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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헤븐 Jun 09. 2024

항암의 민낯 (1)

탈모, 구토, 열, 그리고 병원비... 

인생은 불공평하다. 운이 따르지 않으면 더더욱. 악성뇌종양 수모세포종이라는 병과 정말 갑작스레 맞닥뜨린 정음과 나는 5월부터 사실 절절히 느끼며 살아내는 중이다. 인생의 모순에 대해서. 인생은 확실히 불공평하다는 것에 대해서. 그야말로 '공정하다는 착각'을 통감해 내면서. 누군가들의 평범함이 우리에게는 간절한 시간이 되어버렸다. 인간이라면 기본일 수 있는 '직립보행' 조차 정음은 되지 않게 되어 버렸으니까... 개두술 종양제거수술 이후 정음은 편마비가 왔다. 물론 다행히 현재 아주 천천히 조금씩 신경이 돌아오고 있지만 상당히 부자유스럽다. 움직임이라고 볼 수 없는 움직임... 정음만 아는 고통과 좌절과 슬픔을 아이는 이겨내는 중이다. 너무 철이 일찍 든 정음은 이제 불편한 자세와 움직임도 그러려니 한다. 아이를 볼 때마다 가슴이 콱 막혀서 나는 입술을 더 꽉 깨물어야 한다. 그래야 눈물이 안 나니까. 그래야 아무렇지 않게 씩씩한 엄마를 연기할 수 있기에...



5월 말부터 항암 1차를 시작했다. 그리고 회복기를 거치는 중이지만 퇴원 3일 만에 열패턴이 기이하여 응급실에 왔고 다시 입원하여 현재 격리 중이다. 정음이에겐 아직 세상과 마주할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다... 그 대신 우리는 항암의 민낯을 서서히 경험 중이다...



탈모. 식욕부진. 구토. 무력함, 열 



기본(?) 세트라 볼 수 있는 저것들을 예상은 했다... 특히 어제부터 탈모가 급속도로 진전 중이다. 하루 만에 정음의 뒷머리는 거의 맨살이 보이고 있다... 새벽에 아이 몸 주변에 수북이 쌓인 머리카락을 테이프 클리너로 떼어내고 떼어내고 또 떼어내면서 울컥했다. 숨죽여 울었다... 예상했던 일이었는데. 별 거 아닐 거라고 그냥 넘길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경험하니 이 모든 순간들과 마주할 때마다 내 심박수는 가속도로 쿵쾅 질 중이다... 



점점 머리카락이 없어져간다는 걸 정음은 아직 모르는 것 같아서....다행이다...


점점 저체중이 되어 가는 정음이 너무 걱정스럽다. 뉴케어에만 의지해서는 독한 항생제들을 버티지 못할 것 같아서 밥을 먹이려 애쓰지만 사실 정음의 마음도 모르는 건 아니다. 구내염 초기일까. 입천장이 까끌하고 목 넘김이 힘드니 음료조차도 190ml 한 팩을 마시는 것도 힘들다는 걸 안다. 그래도 호중구 수치를 생각하면서 정음이는 노력한다. '음료 마실래'라고 하는 걸 보면... 



그러다 오늘은 피자를 먹고 싶다 해서 작은 사이즈의 피자를 먹였다. 그 조차 한 조각 수준이지만. 아이가 맛있게 먹는 걸 보고 너무 기뻤다. 그러나 그것도 한순간이었다. 한 조각 먹고 목이 말라서 영양보충 음료를 다 마시는 정음. 그런데 그때. 대토를 하고 말았다. 생각해 보면 음료든 피자든 주는 게 화근이었을까. 정음이가 그랬었는데. 



'근데 엄마, 나 이거 먹고 토해도 괜찮아?'

'억지로 안 먹어도 되고. 토해도 되고 다 괜찮으니까 정음이 편할 대로 하자' 



나의 무능함을 연신 탓하는 중이다. 아이에게 무엇이 최선일까를 늘 궁리하지만 늘 실패로 돌아가는 것 같다. 일단 뭐든 먹고 싶은 걸 주자는 마음으로 정말 주기 싫지만 여러 불량(?) 한 것들을 그때 그때 주고 있다. 다디단 비락캔식혜, 하리보 골드베렌, 왕꿈틀이, 홈런볼, 죠리퐁, 양파링, 오감자, 삼각김밥, 햄버거.... 정음이 원하는 걸 주저하지 않고 뭐든 다 먹여보고 있다. 물론 한 두 입 정도로 소량을 먹지만.... 결국 그 조차 결국 먹다가 토해 버리는 정음을 볼 때. 나는 있는 힘껏 연기를 한다. 정말 별 거 아니라고. 얼마든지 토해도 괜찮다고. 정음이 먹고 싶은 거 먹었음 그걸로 충분하다고... 



