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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헤븐 Sep 15. 2024

울 준비는 되어 있다.

2024년 5월 

5/1 : 심한 보행장애 관찰, 동네 병원 뇌 MRI 및 정밀 검사 소견서 입수 

5/2 : 분당차 MRI 및 긴급 입원 (소아청소년과 - 신경외과 이동) 

5/3 : 1차 개두술, 수두증, 션트 

5/8 : 수모세포종 진단, 2차 종양제거 개두술 진행, 6시간 가량, 이후 중환자실 입성

5/9 : 중환자실, PICC 시술 

5/10~22 : 일반실, 병동생활 

5/22 : 오후 SMC 대리 진료, 긴급 전원, 퇴원과 입원 수속

5/22-23 밤부터 새벽까지. MRI, CT, X-ray 등 모든 재검사 진행 

5/24 : MTX 항암제 1차 투입, 히크만, 골수검사, 요추천자 

5/27~6/3 : 1차 항암 A플랜 


2024년 6월 

6/6~15 : 응급실 재입원.... 열남, 균배양검사 - 중심정맥관 포도상구균 발현

6/20~25 : 2차 항암 B플랜


2024년 7월

7/4 : 혈소판 수혈, 그라신 수치주사

7/7~10  : 조혈모세포 이식을 위한 조혈모 채집 입원 

7/19 : 양성자 마스크 제작 및 모의 치료 


2024년 8월

7/29~9/2 : 양성자 25회차  (전뇌전척수 : 13회차 / 이후 부분 양성자 12회차) 

이후 일주일 간격 피검사-수치주사-해파린 주입 등 기타 중심정맥관 관리 


9/23~ : 외래 및 입원 예정





사실 울 준비는 늘 되어 있었다. 울 공간이 마뜩찮았을 뿐. 어디든 괜찮았다. 혼자 있을 수만 있다면. 병원 화장실. 슈퍼를 혼자 왔다 갔다 하는 몇 십분의 길. 정음이의 잠든 모습을 바라본 채 옆에서 베게에 얼굴을 밖으면 바로 수돗물 틀어 놓듯 흘러나와버린다. 안 울려 애를 써도 도무지 막을 수 없는 순간이 여전히 잦다. 점점 앙상해져가는 아이의 뼈만 남아져가는 몸. 해도해도 이렇게 안 먹고도 살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애타는 마음. 속상함은 분함으로 쉽게 변한다. 그리고 그 분함은 분노로 또 변한다. 누구를 향한 화일까. 아마도 내 자신일테다. 이렇게 변해버린 박복한 인간. 운이 정말 지지리도 없는 박복한 년이라는 말을 하고 하고 또 하는 모지리 같은 여자... 



