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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헤븐 Jun 08. 2024

조용한 노력

응급실 후 바로 입원한 지 이제 이틀이 지나가고 있다. 병원에서 도리어 여유(?)가 생기는 까닭을 생각해 보니 우선 '밥'이 나온다. 맛은 없다 할지언정. 또한 거동하지 못하는 정음을 일일이 부축해서 자세를 겨우 잡을 필요가 없다. 누워 있다가도 버튼을 누르면 자동으로 앉힐 수 있는, 자세가 잡히는 의료용 베드이기에. 무엇보다 열이 나거나 조금이라도 정음의 상태에 이상이 생기면 '호출'을 할 수 있다. 바로 달려와주시는 간호사 분들 덕분에 심적 안정이 조금은 된다. 그렇지만 이 모든 것을 포기하고 싶을 정도로 정음은 병원을 싫어하기에. 아이를 생각하면 역시 입원은 '아니올시다' 일테다. 



정음은 새벽 내내 잠을 설치다가 9시가 넘도록 일어나지 않았다. 그러다 자연스럽게 기상. 이미 7시 반에 도착한 아침은 식어 있다. 물론 있어도 병원 밥은 거부하는 중인 정음. 아침 인사를 기분 좋게 하려 했지만 일어나자마자 어떤 영문인지 정음은 기분이 좋지 않다. 한껏 짜증을 부리는 아이. 달래다가 아침부터 지쳐버리는 나. 커튼에게 화풀이를 하듯 나도 모르게 확 열고 나니 창문 바깥으론 비가 내리고 있었다. 대신 울어 주는 듯한 비가 이상하게 반갑다..


창문 바깥으로 비가 내린다. 비는 하늘에서만 내리는 건 아닌 것 같아....




정음의 미열은 여전히 떨어지지 않아서 각종 항생제들이 오늘은 아이 몸속으로 많이 투여되고 있다. 맥스핌이라는 항생제는 매 간격적으로. 그리고 '반코마이신'이란 항생제 독하고 독특한 녀석이 정음의 몸속으로 처음 주입되고 있다. 하루 4회 6시간마다 들어가는 정맥 주사는 효과는 좋지만 반대로 그만큼 부작용도 상당하다 한다. 가장 흔한 부작용으로는 가려움증과 두드러기. 다행히 몇 시간 지켜보며 크게 힘들어하는 모습을 관찰하지 못해서 다행... 그 외 수치주사 중 한 종류인 '그라신'이 투여된다. 오후 5시에 맞고 내일은 오후 3시경 투입될 예정. 그라신은 호중구수 증가 촉진제다. 그래서 투입하고 피검사하면서 계속 수치 증가 치를 지켜본다. 



오늘 정음의 중심정맥관 히크만에 피부상구균이 나왔다. 그래서 항생제와 혈액응고 억제제인 헤파린을 넣고 잠가두었다. 이는 하루 2번 교체 필요. 균이 없어지기 전까지 이 정맥관을 사용할 수 없다. 그래서 정음의 왼팔엔 다시 주삿바늘이 들어갔다... 정음은 이제 주사를 아파하지 않는다. 간호사분들의 연이은 칭찬. 잘 참는 정음을 신기해하시는 분들. 그 곁에서 내내 맘 졸이며 지켜보는 나... 아이의 노력은 어른들이 보이지 않는 순간에도 내내 지속되는 중이다. 길고 날카로운 주사의 따끔하고 찌릿한 통증을 견디는 건 이제 익숙해진 걸까 아니면 정음의 노력인 걸까... 



허팝 색깔먹방과 김왼팔 도어즈 덕분에 통증들과 무료함과 좌절을 견디고 있는 너... 




병원 밥을 거부하는 정음과 밥을 먹이려는 나. 독한 약과 항생제를 하루에도 몇 번씩 맞는 정음은 밥을 먹진 않으나 대신 알고 있는 것일까. 그럼에도 뉴케어 암환자식 영양보충 음료를 매번 찾으면서 이 말을 하는 것을 보면.



