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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헤븐 Jun 14. 2024

입원을 견디는 방법 (2)

엄마 편 

응급실행 후 급 입원을 한 지 8일 차가 되는 오늘, 그리고 내일은 드디어 퇴원이다. 중심정맥관에 감염된 포도상구균은 반코마이신 덕에 어느 정도 해소된 듯싶다. 아침에 부랴부랴 씻고 나오자마자 지정의 교수님과 마주한다. 



이런 일이 자꾸 생기면 곤란합니다. 



아니겠는가. 가정 간호 시작하자마자 열패턴이 들쭉날쭉 항암 수치 낮아지는 바닥상태에선 감염에 더 취약한 암환자 정음을 위해 만전을 함에도 이상 현상이 생기면 어쩔 없이 병원에 의지하게 되고 만다. 그럼에도 이번 입원으로 인해 점점 레슨런이 생긴다. 역시 경험으로 체득되는 시간은 자체가 귀하다. 입원 생활을 견디는 법도 어느새 차곡차곡 쌓아진다.





투병하는 정음처럼, 간병하는 엄마인 나 또한 나름의 입원 생활에 조금씩 적응하는 중이다. 아니 솔직히 말해서 여전히 적응이 쉽지 않은 부분들도 있겠다만 어찌 되었든 인간은 생존에 민감하고 이 시절을 굳건히 지나가려면 나름의 적응이 필요한 법. 내게도 몇 가지의 입원 생활을 견디는 방법들이 생겼다. 



하나, 글쓰기. 



정음이가 자고 있을 때 혹은 친정어머니나 남편과 아주 잠시 교대하는 한 시간 정도의 휴식(?) 시간엔 으레껏 노트북을 연다. 이것저것 찾아보기 위함도 있지만 나도 모르게 어느새 키보드 위에 열 손가락이 올려져 있다. 몇 십분 만에 순식간에 글이 채워진다. 아주 오래전, 출간책 초고를 작성하려던 순간이나 문학 공모전에 출품하기 위한 글들을 쓸 땐 그렇게 써지지 않던 글이. 이상하게도 몇 십 분 만에 엄청난 속도로 슥슥 적어내려 지는 걸 보면 역시 글쓰기의 원력은 나로서는 스트레스(?)와 좌절(?) 이 아닐까 싶다; (부끄럽지만 솔직한 이유...) 



저장만 해 둔 글들이 많다... 쓰고 있을 때 그나마 숨 쉴 구멍이 생긴다. 



둘, 친정어머니의 도시락 



친정어머니는 비전문가지만 동시에 전문가 버금가는 살림 요리 솜씨를 지니신 그야말로 무시무시한 만능 워킹맘이셨다. 지금은 현업에서 물러나셨지만 대신 살림 실력은 날로 만렙을 찍고 계신다. 그리하여 어느 날 갑자기 손주가 소아암 환우가 되어 버렸을 때. 어머니는 자처해서 식이요법과 청결 및 위생 관리를 함께 돕겠노라 하셨다... 너무 감사하면서도 마음 깊이 송구스러운 건 아마도 그녀에게 진 빚이 여태껏 그리고 앞으로도 너무 많기 때문이겠다... 어머니가 병원으로 공수해 주시는 딸을 위한 소박하지만 정성 담긴 샐러드 도시락, 그리고 입맛 없어진 손주 위한 식사 간식거리들... 입원 생활을 앞으로도 견디게 만들어 주는 너무 값진 선물...



직접 만드신 과일 드레싱 소스와 샐러드통, 그리고 빵순이 딸을 위한 빵 바구니들.... 



셋, 바깥 풍경, 하늘... 



정음과 내가 가장 기다리는 순간 중 하나는 해 질 녘이다. 해가 진다는 건 시간이 지나간다는 뜻. 우리가 지난 5월부터 단 한 번도 집에 돌아가지 못한 채 한 달 정도를 꼬박 병원에서 지내면서 우리는 어느새 '시간'이 지나감에 대해서 서로 암묵적으로 기다리게 되었다. 시간이 지나갈수록 나아질 수 있다는 희망적 믿음, 그리고 시간이 지나가면 다시 병원에서 집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무언의 기대. 


