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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헤븐 Jun 13. 2024

입원을 견디는 방법 (1)

 정음 편

5/2 MRI 후 바로 입원, 뇌종양 수모세포종 의심 1차 가진단

5/3 수두증 1차 수술

5/8 종양제거 2차 개두술, 악성뇌종양 수모세포종 확정 판정

5/9 중심정맥관 PICC

5/10 중환자실에서 일반특실 이동

5/22 병원 전원, 퇴원 후 재입원

5/24 중심정맥관 히크만 및 요추천자 등

5/27~5/29 A플랜 항암 1회 차

6/3 빈 크리스틴 항암 + Brain PET 후 퇴원

6/6일 밤 응급실 후 재입원, 중심정맥관 포도상구균, 아데노 바이러스 발현, 격리 입원 시작



한 달... 열심히 달리고 있다. 앞으로 그 한 달이 몇 년이 될 지 모를테지만. 암 투병하는 너와 간병하는 나. 우리 두 사람의 입원을 견디는 방법을 터득해가면서...





퇴원하자마자 다시 입원한 정음은 코마이신 항생제와 수치주사 그라신을 몸에 주입시키며 백혈구와 호중구 수치를 늘려가고 있다. 인위적인 방법 이외에 소아암 환우가 되어 버린 정음에게는 달리 방도는 없지만. 병원에서 무엇을 먹일까 늘 고민하면서도 실상 해줄 수 있는 게 너무 없는 나로서는 매일 속으로 애를 끓는 중이다... 그 와중에 정음이 좋아하는 건 불량해도 눈을 질끈 감고 주려는 노력 하. 정음이의 입원을 견디는 방법 중 하나는 그저 아주 소량이어도 본인이 좋아하는 무언가를 입에 넣는 즐거움을 느끼는 것. 이번 입원 생활 중 단연코 아이를 웃게 만든 요인 중 하나는 다름 아닌 '베베토 젤리'였다.



엄마 나는 사실 하리보보다 이게 더 좋았어.

그러게 진작 사줄걸.. 미안해 하리보만 좋아하는 줄 알아서. 이제야 네가 좋아하는 걸 알게 돼서...


입원 다시 하자마자 좌절이었는데... 유일하게 네가 처음 웃었던 건 이 곰돌이들 덕분이었어..



영양붕괴가 너무 걱정되어 뉴케어뿐 아니라 사실 성인 환자용 경구경관용으로 조제된 약제품의 일종인 '엔커버' 처방을 요청해 옥수수맛이든 밀크맛이든 받아는 두었지만 생각해 보면 그저 뉴케어든 엔커버든 영양을 액상에만 의존하다 보면 아이는 금세 고형식을 먹지 않게 될 것이라 그 마저 많이 먹이지 않으려 노력한다. 그러면서 동시에 내적 갈등이 시작되는 것이다. 오늘만 해도 삶은 달걀 2개와 고구마 1/4개 정도가 세끼 중 먹은 전부였던 너에게. 액상 영양보충제마저도 먹이지 않는다면 왠지 너무 불안해서. 안 먹이자니 걱정되고 먹이자니 자꾸 의존하는 것 같아서. 무엇을 해도 좌불안석..





입원생활을 견디는 정음의 방법 중 단연코 오른팔이 이제 제법 더욱 활발하게 움직이기 시작할 즈음엔 태블릿으로 유튜브를 시청하는 것이다. 그러다가 어젯밤부터는 아이가 평소 즐겨했던 게임을 깔았다. 그런데 주책없는 나도 참. 게임을 '다시' 시작하는 아이의 모습에서 묘하게 뭉클해져서 괜히 또 눈물이 왈칵 쏟아질 뻔했다.



비록 불편한 자세에 모든 게 불편해진 현실에서도. 네가 입원생활을 견디는 방법중 최고 효자는 태블릿일지도 모르겠어..



평소에는 너무 게임을 하는 것 같아서 잔소리를 해 대는 나였지만 이제 우리의 현실과 일상은 너무나도 달라졌기에. 게임을 온전히 할 수 있는 '신체'를 간절히 바라게 되었기에. 비록 비스듬한 자세로. 무척 불편한 몸과 손이었음에도. 덜덜 떨리는 팔에도 근육을 힘차게 움직이면서 애써 버튼을 누르려는 너의 모습에서. 정음이의 게임을 '다시' 하는 모습에서 나는 울컥했지만. 애써 마음을 누르고 생전 처음 '현질'을 하며 한번 더 스스로 자책하고 말았다. 진작에 해 줄 걸. 그깟 현질이 뭐라고.. 이제야 해 주는 나는 너무 미련한 엄마... 라면서.



이거 내가 제일 좋아하는 거야. 엄마 이거 봐

그러게... 엄마는 진짜 바보야. 이제야 알았네. 우리 1일 1 현질 해 보자!

... 그래도 돼?

그래도 돼!

괜찮아 엄마. 이거 만 원 안 넘어

...넘어도 되! 비싸도 되! 100 만원어치도 한번 질러 보지 뭐! 하하하

안 되 엄마. 그건 너무 비싸.

.....(철이 너무 든 네 앞에서 나는 언제나 무너진다...)


