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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헤븐 Jun 12. 2024

너의 뒷모습, 나의 속마음

밤하늘 보고 오열했던 어제가 지났다... 

비락캔식혜와 찐 고구마 1/3개. 포카칩 3조각, 홈런볼 15알. 그리고 삼각김밥 반 개. 아이가 가장 좋아'했던' 건 원래 참치마요였는데 입맛이 바뀐 걸까. 어느새 매콤단짠인 전주비빔밥이나 소고기고추장을 더 찾는다. 물론 먹는 것 마저도 새 모이 수준에 불과한 소량, 그것도 불량하다고 볼 수밖에 없는 음식들. 응급실 후 바로 입원한 이후 며칠은 식욕이 없어서 거의 먹지 못하다가 그저께부터 정음은 조금씩 먹으려 하기에 비록 불량해도 일단 먹이고 보자는 주의지만 먹는 모습을 보면서도 나는 내내 좌불안석. 



어제 오후 5시, 여느 때처럼 정음은 목말라했고 식혜를 찾았다. 원래 같았다면 뉴케어나 마이밀을 찾았을 텐데. 지난번 그걸 마시고 바로 대토를 한 순간이 강력한 기억으로 남겨졌던 걸까. 정음은 도통 영양음료도 마시려 하지 않는다. 그래도 줄 수밖에. 아이에게 식혜를 건네려 준비하던 즈음. 정음이가 말했다. 


해 진다 엄마. 저거 봐. 

아....



해 뜨고 지는 걸 창문 밖으로 본다... 유리벽으로 바깥을 구경하는 너는 얼마나 답답할까...



2인실에 거의 격리하다시피 하는 우리는 창문 밖으로 지는 해를 바라보았다. 너무 멋진 풍경... 기이할 정도로 넋이 나가 바라볼 지경의 순간. 그러나 동시에 심장이 쿵쾅거리더니 금세 눈물이 쏟아질 뻔 한 걸 꾹 참았다. 너무 멋진 풍경 때문에? 그럴 리가. 언제나 내 감정을 동요시키는 건 '아이'의 존재였는 걸. 그리고 지난달 5월 1일부터 아마 앞으로 내 남은 인생은 더더욱 정음이 덕분에 여러 굴곡진 희로애락을 진하게 경험하게 될 테지... 어제도 그랬다. 지는 해가 너무 멋져서가 아니라, 바로 너의 뒷모습으로 인해서 심장은 다시 쿵쿵 뛰기 시작했으니까. 



수술 자국과 네 뒷모습이 이상하게 눈물겨웠어...



수술 자국. 


아이의 뒷모습은 그 모든 5월의 악몽 같던 시간의 기억들이 모조리 담긴 주홍글씨 같은 것 같아서. 심박수가 괜히 높아지고 눈물이 나려 했던 건 그 때문일 테다.. 정음은 두 차례에 걸쳐 수술을 했다.  MRI 찍자마다 그다음 날 급히 뇌압 낮춰야 사니 수두증 수술. 그리고 며칠 지나 종양제거수술. 개두술을 한 이후 정음은 왼발 왼손을 못 쓰는 편마비가 왔었다. 그뿐일까. 밤엔 섬망증상을 보이며 기괴한 말을 뿜어댈 정도로 성격도 변했었다. 



악성뇌종양 수모세포종. 정음의 진단명은 C로 시작하는 코드를 지닌 '암'에 속한다. 그렇다. 우리 아이는 어느 날 갑자기 고위험군 소아암 환자가 되어버렸다. 소뇌충부에서 자라 뇌실을 가득 채우고 주위 소뇌 반구까지 침범. 5cm가량의 정음의 소뇌의 종양은 제거했어도 뇌간 잔존 종양이 아직 남겨져 있음. 뇌척수액을 따라 암세포는 전이, 그래서 처음 전원해서 요추천자 할 때 MTX 항암제를 넣었던 걸까.. 여하튼 이런저런 여러 증상으로 인해 두 개수술 그 이후엔 정음에게 운동장애가 더 도드라졌으니. 사실 머리를 여는 수술이라 함은 의료인이 아닌 나 라도 상식적으로 예상할 수 있는 후유증이 많다. 정상 뇌조직의 손상과 부종이 발생할 염려가 있는 엄청 위험하고 중요한 수술. 정음이도 수술 이후 여러 신경적 조정 문제, 인격 성격 변화, 말하기 사고에 변화, 경련 단기 증상등을 많이 보였다. 그래서 참 힘든 5월이었는데 어느새 그런 한 달이 지나고 이제 6월이라니...



병동으로 돌아가는 길, 밤이라 그랬을까. 한참을 주저 앉아 울었다...



남편이 퇴근 후 달려와 1시간 정도 교대를 해 준다. 그 틈을 타 나는 정음이가 유일하게 먹는 (아니 마시는) 식혜를 사러 근처 하나로마트를 향했다. 저녁 8시... 어느새 여름이 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밤공기가 그리 차갑지 않았다. 6월 밤, 여름의 향기... 하늘엔 초승달이 보였다. 그리고 나는. 



결국 울었다. 길에 멈춰서. 크게. 정말 크게 울었다. 바나나 초코파이와 비락캔식혜 5캔이 든 장바구니가 왼쪽 어깨에서 툭 하고 떨어졌다. 그 와중에 남동생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무슨 정신으로 받았는지 모르겠다. 전화를 끊고 다시 눈물 닦고 병원을 향해 가는 길에서도. 



자꾸 울었다. 자꾸 눈물이 났다. 멈출 수가 없었다. 왜였을까. 여러 이유들이 있지만 그중 단연코 정음이의 뒷모습이 내내 생각나면서 생각이 끊김 없이 흘러넘쳤기 때문이겠다. 지는 해를 내내 바라보며 너무 예쁘다고 하던 너. 그러나 창 밖을 나가 그 해를 직접 볼 수 없는 너. 같이 손 잡고 걸으면 너무 좋은 밤공기. 그러나 그럴 수 없는 우리. 이미 예전의 모든 평범하고 별 거 아닌 순간들을 순식간에 빼앗겨버린 정음. 그리고 나... 생각은 겹친다. 인생의 확실한 모순을 경험하면서. 



좋은 밤공기. 아름다운 풍경. 

슬픈 뒷모습. 아름답지 않은 어리석은 엄마의 나약해빠진 후진 생각들. 



초승달과 멋진 밤하늘.... 다시 같이 볼 것이다.



어제가 지나 오늘 아침. 9시가 지났음에도 정음은 여전히 자고 있다... 밤새 더 머리카락은 빠져있다. 그리고 아이는 잠꼬대를 한다..


엄마 기억을 지울 수 있는 방법 좀 찾아봐줘 



무너진다........ 매 순간, 무너진다. 나의 마음은 여전히 그러하다. 그러나 울지 않는다. 울 수 없다. 오늘은 시작되었고 다시 아이 앞에서 나는 씩씩하게 웃으며 말한다. 


기억을 지울 수 있는 젤리가 있는지 찾아볼게

아참, 오늘 베베토 주문한 거 오는 날이야. 정음이 베베토 먹고 싶다 했지! 

분명 몇 개 먹고 안 먹을 거니 나머진 엄마가 다 먹고 꿀꿀이 되겠네. 

.........





정음이의 뒷모습을 보던 어제. 그리고 기억을 지워달라며 칭얼대며 잠을 자다 깨는 중인 너를 지켜보며. 마음을 정돈시킨다... 그리고 중얼거린다. 



별 거 아니다. 

정말 별 거 아니다...............

별 거 아녔으면 좋겠다. 아직도 악몽 같은 이 모든 순간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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