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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헤븐 Sep 07. 2024

희망과 절망 사이

뇌암. 

정음이는 5월 초, 악성뇌종양 수모세포종 확정 진단을 받고 두 차례에 걸쳐 수두증과 소뇌에 퍼진 5cm가량의 종양제거 수술을 받았다. 상병코드 C71.6  '뇌의 악성신생물'로 분류되는 질병. 양성 아닌 악성의 종양을 머리에 지닌 자가 순식간에 되어 버린 정음이는 이번주를 기점으로 이제 막 양성자 치료를 마쳤다. 그리고 다음번 항암치료를 기다리고 있다. 아마도 입원이 필요한. 이젠 서서히 집이라는 공간보다 병원이 더 익숙해지려 한다. 매일 통원하며 피검사를 하고 수치 주사나 수혈을 받는 일. 장애인 콜택시를 기다리는 시간. 히크만카테터 부분을 방수시키고 겨우 씻는 몇 십 분의 순간. 인적이 드문 저녁에 휠체어를 타고 나와 잠시 아파트 주변을 걸으며 나름의 걷기 재활을 하고 돌아오는 밤. 그 외에는 핸드폰을 통해 세상을 구경하는 온종일. 정음의 '보통'은 다른 친구들의 보통과 달리 확실히 재구성되었다. 처절하고도 확실하게. 우리만의 평범과 보통이 얼마나 간절하고 절실한지는 아마 정음이와 나만 아는 것이겠지... 



2024년 7월 29일~2024. 9월 2일. 25회 차 양성자 방사선 치료 종료. 

전뇌 전척수 12회 차를 받으며 상반신에 부착된 방수 테이프와 매직펜으로 그려진 선이 지워지지 않도록 샤워조차 아슬아슬하게 물을 묻히는 수준이었다. 물론 앞으로도 중심정맥관 부분을 늘 조심스럽게 다루어야 하는 탓에 아마 히크만을 떼기 전까지는 언제나 쉽지 않겠지만. 양성자 치료를 할 땐 하여튼 뭐든지 더 조심스러웠고 아이도 나도 힘들었다... 매일 새벽에 일어나는 건 정음에게 특히 너무 힘든 하루의 시작이었다. 양성자 치료 도중에는 구토도 더 심했졌었다. 어지러움은 덜 호소했지만 정음이는 도통 뭘 마시지도 먹지도 못했다. 부작용일까. 140cm에 28kg까지 빠진 아이의 앙상해진 몸을 씻기면서 매번 도드라지는 쇄골과 갈비뼈 그리고 뼈가 잡히는 몸을 볼 때마다 나를 원망하고 자책해 왔다. 그리고 이 자책은 아마도 평생 계속될 거라는 걸 나 자신만큼은 확실하게 안다.



12회 차 전뇌전척수와 13회 차의 뇌 부분 양성자를 마치고 나니 이번주후반에 들어서야 정음이는 조금씩 무언가 먹을 수 있게 되었다. 신기한 일이다. 물 100ml에 밥 한 숟갈도 먹지 못하던 아이였다. 물론 여전히 양이 드라마틱하게 늘진 않았다. 다만 극소량이어도 먹는 양을 늘려 나가는 며칠이다. 미역국 한 숟갈에서 건더기까지. 음료수도 100ml 한잔에서 두 잔 정도.... 그럼에도 여전히 먹는 양은 새 모이 수준이다. 위가 작아진 걸까. 아마 그럴지 모른다. 워낙 먹지 못하는 날이 늘어나고 구토를 매일 하던 나날들이었으니. 변화는 쉽지 않다. 시간이 필요하다는 안다. 속은 까맣게 타 들어가거 매일 애를 끓이는 날들의 연속이 앞으로도 계속될 거라는 걸 나는 역시나 예감한다. 그리고 언제나 그러하듯 예감은 빗나감이 없겠다... 



