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3일 오전 9시. 퇴원 당일 정음의 혈액 수치 결과가 기준 이하였다. 백혈구 1.69 (정상 3.8~10.58), 적혈구 2.68 (정상 4.23~5.59), 헤모글로빈 7.8 (13.6~17.4), ANC 호중구 1.52 (정상 1.57~8.3) 예상된 수치였고 다만 다행히 백혈구 내 감염 예방에 대한 군사 역할에 대한 호중구 수치는 0.5면 위험한 수준인데 아직까지 선방, 다만 혈소판 헤모글로빈 수치가 낮아서 우선 퇴원 전 수혈을 하기로 했다.
2시간 정도 걸리는 수혈을 하면서 뇌 PET 검사를 했다. 왔다 갔다 하다 보니 어느새 퇴원 시간, 오후 2시 전에 나가야 했기에 부랴부랴 짐을 싸고 아이를 잠시 간호사에게 맡기고 1층 원무과로 내려가 13일 치 병원비 약 500만 원을 수납했다. (산특 적용, 추후 병원비를 비롯한 보험 관리 내용은 따로 정리해보려 한다...)
마침 가는 날이 장날, 부동산 계약일도 퇴원일과 같아서 그이와 친정어머니는 행정 처리 후 오실 예정, 동시에 나는 온라인으로 2차 계약금을 송금시킨 후 정음을 휠체어에 겨우 태우고 그 모든 짐을 정리해 두고 우선 병실을 나와야 했기에 흔들거리는 정음의 목을 지탱시키면서 되도록 사람 왕래가 적은 - 그럼에도 어디 가나 북적대는 병원이었지만 - 채혈실 근처 구석 벤치에서 정음과 함께 어머니와 그이를 기다리면서 나는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다... 다만 정음을 무사히 태우고 친정 집으로 안전하게 도착하는 생각만 했을 뿐. 이제 먼 미래를 생각할 수 없이 두뇌가 세팅되었나 보다. 미래를 미리 걱정하다 보면 아무것도 진행시킬 수 없다...
퇴원 후 엘리베이터가 있는 아파트가 있는 친정으로 왔다. 그리고 정음의 거처는 대형 TV가 있는 거실이 되었다. 바닥에 매트리스를 깐다. 그 주변으로 정음의 기본 위생용품들이 정리되어 있다. 물론 아무리 정리해도 너저분함은 어쩔 수 없다. 거실은 정음의 먹고 쉬고 노는 자리가 되었다. TV로 유튜브를 보거나 먹는 즐거움 덕분에 정음은 현재 항암 1차 후 회복기 시간을 견디고 있다...
거동하지 못하는 정음의 의식주 및 모든 생활패턴을 책임지기 위해 현재 두 여자는 분투 중이다. 친정어머니는 가사 살림 요리 등을 담당, 나는 정음의 기타 주 간병 책무자... 사실 어머니가 더 힘드실 걸 안다. 그렇다고 신세를 지지 않을 수도 없는 노릇, 이미 암 발견 초기에 편히 쓰시라고 카드 한 장을 드렸지만 어머니는 그 카드를 쓰지 않고 계신다. 도리어 친정 식구들은 정음의 퇴원 전후로 신형 갤럭시 태블릿을 비롯한 식기살균건조기 및 내 핸드폰 또한 최신 기종인 S24+로 바꿔 주셨다; 친정 가족들의 나와 정음을 향하는 마음에 큰 감읍함을 느끼면서도 동시에 자꾸만 무거워지고 미안해진다... (비교의식마저 생겨서... 괴롭기도 하다... 나만 아는 감정이겠다 )
세끼와 중간중간 수시로 간식을 챙겨 주는 일. 3종류의 가글을 4회 이상 수시로 시켜주고 기저귀 및 대소변을 챙기는 일. 히크만 카테터에 방수 테이프를 부착시키고 살살 샤워를 시키는 일. 갑자기 짜증을 내거나 좌절하는 정음을 달래면서 감정을 차분하게 잠재우는 일. 아이의 눈물을 닦아 주는 일. 리모컨으로 수시로 정음의 요청대로 유튜브 검색을 해 주는 일, 그 외 기타 등등... 거동을 하는 아이여도 암환자를 대하는 생활은 쉽지 않은데 거동을 하지 못하니 간병 레벨은 최소한 5배는 더 큰 노동을 요구하고 있다. 허리와 목을 아직 확실히 가누지 못하기에 일일이 누운 아이를 앉혀서 자세를 잡는 데 걸리는 시간도 의외로 에너지 소비가 상당하다... 그야말로 해보지 않고서는 알 수 없는 시간...