그래서일 테다. 시간이 지나간다는 명징한 증거가 되는 순간은 다름 아닌 해가 지는 풍경. 비록 창문 밖으로 밖에 볼 수 없는 우리임에도 그 풍경은 입원생활을 견디게 만들어 주는 아주 귀한 장면이 되었다... 하루가 무사히 지나갔다는, 잘 지내 주었다는 위로 같이 들리는 하늘의 목소리 같아서. 동시에 정음의 호전을 바라며 내내 좌절하듯 우울했던 마음이 잠시나마 풀리게 되는 순간. 이렇게 입원 생활을 견디는 간병 중인 엄마... 



하루가 지나갔다는 확인을 받는 것 같아서.... 묘한 위로가 된다. 이 시간의 하늘, 해...



넷, 정음이... 


그러나 무엇보다 입원 생활을 제일 견디게 만들어 주는 건 다름 아닌 아이의 존재 그 자체다. 두 번째 입원 후 거의 먹지 않은 요즘이어서 그런지 오늘 아침 체중은 무려 하루 만에 1.5kg가 쑥 빠져 있었다. 걱정이 태산이었지만 그런 엄마의 마음의 애끓는 마음을 눈치챘을까. 오늘은 그나마 소량이어도 고형식 밥을 먹어 준 아이.  먹고 싶은 마음이 아주 드는 건 아니었겠다만 주는 음식을 뱉거나 싫다 하지 않고 꼭꼭 씹어서 먹는 정음이의 모습은 결국 이 험난할 병원 생활을 계속해서 견디게 만들어 주는 최고의 순간이다.



온갖 야채와 소고기를 다 넣어 참기름 범벅으로 만든 주먹밥... 다 먹어줘서 얼마나 기뻤는지 눈물이 핑 돌 뻔; 




며칠 쉬고 다음 항암은 입원합니다. 



언제나 그러하시듯 이른 아침 지정의 교수님은 짧지만 명료한 메시지를 남기시고 사라지셨다퇴원과 동시에 다음 주 목요일, 우리는 다시 또 입원을 한다. 정음이는 벌써부터 걱정이 산더미다. 어느새 어른들 사이에 주고받은 단어도 재빠르게 기억해 낸다. 또 입원하면 균배양 검사를 해야 하는지. 그러면 어느 쪽 팔을 또 찌르는지. 또 아픈 건지. 그 외에 여러 걱정거리들을 한 움큼 마음에 담아둔 모양인지 오늘 정음이는 거의 웃지 않았다...



다만 정음만의 입원 생활을 견디는 방법으로 오늘도 베베토 젤리를 우물 거리며 태블릿으로 시간을 견뎌내고 나는 이렇게... 잠깐의 틈을 통해 몇 십분, 키보드로 오늘의 간병 일기를 기록하고 바깥 풍경과 정음이의 얼굴을 내내 바라보면서 입원 생활을 지내는 중이다. 



항암 2차는 5일 차 항암제 투입이라 들었다. 동시에 이번엔 조혈모 세포 채집도 예견된다. 이 또한 긴장되는 시간. 모든 처음은 나로 하여금 좌불안석하게 만든다. 여전히 불안과 안타까움과 울컥함은 마음 한편에 살아 있어 끝내 소실되지 못한 채 내내 남겨져 있다. 하지만 동시에 생각하고 만다. 좋지 않은 감정은 천천히 희석시켜내 보자고. 정음과 나. 우리만의 방법으로. 그리하여 나는 지금. 속으로 내내 중얼거린다. 



견디고 또 견디다 보면. 

기다리고 또 기다리다 보면. 

분명 더 좋아질 거라고. 아니 이미 좋아지고 있다고.

그런 믿음 없이는, 견딜 수 없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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