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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헤븐 May 31. 2024

임시 장애 진단서

퇴원 전 행정처리 1차 

5월 1일 동네 병원 뇌 MRI 소견서 접수 

5월 2일 분당차병원 긴급 입원

5월 3일 수두증 수술

5월 8일 개두술 및 종양제거 수술

5월 22일 삼성서울병원 대리 외래, 긴급 전원 및 입원

5월 27일 소아 항암 치료 시작 Day-0 

5월 29일 항암 1회 차 종료 

5월 30일 임시 장애 진단서 발급 (일시적 보행 장애 확정) 




5월은 나와 정음에게 가정의 달이 아니었다. 어린이날도, 어버이날도, 부부의 날도. 그리고 양가 아버지들의 생신도 챙기지 못했다. 다만 그저 앞만 보고 달려 나갈 뿐이었고 여전히 그러하다. 매일 매 순간 선택의 시간은 굉장히 짧고 긴급했고 다급하게 진행되었다. 여유란 없었고 눈물은 사치였다. 울보인 내가 신기하게도 점점 눈물이 없어지고 있다. 악성뇌종양에 걸려버린, 소아암환자로 분류되어 산정특례를 받게 된 정음이를 케어하는 일은 내게 하나의 거대한 '프로젝트'가 되어버렸으니. 그 프로젝트의 PM 이 되어 현재 각종 이슈(?)와 속속 생기는 여러 선택과 실행의 갈림길 앞에서 그저 주저 없이 나아갈 뿐. 온갖 감정이 허락되는 건 단 두 순간뿐. 이 간병일기를 쓰는 틈새 시간과, 잠든 정음을 혼자 넌지시 바라볼 때. 


 




1회 차 항암이 끝났다. 차주 월요일 빈 크리스틴 항암제 투여 및 PET 검사를 하고 나면 정말 퇴원이다. 본격적인 가정간호의 시작점 앞에서. 나는 퇴원 전 각종 1차적으로 준비해야 할 여러 행정처리(?) 및 준비물들을 구비 중이다. 급하게 당장 필요한 휠체어와 가정 간호 시 필요하다고 생각된 자세변환쿠션과 목욕의자를 먼저 대여했다. 근처 보건소와 지자체의 복지용구센터를 이용했다. 그리고 부동산을 계약했다. 정말 번갯불에 콩 구워 먹듯. 4인가족이 머무르며 엘리베이터가 있는 아파트가 필요했기에. 이렇게도 집을 구하게 되다니 내 사전에 있을 수 없는 일이라 생각하던 일은 역시 '있을 수 있다'로 바뀌었고 한번 더 깨닫게 되었다. 인생은 예측대로 흘러가지 않음을. 



누군가의 도움 없이는 걷지도 제대로 앉지도 못한 채 퇴원을 해야 하는 정음은 사실 현재 휠체어에도 제대로 앉기 힘든 상황이다. 거의 장애인이나 다름없는 상태. 장애인 콜택시 및 지자체 이동약자지원센터를 이용하기 위해서는 장애판정이 필요하다. 그렇지만 정음처럼 '임시' 적으로 보행장애가 확인되어 임시 장애 확인 소견이 들어간 '상급병원 진단서'가 있다면 이동약자 지원을 받을 수 있다. 이런 행정 처리들을 항암 1회 차 끝무렵부터 나는 재빠르게 알아내고 바로 실행했다. 손도 빠르고 원래 정부 정책 및 복지 관련된 내용들은 이미 알고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럼에도 실행하고 서류 준비하고 각각 서울-인천-경기도 등 3군데 지자체의 이동약자 지원 조건 및 등록 방법이 '약간' 다르기에 그 다름 들을 모두 하나하나 확인하고 서류 준비하고 접수하고 기타 등등등. 결국 수도권 내 '모두' 정음을 등록시켜 내기 위한 일들을 반나절이 걸려 해냈다... 



