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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헤븐 Aug 22. 2024

간병의 그늘 1

소중한 것을 자주 잊고 놓치고 싶지 않다... 

선과 악의 경계가 확실히 있을까. 한나 아렌트의 '악의 평범성'만 떠올려봐도 그렇다. 선하다는 것과 악하다는 것. 신이 아닌 인간이, 하물며 신조차도 과연 그 경계를 확실하게 가를 수 있을까. 횡단보도를 건너면서 침을 뱉을 수 있는 인간. 아이를 위한다고 돌보면서도 정작 아이의 마음을 편하게 만들지 못하고 어른의 잣대와 기준으로 아이에게 호통치고 고함치며 결국 울리게 하면서도 우는 아이를 달래는 일상의 모순. 나의 선함이 누군가에게 악할 수 있고, 내가 악하다 생각했던 것이 누군가에게 꽤 선함으로 변할 수도 있는 인생의 아이러니. 삶이 이렇듯 모순투성이뿐인데 그 속에서 우리는 선과 악을 정말 나눌 수 있을까... 



사족이 길었지만, 저런 생각이 흘러 들어오고 말았던 건 두 아이를 집에서 돌보다가 성대 끝에서부터 차오르다 '울컥' 하는 순간과 조우했기 때문일 테다. 나는 '엄마'의 위치에서 그리고 '간병인'이자 '보호자'의 위치에서 '악의 평범성'을 떠올리고 내가 한없이 악하다고 생각하며 기어코 눈물을 삼켜야 했다. 인간의 양면성을 떠올리는 순간이었겠다. 좀 더 정확히 표현해 보자면 사랑하려는 인간의 양면성이랄까. 사랑하는 행위에는 확실히 양면성이 존재한다. 사랑하면서도 동시에 사랑하고 싶지 않고 싶은 순간. 생각해 보면 전자는 그저 사랑한다는 그 행위에 초점이 맞춰지겠지만 후자는 어떤 '바람'을 은연중에 담고 있겠다. 다름 아닌 '기대감'이랄까. 내가 너를 이만큼 사랑하니 너도 그만큼 내 사랑에 대한 어떤 보상적 행위를 해야 한다는 일종의 기대감..... 



그렇다. 암환우가 된 정음이를 간병을 하면서, 그리고 동시에 아프진 않지만 아직 초등학교 저학년인 첫째 아이마저도 엄마의 손을 많이 타지 못하니 최대한 함께 있을 때 되도록 돌보려 노력하다가 나는 스텝이 꼬인 사람 마냥 자주 일상의 돌부리에 걸려 넘어지고 만다. 생각해 보면 아이들을 사랑한다는 나의 행위로 인해, 반대로 아이들에게 '기대'라는 걸 완벽히 버리지 못해서 생긴 그늘진 면을 결국 느끼고 말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나에겐 이제 너희 둘 뿐...



간병은 더더욱 말할 수 없는 엄청난 그늘을 경험하게 한다... 상대방의 회복과 안전과 보호와 평온을 위해 24시간 중 자는 시간을 제외하고 온 심신에너지를 쏟아붓고 있지만 그에 해당하는 어떤 보상적 결과가 보이지 않을 때. 사실 도리어 보상은커녕 그저 상대의 심신이 '무탈'만 해도 바랄 게 없지만 그 무탈한 시간 속에서도 틈틈이 균열과 붕괴가 보이고 말 때... 간병의 그늘은 생기고 마는 것. 



사실 간병과 어린아이의 육아는 비슷한 면이 조금 있다고 느끼는 요즘이다. 일단 부지런해야 한다. 주 보호자가 부지런해야 상대가 건강하고 행복해진다. 반대로 주 보호자가 나태하거나 조금이라도 근태불량(?) 이 되면 상대에게도 분명 그에 응하는 영향이 끼치고 말 테다. 가령 '대충' 먹이거나 '대충' 관찰하면 그 후엔 반드시 어딘가 탈이 나거나 병이 나기 일쑤인 것이다... 그러니 언제나 간병인이자 보호자는 예민하게 긴장을 늦출 수가 없다.... '그래야 한다'는 나의 생각이 일종의 강박일 수 있지만 아무튼 개인 철학이라 버리기는 쉽지 않은 것들이 아이들을 살리지만 가끔 아이들을 힘들게 한다는 걸... 종종 느낀다. 




부지런해야 한다.  

면밀히 관찰해야 한다. 

참아야 한다. 

큰 사건도 대수롭지 않게 이겨내야 한다. 



최소한 저 4가지를 일상 속에서 실천해내야 한다. 아이들의 청결과 안전, 위생과 영양, 기타 환자가 된 정음이나 그런 정음이와 함께 동거하는 가족이지만 아직 어린아이에 불과한 첫째의 보이지 않는 불안함에서도 든든하게 지켜낼 심적 변화들을 확인하기 위해서는. 그러나 내가 가장 하지 못하는 건 의외로 세 번째 '인내' 다. 참고 참고 또 참는 게 주특기가 되어버릴 정도로 연습했다고 생각했지만 여전히 첫째 아이에게 호통을 치든가, 결국 투덜거리거나 징징대거나 아무것도 먹지 않으려고 하고 말도 듣지 않는 정음이에게 싫은 소리를 세차게 하는 나 자신과 마주하면 아직도 한참 멀었지 싶기에... 






