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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헤븐 Aug 15. 2024

긴 터널

악성뇌종양 수모세포종 시작과 과정 


5월 

5/1 : 심한 보행장애 관찰, 판교 EM 방문, 뇌 MRI 및 정밀 검사 진단 

5/2 : 분당차 MRI 및 긴급 입원 (소아청소년과 - 신경외과 이동) 

5/3 : 뇌종양 수모세포종으로 가진단, 긴급 1차 개두술 (수두증 극심, 뇌압 폭증) 

5/4~7 : 2차 종양제거 수술 대기, 1인실 투병... (가래 석션 만니톨 통증 등) 

5/8 : 수모세포종 확정 진단, 2차 개두술 진행, 6시간가량, 이후 중환자실 입성

5/9 : 중환자실, PICC 시술 

5/10 : 일반실 이동 (1인실, 반강제) 

5/11~22  : 병동생활 지속, 수술 후 증상이 너무 좋지 않음.......

5/22 : 오후 SMC 대리 진료, 성교수님 도움, 긴급 전원 및 바로 퇴원 및 입원 

5/24 : MTX 항암제 1차 투입, 히크만, 골수검사, 요추천자 


6월 

5/27~6/3 : 1차 항암 시작, 수혈, 이후 빈크리스틴 후 퇴원 

6/6~15 : 응급실 재입원.... 열남, 균배양검사 - 중심정맥관 포도상구균 발현.... 격리 입원 시작 

6/16 : 첫 목욕 

6/20~25 : 2차 항암


7월 

6/26~7/6 : 이후 가정 간호 하며 매일 병원행 (월수목금) 

7/7~10  : 조혈모세포 이식을 위한 조혈모 채집 입원 

7/11~7/18 : 가정간호, 감염 주의, 중심정맥관/열체크/각종 관리..... 매일 긴장....

7/19 : 양성자 마스크 제작 및 모의 치료 

7/26 : 전뇌전척수 양성자 시작 (13회 차) , 매일 오전 7시 병원 통원... 


8월 

~8/14 : 전뇌전척수 양성자 13회 차 종료 

8/16~9/2 : 부분 양성자 12회 차 완주 






같은 투병을 하고 있는 환우들의 이야기를 각종 블로그나 경험기를 통해 간접적으로 알게 되면 새삼 나를 반성하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참 밝고 건전한 마음 상태로 긍정적으로 아이를 지키는 어머니분들의 기록을 지켜보면서. 나는 새삼 나의 기록을 은근히 힐난하고 만다. 



여전히 긴 터널을 지나고 있는 것만 같은 나는.... 이 터널을 지나오며 부패되고 부정적인 감정으로 가득 찬 문장들로만 간병기록을 메워고 있는 것만 같다. 그러나 어쩔 도리도 없다. 억지로 밝게 좋게 '우리는 그럼에도 씩씩하게 지내고 있어요'라는 식의 인스타그램에나 어울릴법한, 감정을 현현하는데 포장할 없게 되고 마는 너무 솔직한 나로서는. 현재의 있는 그대로 느껴지는 사유가 결국 이렇게 문장과 단어를 통해 밖으로 표출되고 마는 걸 막을 수 없게 되고 만다. 그래서 다시금 무력과 좌절을 경험하는 우를 범하고 마는 게 어리석은 나를 알면서도.. 



정음은 말라가고 있다. 항암 치료 할 때는 그나마 식욕이 조금 있었고 액상류도 곧잘 마셨다. 그러나 양성자 이후엔 도통 먹으려 하지 않는다. 온세라정 (진토제)를 복용하고 있음에도 구토는 여전하다. 아이는 140cm에 이젠 몸무게가 20kg 대로 진입했다.... 더 빠지지 않기를 바라고 있음에도. 마음의 바람과 달리 현실은 반대로 움직이고 있다. 원망스럽지만 이 또한 받아들여야 한다... 양성자를 너무 당연하게 선택한 건 수모세포종 환우들의 일종의 기본 치료과정의 일환이었고 나로서는 정음을 지키기 위해 인체에 그나마 '덜' 부작용을 일으키는 방사선 종류인 양성자를 하는 건 너무 당연한 선택이었다... 



