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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헤븐 Sep 20. 2024

외딴섬

오후 아무 말 단상...

간병인은 환자를 떠날 수 없다. 잠시라도 한 눈을 파는 사이 어떤 사고가 일어날지 모른다는 생각은 불안의 씨앗이 된다. 그 생각은 행동으로 번진다. 그리하여 고립과 은둔을 자처한다. 환자가 있는 공간에서 함께. 이 또한 사랑일까. 그럴 지 모른다. 진짜 간병엔 환자를 향한 무조건적인 박애적 실천이 동반된다. 반대로 가짜 간병은 그저 할 도리 '정도' 만 한다는 식의 자기 자신을 우선시하는 이기적 행동이 앞선다. 병원에서 가끔 마주치는 외주 간병인의 행동을 지켜보면 도무지 환자를 그저 '돈' 으로 아는 몇몇 사람들이 보인다. 그럴땐 눈을 질끈 감는다. 인간만큼 잔혹한 동물은 없다는 생각을 하면서.   



아무리 생각해도 간병은 어린아이를 향한 육아/돌봄과 비슷한 면이 많다. 설거지를 하다가 정음의 소변 치다꺼리를 한 후, 이것저것 뭐 좀 하니 시간이 금세 쏜살이다. 남은 형제의 하교 시간에 맞춰 잠시 5분 컷 학교를 왔다 갔다 하는 그 10분의 시간에도 정음이는 불안했는지 전화를 했었다. 나도 불안해서 종종걸음으로 첫째 아이를 데리고 걸음을 재촉했다. 집에 온 후로 땀에 범벅이 된 아이를 샤워시키고 이것저것 학교에서의 일상을 물어보면서 계속해서 아이들을 돌본다. 오전엔 누워 있는 한 명을 오후엔 그를 비롯한 두 명의 아이를. 



아이들과 있으면 솔직히 지치고 피곤한 시간의 연속이다. 왜 아닐까. 육아맘이라면 누구나 겪을 그런 성장통 한 두 개 달고 살법한 건 기정사실. 아이의 존재를 마냥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건 전혀 아니다. 다만 사랑은 말로 하는 게 아니라 '실천'이라는 걸 아는 어른이라면 사랑한다는 '말'이 아이를 키우는 건 전혀 아니라는 것 또한 안다. 진정한 사랑은 말없이 몸으로 실천해 보이는 것. 먹이고 씻기고 놀리고 교육시키고 훈육시키고 중재와 타협과 설득의 반복 또 반복... 그런데 거기에 간병이 겹치니 이건 정말 말이 나오지 않는 지경에 처해버리는 몇 달...... 그나마 시간이 약이라 어른스러운 첫째는 제법 손이 많이 가지 않는다. 다만 정음의 '징징거림'과 칭얼거림은 첫째에게도 악영향을 미치고 급기야 정서적 피해를 본의 아니게 지게 되고 마는 형국....



나를 놓치는 건 이제 쉽다. 아니. 좀 더 적확한 표현을 찾자면 이젠 '나'라는 존재는 아마 되찾을 수 없을 테다. 아이가 뇌암환자가 되고 난 이후 심장의 비참은 이루 말할 수 없을뿐더러 일상의 모든 장면은 그야말로 드라마틱하게 변했다. 정말 많이 변해가고 있다... 마치 날렵하게 운동을 매일 꾸준히 하던 건강한 신체에서, 이제는 집과 병원이라는 공간에 갇힌 채 아이에게서 떠날 수 없이 모든 시간이 저당 잡힌 채 몸과 마음은 순식간에 퍼져만가는 그런 변화랄까... 실제로 운동할 수 없는 시간으로 인해 스트레스는 내내 쌓여만 간다. 그 스트레스는 exit을 찾지 못한 채 스스로를 옥죄어 간다... 가끔 쓰는 '글' 정도가 돌파구랄까.



지금 이 순간에도. 거실에서 정음은 징징거린다........ 무엇이 또 아이의 화를 돋웠을까. 그러다가도 갑자기 조용해진다. 개두술 이후 섬망증상은 상당했었다. 가히 공포스러울 정도로. 지금은 심적으로 안정을 많이 찾았다 생각되다가도 때때로 생각을 지우지 못하는 건 정음의 징징거림이 도가 지나칠 때이다...... 받아들여지지 않는 것들을 억지로 인내하며 받아들이며 생활하다 보니 지치는 건 기본이고 분노가 쌓이지 않으면 감지덕지다. 



정음에게 ABC 주스를 건넸다... 아이는 무언가 말을 했고 나는 말없이 그 말을 들어주었다. 억지로 애쓰며 웃으려 노력했지만 사실 미소는 쉽게 자연스럽게 나오지 않았다... 어쩌면 이게 가족 간병의 민낯일지도 모르겠다. 내 자식이지만, 가족에게 인자함과 자애로운 모습을 보이지 못하고 마는, 생활과 생존에 찌든 매정한 어미의 모습.... 



다시 세찬 징징거림은 그쳤다. 첫째 아이 덕분에. 운 좋게도 다시 게임 세상 속에 빠진 두 사람의 모습을 지켜보면서 오늘 저녁은 뭘 해줄까 그런 지난하고 초라하고 궁색한 생각을 한다. 저 평화는 얼마나 오래갈까. 병원에서는 또 얼마나 눈치를 보면서 아이를 살펴야 할까. 너의 안녕은 5분을 가지 못하고 마니 내가 도대체 어찌해야 하는가. 얼마나 비위를 맞추며 살아야 되는가. 아마 평생일 테지........ 이렇게 된 이상, 평생... 예전에는 학교생활만 마치면 되겠다 싶은 일종의 육아의 마감기한이 있었지만 이제는 아니게 되어 버린 형국. 평생 널 돌봐야 한다. 평생 아픈 자식 관리하며 살아야 하는 어미가 되어 버렸다. 날 포기해버리고 만 건 이미 올해 5월부터였듯이. 각오해야 한다. 좀 더 무뎌져야 하고 강해져야 한다. 그래야 아이도 살고 나도 살 수 있다.. 



눈에 물이 또 고이고 만다. 

오늘 비가 많이 내리는 것처럼....

여전히 '바깥은 여름'이고 날은 궂고 덥고 습하고, 모든 불유쾌함은 비단 날씨뿐 아닐 테다..... 



외딴섬에 확실히 갇혔다. 도망칠 순 없다. 그렇다면 갇힌 채 잘 살아야 한다. 

그 방법을 매일 궁리한다.... 궁색한 변명과 초라한 비하. 

심장의 비참은 좀처럼 없어지지 않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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