아이의 체중이 현저한 저체중인 상태라 항암 받는 몸 상태를 위해선 우선 뭐든 먹여야 한다. 아이가 수시로 먹고 싶어 하는 걸 그때 그때 만들어 주든가 사러 나가야 한다. 친정어머니는 백방으로 분투 중이시고 나는 나 대로 미안하고 죄송한 마음과 동시에 짜증을 부리는 정음을 달래는 데 실패하면 동시에 내 감정도 흔들리고 말아 아이 앞에서 한숨을 쉬고 만다. 그럼 더욱 좌절하고 화를 내는 정음, 그러다가 다시 감정 추스르고 유튜브 방송이나 먹을거리 같은 화제로 이야기와 감정을 겨우 순회시켜서 상황 종료...
퇴원 후 첫날, 그럼에도 우당탕탕 시행착오들을 거치면서도 정음과 나, 그리고 친정어머니 세 사람의 분투는 의외로 순항(?) 중이라고 생각하면서. 잠시 짬을 내어 글을 쓰는 지금...
내일은 정음의 외래다. 퇴원을 했지만 퇴원을 했다고 하기 뭐 할 정도로 외래가 잦다. 수시로 피검사를 하러 다니고 부자유스러운 몸과 잘 보이지 않는 눈을 위해 재활의학과 및 안과 등 여러 진료과들의 협진 외래도 잡혀 있다. 공간만 바뀌었을 뿐 여전히 병원을 자주 들락날락해야 한다... 정음을 휠체어에 태우고 1층까지 내려가서 다시 차에 태우는 일, 주차를 하고 휠체어에 태우고 다시 채혈실과 외래과 등 병원 이곳저곳을 가누지 못하는 목을 겨우 잡으면서 살살 휠체어를 끄는 일...
소아뇌종양 수모세포종으로 고형암 치료 환자로 분리된, 일시적 장애 판정을 받은 아이를 간병하는 일엔 적응은 한참 멀게만 느껴진다... 아직까지 최적화(?) 된 동선을 찾지 못한 채 - 아마 앞으로도 완벽함은 찾지 못할 테지만 - 그저 매일 하루를 아이와 함께 통과하고 있다. 단 하나의 원칙을 마음에 간직한 채로.
감염 주의. 열 체크. 호중구 수치 확인
정상 세포를 동시에 손상시키는 항암 화학요법과 앞으로 마주하게 될 양성자 방사선 요법엔 부작용을 각오해야 한다. 부작용은 치료 직후에 생길 수도, 일주일 혹은 열흘 후에 생길 수도, 심지어는 몇 개월에서 수년 후에 생길 수도 있다. 무엇보다 치료 후 호중구 수치 낮아지는 주기를 조심해야 한다. 정음이가 스트레스를 받지 않도록 만전을 다해야 한다. 그래야 하는데..... 퇴원 첫날부터 가글을 하다가, 누운 아이를 앉히다가, 자세가 틀어지거나 해서 불편함을 호소하다 짜증을 내는 정음을 달래는 데 온 에너지를 쏟다가 나도 모르게 나오는 한숨을 아직까지 숨길 수가 없다....
적응 초기, 여전히 갈 길은 멀고 시간은 다만 흘러가는 중이다. 지금 정음은 허팝 색깔먹방과, 어제... 하필 퇴원날과 겹친 외할아버지의 생신을 뒤늦게 소소히 챙기기 위해 케이크를 사러 잠시 외출하신 할머니의 장바구니를 궁금해한다.... 그리고 나는.... 이 모든 적응기 안에서 부디 큰 이탈 없이 세 사람의 무탈함과 평온을 바라고 바랄 뿐이다.
친정어머니, 정음, 그리고 나... 우리 세 사람의 분투는 이제 막 제대로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