대토의 흔적은 이제 점점 일상이 되는 것일까... 너무 부주의한 왕초보 간병인인 내 탓 같다... 




빈코마이신이란 독하디 독한 항생제를 쓴 이후부터 정음의 몸은 그것에 적응하기 위한 것인지 열이 좀처럼 떨어지지 않는다. 38도를 찍을 때도 이젠 잦기 시작했다. 그 와중에 정음은 노력한다. 무엇이라도 먹어보려고. 먹히지 않는 몸이라는 걸 스스로도 알면서도 영양보충음료를 찾고 시원한 식혜를 찾고. 그럼에도 먹어보려고 생각나는 과자들을 말해 준다. 또한 그 와중에 '토하면 어쩌지'라고 걱정까지 한다. 



가장 고통스러운 건 그것이다. 걱정을 한다는 것. 자신에 대한 걱정이 아닌 자신의 곁에 있는 어른들을 걱정한다는 것. 항암의 민낯이 저런 부작용뿐 아니라 정음이는 암투병을 하면서 묘하게 철이 일찍 든, 길고 날카로운 주삿바늘도 눈 한번 질끈 감고 참고 마는 착한 아이라는 것... 자신이 토함으로 인해, 자신의 탈모로 인해, 자신의 열로 인해. 엄마가 힘든지 아닌지. 할머니가 일하시는 데 방해하는 건 아닌지 아닌지. 아빠가 운전 중에 전화해서 방해하는 건 아닌지. 아이는 매 순간 어른들을 걱정한다...



항암의 민낯은 앞으로도 더 경험하게 되리라. 저런 것들은 시작에 불과할 테지.. 그뿐일까. 보이지 않는 여러 걱정거리들도 생길 것이라는 걸 나는 은연중에 알고 있다. 가정경제 자산흐름추이를 담당했던 '엄마' 로서 나는 어느새 새벽이 되면 계산기를 두드리니까. 



병원비...



항암의 민낯 중에는 '돈'과 관련된 어마무시한 타격이 있다. 산정특례를 받았기에 기본 약제비나 통원비는 크게 들지 않는다. 그러나 입원이 상당히 잦고 - 응급실행과 입퇴원의 연속 - 앞으로 있을 양성자 방사능 치료나 무엇보다 몇 천만 원은 기본인, 운 나쁘면 수 차례에 걸쳐 치료 시 억 대는 기본으로 넘어갈 법한,  고가의 비급여 약제 사용 등등. 경제적 타격도 각오해야 하는 조혈모세포이식까지. 



여태껏 수술비와 전원 후 각종 검사 및 입퇴원 병원비 등을 계산해 보면 아직 천만 원(?) 수준이지만 앞으로 길이 멀 것이다... 당장 원친 않았지만 2인실에 격리 중이니 18만 원짜리 2인실에 일주일만 있어도 - 우리는 또 일주일 이상 있어야 할 것 같다... -이거저거 해서 입원할 적 마다 최소 200만 원 넘는 건 언제나 기본일까. 그리고 먼 미래여도 재활비에 기타 등등 감안하면...



1억



아마 이 병 앞에서 이 숫자를 기준으로 각오해야 할지도 모른다고. 나는 혼자서 어느새 계산기를 두드린다... 속물이어도 어쩔 수가 없다.... 



원치 않아도 격리해서 입원하면 몇 백은 기본이 되어 버렸다... 건강은 결국 정말 자산이다........ 



그럼에도 정음을 지킬 수 있다면 그 모든 민낯을 앞으로 속속들이 마주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나는 그럴수록 오스카 수상자 뺨 칠 정도의 연기력을 다져야 할 것이다. 정음이 앞에서. 가족들 앞에서. 이미 엄청난 지각변동이 일어나고 있는 정음이의 고난도 인생에 대해. 조력자이자 지지자이자 주 간병인으로서. 나는 오늘도 혼자 있는 잠깐의 시간에 엄청나게 몰아닥치는 감정들을 이겨내면서.... 그저 앞을 향해 나아갈 궁리를 해내는 중이다. 



어떻게 하면 이 항암의 민낯들을 잘 통과해 낼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네 앞에서 더 밝아질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울지 않을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무너지지 않을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나와 널 지키며 나아갈 수 있을까... 

어떻게 해서라도. 나아가야 한다. 웃으면서. 울지 말고 웃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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