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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헤븐 May 29. 2024

항암 1회차 2일, 시간이 필요해  

A플랜 2일 차 5/28 , 항암 Day-1

항암 Day-0

정음의 항암은 A플랜과 B플랜으로 나뉜다. 카운팅 날짜를 Day - 0을 기준으로 한다. 첫날을 1이 아닌 0이라는 숫자로 모든 시작점 카운팅하기에 좀 헷갈리지만 주의하면서 날짜를 익힌다. 입원을 하여 항암을 맞는 것과 출퇴근(?) 하여 통원 후 5일 동안 연속으로 항암을 맞는다. 그리고 각 항암 주사 이후 3~4주 간의 '회복기'라는 것을 거친다. 


A 플랜 : 3일 입원하여 3일 연속으로 투여. 3일 지나면 4일 회복 후 7일이 되었을 때 빈 크리스틴 투여 (통원) 

B플랜 : 낮병동을 사용, 오전 8시 출근(?) 해서 항암 맞고 오후 5시 전후로 퇴근, 총 5일 연속으로 통원치료 

A와 B각 1회차 기준, 총 6회차 (A/B/A/B/A/B) 실시 

** 도중 조혈모 채집, 양성자 등 중간 중간 수치 보면서 연속 진행 유무 등 결정, 마일스톤 변경 유의


무엇보다 주의할 시기는 ANC (호중구) 수치 감소 기간. 1K 이상이면 노멀 하나 그 수치 이하면 경고, 500 기준으로 수치 낮아지면 상당한 위험. 백혈구는 우리 몸의 '군사' 같은 역할이고 이는 적혈구나 혈소판처럼 수치 낮았지만 수혈하는 방법으로 커버가 되지도 못한다. 무조건 그리하여 자생하듯 회복하는 것을 기대하는 것과 감염되지 않게 아주 긴밀하게 관리해 주는 것 외엔 방법이 없다... 병동에서 간병인으로서 해야 할 은근한 잔업들이 상당수. 그 일들을 해내면서 머릿속으로는 계속 간병수칙을 외우는 중이다. 네 몸속 '군사'를 지켜내기 위한 것들...



매일 먹은양과 배설량을 체크하고. 2회차 날에는 소변검사도 확인. 이젠 네 소독을 해 주는 것도 조금씩 적응이 된다.





항암 주사 두 번째 5/28일. 5시에 투여된다 했다. Masna라는 방광보호제와  Etoposide, 그리고 새롭게 맞는 시클로포파미드 Cyclophosphamide. 항암 시작하면서 정음의 행동 패턴이나 아픔이나 통증 호소 등 특히 아이의 문장에 주의하고 있다. 그런데 정음은 아직까지 큰 울렁임이나 통증 같은 것은 말하지 않는다. 도리어 이 점을 힘들어한다. 



'움직이지 않아. 못 움직이면 어떻게 해. 안 움직이잖아!'



왼쪽 발과 다리를 자유롭게 움직이지 못한다. 허리와 목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내내 누워있는 생활이나 침대에 기대어 앉는 수준. 물론 생존율 끌어당기기 위해 치료에 포커스를 둔다 하지만 사실 패럴 하게 '삶의 질'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기에 어제부터 '재활' 협진에 들어갔고 해당 주치의 선생님은 정음을 찾아 주신다. 


아이의 고통과 좌절과 힘듦은 '자유'에 맞춰져 있다. 자유로지 않은 몸. 자유롭지 않은 마음.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없는 24시간을 정음은 견디는 중이다.... 그럼에도 아주 차분하고 침착하게. 엄마를 비롯한 어른 가족들을 걱정하면서...






정음의 열은 37도에서 왔다 갔다 미열이 지속되고 평균 열 패턴이 아직 그려지지 않는다. 그래서 일단 항생제 투여를 결정. 그전에 균배양 검사와 피부 알레르기 체크를 하기 위해 다시 주삿바늘은 정음의 팔뚝에 닿아야 했다. 피부 배양 검사 이후 늦은 아침을 겨우 먹는다. 그리고 한두 시간이 되지 않아 점심이 배달된다. 많이 먹지 않았기에. 그리고 무엇보다 '심심' 한 정음은 다행히 식욕을 잃지 않았고 2시간 정도 이후에 바로 점심을 먹었다. 




오후 2시. 이 날은 '감염 교육'이 있는 날이다. 그이가 휴가를 내고 병동으로 온다. 친정어머니도 함께 오신다. 교육을 들을 동안 정음을 맡아 주신다. 우리 부부는 2시부터 4시까지 감염교육을 들었다. 기본적인 소아암에 대한 상식에서부터 아이의 감염 수치가 항암 후 10~14일에 가장 위험하게 면역이 떨어진다는 것. 기타 골수 기능 회복기를 약 3주 정도 가지고 다음 항암 플랜에 돌입된다는 것. 기본적인 감염 예방 수칙에 대한 것들. 가글. 좌욕. 음식. 환경. 열 관리. 기타 등등등. 



정음의 식사. 여기서 나오는 기본 준멸균식 식단표를 모두 모아두는 중이다... 




2시간이 어찌 지나갔는지 모르는 사이, 잠시 정음을 그이에게 맡기고 나는 부동산을 보러 갔다... 원래라면 항암 3일 이후 바로 퇴원인데 정음의 미열 상태와 개인 가정 상황을 이야기하며 나는 며칠만이라도 조금 더 입원함을 호소했고 다행히 며칠은 딜레이 시킬 수 있었다. 그래봤자 조삼모사. 친정어머니 도움으로 근처 아파트 물건 몇 개를 확인, 최종 후보인 3군데 집을 방문. 그중 1군데로 잠정 확정...



