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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헤븐 Apr 09. 2024

양가성에 대한 소고

잔뜩 떨어진 밥풀, 한 입 베어 물다 남은 스팸 조각, 먹다 만 김치부침개에서 튀어나온 오징어 다리의 파편, 비피더스 사과맛이 묻은 찐득해진 식탁 의자, 부루펜 시럽이 덕지덕지 묻은 플라스틱 꼬마 약병 4개, 오줌 때가 묻어 있는 변기, 세면기에 붙어 있는 치약 덩어리, 물바다가 된 화장실 바닥, 제 자리를 잃어버린 채 여기저기 누워 있는 문제집과 연필, 지우개와 스케치북. 짧은 머리카락들이 군데군데 달려 있는 베개들, 햇빛에 비쳐 그제야 모습을 드러내는 블라인드 위를 덮친 그윽한 먼지들. 산재한 빨래. 돌리는 세탁기.  얼마 지나지 않았던 것 같은데 그새 다 된 빨래와 꺼내서 제자리로 돌려놓으라는 듯 또 다 되었다는 신호를 알리는 건조기의 신호음. 이 와중에도 멈추지 않고 열심히 자신의 몫을 하기 위해 흐르는 시간. 어느새 도착을 알리는 아이들의 씩씩한 발소리와 '엄마' 하는 우렁찬 외침. 잘 다녀왔는지, 학교에서 무슨 일 없었는지, 머리는 아프지 않았는지, 코막힘은 여전한지, 오늘의 건강상태는 어땠는지. 그리하여 다음 질문은 어떤 간식과 저녁이 기다리고 있는지에 대해. 



입은 말을 하지만 머리는 이미 다른 생각을 하고 있다. 몸은 냉장고와 주방에 가 있지만 마음은 딴 데 가 있는 것이다. 듣다 만 동영상 강의와 읽다가 멈춰야 했던 책. 좀처럼 나가지 못하고 마는 진도와 계획들. 줄기차게 다가오는 사소한 가사들을 빨리 해치우면 되겠지 싶어서 몸을 한시도 쉬지 않고 움직이지만 좀처럼 끊김 없이 영원히 움직여야 할 것 같은 제자리걸음과 도돌이표 같은 가사의 연속. 시시포스의 형벌이라는 습관 같은 핑계적 생각도 이제는 지긋지긋해서 혼잣말조차 나오지 않는 시간. 없어지지 않은 약 봉투들. 챙겨야 하는 사람 둘. 아니 셋. 은밀히 없어지고 싶다는 생각을 해 버리고 마는 시간, 눈에 어느새 고여 있는 물 덩어리. 



침 한번 꿀꺽 삼키면서 눈을 질끈 감았다 뜨며 심호흡을 한다. 그리고 생각했다. 여전히 나는 사랑을 잘하지 못하는 편에 속한다는 것을 직시하면서. 이것은 어쩌면 반성이자 다짐일까. 사랑을 제대로 하는 사람이라면 자신의 시간, 몸, 마음, 모든 것을 내어주고도 아낌없이 '그런 생각'은 쉽게 하지 않을 텐데. 왜 아니겠는가. 사랑하는 사람들을 두고 도리어 없어져버리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는 것은 마치 사랑하지만 사랑하지 않는 것과 같은 모순의 경계 속에서 갈팡질팡 헤매는 인간이나 다름없을 테니. 아, 그렇다면 나는 글러먹었다. 여전히 헤매고 마니까... 



몇 주 아니 작년 말부터 몇 달 내내 차원이 또 남다른 환멸과 우울의 터널을 통과하는 중이다. 퇴사 후 겉으로 보이기엔 공식적인 '전업주부'가 되어서 살아내고 있지만 여전히 무언가 설명은 잘 되지 못하는 '일'을 만들어서 해 보는 중이다. 그중 압도적인 시간은 역시 읽는 시간. 조금 난이도 있는 공부를 마음먹고 하고 있기에 결국 텍스트를 읽고 생각하고 이해하는 시간이 절실히 필요하지만 이런 나의 절박감과는 달리 현실은 내 편이 되어 주지 않는다. 물론 기대하진 않았다. 언제나 시간은 내 편이 아니었다는 걸 안다. 편가르기 하는 것도 유치하고 의미 없고. 다만 부끄럽게 인정하는 단어인 '시간 거지 엄마'로 살았고 여전히 집에 있으면서도 묘하게 그렇게 살아가고 있다는 생각에서 벗어나지 못하다는 것. 못났어도 어쩔 수 없는 노릇. 