A. 서울시 장애인 콜택시 
- 일시적 장애가 있는 자 중 3차 의료기관(상급종합병원) 전문의 진단서 제출자에 한함
- 정음은 지원을 받아야 병원-거주처 이동이 가능하다. 그러나 이미 300명 선착순 마감이 되어 6월 말 까지 대기해야 한다.... 하..........; 이게 메인이었는데 일단 pending 

B. 인천 교통약자 이동지원센터 
- 역시 일시적 휠체어 이용 관련 진단서/소견서가 필요. 일단 등록 접수 완료 
- 다만 인천 관내 및 특정 서울 (강서)만 가능, 결국 인천-병원은 이용 불가; 혹시 모르니 접수는 해 두지만 실효성은 글쎼; 좀 힘이 빠진다...

C. 경기도 광역 이동지원 서비스
- 경기도 중 거주 관 내 별도 신청서 서류 및 진단서 등 구비 후 접수, 등록 완료, 승인 대기 중 
- 경기도 관 내 및 광역 내외 이동 가능 
- 그러나 참 이 정책이 아직 실행된 지 얼마 안 되서인지... 서울/인천/경기도 내 광역이동 사전예약제를 실시한다 하지만, 정작 서울·인천 → 경기도로 이동할 경우, 서울·인천 교통약자 이동지원센터로 결국 넘긴다; 
- 결론은, 집-병원만 이동 가능 (편도) ; 일단 아쉬운 데로 등록 

D. 기타 파파 모빌리티 등 
- 민간 서비스 확인 


.

아이 열체크 해 나가면서 진단서 떼 면서 (요구하는 기록사항이 등재된) 각종 행정처리들.... 간병인이지만 간명에 집중 못함..





혹시 싶어서 잠시 친정어머니와 교대한 틈에 병원 내 사회복지상담실을 들렀다. 정부 및 지자체를 비롯한 민간 단체들 등의 고액 치료비 및 소아암 관련 지원 내용에 대해 내가 모르는 내용이 있을까 싶어서 찾았던 것. 복지사의 말은 이미 내가 아는 내용들이 전부였고 예상한 대로 소득 및 재산 기준이 맞지 않아서 경제적 지원은 받을 수 없다는 것. 신청은 해 볼 수 있겠으나 신청하는 데 준비되는 서류들이나 그거 준비하는 시간 대비 원하는 결과를 얻을 수 없을 거라는 게 너무 자명히 보여서 깔끔하게 포기; 다만 그 외 정음이 관련된 학교, 심리상담, 가발 지원, 기타 사소한 물품 지원은 가능. 



이렇게 빠르게 다 알고 계시는 분이 없는데. 어머님이 이미 다 알고 하고 계셔서 드릴 말씀이 없네요. 



칭찬인지 위로인지 모르겠을 복지사님의 말을 뒤로하고 재빨리 나와 다시 어머니와 교대. 정음의 케어를 한다.. 그러면서 머리로는 여전히 남겨진  행정처리(?) 등을 머릿속에 그린다. 보험약관 한번 더 확인하고 준비 서류 체크하고 진단금 확인을 한다. 어차피 기약 없는 투병생활이 시작되었고 이미 병원비는 지불되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니 미리 신청해서 나쁠 건 없겠지 싶다. 그럼에도 보험 청구 앞에서 묘하게 신중해진다. 왜인지 모르겠지만. 이놈의 보험이란 언제나 가입은 쉬운데 청구는 묘한 불편함을 낳는다.  불입은 자동이체로 쉬우나 정말 필요한 고액 보험금 청구에 대해서는 사용자 경험에서 굉장히 묘한 정성적 불편함을 느끼고 만다...