양성자 센터를 매일 새벽에 일어나서 아침 일찍 출퇴근 한 지 거의 한 달을 채워가는 중이다. 이제 며칠 남지 않았다. 어른인 나도 상당한 피로감을 느끼지만 아이는 오죽할까 싶어서 되도록 정음이의 요구사항은 다 들어주려 노력한다. 언제나 귀갓길 장애인 택시 안에서 곤히 잠든 정음이를 앞 좌석에서 빤히 쳐다보면서 나는 자꾸만 차오르는 눈물을 참고 참고 또 참아낸다.



매일 병원을 다니는 일상을 지내다 보니 자연스럽게 심신 체력이 고갈되기 일쑤다. 표현하기 쉽지 않은, 말할 수 없는 엄청난 피로함과 좌절과 무력함도 곧잘 느낀다. 간병의 그늘진 면은 그렇게 자연스럽게 절절히 심신에 각인되는 중인 것만 같다. 사실 간병뿐 아니라 첫째 아이 케어하는 것과 동시에 매 순간 긴장을 하면서 시간을 지내다 보니 핸드폰으로 울리는 전화 한 통에서도 어느 순간부터 나는 '콜포비아'에 걸린 사람이 되어가는 중이다. 모든 게 사건 사고 같기만 해서... 몇 달간 간병하면서 육아하고 살림하고 기타 등등의 집안일들을 처리해 나가면서 생기게 된, 세상에서 오직 나만 아는 감정일 테지만... 



무엇보다 치료에 전념하다 보면 정말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 자주 잊고 또 놓친다는 것........

내가 가장 두려워하면서 가장 무서워하는 건 바로 그것이다. 마치 신생아 육아할 때도 그 시절이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는 걸 망각한 채 그저 잠 한 시간 자고 싶어서 아이들을 '대충' 보고 싶어지고 말았던 순간들... 그야말로 먹고 살리는 '육아 행위'에 전념하다 보니 그 시절 쌍둥이 아이들이 그렇게 사랑스럽고 그렇게 절절하게 그리운 어린 존재로서의 아이들이었다는 걸...... 나는 그 시절의 사랑을, 잃어버리고 놓쳤다......너희들을 살리기위한 '육아행위' 에 전념하다가 정작 '사랑' 을 하지 못했다...... 다시 돌아갈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그때는 너무너무 힘들어서...... 그랬다. 



그리고 지금.....이제는 '간병인'이라는 수식어마저 붙어버린 엄마로서의 내가 가장 두렵고 무서워하는 건 바로 그것이다. 치료만 생각하느라 정음이에게 다정하고 친절한 '사랑'을 제대로 하지 못한 채, 자꾸 가장 소중한 걸 잊고 또 잃어버리고 있다는 '느낌'.... 사랑하지 못한 채 '살려내려고만' 하고 있는 것 같아서....암생존자로 오래오래 내 곁에 머무르게 하려는 필사적 행위로 인해 모순적이게도 네가 정말 원하는 '사랑' 을 주지 못한채 살아내고만 있는 것 같아서.




정음이에게 사랑한다고 매일밤 말한다... 치료만 끝나면 제주도에 같이 거라고 혼자서 중얼거리며 정음이에게도 넌지시 엄마의 소원과 계획을 말한다. 산책도 정도로 우린 다시 함께 걸을 있다고 호언장담한다. 그러면서도 독한 항암 치료 하는 만큼 힘들어도 수분 섭취 잘하고 되도록 불량한 것 말고 좋은 것들을 먹어야 한다는 '잔소리'를 늘어놓는 나... 아이는 찡그리고 말없이 듣다 잠에 든다. 잠든 정음이의 민머리를 쓰다듬는다. 눈물을 떨어뜨리고 그러다 나도 잠에 든다. 아침의 시작, 저녁의 마무리, 매일 병원, 매일 복약. 첫째의 앙칼진 눈물, 호통치고 다독이고. 살림하고 세끼 챙기고. 그렇게 반복 또 반복.... 



간병은......... 소중한 걸 잊게 한다.............

정말 해야 할 말과 정말 해야 할 행동들을 우선순위에서 미뤄지게 만든다.............. 

간병은..... 너를 지키려는 행위이지만 막상 언젠가 아주 먼 훗날 돌이켜 생각하면... 그놈의 간병을 하느라...... 정작 사랑은 하지 못했다는 걸 알게 한다는 것...................



아주 우습고 아주 모순적이지만 나는.............. 내 몸이 부서져라 움직이고 또 움직이고, 내 마음이 붕괴되어도 내내 긴장하면서 아이들을 돌보고 지키면서도......... 소스라치게 나는 가끔 느끼고 마는 것이다. 내가 지금 가장 중요한 하지 못한 '생활'과 '현실'을 지켜내느라.... 무엇을 놓치고 있다는 자각. 



현실의 간병을 하느라 정음이 너를 제대로 사랑하지 못하고 있다는 느낌.

이 느낌을 어떻게 하면 지울 수 있을까.......

그만큼 긴 병에 효자 없고 반복되는 간병에 장사 없겠지..... 



 기록을 하며 기억을 하려 애쓴다... 간병과 살림과 육아를 하느라.......

정작 너희 둘을 사랑하지 못하고 마는 어리석은 나를....


너무 힘들구나 근데....정말이지..한 아이 챙기면서 아픈 한 아이를 돌보는 삶이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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