양성자 치료가 끝나던 날, 눈물이 날 것 같았지만 이상하게 눈물은 나지 않았다. 그날은 유독 정음이가 집에서 온종일 생떼를 쓰고 서로가 서로를 힘들게 하던 날이었다... 간병의 민낯 중 하나는 다름 아닌 서로의 어두운 감정을 서로에게 자주 들킨다는 것이다. 오로지 환자와 주간병인만 아는 감정. 서로가 서로를 확실하게 필요로 하지만 정작 필요한 사람에게 상처 주는 말과 행동을 자주 하고 마는 지독한 모순.... 긴 병에 효자 없다는 말은 정말 하나 틀린 말이 아니다. 양쪽 모두 지치게 만드니까. 어떤 순간순간들은 기어코 터지게 만들어 버리는 그런 것....이랄까... 간병은 마음을 병들게 한다... 종양이 정음이의 인생을 순식간에 바뀌게 만든 것처럼. 



끝났다.... 이번이 마지막이기를 간절히 바랐다....



작년 이맘때 나는 꽤 행복했었다... 스스로 '이 정도면 잘 살고 있겠지'라는 생각을 오만하게도 했기 때문이었다. 아이들 등교를 보내고 2시간 러닝머신 위를 힘차게 걷고 뛰던 시절. 나는 조금 살 것 같았다. 정말 '행복'을 가끔 느끼기도 했다. 그 시절, 오랜 사회생활에 쉼표를 찍고 내게도 휴식을 주면서 '넥스트'를 고민하던 때였다. 배우자와 적절히 화목하고 건강하고 화평한 집을 건사하던 호시절... 불과 몇 달 전까지 내게는 희망이 있었다. 아이들이 조금 더 크면 더욱 괜찮아질 것이라고. 그러면 더 심신 여유랄 것이 분명 생길 것이라고. 산책을 나가는 주말과 쌍둥이들과 여행 이야기를 하며 내년에는 일본에 가자며 항공권을 알아보던 시절... 정말 그랬었다. 그때는. 나의 오만하고도 설레고 부푼 시간들이었다.  



기쁨이라는 것. 행복이라는 것이라든지 평온이라던지 여유라던지 그야말로 희망적인 인생. 그런 긍정적인 감정과 단어들로 점철된 호시절이 있었다. 불과 몇 달 전까지만 해도. 그리고 나는 지금에서야 인생의 엄청난 비밀 하나를 확실하게 체감하게 된 것만 같다. '좋음'이라는 건 순식간에 붕괴될 수 있는 게 또한 인생이라는 것. 얼마든지 바닥과 나락으로 순식간에 추락할 수 있는 게 바로 인생이라는 것...



시그널은 있었겠지만 어리석은 인간은 그 시그널을 예리하게 관찰하지 못했겠다. 여전히 희망은 없고 다만 절망하는 이유 중 하나는 자책 때문일지 모른다. 좀 더 일찍 알았더라면 정음이가 개두술 이후 편마비까지 오지는 않았을까. 그랬다면 그놈의 종양이라는 놈이 아이의 뇌간에 딱 달라붙진 않았을까. 왜 하필 우리 아이에게 생겼을까....... 왜 내가 아니라 아이일까.... 못된 내가 아니라 왜 착한 너에게 붙었을까..





희망과 절망 사이엔 침묵과 눈물이 존재한다. 어제도 미역을 사러 근처 슈퍼에 다녀오는 길목에서 나도 모르게 울다가 지쳐서 잠깐 걸음을 멈췄었다. 도저히 못 살겠다 싶었기 때문이었다. 도저히 정음이를 태어나고 길러온 이 동네에서 못 지내겠다는 생각을 했었다. 여기저기 아이와 함께 걸었던, 지나왔던, 정음이가 웃으면서 두 다리로 싱그럽게 걸었던 자태와 모습들이 떠올라서.... 여기저기 아이와의 기억이 군데군데 묻어난 이 동네는......... 나를 자주 울린다.. 



