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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헤븐 Jun 10. 2024

너의 움직임

힘내 정음아... 눈물겨운 네 분투를 기억해 두며 

오전에 영양사 선생님이 오셨다. 준멸균식으로 나오는 병원밥임에도 먹지 않는 정음에게 이것저것 먹이고 있다는 말을 하며. 이래저래 영양 불균형이라 걱정이 되어서 이것저것 여쭤보는 나... 그 후. 정음의 오늘 끼니는 전주비빔밥과 소고기고추장 삼각김밥, 비락캔식혜, 포카칩 5조각, 뉴케어 200ml



그중 제일은 외할머니의 찐 고구마였다. 스스로 먹으려는 정음. 왼손은 아직 부자유스럽고 거의 움직여지지 않는다. 그나마 오른손이 움직여지기에 중심을 겨우 잡으며 흔들거리는 와중에 아이는 분투한다. 너의 분투에 나는 찢어지는 마음을 뒤로한 채 다만 밝은 목소리로 네게 말한다



할머니 고구마 맛있지. 

힘내 정음아... 



고구마를 먹는 정음... 너무 자랑스럽다.. 



어제 백혈구 및 호중구 수치는 0을 찍었다. 그러나 입원 후 매일 맞는 그라신 덕분에 호중구는 0에서 300으로 늘어났다. 300... 아직 1,000이 되려면 까마득하지만. 원래 수치 낮은 시기이니 이 정도도 감지덕지. 앱을 통해 매일 정음의 팔에서 뽑아대는 피검사 결과를 확인한다. 백혈구와 적혈구, 혈소판과 ANC 수치. 그리고 열 그래프를 그린다. 다행히 열이 36도 전후를 왔다 갔다 하다가 방금은 37.2도를 찍었다. 잠시 두근거리지만 조금씩 호전을 보이는 것으로 믿을 뿐이다. 



조혈모 채집은 하지 않기로 했다. 항암 2차 후에 좀 더 건강한 수치였을 때 하기로 결정. 다만 이번 입원의 목적은 중심정맥관에 감염된 균 제거를 위해 독한 항생제를 매일 4시간 간격으로 맞고 있기에. 그것과 감기 바이러스의 호전이 목적... 빈토마이신은 너무나도 독한 녀석이다. 그럼에도 정음에겐 아직 큰 부작용은 발견되지 않는다. 다행이다... 





오늘은 전화통에 불이 나는 하루였다. 정음을 돌보며 동시에 각종 행정 처리를 좀 하려 했기에. 앱과 노트북을 통해 6월 말에 있을 포장 이사 견적을 낸다. 한 10군데 연락 후 견적 방문 일시 체크. 그리고 몇 군데에서 도착한 견적서도 포함, 엑셀 파일로 하나 만들어서 가족 단톡방에 날린다.. 



소아암 재단 및 백혈병 재단과 연락을 했다. 감안은 하고 있었지만 경제지원 혜택은 받지 못한다는 컨펌을 한번 더 했다. 조혈모세포이식 혹은 재활비 정도는 조금이라도 지원받고 싶었는데 결국 아웃되는 듯한 기분. 아무튼 뭐든 확실하게 알고 넘어가지 않으면 못 베기는 이놈의 성격 탓에 피곤함은 더하면 더했지 덜하진 않는다...  



퇴근 후 달려온 그이와 잠시 교대 후 이 글을 쓰면서 하루를 복기하는 중이다. 남편도 나름 고군분투다. 성격 상 회사에 민폐(?) 끼치기 싫어하는 너무 성실해서 탈인(?) 직장인이라, 남편도 나름 힘들다는 걸 모르지 않는다... 우리 부부의 24시간 생활 패턴은 확실하게 달라졌다.... 점점 더 달라져가고 있다. 



잠시 교대하는 순간의 내 아지트는 이번엔 이곳이 되었다. 7층 소아병동 휴게실....





오로지 단 한순간을 위해 나아가는 중이다. 그저 정음이가 조금씩 나아지는 순간들을 소중하게 생각하면서.... 아이가 처음 홈런볼을 손으로 집어 먹었을 때. 고구마를 먹으며 흔들거리는 손을 겨우 지탱하면서도 먹으려는 분투를 해낼 때.



속으론 울지만 겉으론 활짝 웃는다. 나는 여전히............ 무능한 나 자신을 용서할 수 없고. 나는 여전히. 아이를 내가 망쳐 놓은 것 같아서 죄책의 늪에서 빠져나오지 못하지만. 이런 나라도 나는.... 정음이에게 말한다. 



힘내줘서 고마워 정말 고마워........

힘내 정음아......



홈런볼 먹는 너... 우리 인생의 만루역전홈런을 위해.... (머리카락 다 빠지기 전이었지...정음아 힘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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