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헤븐 Jun 01. 2024

퇴원 D-2, 폭풍 전 고요함

6월 첫날의 기록 

주말은 정음이 언제나 기다리는 요일이었다. 그러나 5월부터 지금껏. 병원에서 지내는 동안 정음과 나에게 요일이나 시간은 큰 의미 없는 숫자에 불과해졌다. 주말과 평일, 낮과 밤이라는 경계는 무효해졌다. 순식간에 예상하지 못한, 꿈에도 상상하지 않았던 어떤 시간의 블랙홀 속으로 급격히 휩쓸려갔기에. 네가 뇌종양에 걸릴 줄은 정말이지 생각하지도 못했었고 사실 그 병명은 내게 그저 드라마나 영화에서만 볼 법한 이야기였기에.



A플랜 항암 1회 차가 종료되었다. 이것은 입원 버전이었고 정음의 첫 회차였다. 그리고 다음 출퇴근 버전인 B 플랜은 회복기를 거쳐 한 달 이후에 진행된다. 예상하자면 7월이 될까. 그때 동시에 양성자 센터 외래 예약이 잡혀 있다. 또한 다음 치료 플랜에 돌입하기 전에 속속 외래가 잡혀 있다. 퇴원은 차주 월요일. 그러나 이틀 후에 다시 병원에 와야 한다. 그리고 댁 내에서 요양하듯 간호하고 있어도 조금이라도 열이 나거나 호중구 수치가 떨어진다든가 항암 부작용으로 인해 발생하는 각종 이상 현상이 발견되는 즉시에 무조건 응급실로 달려와야 한다... 사정 상 한 달 정도는 친정에서 거주해야 한다. 한 시간가량 병원에서 떨어진 거리여서 여간 조심스럽지만 일단 우리 상황에 맞춰서 모든 걸 대처해야 한다.



여전히 머릿속으로는 여러 생각들이 스쳐 지나가고 있다. 아마 곧 있을 퇴원을 앞둔 나의 불안일 테다. 퇴원일 당일 항암 약물인 빈 크리스틴을 주입시키고 뇌 PET 검사가 잡혀 있다. 입원 후 지정의 선생님께서 정음의 케이스가 고위험군인지 저위험군인지 판단하기가 애매하다고 하셨는데 아마 PET 검사 이후엔 뇌의 세세한 부분을 3차원 촬영한 결과물이 나오면 더 정확해질 테다. 고위험군과 저위험군의 생존율은 다르다... 뇌간의 잔존 종양이 있기에 다만 현실적으로는 최악을 생각하고 대비하면서 앞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정음이가 잠들 면 너의 움직이지 못하는 왼손을 자주 꽉 잡는다.... 눈물이 나려 할 때다. 새로운 습관이 생겼다........






퇴원을 앞두고 있는 주말 토요일. 정음은 일찍 일어났다. 아침에 엉덩이 부분을 깨끗하게 씻겨주다가 배변을 했다. 항암 부작용 중 가장 빈번히 예상되는 게 의외로 변비와 탈모 기타 식욕부진 구토 발열 통증 등이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정음은 천천히 그 모든 현상들과 만나고 있다. 그래도 변비약 처방 덕분에 딱딱한 토끼똥이지만 아이의 배변을 치우면서 나는 기쁨을 감추지 못한 채 나도 모르게 너무 기뻐했다. 이제는 이렇게 사소한 것들이 내 감정을 뒤흔든다. 



누군가에게는 정말 별 거 아닌 것들이 나와 정음에게는 아주 커다란 기쁨이자 슬픔이 되어 버리고 있는 것이다. 예컨대 밥을 제대로 먹는 것. 두 발과 손을 의지대로 움직이는 것. 허리와 목을 가누는 것. 두 눈이 제대로 선명히 보이는 것. 눈의 초점이 또렷한 것. 안면 근육에 문제없이 표정이 얼굴로부터 나오는 것. 열나지 않는 것.... 그런 것들.... 



정음에게 잠시 말을 걸었다. 퇴원하면 당장 하고 싶은 게 무엇이냐고. 처음엔 티브이를 보고 싶어 했지만 그러다 자주 외식하러 갔던 곳을 가고 싶어 했다. 여러 이야기를 나누다가 끝내 정음은 말했다. 그리고 나는 미어져서 더 이상 대화를 진행시키지 못했다. 


'잘 움직이고 싶어. 걷고 싶어. 