아무 문제가 없는 상태에서라도 부동산을 결정한다는 건 정말 신중하고 종합적으로 판단해야 할 테지만 살면서 이런 날도 있구나 싶을 정도로... 물건을 보고 마음속으로 결정을 하고, 다만 이삿날과 정음의 퇴원날은 약 4주 정도의 갭이 존재하기에 그 4주 동안은 엘리베이터가 있는 친정집 아파트에 정음을 거처시키기로 한다. 병원과는 거리가 상당수 좀 떨어져서 그것이 매우 마음에 걸리지만. 달리 방법을 찾지 못한 채 일단 해 보기로 한다. 많은 불안과 걱정은 여전히 가시지 않은 채로. 



집에서 잠시 첫째를 만난다. 힘껏 껴 앉는 나. 그대로 앉겨주는 첫째. 태권도 학원에 다녀온 아이는 나와 일상 대화를 주고받는 도중. 정신없이 여러 문장들이 다가온다. 잠시 멍- 하니 앉아 있다가 시간을 본다. 어느새 버스 도착 7분 전. 부랴부랴 집에서 나온다. 아이에게 인사를 건네지도 못한 채. 정신없이 달려서 정류장에 도착. 간신히 버스를 탄다. 9507번 삼성서울병원행 직행 버스 안에서 잠시 카톡을 건넨다. 답은 오지 않는다. 그대로 잠깐 쪽잠을 잔다. 그리고 일어난다. 아차. 하늘이 도우셨다. 하마터면 지나갈 뻔했는 데 다행히 정차 역에서 바로 눈은 떠졌다. 급하게 하차. 그리고 급하게 병동 이동. 밥을 먹이고 있던 그이와 다시 교대를 한다. 



저녁을 먹고 기저귀를 갈고 기타 등등. 정음을 케어한다. 항암은 계속 들어가는 중이다. 이 날 정음은 잠들지 못하고 내내 은은한 불안함과 짜증을 표출한다. 집까지 왔다 갔다 해서일까. 쉼 없이 내내 무언가를 생각하고 움직이고 진행시키기 때문인 걸까. 온몸이 아파온다. 무엇보다 잠이 쏟아진다. 피곤함이 급속도로 밀려온다. 정신력으로 버티다가 잠시 줄이 탁 끊어지는 기분.... 잠들지 않는 아이. 내 문장은 뾰족해지려 한다. 그러나 다스린다. 그럼에도 드라이한 문장은 어쩔 수가 없다. 아이도 느꼈을까... 느끼지 않았기를. 



잠이 안 오는데

그렇구나..

잠이 안 와. 너무 더워

온도 낮춰 달라고 얘기해 둘게. 

더워... 

그러게 덥다.. 조금만 참으면 시원해질 거야 

왜 안 시원해져 

시간이 필요하니까.. 모든 건 시간이 필요하다고 그랬던 거 기억해?

응. 시간이 필요해. 더워 엄마.. 잠이 안 와. 더워! 

응... 그렇구나. 그래... 엄마는 오늘 따로 너무 졸리고 힘드네...

엄마는 자... 근데 나는 잠이 안 와

아냐... 정음이 잘 때까지 기다릴게. 

시간이 필요해. 



이 수첩에 익숙해지는 것에도 시간이 필요하다.. 좌욕과 가글. 기타 항암제와 항생제 등. 칸이 언젠가 빡빡해지겠지. 





시간이 필요하다. 우리에겐 여전히 적응할 시간조차 주어지지 않은 채 내내 새로운 장면들 만만 맞이했었으니까. 5월 1일부터 이 글을 쓰고 있는 항암 3일 차, 정음이 잠들어 있는 아침 8시 28분,  지금까지도. 우리에게는 우리가 원하는 '시간'이 단 한 시도 주어지지 않았다. 재난에 떠밀리듯 매 순간을 그저 앞을 향해 쭉쭉 달려 나갈 뿐이다. 



아이는 잠들어 있지만 시간은 흐른다. 때에 맞춰 아침이 나온다. 저 아침은 식어 버리겠지.. 오늘은 항암 3일 차. 그리고 오늘로써 원래대로라면 퇴원이나 다행히 다음 7일 차가 되어 빈 크리스틴 맞기 전까지 정음의 열이나 상태를 지켜보기로 했다. 



그 모든 순간에서도 우리가 원하는 시간은 아마 당분간에도 주어지지 않을지 모른다. 모든 건 시간이 필요한 법. 시간이 필요하다... 소아암 환우가 되어 버린 정음과, 그를 밀착 간병하는 내가 이 모든 정신없고 좌절이 연속되는 시간 속에서 어떤 희망과 삶의 긍정을 완연히 되찾기까지는. 



시간이 필요하다...... 바라는 시간엔 좀처럼 닿지 않는다........ 아이 간병만 생각해도 모자랄 정신력이지만 우습게도 여전히 사소하게 신경 쓰이는 것들이 댁 내외에서 툭툭 둑 터지듯 터져 밀려 나온다... 정음의 병실 바깥으로 아침에 창가 밖으로 보이는 무성한 나무들을 바라본다. 정음과 함께 어서 저 나무를 직접 바라보고 싶다... 그러려면 노력해야 한다. 움직여지지 않는 다리를 움직이게 만들어야 한다. 그러나 치료하는 도중에는 쉽지 않다. 



그러니 시간이 필요하다. 이제 시작인 출발점 앞에서 우리에게는 아직까지 아주 많은. 

모든 터무니없이 낮설고도 무섭고도 아슬아슬한 새로움들과 친해질 시간이......



밥 양을 체크하면서 밖을 바라본다... 격리된 채 누워 있는 너는 얼마나 힘들까.... 눈물이 나려 한다. 그러나 울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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