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테리어 겨우살이 02화>
저희 인테리어의 프로세스는 대략 이래요.
온라인/전화 상담 - 사무실/견적상담 - 계약 - 자재미팅 - 현장미팅 - 철거 - 샤시 - 목공/전기 - 타일 - 필름 - 싱크 및 가구 - 탄성/세팅 - 도배 - 중문 - 조명 - 마루/장판 - 마감
오늘의 이야기는 현장미팅에 관한 이야기예요. 계약을 마치고 공사일정이 정해지면 보통 그 시작일 전에 공사 현장에서 미팅을 갖거든요. 그때는 현장의 전체 컨디션을 확인해요. 견적상 제외하거나 새로이 추가할 사항을 정리하죠.
저희는 이때 가구 미팅을 함께 진행해요. 업체 사장님께서 함께 동행하시죠. 고객님이 그리고 있는 희망 구조를 듣고, 가능여부를 말해주고, 실측하고, 대략의 도면을 현장에서 그려주거든요.
충분한 설명과 의견수렴을 통해 며칠 후 가도면이 제공되거든요. 그럼 고객께서 재확인을 하시죠. 최종 확정이 되는 거예요. 그렇게 정해진 날에 가구가 설치가 되는 거예요.
그런데요, 인테리어에서 발생하는 하자 중에 이 가구하자가 제일 난감하거든요? 왜냐면 다른 공정과는 달리 심한 경우에는 가구 전체를 다 재제작해야 하기도 해요. 또 이미 가구와 결부되어 마감된 도배, 필름이 더불어 재시공되어야 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에요.
어느 현장에서의 이야기예요.
고객 : 실장님! 저는 붙박이장 문짝을 손을 넣어서 열고 싶어요.
나 : 아! 네~ 그럼 붙박이장의 문이 좌/우 두 개니까, 한쪽에 롱바 손잡이를 달면 될 것 같습니다. 한쪽을 먼저 열고, 다른 쪽을 열면 되고요.
고객 : 아니요, 그게 아니고요. 양쪽문 다 손을 넣어서 열고 싶어요. 지금 살고 있는 집도 그렇게 되어 있거든요.
(그러면서 사진을 보여주셨어요. 사진 속 문짝은 제가 제안한 방식의 문짝이었죠.)
나 : 네, 그러니까요. 이렇게 한쪽문에 손잡이를 달고, 한쪽을 연 다음에 다른 한쪽은 손을 넣어서 열구요.
고객 : 아니요, 손잡이 달린 오른쪽을 열지 않더라도 왼쪽문을 열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나 : 아, 그럼 한쪽은 푸시로 해드릴까요?
고객 : 아니요, 푸시는 싫고요. 손을 넣어서 열 수 있게요.
여기까지 대화를 한 뒤, 현장에 함께 있던 가구 사장님과의 눈빛교환으로 어떤 걸 원하시는지 캐치할 수 있게 되었어요. 내용인즉슨, 고객님은 손잡이가 달리지 않는 좌측문짝의 손잡이 쪽 엣지(문짝의 테두리 측면)를 45로 해달라는 이야기인 것 같다는 것이죠.
"네, 무슨 말인지 알겠습니다~!"
지금까지 한 번도 45도로 문짝 엣지를 제작해 본 적이 없기에 이해하기도 어려웠고, 제작 가능여부도 생각해 볼 엄두도 못 냈던 것이죠.
드디어 가구가 설치되었어요. 처음 제작해 보는 형태의 가구문짝의 결과물이 좀 낯설기도 했죠. 나름 예쁘더군요. 더 깔끔해 보이기도 하고요.
그렇게 가구가 설치되고, 이후 몇몇의 공정이 더 지난 뒤 전체 공사를 마쳤어요.
며칠 뒤 어느 날, 고객으로부터 전화가 왔어요.
"실장님! 이 가구문짝을 바꿔주셔야 할 것 같아요. 문짝과 문짝 사이로 속안이 다 보이는데, 이거 기분 나쁘지 않을까요?"
이게 무슨 말일까요?
고객의 말은, 손잡이가 달리지 않은 좌측문의 엣지가 45도이다 보니 문과 문 사이로 보이는 내부 공간이 보기 싫다는 것이었어요. 아니, 45도로 제작되면 필연적인 것인데?
그동안 가구설치를 이미 살펴봤고, 입주까지 마쳤고, 가구 안에 옷과 각종 수납품을 집어넣기도 했을 텐데...
이제야?
결국, 미팅 때 제가 처음 제안한 방향대로 다시 제작을 요청하는 내용인 것이죠. 오 마이 갓!
여러분, 가구는요, 속장(몸체)보다 문짝 또는 싱크대 같은 경우 상판과 같이 외부에 보이는 부분의 마감 자재가 더 고급이에요. 그리고 이 마감자재에 따라 각 가구의 견적이 좌우된다고 봐도 무방하거든요.
그런데, 다시 교체해 달라니요.
9개가 되는데, 전체 가구 값의 거의 삼분의 일이 되는 비용이 발생해요. 어떻게 해야 할까요?
교체해드려야 해요.
공사마진을 줄이면서 해드려야 해요.
오늘만 공사하고 말 것이 아니라면, 훗날을 생각해서라도 고객 요청에 맞춰드려야 하는 것이죠.
그리고, 대략 5~6 주간 소통하고 지내온 고객과의 인연도 참 소중하기 때문이죠.
고객과 업체 간 소통의 오류가 크고 작게 발생하는 것, 각자의 입장이 다르게 부딪치는 일은 늘 있을 수 있는 일이에요.
어떤 일, 어떤 관계도 마찬가지라 생각해요.
시작도 중요하고, 과정은 더 중요하지만, 끝맺음이 좋지 않으면 무색해진다는 사실요.
그래서 저는 내일도 친절!
그렇게 고객을 만나러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