조금씩 천천히 다시 돌아오는 모습과, 훤히 수술자국이 드러나는 네 두상에서 여러 만감이 교차하고 만다.



그나마 먹고 싶었던 젤리 알을 우물우물하는 달콤한 순간과 게임과 유튜브를 하면서 무료한 시간을 버티는 것이 정음의 일상이 되어 버렸다. 그러나 오늘은 그 마저도 오래가지 못했다.  먹고 싶은 생각도 없을뿐더러 보던 영상, 하던 게임조차 중간중간 중지하면서 괜히 눈시울이 붉어지며 내게 묻곤 했다. 그리고 난 정음이의 반복되는 질문에 마음이 참담해졌지만 내내 연기해야 할 뿐이었다. 아이의 불안이 어디에서 발현되는지, 그 근원이 짐작되어서 무척이나 힘들었으니까...



엄마, 사람은 죽어도 환생하는 거 맞지

응. 엄마는 종교는 없지만... 다시 태어난다고 믿고 있어.

믿는 거야? 그럼 확실한 게 아니네?

근데 왜 환생하는 게 궁금해졌을까 우리 정음이...

그냥 확실하게만 대답해 줘. 사람은 죽어도 다시 환생하면 다시 같이 살 수 있지?

.... 정음아... 물론이지! 엄마는 나중에 다시 태어나면 정음이의... 강아지로 태어나겠다! 멍멍! 웃기지!



정음이는 오늘, 많이 웃지 않았다... 입원 생활을 견디는 방법 중 젤리와 게임과 유튜브로 시간을 채우려 애썼음에도. 도리어 '환생'에 왜 꽂혔는지; 시종일관 오후부터 내내 자주 그런 질문을 해서 난처하게 만들었다...



입원 생활은 언제나 길든 짧든 이제 정음에게는 피하고 싶은 공간이 되어 버렸다. 아이는 병원에 있으면 불안해한다. 먹지도 않는다. 특히 오늘처럼 괜히 자신이 스스로 '환자'가 되었다는 생각, 어떤 병에 확실히 걸렸다는 생각. 다 빠져 버리고 만 머리카락을 만지면서 '나 근데 머리카락이 너무 없는데 엄마'라면서 목소리가 떨렸을 때. 그다음부턴 어떤 영문인지 '환생'에 대해서 자꾸 묻는 아이.



어떤 대답을 해도 의구심을 지닌 채 내내 의심하던 정음의 마음을 조금 안도시켜 준 건 다름 아닌 남동생이었다. 원래 외삼촌 말이면 곧잘 믿고 따랐던 정음이었으니까. 교단에서 학생을 가르치는 교수가 되어버린 남동생 덕분에. 동생과 영상통화를 연결시키고, 그전에 동생에게 이러저러 이야기를 맞추어 정음의 내적 불안을 달래주실 것을 부탁해 둔 터라. 다행히 작전(?) 은 먹혔고 정음은 삼촌과 통화를 하고 난 뒤 그제야 환생타령(?)을 일단락 지을 수 있었다...





이번 주말에 퇴원을 앞두고 있다. 조혈모 채집은 2차 항암 뒤로 미루기로 했다. 이번의 퇴원하자마자 다시 급작스러웠던 격리 입원이 중심정맥관에 침투한 균 제거 및 호중구 수치 증가 및 발열 및 아데노 바이러스 치료를 위함이었다면 며칠 쉬고 다시 시작될 입원은 2차 항암을 위함이다. 원래 출퇴근을 해야 하지만 왕복 사정 및 정음의 상태 상 입원을 고려해 주시길 간청했고 컨펌 대기 중...



이래나 저래나 다음 항암을 위해 우리는 다시 입원을 대기 중이다. 아마 퇴원하자마자 며칠 지나지 않아서 또 시작될 테다. 이제 정음과 나는 '집' 보다 '병원'이 익숙해지고 있다. 전연 익숙해지고 싶지는 않지만 현실은 그저 흐름에 맞춰 변하고 있는 중이다. 4인가족이 함께 하는 생활은 5월부터 무너졌다. 이미 정음은 병원 병실의 딱딱한 침대가, 나는 그 옆 바닥과 거의 붙어 있다시피 한 보호자용 긴 의자 위에서 웅크리며 쪽잠을 자는 밤이 일상이 되어 간다...



입원 생활을 견디는 방법은 아마 조금씩 진화(?) 해 나가겠지. 아직은 모든 게 처음이고 그리하여 초보이고 이제 그저 투병이든 간병이든 우리 두 사람에게는 어떤 새로운 세계로의 '게이트'가 열린 수준 일 테지만. 정음이가 젤리를 우물거리며 태블릿을 하는 모습을 보면 조금은 안심이 되고 그 속에서 어떤 희망을 얻는다.



피할 없는 시간이라면 되도록 좋은 마음으로 견뎌내고 싶다... 이 모든 시간들을.

물론 솔직한 나로서는 아직은 그리 넉넉하고 좋은 마음이 솔직히 막 생기지 않아서 무척 고되지만... 



네가 씩씩해서 나는 늘 송구스럽다... 언제나 철이 든 네 앞에서 나는 아이가 되고 만다.. 미안하고 고마운 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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