그 후 정음은 잠시 멍하니 천장을 바라본 채 있다가 잠에 들었다. 아빠가 오기만을 내내 기다리던 아이는 그렇게 주말 낮잠을 자고 있고, 나는 잠시 이렇게 노트북을 연다... 



내내 누워 있는 네 등은 매일 젖어 있다.. 몇 번이나 갈아입혀도 등은 침대에서 떠나지 못한다.. 미안하다. 그냥 다 미안하다..





퇴원 전, 폭풍 속의 고요함 같은 기분에 휩싸인 채 나는 잠든 정음을 바라보며 이 글을 쓰고 있다. 그러면서 몸은 이미 움직이고 있다. 필요한 필수 물품인 멸균생리식염수, 니스타틴 가글, 클로르랙시딘 가글, 메딕스와 테가덤, 하이파픽스 부직반창고, 포비돈 스틱, 기타 항균 소독용품들 일체와 영양보충음료인 프로틴 음료와 멸균우유 등. 필요한 물품들을 급히 주문하고 친정으로 배송시키며. 그럼에도 잠시 생각은 멈추고 또 이상한 기분에 휩싸인다... 이상한 기분. 이 감정의 정체를 도무지 알아낼 길은 없이. 그러다 다만 갑자기 쿵쾅거리는 심장을 겨우 진정시켜 낸다. 



두렵고 떨린다... 



아마 두 모순된 감정이 겹치면서 다가오는 기분일 테다. 병원에서 벗어나 집으로 돌아간다는 것에 대한 약간의 희열적 떨림. 동시에 앞으로 우리가 헤쳐 나가야 할 미래의 시간들에 대한 알 수 없는 두려움... 그런 것들일까. 



삼성서울병원 본관에서 암병원으로 가는 복도 쪽 구석에 위치한 휴게의자에 앉아서 한참 울었었다. 어제는 그랬다. 이상하게 정음과 떨어져 있는 잠시 동안은 도리어 내내 이성적이었던 내가 잠시 없어져버리고 만다. 눈물을 한껏 참고서 그저 매일 매 순간의 생활밀착형 현실적인 여러 일상들을 헤쳐 나가고 있는데 조금이라도 여유(?) 랄것이 생기면 그때는 정말 어떤 감정이 튀어나오고 마는 것이다. 눈물이 말랐다고 생각했는데 착각이었다. 핸드폰 사진을 쳐다본 게 화근이었겠다. 정음이가 두 다리로 멀쩡하게 걷고 뛰고 말을 하고 나를 쳐다보는, 그 모든 일상 속의 네 모습...



잠깐 혼자가 되면 늘 이 복도 쪽 어딘가에서 노트북을 연다..


곧 여름이 올 것만 같다... 우리가 항암과 양성자를 행하는 그 시기가 될까...



사실 어제는 친정어머니의 격앙된 감정이 기어코 그이에게 터졌다. 두 어른은 싸웠다. 정확히 말하자면 엄마의 사나운 감정을 진정시켜내느라 안간힘을 썼고 고집스럽고 융통성 없고 말 센스도 없는 고지식한 남편의 고집과 변명을 다 들어주면서 나는 일종의 부탁이라는 걸 해야 했다... 이 와중에 정말 그러지좀 말자고. 나와 정음이 생각하면 제발 좀 도와 달라고. 시댁....에 아무 기대 없으니 제발 마음 편하게만 해 달라고. 기타 등등등. 병원에서 정음이를 보면서 밤에 거의 두 시간 가량을 핸드폰을 붙잡고 소위 '중재'와 '타협' 과 '설득' 이라는 것을 해야 했다. 나의 모습을 쳐다보고 있던 정음이 내게 말했다. '엄마 싸우지 마' 라고... 그리고 나는 전화를 겨우 마친 후 터질 거 같은 눈물을 겨우 삼킨 채 웃으며 정음에게 답했다. 



'어른들이 정음이보다 못났어. 언제나 정음이가 가장 어른이야....' 



여전히 간병에만 집중할 수 없는 나의 이 상황을 견디기가 쉽지 않다...........

그리고 곧 퇴원이다. 폭풍 전 고요함 처럼 정음과 나는 주말을 평온한 주말을 보내고 있다. 섭식이 힘들어서 프로틴 음료에 의지하는 중인 정음을 바라보면서. 



나는 여전히 눈물을 참고 있다........ 

울 시간은 없다. 그 어디에도 아직은 찾을 수 없다. 아마 앞으로도 당분간은 그러할테다. 



이전 17화 임시 장애 진단서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