육아는 늘 어렵다고 생각해왔다. 아무렴. 쌍둥이를 키우면서 기쁨보다 슬픔과 좌절이 더 가득했던 게 아이 키움의 민낮이었다. 아이의 소중함과 사랑스러움은 이루 말할 수 없다는 걸 모르진 않는다. 다만 나는 미화하고 싶지 않을 뿐이다. '현실' 의 그늘진 면에 대해서. 그런데 생각해보면 예전 생각 또한 참 오만한 생각이었다. 보살핌의 레벨이 고강도로 올라간 이후 뼈저리게 느낀다. 건강한 아이의 육아는 다름 아닌 축복 같아서...... 건강한 아이를 돌보는 일과 아픈 아이를 돌보는 일은 그야말로 임신 전후의 인생이 바뀌는 차원이 다른 느낌이랄까... 예전엔 생각도 하지 못했던. 상상조차 되지 못하는 세계. 거기에 더 세분화시키자면 아픔 중에서도 거동을 스스로 하지 못하는 것과 거동을 스스로 할 수 있는 것의 돌봄도 차원은 다르다.....정말이지 경험하지 않고서는 모르는........... 간병에도 레벨이 있다면 최소한의 기준은 다름아닌 환자가 스스로 움직이는가 그렇지 않는가에 따라 모든 게 달라진다. 생활 반경. 노동 강도. 생활에 필요한 최소한의 준비물. 그 모든 것들이 달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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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아통치실에서 두 다리로 멀쩡히 걷고 항암주사를 맞고 있는 아이들을 보는 마음과, 휠체어를 타고 누군가에 의지하지 않는다면 전혀 걷지도 먹지도 못하는 아이를 보는 마음은 솔직히 정말 다르다. 그리고 나는...... 정말 못났지만 그럴때마다 우리의 좌표점을 살핀다. 우린 얼만큼의 '최악' 의 환경에 속해있는지 불행 배틀을 혼자 해 버리고 만다. 걷는 아이들에 비해 우리는 아직 스스로 걷지 못하니 최악인걸까. 반대로 뇌병변이나 뇌성마비가 아니기에 멀쩡히 자신의 감정이나 필요요구사항에 대한 의사표현을 그나마 할 수 있으니 도리어 다행이라고 볼 수 있는가. 항암주사를 맞을 수 있는 건강상태라서 다행이라고 말할 수 있는가. 양성자 치료를 끝내고도 구토가 경미하게 지속되고 여전히 먹지 못한 채 마르기만 하고 있기에 여전히 악조건이라고 해야 하는가. 치료가 종결되지만 완치라고도 말할 수 없는 채로 평생 추적관찰을 하면서 불안하고 긴장하는 삶을 살아야 하니 이건 최악인걸까. 그럼에도 일단 우리는 '함께' 있으니 이것으로 충분한걸까. 충분할테지만........그렇지만. 




5월부터 출구를 잃은 채 미궁에 확실히 갇혀 버린 것만 같은 나는 어찌어찌 꾸역꾸역 매일매일 해야 하는 일과 할 수 있는 일을 하면서 시간을 채워 나가보고 있는 중이다. 토했을 때 토사물을 치우는 일. 설거지와 빨래 청소를 매일 하고 매 끼니 음식을 준비하며 식탁을 차리는 일. 잦은 병원 외래에 장애인 콜택시를 예약시키고 기다리고 승차하고 하차하는 일. 휠체어에 태우다, 소파에 눕히는 일. 아이의 대소변을 챙기는 일. 중심정맥관 소독 및 주기적 관리를 해 주면서 아이의 몸을 씻기는 일. 무엇보다 정음의 불안정한 마음 상태를 살피면서 최대한 아이의 정서가 가라앉지 않도록 눈치를 살피는 일. 결국 매일 긴장하면서 사는 일... 마치 천미터 상공 공중에서 외줄타기하듯 조금이라도 스텝이 꼬이면 바로 고꾸라쳐도 이상하지 않을 듯한 불안한 마음... 불안은 쉬이 가시지 않는다. 아이의 감정이 곡예를 때마다 감정도 같이 소용돌이를 탄다. 반대로 아이가 평온한 상태에도 감정은 좋을 없다. 묘하게 애타고 속상함은 여전하니까. 



과거의 정음이 툭툭 튀어 나오는 건 어제 오늘 일이 아니었지만. 아이가 언젠가부터 갑자기 예전에 그렇게 키우고 싶어했던 파충류에 대한 관심이 급속도로 증폭이 되던 날. 어쩔 도리 없이 감염이고 뭐고 그냥 머릿속에서 잊고 아이를 데리고 외출을 나갔었다. 파충류 샵이었다. 크리스티드 게코를 어루만지며 조용하고 온순해진 정음이는 희미하지만 미소짓고 있었다. 처음 보는 평화로운 표정이었다. 몇 달 동안의 내 노력보다는 파충류 한 마리가 정음이에게 세상의 환함을 선물하는 순간이었다.... 




릴리화이트와 크림시클을 키우자...... 마음은 당장이라도 그러고 싶었다는 걸.....



