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원 하루 전, 일요일. 정음이 눈을 떠 '엄마' 를 찾는다. 그 전에 먼저 일어났어야 했는데 전날 피곤했는지 나도 잠결에 일어나 얼른 하루를 시작한다. 재빨리 손을 씻고 내 몸 부터 청결히 한 이후 정음을 맞이한다. 아이의 열과 기저귀 체크 및 소변 확인 후 간단히 상하체를 씻기고 환복을 한다. 침구 시트를 갈고 정음의 아침 섭식 상태를 확인 후 간단한 대용식으로 절편 1조각과 프로틴 음료를 먹였다.
그리고 정음은 토했다...거의 먹은 것을 다 토했다. 먹은 건 적었는데 나오는 건 상당량. 토하다가 기도가 막히지 않을지 노심초사 안절부절. 정음의 마음이 침체되지 않도록 '별 거 아니야' 라는 말을 습관처럼 연신 내 뱉으면서. 재빨리 물로 입을 행궈내고 가글을 해내고 옷을 다시 갈아입히고 침구 시트를 다시 갈고. 어떻게 시간이 지나갔는지 모르겠다...
정음이 자는 동안 남편에게 전화를 했다. 토한 걸 치우기 위해 여분 수건을 다 썼으니 되도록 오전에 빨리 교대를 잠시 했으면 하는 말. 그이를 기다리면서 국가암정보센터에 접속 해 읽다 만 컨텐츠를 읽는다...그러다가 이상하게 힘이 빠져서 노트북을 덮었다. 정음을 멍 하니 바라보았다. 그러다 간호사가 오셨다. 인기척에 정음이도 일어나고 히크만 소독을 했다. 이번엔 메딕스가 아니라 테가덤 버전으로. 처음 해 본 소독 방법이었지만 제법 메딕스로 두어번 해 보니 이제 나도 적응이 조금씩 되고 있는 걸까. 손이 떨리진 않았으니까. 다만 여전히 가슴에 달린 두 줄은 적응이 쉽지 않다. 정음이 행동할 때 마다 히크만 카테터가 상당히 신경쓰이고 마니까.
부탁한 수건과 찐빵을 사가지고 온 남편과 잠시 교대를 한다. 그래봤자 1시간 수준이지만. 그 동안 나는 늘 그랬듯 본관과 별관 사이 복도 구석 테이블에 노트북을 키고 읽다 만 지식을 머릿속에 집어넣고 있는 중이다. 읽으면 읽을 수록 여러 생각이 스친다. 안 좋은 생각을 차단했다고 생각했는데. 자꾸만 오전에 정음의 구토가 떠오른다. 토사물을 치우면서 생각했던 찰나의 분함과 좌절과 슬픔도 떠올린다. 연신 밀려 오는 좋지 않은 생각들을 애써 지우려 애쓴다. 그러면서 눈은 여러 문장들을 읽어 헤치우는 중이다. 공부하고 또 공부해도 모자라다. 결국 경험으로 모든 걸 터득하게 될까. 인생은 결국 실전이니까. 아무 것도 속단할 수 없다.... 그러지 않으려 애쓴다...
암생존자는 약 243만 명으로 우리나라 기준 약 4.7%를 차지한단다. (2021년 기준). 그 중 소아청소년(0~19세) 암의 5년 상대생존율은 86.3%라 하나, 병원에서 고위험군에 속하는 소아뇌종양 환자의 생존율을 주치의선생님은 50% 로 말씀해 주셨다. 그 수치 마저도 방어하기 위해선 결국 간병 하는 부모의 '관리' 가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것. 특히 '감염'. 내 머릿속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요주의 포인트...
백혈구의 수명은 7~14일. 이미 1회차 항암을 투여한 정음의 수치는 이제 퇴원 후에 더 떨어질 것이다. 그리하여 감염에 몹시 취약한 몸이 되어 혈액 내 백혈구 및 호중구 수치가 감소하면 감염에 걸릴 위험이 상당히 높아지는 것이다. 그 때 보통 수모세포종 아이들은 발열이 되면 무조건 응급실을 가야 한다. 항암화학요법을 받고 나서 오한을 느끼거나 개인마다 열 패턴이 다르겠지만 평소 패턴 대비 38도 이상 소위 '고열'이 난다면 무조건 응급실로 튀어가야 하는 것이다.
암 환자의 발열 원인은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통상 감염, 종양, 약 반응이나 수혈 등에 의한 부작용이다. 정음이 뇌간에 잔존한 종양 세포 그 놈도 정음에게 발열을 일으키는 원인이 될 수 있는 각종 물질을 생성하는 요인이될 수 있을테다. 극단적으로 이해하자면 결국 '감염'은 암 환자에게 있어서 발열의 일반적인 원인이고 그것이 죽음을 일으키는 원인이 될 수 있다.... 호중구 감소증(백혈구 수치 감소)과 발열에 엄청 조심해야 한다. 기타 정음의 구강, 피부, 항문, 주사를 맞았던 부위나 조직검사 부위, 히크만 중심정맥관 삽입 부위 등에 발적이나 부종이 있는지 주의 깊게 살펴보아야 한다.