허리가 아파서 휠체어에 내내 앉아있을 수 없어서 우리는 곧잘 눕곤 한다...




양성자는 방사선 치료의 일종이다. 양성자는 방사선의 입자선의 종류 중 하나. 그중 양성자빔의 ‘브래그피크’라는 물리적 특성을 이용한 차세대 방사선치료라 한다. 브래그 피크(Bragg peak)는 양성자 고유의 특징을 지닌, 양성자빔이 인체 내 정상 조직을 투과하여 암 조직에 도달하는 순간 거대한 양의 방사선 에너지를 쏟아부어 체내 보이는 혹은 보이지 않지만 정음의 뇌척수액을 타고 둥둥 떠다닐 수 있는 잔존 예상되는 암세포들을 죽이고 그 이후로는 방사선 에너지는 내부에서 급격히 사라진다. 



방사선이 좋을 리 없다. 그러나 치료는 늘 그렇듯 모순적이다. 정상 조직을 투과하면서 방사선 에너지가 연속적으로 흡수되기 때문에 암조직에 도달하기 전 어느 정도의 방사선 에너지가 정상 장기에 동시에 흡수된다. 그래서 '부작용'이 늘 생기기 마련. 몸속 깊이 있는 종양을 치료하기 위해서는 아이러니하지만 그 앞에 있는 정상조직은 더 많은 방사선량을 받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기존의 엑스선 이용 방사선치료는 종양에만 집중하는 방식을 기본으로 하기 때문에 상당한 양의 방사선이 주변 정상조직에 넓게 분포할 수밖에 없으니 부작용도 그만큼 심한 터. 그래서 방사선치료 중이나 치료 후에 발생하는 부작용을 크게 줄일 수 있는 양성자 치료를 정음에게 하려 했던 건 나로서는 너무 당연한 선택이었다... 



그럼에도 부작용은 있겠다. 당장 눈에 보이는 구토나 설사, 그리고 현재는 눈에 보이지 않지만 향후 있을지도 모를 성장 및 성기능을 비롯한 인지 저하 등. 그러나 부작용을 생각하는 것보다 현재는 치료와 예방이 최우선이니 사실 머릿속에 그런 것들은 별로 남아 있지 않다. '어쨌든 나아간다'라는 정면돌파식 마음가짐이랄까...


방사능 이후엔 언제나 머리에 남는 자국... 그리고 지켜볼 때마다 떨리는... 너의 몸... 


양성자를 한 이후는 언제나 머리에 자국이 남는다. 꽉 쪼이는 마스크 때문일 테다. 가슴엔 중심정맥관을 단 채 이젠 우리만의 일상이 고정되는 중이다. 새벽에 출발해서 아침에 병원에 도착하고 난 이후, 1시간이 채 안되지만 40여 분동 안 꼼짝 앉고 누워 있은 후, 양성자가 끝났어도 병원에서 exit 할 순 없다. 혈액종양과 교수님 외래가 있는 날엔 꼬박 오후까지 대기, 5시간을 기다리면서 소아채혈실에서 통 받아 피검사하고 고정판이나 무침캡을 교환하는 날이면 테가덤 소독을 하고 난 이후 내내 기다린다.



기다리는 일은 우리에게 일상이 되었다. 정음의 기다림과 나의 기다림의 방향은 조금 다를 수 있지만 궁극적으로 두 사람의 기다림의 공통점은 있겠다. '평온과 평범'......



남들의 평범함이 우리에겐 원함이 되었으니까...


평범하게 걷고, 평범하게 먹는 일. 

평범하게 웃고 평범하게 우는 일. 

평범하게 자고 평범하게 눈 뜨는 일. 