어떤 생각이 똬리를 틀고 자꾸 심장을 요동치게 만들면 이상하게 화가 난다. 숨이 쉬어지지 못할 정도로 화가 나서 나도 모르게 가슴을 주먹으로 내리친다. 주말이나 연휴는 특히 그렇다. 아이 두 명을 살피는 것에 남편 식사를 챙길땐 이상하게 좀 더 화가 난다. 말을 해야 알아 듣는 사람. 뭘 좀 해 달라고 해야 그제서야 움직이는 사람. 바깥에서 돈을 벌어다 오니 그것으로 치료비나 생활비로 소비하고 있으니 그렇다면 그에게는 더 이상 바랄 게 없어야 하는가. 그럼에도 도무지 이상하게 그 면상과 행동을 보고 있자니 너무 답답하고 화도 나서 나 없이는 정말 아이들은 살 수 없겠구나 싶을때 도리어 오기가 생긴다. 저 사람보다는 더 오래 살아야 내 아이들이 살겠구나 싶기에. 



아픈 아이를 잘 돌보지 못하고 제대로 세심하게 배려할 줄 모르는 어른의 추함이란 이루 말할 수 없다.........그나 그의 원가족들이나........ 아픈 아이 걱정은 늘 '말' 로 했던 사람들. 아픈 아이보다 건강한 남은 아이에게만 연락하는 사람의 행태를 도대체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어떤 문장으로도 표현이 되지 못할 만큼의 밉상과 못나보이는 행동거지는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다........... 그래서 화가 난다. 화의 끝은 눈물이다........... 억장이 무너져 피눈물이 나도 이럴 수는 없을 만큼의 눈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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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음이가 크리스티게코를 만지며 희미하게 웃는 얼굴을 떠올릴때에도 이상하게 눈물이 났던 건 과거의 아이가 같이 중첩되어 다가왔기 때문이었다. '엄마' 하고 부르는 목소리는, 분명 같은 사람의 목소리여도 이제는 확실히 달라진 채 다가오니까. 예전의 장난스럽던 씩씩한 네 목소리는 여전히 그립다...그리고 지금의 정음이의 목소리는 뭐랄까. 살이 빠지면 목소리의 강약도 변하는걸까. 더 여려지고 약해지는 목소리. 그 속에서 가끔 앙칼지게 사나워지는 목소리. 확실히 변해버린 아이. 그 변함을 다 껴앉고 나아가지만 가끔 껴앉는 게 버겁고 또 자꾸 속절없이 미안하고 안타까워서 속이 까맣게 타 버린 엄마...



생판 모르는 남도 이런 나를 위로할테지만. 도리어 가족으로 묶여져 있는 남편은 위로는 커녕 이런 나를 이해하지 못한 채 왜 화를 내냐고 큰소리를 친다. 예전에도 그랬고 오늘도 그랬다. 아마 언젠가의 미래에도 그는 변하지 않을 것이다. 자신의 자존심과 자신의 원가족이 나와 아이들보다 더 중요했던 이기적인 인간.... 




누군가 그랬다. 

아픈 아이만 생각하라고..


눈물을 흘리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쓴다. 

속으로는 그럼에도 내 자신을 속이지 못한 채 다가오는 이 문장만을 나도 모르게 떠올렸다. 


울 준비는 되어 있다. 

결혼 이후 언제나 그랬었다. 

다만 울 공간이 없었을 뿐. 그 어디에도 그런 공간은 허락되지 않고 존재하지 않는다. 


눈물은 생활에 도움이 되지 않으니까.......

정음아. 그러니 우린 울면 안 된다. 너에게도 나에게도 눈물은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 걸 


울면서 깨닫는다.......너의 눈물을 볼 때 마다. 

그리고 혼자서 나는 울 때 마다.. 



외출도 쉽지 않고 늘 긴장하고 말지만... 집에만 갇힌 삶도 너무 힘들긴 매 마찬가지지... 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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