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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헤븐 May 30. 2024

항암 1회 차 3일째, 자격 없는 년

항암 A플랜 1회 차의 3일째 마지막 투여일, 여전히 정음은 아침 9시 즈음 일어났다. 7시 30분에 나온 아침밥은 식어 있었고 아이의 엉덩이는 축축하게 젖어 있다. 왜 아니겠는가. 특대형 40kg까지의 체중을 커버한다는 굿나이트 빅사이즈 기저귀를 찼어도 쉬는 언제나 새고 만다. 새벽에 갈아 주어도 축축하게 젖은 기저귀는 금세 정음의 엉덩이 밖 침대 시트까지 모두 젖게 만드는 건 다반사. 아침은 그래서 바쁘다. 눈을 뜬 아이 몸부터 체크. 축축해진 엉덩이에 두꺼운 이불을 겨우 깐다. 그리고 좌욕 다운 좌욕은 아니지만 우선 요오드를 넣은 따뜻한 물로 세정을 시킨다. 기타 온몸 구석구석 물수건으로 대충 씻긴다. 그 후 기저귀를 채우고 새 옷으로 환복을 한 이후 다 젖은 침대 시트를 갈기까지.



적고 나면 별 거 아니게 보이지만 사실 그렇지 않다... 34kg의 정음은 허리와 목, 왼쪽 발과 손을 움직이지 못한 채 축 늘어진 몸.  눕힌 채 이 모든 것을 진행하려면 정음의 몸을 왼쪽으로 오른쪽으로 이리저리 굴려 가면서 옷을 입히고 시트를 가는 일엔 오른쪽 손목이 반쯤 너덜너덜해져야 가능하다. 이미 며칠 전부터 시큰거리기 시작한 손목. 간병인이 몸을 사리면 환자를 제대로 돌볼 수 없다. 침대 시트와 정음의 깨끗해진 몸을 보면 큰 보람과 뿌듯함을 느끼지만 동시에 생각하고 만다.  열심히 돌볼수록 어딘가 고장 나는 건 시간문제겠구나 라는 스치는 생각. 





친정어머니와 아주 잠시의 교대를 한 오후, 그 틈을 타 퇴원 전 미리 머릿속으로만 생각했던 동선들의 장소를 미리 가 본다. 소아 채혈실과 통원치료센터, 소아청소년과 옆에 있다던 상담실, 열이 날 때 재빨리 달려와야 하는 응급실 등. 한 번씩 동선을 체크하고 나니 한결 불안함이 조금은 누그러진다. 물론 때 돼서 닥치면 조금은 당황할 테지만. 준비해서 나쁠 건 없겠지 싶은 마음으로... 





마지막 길목에 본관 지하 2층의 사회복지상담실을 들른다. 소득요건이 애매; 해서 지자체 및 국가의 소아암 환자의 치료비 제도는 거의 도움 받지 못한다. 다만 몇 가지 재단의 치료비 지원을 비롯한 기타 지원 혜택들을 잠시 살펴본다. 다른 건 몰라도 거동하지 못하는 정음은 거의 반 쫓겨나듯 퇴원을 해야 하기에 - 그 조차며 칠 미룬 것에 감사하지만 - 그 이후 이동 관련한 혜택이 있는지 상담 메모를 남긴 채 병동으로 귀가


지하 2층 구석에 있어서 한참을 헤맸다...; 





다시 교대하기 위해 정음을 찾아간 나를 정음이 맞이한다. 사실 감염 예방 등을 위해 어머니든 그이든 잦은 교대 (를 빙자한 면회일 수 있는) 시간을 나는 어느새 반가워하지 않는다. 물건만 전해주고 가면 좋을 텐데. 물론 내가 아닌 할머니와 아빠를 더 만나길 바라는 정음의 마음을 알기에. 또한 나의 마음과 다른 가족의 마음은 다를 수 있으니. 그럼에도 그들의 배려(?)가 이상하게 배려로 느껴지지 않은 나는 불편함을 감추지 못하고 표정과 행동에 마음을 다 들키고 만다. 어서 돌려보내려는 나. 아이를 왜 더 제대로 케어하지 못하는지에 대한 은은한 불만을 표출하는 엄마. 은근한 신경전이 오고 가는 끝에 다가오는 문장. 



'애 키울 자격 없는 년' 


.....


참던 분노와 슬픔과 좌절과 환멸 등의 여태껏 참고 있던 감정들이 둑 터지듯 밀려오기 시작하려 할 때. 나는 눈을 질끈 감고 입술을 깨물며 대답을 했다. 맞다고. 틀린 말 하나 없다고. 엄마가 늘 비난하듯 했던 말들은 다 맞다고. 자기 인생 챙기느라 아이 제대로 케어 못하고 방치하듯 아이 제대로 못 챙긴 년이 바로 나라고. 정음이 이렇게 만든 죽일 년이 바로 나니까 나는 엄마 말대로 키울 자격 없는 년이라는 걸 너무 잘 알고 있다고. 두고두고 죽을 때까지 나는 나를 용서하지 않을 테니까... 



아이 앞에서 잠깐 감정을 통제하지 못한 채 나는 엄마에게 귀가를 요청하면서 내 자책을 토로했다. 그리고 다시 정음과 둘이서 남겨졌을 때. 여전히 현실밀착형으로 아이의 저녁을 챙겨야 했고 이미 반쯤 또 젖어버린 오줌이 묻은 침대 시트를 갈아야 했고 아이의 몸을 다시 씻겨야 했고 말미엔 부동산 계약금의 일부를 송금해야 했다... 