반대로 남들의 비범함이 우리에겐 평범이 되었다. 방수테이프를 한 채로 샤워를 하는 일. 중심정맥관을 단 채 누워 있거나 자는 일. 생과일이나 아이스크림은 입에도 대지 못하며 물 100ml 도 채 마시지 못하고 배가 부르다가 토하는 시간. 아이의 소변과 대변과 열체크와 기타 아이가 하는 모든 문장을 예리하게 관찰하면서 헹여나 인지기능에 문제가 있는지 사소한 것 하나하나 기록하고 기억하며 매일 매 순간 정말이지 1분 1초를 긴장을 늦추지 않고 살아가는 시간이 일상이 된 엄마... 



뭘 생각하는지 묻지 못하는 이유가 있다... 



정음은 가끔 말없이 허공을 응시하는 순간이 잦아졌다. 양성자 치료를 하면서 외래 시간을 기다리면서 혹은 장애인 콜택시를 기다리면서 늘 기다리는 시간이 길어지면 정음의 침묵도 조금씩 길어져간다. 그때마다 무엇을 생각하는지 궁금하지만 나는 종종 묻지 못한다. 나 때문이다. 울보 엄마인 나 때문에. 정음이에게 문장을 건네다가 이상하게 눈물이 자꾸만 고여서. 그런 모습을 보이기 싫어서 대신 마스크를 쓴 채 가만히 정음을 바라본다. 그러면서 등을 쓰다듬어주고 딴 소리를 하려 애쓴다. 



오늘은 뭘 먹어볼까. 오늘은 뭐 좀 먹었으면 좋겠다..

우리 저거 마실까. 조금이라도 마시면 좋겠다. 

이제 거의 다 됐어. 시간아 빨리 가라. 우리 정음이 집에 어서 가자.. 



정음이는 아무리 철이 빨리 든 의젓한 아이임에도 아이는 아이라서 가끔 엄청나게 성질을 내거나 떼를 쓸 때가 여전히 있다. 암투병을 시작한 이후 정음의 성냄은 조금 도가 지나칠 때가 생겼다. 그것이 어떤 연유로 인함이든, 오늘 오전에도 정음이는 별 것 아닌 일로 성질을 있는 대로 내면서 핸드폰을 집어던지며 얼굴이 시뻘게질 정도로 화를 내며 울먹였다...  



모든 걸 받아줘야 하는데. 화내지 않고 아이의 희로애락을 모두 떠 앉아야 하는데..... 여전히 무능한 나는 아이의 성질에 대놓고 반격을 가하고 난 이후엔 입술을 깨문다. 나 자신을 자책하면서. 그리고 아이 방에 들어가 이렇게 노트북에 두 손을 올려놓는다. 꾹 참던 눈물을 흘려대면서. 아마 누군가 이 모습을 보면 참 바보 같이 생각할 테다. 아침 댓바람부터 저 엄마는 왜 저러나 싶어서.. 아이가 투정 부리는 순간은 어느 아이를 키우는 가정집에서 볼 법한 흔한 순간임에도... 그거 하나 참지 못했다며. 누군가는 그럴 테지..... 



맞다.. 나는 아직 한참 모자라다. 암환우에게 가장 중요한 게 의외로 심적인 안정과 곁의 가족들의 건강하고 긍정적인 응원인데. 겉으로 아무리 얘를 써서 정음을 그리 보살피나 속으로는 속이 철철 끓고 매일 피눈물을 흘리는 터라 소위 '긍정' 이랄것이, 밝음의 에너지가 좀처럼 나오지 않는 게 여전한 사실이다. 



긴 터널을 지나가고 있다. 여전히 앞은 보이지 않는다. 다만 이 생각을 기억하려 애쓸 뿐이다. 

오늘 할 일을 확실히 하면서 덜 후회할 선택을 할 것. 최대한 다정하고 친절하게. 정음이가 화를 내고 울부짖을 때 같이 화내지 말고 차라리 그 상태 그대로 받아들이면서 지켜봐 줄 것을. 시간은 큰 힘을 지녔고 언제나 시간을 이길 수 없는 나로서는 시간에 기댄 채. 



긴 터널을. 느릿하게. 기어가고 있는 중이다... 

오늘은 정음이가 부디 뭘 좀 먹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 아이의 마음이 편안했으면 좋겠다......

아직도 내게는 편히 울 공간은 없다는 걸 알기에. 나도 좀 그만 울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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