그리하여 현재 내가 느끼는 사랑에 대한 감정은 속상하지만 엄밀히 말하여 이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부채감과 절망. 사랑을 하고 싶지만 동시에 사랑하고 싶지 않다는. 내 사랑의 대상이 도리어 내가 원치 않게 갚아 나가야 하는 일종의 '부채의식'으로 느껴지고 말다니. 정말 못나고 어리석은 마음이 아닐 수 없겠지만 나 자신만큼은 이 부채감으로 인해 묘하게 좌절을 느끼게 되고 마는 것이다. 내일은 시간이 멈췄으면 좋겠다는, 좀 극단적일 때는 삶에 대한 어떤 희망이나 의지도 솔직히 그다지 느껴지지도 않고 말지만 다만 불행인지 다행인지 기계적으로 체득된, 사랑을 지켜야 한다는 묘한 강박, 그로 인해 흘러나오는 모순된 감정, 다름 아닌 부채감이라니. 이 감정은 통상 무거운 책임을 짊어지고도 혼자 외로운 고독과 생활적 사투를 벌이느라 하루가 쳇바퀴 같아서 지치는 데 익숙하면서도 가족 앞에서는 아무렇지 않은 척을 잘해야 겨우 살아지는, 외벌이 가장의 속내와 비슷할 텐데. 그렇다면 이 감정은 그들이 느껴야 마땅한 특권인데 나는 무슨 자격으로 그 감정을 느껴버리고 마는지. 이런 생각이 들 수록 나는 나를 꾸짖는다. 사랑하기에 아직 멀었다면서. 제대로 진짜 사랑을 하기에 아직 어른이 되려면 멀었다고... 



시간은 다시 되돌아온다. 혼자 있는 유일한 오전 몇 시간이 굉장히 소중한 사람에게는 이 시간을 낭비할 수  없다는 강박에 쌓인다. 우울할 시간이 없다. 좌절할 시간도 사치다. 찐득해진 바닥 해야 하는 매일의 청소와 빨래와 설거지와 각종 정리의 연속들. 만들어야 하는 요리. 챙겨야 하는 약들. 무엇 무엇을 '해야 한다'는 동사에서 '한다'는  동사로 바꾸는 연습. 그리하여 그냥 생각 말고 일단 '한다'는 생각. 하다 보면 죽을 날 오겠지 라는 나를 향한 웃기고도 슬픈 조소. 죽음이 허락되는 순간 전 까지는 내게 그 무엇도 허락되는 것이 없다는 걸 아는 지금. 이 순간. 책을 덮고 북받치는 감정을 없애려고 조용히 키보드 위에 손을 올려놓고, 그러다 시간이 좀 흘러 바깥을 잠시 쳐다보았다. 날씨가 참 좋다. 오늘은 어제보다 더. 그리고 생각했다. 



계절은 마음과 상당히 다르게 흐른다. 겉옷은 가벼워졌지만 나는 아직도 외투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마음의 외투. 아직도 봄을 만나려면 한참 멀었지 싶어서. 입술 꽉 깨물고 눈 질끈 감았다 뜨고. 지겨운 빨래 지겨운 청소. 지겨운 요리. 지겨운 끼니. 지겨운 공부. 지겨운 일..... 반복 또 반복.... 그러나 딱 하나. 너희들만큼은 절대 지겨워하지 않을 것이다. 그럴 수 없다. 있을 수 없다. 아직은 절대 그럴 권리가 내게 없다. 있게 만들지 않을 것이다.... 양가성에 지지 않을 것이다. 다만 조용히 혼자 만큼은 뜨겁게 파이팅 하면서 살아가는 것. 살아내는 일 자체가 다름 아닌 사랑일 테니까. 






그런데 왜 이렇게 힘이 들까... 

내가 뭐라고......... 왜 자꾸 지칠까..... 사는 거 참 지겹다. 별 거 아닌 인생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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