저녁 8시 즈음. 항암 부작용인지 아니면 다른 이유에서인지 아이는 목의 열감을 호소하면서 엄청난 짜증을 부리기 시작했다. 한껏 불편함을 호소하는 정음을 달래는 게 어제오늘 일은 아니었지만 여전히 해도 해도 달래는 일은 여간 해서 진이 빠지고 기운이 잘 나지 않는다. 조용하고 친절하고 상냥한 목소리는 어느새 조금씩 사무적이고 삭막해져 간다. 이미 간병을 하다 보면 감정은 없어지고 이성만 남겨진다. 너를 제대로 돌보려면 도리어 감정은 너무 큰 방해와 장애물이 된다는 걸 이미 체득해서일까...



겨우 달래고 해열 진통제가 들어가는 것을 확인할 무렵, 남편에게서 전화가 왔다. 도장을 찾았다는 이야기. 허허 웃으면서 사실 어제저녁부터 잃어버린 물건에 대해서 생 난리(?)와 의심과 - 내가 잃어버리게 했다는 - 의구심을 감추지 않았던 남편은 말했다. 장모님이 물건 정리를 하다가 이제야 어디다 놓았는지 아시고 말씀해 주셨다고. 그리곤 껄껄 웃는 수화기 너머의 남편의 목소리. 그리고 목소리가 바뀌어 이사날짜와 등기부등본에 대한 것 등을 설명하며 일단 급한 이사라는 숙제를 한 결 해치웠으니 다행이라는 친정 엄마의 목소리. 



나는.... 아무렇지 않은 그들의 목소리와 문장들을 들으며 단 한순간도 웃을 수가 없었다... 이 와중에. 그렇다. '이 와중에' 말이다. 매일 정음과 전장에 나가 사투하듯 아침부터 저녁까지 남들이 걸어가 보지 않은 그 일상의 사소한 것들 하나하나를 온 힘을 다해 챙기면서 심신은 이미 매일 같이 넉다운이 되고 마는 나는. '자격 없는 년'과  '물건 잘 잃어버리는 아내'로 의심과 비난을 받기 일쑤인 나는. '이 와중에' 그런 내가 사실 정음을 처음 병원에 데려가는 5월의 첫날부터 수술을 급히 하고 병원을 드라마틱하게 옮겨서 후속 치료를 재빨리 받게 하고 있는 지금에 이르기까지. 





가족들은 알까... 내가 어떤 마음으로 이 모든 상황들을 버티고 있는지. 새벽 1시에 일어나 열 체크를 하고 다시금 오줌으로 젖은 침대 시트와 아이의 몸과 기저귀를 갈면서 다시 열감을 호소하는 정음을 달래면서 겨우 재우기에 안간힘을 쓰는 밤... '혼자' 싸우고 있다는 생각을 지우지 못하는 밤... 일상의 순간들에서 웃을 수 있는 가족들과 웃을 수 없게 되어 버리는 나는. 



오늘, 이거 저거 잠시 알아본 후 별관 병동으로 돌아가는 중에 벽에 있는 글귀 앞에서 몇 초 멈췄었다. 로버트 프로스트의 문장. 모자란 부분을 채워 나가는 것이 행복이라는 말. 지금 나는 넘치는 행복을 누리는 중이구나 라는 긍정적 생각을 애써 해 보려 했었던 나. 정음에게 앞으로 모자라게 될 부분이 생긴다면 어미가 된 내가 앞으로 채워주며 같이 오래 살아갈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이었던 나... 그러나 순식간에 그리오 앞으로도 가끔은 '자격 없는' 엄마가 될 나... 아이를 방치하듯 키웠으니 아이가 이 모양이 되어 버렸다고 비난받을 나는... 그럼에도 '넥스트'를 떠올린다. 


 



입원 3일짜리 항암 A 플랜 1회 차가 종료되었고 이제 차주 월요일 빈 크리스틴 투입 후 퇴원. 가정에서 정음을 돌보며 회복기 약 4주를 거치는 동안 응급실을 자주 오지 않기를 바라는 염원. 순조롭게 계획대로 다음 B플랜 5일 연속 통원으로 투여되는 2회 차 시작을 맞이해야 한다는 각오. 응급실 및 통원 외래도 무탈하게 진행되어야 하기에 관련된 마음 준비를 하는 나. 



이런 내가... 현재 정음에게 그럼에도 자격 없는 년이라면 맞다. 그렇다. 그럴 수 있다. 그리고 또 안다. 나는 여전히 나를 용서하지 않은 채 이 모든 상황들을 떠 앉고 있으니까. 그러니 나를 제외한 가족들은 아마 모르실 테다. '자격 없는 년'이 지금 재난 같이 떠밀려 내려가는 중인 순간을, 그럼에도 정음과 함께, 아이를 달래고 긴밀하게 살피며  오늘 하루를 제대로 무탈히 지내려 하는지...



울지 않는다. 울어 봤자 달라지는 건 없으니까. 다만 나오는 한숨을 비롯한 여러 분노와 좌절과 슬픔과 환멸의 감정을 꾹꾹 누르는 연습을 더 할 뿐이다. 그래야 나아갈 수 있다.... 혼자 싸우는 기분은 여전히 지워지지 않는다. 정말 도와주는 사람이 너무 없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지워야 하는데 쉽지가 않다. 



말 뿐인 것들은... 언제나 괴롭고 분하고 화가 난다. 정음 너에게 나는 뿐인 자격 없는 년이 되고 싶지 않다... 그리하여 네 앞에서는 이제 도리어 말 없이 그저 움직일 뿐이다......자격 없는 년은 그리하여 없을 것이라고 생각하면서도.... 그러나 도무지 들지 못하고 마는 지금. 아이의 열체크를 한다... 퇴원 후 생활을 상상한다... 더하면 더했지 덜 하지 않을 미래를 잠깐 두려워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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