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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헤븐 Jun 21. 2024

왜 하필 너에게

사랑해 고마워 그리고 너무 많이 미안해...늦게 알아서 너무 미안하다.

악성뇌종양 수모세포종이었던 정음은 뇌압이 상당해서 MRI 찍고 입원하자마자 개두술을 급히 했었다. 최종 C71 코드로 판정, 후속치료는 방사능뿐 아니라 암세포를 파괴하는 약물 치료인 항암화학요법은 필수. 물론 모든 뇌종양에서 항암화학요법을 시행하는 것은 아니라지만, 정음의 종양은 보통은 아닌 놈일뿐더러 수술로도 떼넬 수 없었던 치명적 부위인 뇌간 잔존 종양의 존재로 인해 정음은 뇌종양 중 악성 고위험군 소아암 환우가 되어 버렸다..



항암 플랜은 입원 혹은 통원의 주기별로 항암제를 투여한다. 지난번 1회 차에 이어 이번에도 정음은 5박 6일가량 입원을 하여 항암 2회 차를 맞이하였다. 이번 항암제는 지난번에 본 녀석이자 정음의 탈모를 발생하게 한 주원인이 된 빈크리스틴(vincristine)이 똑같이 투여된다. 그 외 에토포시드(etoposide), 카보플라틴(carboplatin), 이포스파마이드(ifosfamide)도 보인다. 지난번 첫 항암 때 보았던 사이클로포스파마이드(cyclophosphamide)는 이번에 투약되지 않는다.



여전히 병동에서도 게임을 즐기고 평소와 다르지 않아 보이지만 어딘지 축 늘어지고 기운이 없어 보이는 정음을 볼 때마다 마음이 미어진다. 달리 어떤 말로도 위로는 되지 않으리라. 나는 묵묵히 지켜볼 뿐이다. 그러면서 부작용이 부디 덜 발현되기를 기원할 뿐... 정음에게도 나에게도 여전히 반갑지 않은 공간이라는 건 두 사람 모두 본능적으로 느끼고 마는 걸까. 나도 모르게 어떤 상황에서는 심박수가 뛰고 가슴이 답답해지면서 동반되는 울렁거림과 솟구치려는 눈물은 여전해서 큰일이다. 그런 면에서 언제나 정음은 나보다 어른이다. 언제나 너는 어른이었다. 날 반성하고 속죄하고 사죄하게 만드는, 내 인생 최고의 어른... 



 

부들부들 떨리면서도 오른손으로 애써 숟가락질을 하려 하는 너는 내 스승이다. 언제나.... 그럴 것 같아... 






작년 기준 중앙암등록본부 자료에 의하면 대략 우리나라는 27만 건 (277,523건)의 신규 암이 발생, 그중 뇌종양, 상병코드 C71로 시작하는 암은 남녀 기준 총 1,854건, 전체 암 발생 중 0.7%를 차지한다고 한다. 소수점.... 그 안에서도 19세 이하 소아청소년 뇌종양은 총 154건, 이 중에서도 9세 이하는 79건... 극 소수라 해도 과언이 아닌 이 확률적 발생 통계수치 앞에서 나는 솔직히 무너진다. 그리고 자꾸만 이 문장을 떠올리며 신을 원망하고 또 원망하다 말미엔 나 자신을 괴롭히고 만다... 



왜 하필 너에게. 왜 하필 나의 아이에게.  



이 문장은 아직도 마음속에서 지워지지가 않는다... 알면 알 수록 병일까. 소아암 소아뇌종양 관련 공부를 틈틈이 할수록 나는 솔직히 아직까지도 절망을 감출 수 없게 되고 만다. 아직 마음 챙김이든 간병이든 무엇이든 초보 입문자이기 때문일까. 아니면 도무지 거짓말이길 바라는 '숫자' 들 때문일까... 소아청소년 뇌종양은 소아 백혈병 다음으로 발생 빈도가 높다. 1년 기준 약 200명 정도가 국내에서 발병, 의학이 좋아졌다고는 하나 실상 치료 성적은 백혈병 및 다른 소아청소년암에 비해 저조한 현실인 소아뇌종양... 



