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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헤븐 Apr 28. 2024

속마음

아이가 아프다...아니, 아픈 '것 같다'...



몇 주 전 큰 병원에 갔었다. 소아 청소년과였다. 신체적 발달적 문제는 없다는 것을 확인 받고 내심 나는 안도 했었다. 그 후 다시 일상을 지냈다. 이젠 제법 혼자 샤워도 하고 친구와도 문자로 짧은 대화를 주고 받는 아이의 모습을 곁에서 지켜보며 나는 그대로 아무 일 없다고 생각했다. 아무 것도 아니라고. 별 일 없다고. 우리 아이는 문제 없다고.



돌이켜 생각해보니 아이는 언젠가부터 전반적으로 몸에 기력이 없는 듯 무게중심을 잡지 못한 채 곧잘 넘어졌었다. 먹는 양도 갑자기 줄었고 좋아하던 간식이나 군것질 조차 전혀 먹지 않고 그저 영유아 시절부터의 애착인형들만을 붙들고 소파에 누워 있는 순간들이 많아졌었다. 무엇보다 새 학년과 새 담임선생님, 학습과정을 힘들어했다. 공개 수업때 보았던 아이의 표정은 밝지 않았다. 집에서와는 너무 다른 모습이었다. 조용하고 차분했다. 수줍어하고 소극적이라고 느껴질 정도로. 그럼에도 나는 사실 이 모든 현상들에 대해 생각했었다. 큰 일 아니라고. 그저 키우면서 누구나가 거치는 과정들이라고. 학기 초에 다가오는 경미한 성장통일 뿐이라고. 그랬다. 그랬었는데...



아이들과 외출한 그이로부터 다급히 전화를 받았었다. 갑자기 둘째가 걷다가 또 넘어졌다 했다. 그것도 이상한 점이지만 더욱 놀랐던 건 바깥에서 산책 후 돈가스를 먹다가 갑자기 사라져서 찾아 보니 아이는 식당 밖에 쪼그러 앉아 있다 했었다. 토를 심하게 한 채로. 그리고 토사물이 너무 많이 묻어서 스스로 옷을 뒤짚어 입은 아이는 냄새가 날까봐 식당에 들어가질 못하고 밖에 있었다 했다. 그이는 직감적으로 느꼈던 걸까. 아이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 같은, 부심...엉뚱하지만 나는 내심 안도했다. 그이는 확실히 좋은 아빠라서. 내가 좋지 않은 엄마라 아빠 만큼은 대신 좋은 부모라서. 그래서 너무 다행이었음을.



아이에게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걸까. 내가 관찰하지 못한 건 무엇일까. 지난번에 심하게 혼을 내었던 것이 내내 마음에 걸려서 여러모로 둘째 아이의 마음에 최대한 정서적 안정감을 주기 위해 조심 또 조심 한다 했지만 사실은 내가 했던 모든 행동은 '틀렸다'... 확실히 나는 지금 틀린 채 아이에게 그 무엇도 해 주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아니, 있는 '것 같다' 가 아니라 확실히 못하고 있다라고 말하는 게 적확한 표현이지 싶다. 



아이는 몸이 아니라 마음이 아파지고 있는 상태 같다... 이 생각을 하면서 어느새 나는 근처 소아 정신과를 찾고 있다. 그리고 생각은 다시금 여러 갈래로 파생 중이다. 내일은 결석을 시킬까 아니면 조퇴를 시킬까. 아이가 좋아하는 카페에 가서 그가 평소 좋아했던 요거트 딜라이트 스무디를 사주며 대화를 나누어 봐야겠다고. 집에서 하는 대화와는 달리 조금 다른 공간에서의 대화라면 내가 발견하지 못한 어떤 실마리를 찾을 수 있지 않을까 라고.



여전히 내 눈물샘은 마르지 않는 상태로 좀처럼 그칠 줄 모른다. 작년 이 맘 때는  수술실 앞 보호자 대기의자에 앉아 그이의 수술이 몇 시간이나 지연되는 걸 지켜보며 내내 울었었는데. 올해는 여러모로 또 다른 난관들과 조우하며 눈물을 삼키는 시절을 통과하고 있다는 느낌이다. 그러면서 떠올린다. 지금 내가 가장 집중해야 할 건 다른 게 아니라 지키는 일이라는 것. 아이의 마음. 그리고 그런 아이를 대하는, 여전히 조용히 자주 자책하면서 무너지고마는 이 마음이라는 것을...