엄마 수치 올라가는 음식이 뭐야

호중구는 군사라며. 나 뉴케어 먹으면 호중구 올라가는 거 맞지 



이뿐 아니다. 정음의 미열은 여전히 낮아지지 않은 채 계속 열 그래프는 호전 기를 보이지 않는다. 37.8도를 찍고 해열제와 항생제가 다시 투여된다. 겨드랑이 중간에 대고 체온을 재곤 하는데 정음은 언젠가부터 열이 자신에게 좋지 않은 신호라는 걸 아는지 걱정하는 듯 조심스레 묻는다. 



열나면 호중구 떨어지는 거야

겨드랑이가 시원하면 열 떨어지는 거지

그럼 이렇게 하면 되겠다 



정음은 어느새 만세 자세를 한다. 겨드랑이가 붙어 있으면 열이 더 나니 떼어 놓으면 열이 덜 날 것이라는 아이 나름의 생각일 테다. 열이 나지 않기 위한. 체온계가 자꾸 올라가지 않기 위한. 정음의 노력...



너의 그런 순간을 지켜볼 때마다.... 여러 감정과 마주한다... 



항암제 중 '빈크리스틴'의 대표적 부작용은 탈모다. 그리고 정음은 가장 수치가 낮은 이 시기에 서서히 조금씩 부작용들과 마주하고 있다. 오늘따라 부쩍 나도 놀랐다... 테이프클리너로 없애고 없애고 또 없애도 연신 빠지는 중인 머리카락을 어찌 막을 수가 없다. 스테로이드인 덱사메타손 부작용인 여드름성 발진은 이미 정음의 이마를 뒤덮고 있고 이젠 머리카락이 슬슬 엄청난 속도와 양으로 빠지고 있다. 



정음에게 들키지 않으려 아이가 몸을 돌리고 있을 때 재빠르게 머리 주변에 떨어진 머리카락들을 조심스럽게 테이프클리너로 없애고 있을 무렵. 그런데 정음은 이미 아는 것 같다... 그리고 아이만의 노력인지 말없이 내가 테이프클리너로 이곳저곳 닦아내고 있을 때 아이는 내 손동작에 맞춰 여기저기 머리와 몸을 돌려준다. 마치 없애도 없애도 계속 빠져나오는 머리카락 청소를 도와주듯이... 


너의 조용한 노력 앞에서 나는 송구함에 고개를 떨군다...  


정음은 조용히 분투 중이다.. 그리고 나는 아이의 노력 앞에서 언제나 고개를 숙인다. 내 고생은 고생도 아님을 알면서도. 여전히 마음 한편에는 무력하고 무능한 나 자신을 용서하지 못한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나오는 이 문장 앞에서도. 정음은 말한다. 우리의 대화 속에서도 나는 절절히 느끼고 만다. 아이가 무척이나 어른이 되었음을. 정음의 조용하고 차분한 철이 다 든 목소리는 나를 더 절절히 아프게 만든다... 



큰 도움 못 돼서 너무 미안해

아닌데. 나한테 엄마는 큰 도움인데. 



고위험군의 마지막 치료 단계는 조혈모세포이식인데 조혈모 채집을 예상보다 조금 일찍 하게 되었다. 원래라면 2차 항암 전후로 하게 될 것이라 들었는데 이번에 입원했을 때 그냥 채집을 해 두자는 결정인 듯싶다. 다음 주에 있을 조혈모 채집, 그리고 피검사 후의 수치 결과를 보고 퇴원이 결정된다. 아직까지도 정음과 나는 여러 '새로움' 들과 마주하고 있다. 그리고 정음이는 그 새로움들 속에서 조용하고도 뜨거운 노력을 해내고 있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 어느새 정음은 이렇게 어른이 다 되어 가는 것만 같다. 그래서일까. 매 순간 너에게 감사한 만큼 사실은 마음이 아프다. 무어라 말할 수 없을 정도의. 슬픔과 아픔과 미안함과 죄스러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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