그러나 자책하거나 원망하거나 소위 '운다고 달라질 건' 정말이지 아무것도 없다. 그저 앞을 향해 꼿꼿하게 전투사처럼 나아가야 할 뿐이다. 밀려오는 감정을 차단시키려 부단히 애쓴다. 그러면서 동시에 이성력을 동원하여 '넥스트'를 생각할 뿐이다. 곧 다가올 양성자라든지 언젠가 맞이하게 될 조혈모세포이식이라든지.... 예후가 나쁜 고위험 악성 종양과 치료 후 재발한 환자 등에게 고용량 항암화학요법 후 자가 조혈모세포를 이식은 필수라 이를 염두하지 않을 수 없다. 이처럼 머리는 계속 앞을 향해 나아가는 중일뿐이다. 생각을 하고 각오를 하고 다짐을 한다. 그래야 감정을 차단할 수가 있다. 물론 동시에 밀려오는 새로운 감정 때문에 매일 혼자서는 피눈물을 흘려버리고 말지만. 



잠드는 걸 무척 무서워하던 너라서. 왜 그런지 알 것 같아서 매번 나는 무너진다...




'왜'라는 단어를 지우려 애쓴다. 대신 매일 순간 바보 같은 나는 지혜롭기를 간절히 신께 청한다.

정음과 함께 하는 순간 자체만 생각하고 그 시간에 큰 감사를 할 수 있기를. 이미 충분히 고마운 마음만 지닌 채 아이가 보내는 별 것 아닌 듯한 일상의 메시지 하나하나에 웃고 또 우는 순간에 크게 고맙다...



주사가 좋을 리 없지..ㅠ  
할머니 걱정 하는, 어른 보다 더 어른인 너...
왼손의 불편함도 승화시키는 대단한 너...ㅠ 고맙다




그럼에도 솔직히 나는 여전히 이 모든 시간이 종종 꿈 같이 느껴지고 만다. 좀처럼 깨어날 수 없는 악몽 같다... 대소변 받아내고 세끼 챙기고 겨우겨우 양치 가글 시켜내고 후들후들한 손으로 히크만 부분 확인하고 매시간 열체크하고 가끔씩 무너지는 정음의 분한 마음을 달래다 연신 마음 쓸고 땀 흘리는 일상들. 그렇게 간병하다 보면 금세 시간이 지나가버려서 이도저도 생각하지 못한 채 파김치가 된 몸을 이끌며 일상을 지내면서도. 또 하루는 갑자기 온 마음이 무너지고 말아서 있는 힘껏 눈물을 참고 누워 잠든 정음을 바라보다 눈물을 연신 쏟아내기 일쑤인 나날들.



뭐라고 형용할 수 있을까. 이 감정은 정말이지 무어라 표현할 수가 없어서 정말 갑갑하고도 참담하다. 터널에 갇힌 채 마냥 오직 직진만 하는 것 같은 시간. 내내 마음 한편에서 나를 짓누르는 자책과 타오르는 후회의 과거들. 동시에 자꾸 산발적으로 떠오르는 여러 단어들... '암생존자' 라 표현되는 여러 학회의 논문들이나 각종 협회의 아티클들... 읽지 않으려 부단히 노력하면서도 어느새 나는 틈만 나면 저녁에 그런 것들을 찾아 읽는다. 정말이지 이렇게나 미련한 게 바로 나란 인간이다... 그 시간에 정음이 얼굴을 한번 더 보고 대화를 나누어도 모자랄 판에... 



하루가 지나갈 즈음 떠올린다. 그저 이제 딱 하나의 소원만을 바라보며 앞을 향해 나아가는 중이라고. 네가 성년이 되는 20살의 그날. 우리 같이 근사한 곳에서 맥주를 마시게 될 그날... 웃는 너와 나를. 가슴이 미어질 정도로. 간곡히 바라며... 



오늘도 고생했어 정음아

언제나 매일 고마워... 미안하고 또 미안해... 아무 것도 대신 해 줄 수 없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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