사랑해서 미안해...



아이가 아프다고 생각하는 지금 이 단편적 망상이 부디 거짓이길 바란다. 아이는 아프지 않을 것이다. 대신 내가 아플 것이다. 이미 충분히, 그리고 앞으로도. 이 세계 이 우주 모든 안 좋은 것들은 부디 내게 다가오기를 매일 은밀히 신께 바라고 있기에. 대신 신은 아셔야 한다. 그 대가로 절대 아이들에게만큼은, 나의 그이에게는...더 이상 그 어떤 아픔도 그 어떤 해도 끼쳐선 안 되노라고. 그것이 신과 나의 거래 계약조건이라면. 나는 이미 충분히. 다 잃을 각오가 되어 있음을. 그리하여 신께 오늘도 나는 청했다. 



다 잃어도 단 하나를 지킬 수 있다면 나는 이제 어떻게 되어도 늪에 빠진 채 내내 사는 형국이여도 정말이지 아무 상관이 없음을. 그러니 신은 아셔야 한다고. 내게서 다 빼앗아가시길. 시간. 영혼. 에너지. 마음. 모조리 드릴테니. 만약 아이의 마음이 무너지는 중이라면 그것 하나만 지켜 주시길. 날 엉망진창으로 만드셔도 충분한 각오가 되어 있는 나는 그리하여 신께 간청했던 것이었다. 붉어진 눈을 깜빡인 채. 무슨 이야기를 하고픈 지 스스로도 잘 모르게 되어 버릴 만큼. 입술을 꽉 깨문채. 볼을 타고 흐르는 눈물을 닦고 또 닦으며. 내게서 뺴앗아가시되, 그들을 지켜 주심을. 부디 마음을 무너뜨리시되 아이는 건드리지 말아 주심을. 



신이 어리석인 인간의 목소리를 들으신다면 아이는 분명 괜찮을 것이다. 괜찮겠지. 그렇겠지. 그럴 것이다. 그렇게 만들 것이다. 아무 일도 아니다. 아무 것도 아니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아무 것도 일어나지 않았다. 아무 것도 달라지지 않는다. 아무도 달라지지 않았다. 아무 일도 없을 것이다. 그렇게 만들 것이다. 아무 것도. 아무도. 아프지 않을 것이다. 아프지 않다. 그렇게 만들 것이다. 아무도. 아무도... 



단 한 사람. 그 한 사람을 제외한 채. 그 누구에게도. 나의 그 누구에게도. 내가 그렇게 만들 것이다. 아무 것도. 아직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고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일어나지 않는다. 괜찮다. 아무 일도 아니다. 이깟 시간. 정말 아무 것도 아니다. 정말로. 정말 아무 것도 아니다. 아무것도. 아무 일도 없을 것이다. 모두 무탈하다. 모두 지켜낸다. 모두 아프지 않다. 모두 아프지 않을 것이다. 그렇게 만들 테니까. 그런데 사실은 말이다. 지내는 연기를 하며 살다가도 가끔 혼자 정신 없이 울어버리는 멍청이 같은 때문에. 아이가 대신 아파지는 것이라면.  아마 나는 나를 용서할 수 없겠지....... 사실 다 나 때문이라서. 확실히 내 탓이라서. 정말이지 확실히 내가 그렇게 만든 것 같아서. 당신이 아파졌던 것도. 평생 약을 먹어야 하는 것도. 아이의 마음이 무너지는 것도. 자신감 없이 축 늘어져 있는 건 모두 다 내 탓을 알아서. 머저리 같은 사랑할 자격 없는. 나 때문이라. 이런 나라도 오늘도 사랑을 허락한 세 사람 앞에서 나는 여전히 자주 무너지고  만다. 너무 미안해서. 너무 부족해서. 잘 하는 게 정말이지 아무 것도 없어서..



사랑해서 정말 미안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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