퇴원 후 이사 전까지 붕 뜨는 4주 동안 어쩔 수 없이 친정에 정음과 머물기로 한다. 급히 필요한 소독용품 등을 주문하고 준비한다. 암환자용 저자극성 배스용품 및 구강용품 등을 비롯한 항암 시작되어 식사양이 급격히 줄은 정음을 위해 단백질 음료 및 멸균우유 등 대용식 준비 등. 사소하지만 모두 내 손을 거치지 않으면 준비되지 않은 것들이다. 이뿐일까... 남겨진 쌍둥이 형제 케어를 위해 사소한 학원/학교 내 공지사항 수시로 확인하고 아이 상태 챙기고 - 이 와중에 어제 넘어져서 머리와 손을 다쳤다 해서 얼마나 놀랐는지; - 기타 등등등...



부동산 잔금 처리 및 이사도 해야 한다. '애 키울 자격 없는 년'이라 하셨지만 오죽하면 그 말을 하셨을까 싶어서 이제는 모든 어머니의 문장을 이해한다... 또한 이 모든 행정처리에 있어서 친정어머니가 유일하게 현재 나의 현실적 조력자시라 더욱 감사함만 생각하려 한다. 한편 이 모든 과정들 속에서 배우자는 정말이지 아쉽게도 (화가 난다 솔직히) 간병에 있어서는 실질적 현실적 큰 도움은 되지 못한다. 이미 약 달고 사는 남편은 본인 몸 더 아프지 않고 주 가계소득 끊김 없이 부양투자의무에 대한 확실한 책임을 진다면 그 이상을... 바라지 않게 되었으니. 그런 부분이 현재 나로서는 묘하게도 굉장히 힘든.... 정말 속이 터지는....나만 아는 감정이지만. 아무튼. 어쨌든. 다만 아이에게 아빠의 존재는 큰 위로이고 힘이 돼 주기 때문에.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스스로 다독인다... 뭘 더 바라겠나..... 뭘 더 바라면 나만 힘들어 진다.......



정음의 간병노트를 따로 기록 중이다. 언젠가 네게 혹은 내게 이 기록들이 추억이 될 수 있을까...



낱낱이 기록한다... 널 위해 할 수 있는 게 별로 없어서. 이거라도 안 하면 내가 못 살 거 같다...





간병인이 되었지만 간병'만' 할 수 없다. 남겨진 행정처리와 본격적으로 가정 간호가 시작되려는 앞에서 아마 앞으로도 더하면 더했지 덜하진 않을지 모른다. 항암을 비롯한 다가오는 방사능 (양성자), 그리고 조혈모세포이식 등등의 큰 이벤트와 마주하기까지. 퇴원이 코앞이고 그럴수록 묘하게 심박수는 빨라진다. 거동 못하는 정음을 어떻게 목욕시킬지. 정음의 가슴팍에 달린 주사 두 줄이 달랑달랑한 히크만 카테터를 2일에 한 번씩 소독해줘야 하는데 잘할 수 있을지. 무엇보다 감염 주의, 거의 격리하다시피 케어할 각오로 정음의 청결과 위생을 관리할 테지만. 그럼에도 지루해하고 힘들어하고 항암 부작용 등등 정음이 잘 극복해줘야 하는데. 좌절하기 일쑤인 정음의 멘털 관리를 잘해 줄 수 있을까... 어떻게 해야 할까...



임시장애진단서를 바라보며. 당장 오늘 그리고 내일까지 해야 하는 것들을 떠올린다. 언젠가 재활을 아주 많이 걱정하며 너의 삶의 질을 어떻게 해서든 되도록 큰 이탈 없이 복구시켜주려 안간힘을 쓰겠지... 감정은 쓰나미처럼 밀려온다. 떠밀리듯 가고 있는 이 시간의 파도 속에서. 정음과 나는 오늘도 함께 한다.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하며. 5월의 마지막날인 오늘 아침을 시작한다... 잠든 너를 한없이 바라보며. 마음을 다스리기 위해 몇 십분 시간을 내어 이 글을 쓰면서.... 



구내염 시작인 건지, 내내 덥고 목이 아프다 했었다... 큰 탈 없이 퇴원까지 파이팅... 그 후가 문제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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