 보이는데, 그 몇천 원, 몇만 원 아끼겠다고 비난을 감수하겠냐고요. 업체 평가, 후기 등이 좋지 않으면 손해 보는 건 저희인데 말이죠.
생각을 조금만 달리 하면 서로의 입장을 충분히 헤아릴 수 있는 일들이 참 많은데요, 아직까지 인테리어업자는 사기꾼 이미지가 씌워져 있는 부분이 많아서 어쩔 수 없는 일이겠거니 하며 삼켜요.
고객과 업체, 갑과 을의 포지션에 누가 있는 것인가? 에 대해서는 저는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어요.
일을 하는 쪽이 아닌, 돈 주고 일을 시키는 쪽이 여전히, 당연히 갑입니다. 적어도 저에겐 그래요.
오늘도 지난 제 인테리어 인생의 한 에피소드를 여러분께 털어놓아 보네요.
잘 살아볼게요. 내일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