공부하고 또 공부하고 머릿속에 계속 내내 주입시키듯 외워둔다. 조금 걱정인 건 이만큼 공부를 남편과 같이 하면 좋은데 아직까지 안타깝게도 식구들 대부분은 이 정도(?) 수준 까지는 공부하지 못한다. 그저 아직 감정이 남아 있어서 잘 먹이고 잘(?) 대해주면 된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그러니 나만이라도 정신 제대로 차리고 정음을 지켜야 한다....... 남은 식구들에게는 큰 기대는 하지 않는다. 다만 그저 마음 편히 스트레스 덜 받도록 도와주는 것 만으로도.....감지덕지겠지....
정음의 열 패턴은 아직 들쭉날쭉이어서 이미 항생제를 하루 4회, 5시와 11시 기준으로 투여되고 있다. 항암 이후 소화기계 부작용으로 식욕부진, 메스꺼움과 구토 변비 설사 등이 동반되며 피로도가 쌓이는 게 다반수라는데 이미 정음에게서는 천천히 그 모든 것들이 다가오는 중이다. 이미 섭식은 장애가 오는 것인지 뭔가 넘기지 못한 채 영양보충음료에 기대고 정말 먹고 싶어 하는 것을 아주 극소량 정도로 섭식하고 있다. 물론 오늘은 그 마저도 다 토해버리고 말았지만...
지친 느낌, 소진된 느낌, 무력한 느낌, 기진맥진, 활력 없음, 집중 힘듦, 의욕 없음, 기상 후 피곤, 슬프거나 좌절한 느낌 등. 사실 나는 이미 알고 있다. 정음이 그 모든 것을 혼자 열심히 이겨내고 있다는 것을. 어느새 아이 눈에서는 자주 눈물이 흐른다. 소량이지만 빈도수가 높아졌다. '엄마 눈물 닦아줘' 라는 말을 자주 하고 있으니까...
친정 식구들도 남편 마저도 정음과 나의 이런 '일상' 을 사실 안다고 말할 수 없겠다... 잠깐 보면 그만인 그들은 오직 정음과 나만이 아는 긴밀한 일상의 교류, 열 패턴과 경미하게 다가오는 부작용의 증상들, 그런 것들을 세심하고 확실하게 관찰할 기회가 없었으니까. 설령 있다 한들 사전에 암 관련된 의학 지식 및 기타 타 환우들의 생활수기와 같은 레퍼런스 체크 등 심도 있는 스터디를 하지 않고 있는 상태에서는 쉽지 않은 게 사실이다. 나 조차도 제대로 정음을 이해하고 정음의 상태를 파악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지 늘 스스로 의심하니까.
정음이를 지키려면 더 정신을 차려야 한다. 더욱 확실하게 관찰하고 세심하고 강력하게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감염' 에 대해서만큼은 특히 더. 주의 또 주의... 그러나 나 혼자만의 주의로는 쉽지가 않다. 그래서 식구들이 좀 더 공부하고 내 말에 조금 더 귀 기울여 주고 따라와주면 좋겠는데.... 여전히 내부 분란(?) 이라든지 감정이 앞선 남은 식구들을 대하는 것이 여간 힘들다....그리하여 퇴원 후의 생활이 더욱 첩첩산중이 그려진다.
D-1. 아마도 퇴원 후에도 잦은 외래와 응급실행. 그리고 속속들이 남은 항암 플랜들과 기 예약된 양성자 치료. 기타 조혈모 세포이식에 이르기까지. 지금부터가 본격적인 시작인 기분 앞에서. 자꾸 밀려 오는 좋지 않은 생각들을 차단하려 애쓰면서. 오늘 하루. 그리고 매 순간. 정음과 함께 하는 딱 그 순간에만 집중하려 한다. 너와 함께 하는 그 순간만 생각하고 싶다... 앞 일은 생각하고 싶지 않다..너와 함께 하는 지금이 내게는 내 삶의 전부이고 아마 앞으로 살아가게 될 좌표점이 될 테다.
정음아... 이제 곧 네가 그토록 바라고 원하던 퇴원이 내일이다. 빈 크리스틴 맞고 PET 하면 집으로 가야 한다. 그리고 나는 사실 여전히 아주 많이 긴장 중이다.... 오늘은 37도 밑으로 떨어지지 않아서 더욱 마음은 묘하게 조급해진다. 또한 장마철이면 우리는 더 고강도의 치료를 하게 될 텐데. 부디 널 감염으로부터 확실히 지켜낼 수 있어야 하는데 말이다.... 그러려면 내가 더 강해져야 하는데...... 그래야 한다. 그럴 수 있다. 강해질 것이다. '별 거 아니야' 라고 이미 네게 습관적으로 말하는 문장은 사실 내게 하고 싶은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