정음이가 아픈 이후 온 가족의 일상은 뒤틀리고 재배치되었다. 은근한 피해를 상당수 입은 쌍둥이 형제의 일상을 생각해도 못내 가슴이 미어져서 자주 할 말을 잃곤 한다. 아주 잉꼬부부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한때 나는 남편을 존경하고 그를 보필하고 내조하려는 마음과 정성이 가득했었다. 그렇지만 소아암은 우리 가족의 모든 것들을 앗아가 버렸다. 무엇보다 나의 아이들에게서 너무 많은 것들을 빼앗아갔다... 






건강장애학생이 되어 온라인 수강을 통해 겨우 2학년 진급과정을 수강 중인 정음이는, 잠시 쌍둥이형제가 전학 간 학교 앞까지 휠체어를 타고 산책을 했었다. 암 진단을 받기 전에 2학년 학기 초부터 학교를 너무 힘들어하고 스트레스도 상당히 받았던 정음이의 기억 속에 이제 학교라는 공간은 가기 싫은, 피하고만 싶은 곳이었기에. 아이는 현재의 일상에 나름 그런 면(?) 은 만족하며 농담을 건넸다. 


학교 안 가서 좋다 

그래... 학교 안 가도 되니 대신 예전처럼 걷고 제발 나으면 좋겠다...



아이의 농담에서 잠깐의 희망을 느낀다. 정음의 미소와 장난스러운 표정에서 희망을 발견한다. 그 순간 그대로 정음이와 내가 함께 현존하며 살아가고 있는 것 같아서. 그렇지만 그 희망은 하루 중 오래가지 않는다. 절망이 희망을 곧잘 이겨버린다. 못 먹고 토할 때. 변비로 고생할 때. 벌레에 물렸을 때. 수치가 낮아졌을 때. 뭐에 뒤틀렸는지 하루 종일 '엄마 탓'을 하며 우는 소리 징징거리는 날카로운 목소리와 시뻘게진 아이의 우는 얼굴이 온 거실을 메울 때. 그러다가도 가끔씩 천장을 공허하게 쳐다보며 조용할 때. 혼자 슈퍼에 다녀오며 동네 여기저기 과거의 정음이가 툭 하고 튀어나올 때. 무엇보다 같은 질병을 가진 환우의 절망적인 소식을 알게 되었을 때...



오늘도 희망과 절망 사이에 줄다리기를 탄다. 정음이의 눈치를 보며 매 순간 긴장하면서 산다. 아이의 심기가 불편하지 않도록 눈치를 보면서도 한편 간병하는 존재인 나로서도 부아가 치밀고 도무지 견디지 못하는 아이의 생떼 앞에서. 나는 안방문을 쾅 닫고 여전히 오열한다. 정서적 피해를 입는 건 그리하여 언제나 남겨진 첫째 아이의 몫이다. 시뻘게진 눈을 하고 아이들 앞에서 사죄한다. 미안하다고. 별일 아니라고. 다 내 탓이라고. 그래. 정음이 네 말대로 이 모든 게 다 못난 어미 내 탓 이노라고...



아이의 목소리를 견디지 못하는 순간 나는 눈을 질끈 감는다. 그리고 생각한다. 사실 내가 견디지 못하고 마는 건 아이를 온 마음으로 품지 못하고 기어코 화를 내거나 눈물을 흘리고 마는 '나'라는 것을. 절망의 원인은 결국 이런 나 때문이라는 것을. 언제쯤이면 모든 상황에 초연해질 수 있을까...... 도무지 나는 아직도 잘 모르겠다. 



왜 네가 아픈지. 

왜 내가 아니라 너인지. 

왜 우리에게.....



악몽만이 계속 진행 중인 것 같다.... 깨지 못하는 악몽 속에서 할 수 있는 일은 그대로 앞으로 나아갈 뿐이다. 미지의 앞으로 계속 멈춤 없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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